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모든 것이 그대로 완벽하다

Buddhastudy 2024. 3. 4. 19:40

 

 

벗어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래서 경험하는 어떤 것도 도 아님이 없다.

괜한 걱정임을 알아차리는 것의 효력을 체감해야 한다.//

 

 

 

오늘은 모든 것이 그대로 완벽하다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잘못하면 정신 승리, 여우의 신포도 이런 얘기가 되기 쉬운데

그건 아니고

마음공부의 한쪽에

닦아서 어떤 바람직한 상태를 이룬다라고 하는 명제를

어떻게 보면 거부하고

그렇게 갈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쪽이 있죠.

저는 이쪽도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곧 그것이다’ ‘I AM THAT’ 이런 표현이 있죠.

이미 그것이다, 이미 도달해 있다

어디에 도달해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도달해 있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이런 것이죠.

 

노자에 보면은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저는 이 말이 그래도 가장 심금을 울리고

가장 저한테 어떤 깨달음을 준 단어인데

벗어날 수 있으면

개념에 의해서 그건 이미 도가 아니죠.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이 도가 아님이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겪는 희로애락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갈매기 조나단에서

갈매기가 흰 갈매기 무리로 가서

그 늙은 갈매기하고 만나잖아요.

그 늙은 갈매기가 빨리 나는 비행 연습을 하고 있는 조나단한테

그 비결이 있어.

그게 뭐냐 하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이미 도달해 있다라고 하는 자각이

너를 거리로 데려다 줄 거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조나단이

맞아, 이미 도달해 있어하고 몸을 움찔움찔해도 저기 안 가 있거든.

그래서 초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찌 됐건 그것도 화두죠.

그러니까 이게 전부가 본각, ‘이미 깨달아 있다라고 하는

불교적인 대승불교의 사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이미 깨달아 있다, 이미 완전하다라고 하는 것을 모른 채로

괴로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시각, 또 깨달아 가야 되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이죠.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기 때문에

따로 평안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이것은 평안이고 이것은 평안 아닌 것

이렇게 되면 또 세상을 구분하는 거잖아요.

 

근데 도라고 하는 것은 세상 전체이기 때문에

그 구분법 자체가 문장 자체가 틀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따로 원래 평안함을 추구할 수 없지만

세상에 많은 힐링 센터에서는

평안함이라고 하는 것을 대상화시켜서

물건처럼 이걸 주겠다

이렇게 걷고, 호흡하고, 어떤 음악과 동작

이런 것들로 내면 깊이 침장해서

평안함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그거는 어떻게 보면 상상에 지나지 않죠.

 

근데 어찌 됐건 우리는 현실에서 불안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뭔가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죠.

 

근데 우리의 불안이라고 하는 것은 그럼 뭐냐?라고 생각을 해보면

불안의 대칭되어 있는 것이 욕망이죠.

왜냐하면 욕망이 좌절되는 게 불안이고, 그게 분노고, 그게 슬픔이잖아요.

모든 것은 욕망에 연결되어 있다.

 

욕망은

얻지 못할까 봐 또는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 봐

그게 두려움이잖아요.

그러니까 욕망은 반드시

두려움, 걱정, 슬픔, 불안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욕망은 불안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고

그런데 우리의 욕망을 좀 살펴봐야 되는데

욕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욕망하는 방식이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고

뭐 그런 욕구가 틀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겨울을 지나기 위해서는 땔감을 준비하고

이게 나쁜 겁니까?

이건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이러면

[밥은 안 먹는데 나는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이렇게 되면

알약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생활은 엉망으로 하는데

대사증후군 당뇨, 심혈관계 질환 이건 걸리고 싶지 않고]

물론 이것도 콜레스테롤 약이라든지

엄청난 신약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겠죠.

 

[죄는 지었지만 감옥에는 가고 싶지 않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현실에서도 말이 되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아주 극소수한테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

이거는 인지상정

우리가 뭐 사람이니까 그건 이해는 하는데 맞는 말은 아니죠.

