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995. 학대받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괴롭습니다

Buddhastudy 2024. 3. 11. 19:42

 

 

개들은 1m 목줄로 평생을 묶여 살거나 학대받고

, 돼지, 닭 등은 자기 몸짓만 한 틀에 갇혀

죽기 전까지 평생을 고통받는 현실을 볼 때면

제가 고통이 너무 심해져서

몇 날 며칠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나무 한 포기도 아끼고

풀 한 포기도 아끼고

새 한 마리도 아끼는 건 참 좋은 거예요.

 

근데 자기는 지금 그게 조금 지나치다.

지나치다는 기준도

세계 보통 사람의 평균치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지나쳐서 이제는 누가 풀 베는 거 보고도

내 팔을 베는 것처럼 가슴 아프고

나무 베는 거 보고도 사람 목을 치는 것처럼 가슴 아프고

소에 그런 멍에나 이런 걸 보고 감옥에 갇히듯이 가슴 아프다.

 

그러면 자기는 출가를 해야 됩니다.

부처님이 그 소가 멍에에 걸려서 밭을 갈고 힘들어하는 걸 보고

가슴 아파하셨거든요.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걸 보고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 하나가 죽어야 할까?

같이 사는 법은 없을까?

왜 사람이 편리하기 위해서는 저 소는 저렇게 고통스러워야 할까?

왜 왕족들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저 노예들이 저렇게 고통스러워야 할까?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서

왕위도 버리고 출가를 하셔서

왜 인간은 이런 고뇌가 있을까를 탐구하고 탐구하셔서

깨달음을 얻고 편안해지셨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당시에도

노예계급의 해방을 추구하셨어요.

카스트에 의해서 양반 상놈 따지는 거 부정하고

성차별, 남자 여자 차별하는 것도 부정을 하셨다.

 

그래서 이미 천주교 같은 데는

아직도 수녀가 사제, 미사를 집전할 권한이 없는데

부처님은 이미 2600년 전에

여성이 수행자가 되는 길을 열어놓기도 하셨다

이런 얘기예요.

 

그러고 성문으로 나가서

사람이 그 노예들이

굶어 죽는 거 보고, 병들어 죽는 거 보고, 늙어 죽는 거 보고

죽은 시체마저도 아무 데나 버리는 걸 보면서

왜 사람은 이다지도 괴로워해야 되는가?’ 이런 깊은 고뇌를 했다.

 

자기가 그런 거를 보고

이게 왜 이럴까? 이 원인이 뭘까?’

이렇게 탐구하기 시작하면

수도심이, 구도심이 된다.

도를 닦는 마음이 된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밥도 별로 관심이 없고, 결혼도 관