태어났으면 죽는 거지.

 

하여튼 그건 [될 일이 아닌 것을 욕망하는 인간에게서

불안과 괴로움과 우울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정리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본질에 대한 통찰을 왜 자꾸 하려고 하냐?

이 현상 너머의 본질이 있을 거야

또는 이 현상 위에 더 거룩한 것이 있을 거야라고 하는

본질과 본원에 대한 통찰을 하고 싶다라고 하는 욕구조차도

어떻게 보면 그 대칭되는 측면에는 뭐냐 하면

상황을, 사물을, 타인을

내 마음대로 교묘하게 조정하고 싶다, 정밀하게 조정하고 싶다라고 하는

욕망의 반응일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본질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들이

사실은 그 본질의 현현, 나타남이다.

이건 되게 어려운 말인데 어찌 됐건 굳이 이야기하자면

본질은 현상 속에 녹아 있다거나

하여튼 이 둘이 아니다

이런 얘기 아닙니까? 그죠?

 

그래서 사실은 내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이 본질이라면 또는 진리라면

내가 이 본질이 뭐지?’라고 탐구에 들어가는 갈 필요가 사실은 없죠.

궁금해할 이유가 없죠.

의미가 없으니까.

 

다 본질이다, 다 진리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더군다나 영적 진리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현실에서는 서 푼어치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또는 영적인 체험들이 있죠.

 

저도 일부 해봤는데

그런 영적 지식과 영적 체험들을 보물처럼 가지고 있지만

그거는 어떻게 보면은

때에 따라서 그게 다 달라지는 중첩 되어 있는 속성이 있거든요.

 

그게 뭐냐 그게 산은 산이고 물이다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가

결국 또 마지막에는 결국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런 얘기로 정형화되어 있는 건데

 

그러니까 어떨 때는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소중한 등불이다가

예를 들면 무상, , 무아, 연기법, , 불이,

이런 것들이 소중한 등불이었다가

어떤 경우에는 그게 또 고집이 되고,

법에 대한 집착이 되어서, 진리에 대한 집착이 되어서

그것만 붙들고 있으면

또 사람이 되게 괴벽한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어떤 악취나는 우물이 돼버린단 말이죠.

그런 좋은 지식과 체험이라 할지라도.

 

마치 교실에서 조용히 있는데

조용함을 추구하는 반장이

조용히 해, 조용히 해, 조용히 해끊임없이 떠들면

그건 조용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비유를 할 수 있겠습니다.

 

시험을 받게 됩니다.

뭐냐 하면 내가 무상과 무아를

지적으로 혹은 깊이 믿는다 또는 일부 체험도 있다.

그리고 연기법, 무아, , 불이 이런 것들을

어느 날 아침에 감동을 받아서

그렇지 정말 그렇지

나는 모든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러면 진짜 그래?

그래 그럼 이거 한번 시험 한번 쳐봐라고 해서

시험이 세게, 아주 극악한 시험이 다가올 수 있죠.

 

그거는 우주가 나한테 시험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단어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 단어에 많은 것들이 걸리기 때문에 그렇다.

그 단어에 그물을 쳤기 때문에 고기들이 그 그물에 걸려든 거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어찌 됐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 현실이라고 하는 시험을 거친 뒤에야

이 법들이, 진리라고 생각되는 단어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이 되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내 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환상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무상하고,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변하기 때문에.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 무상하고 천변 완화하는 현상을 떠나서 뭐가 있냐?

그것도 허망하다.

 

그리고 이 현상을 무시하면 죽는다, 고생한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에는 글자가 있고, 한쪽에는 숫자가 있는데

이 두 개가 다 있어야 동전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결론이 뭡니까?

내가 지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굿 필링이든 베드 필링이든

너무 그거 가지고 걱정할 것 없다.

저항하지도 말고, 매몰되지도 말고, 어떻게 하라?

타고 넘어라.

타고 넘으면 서핑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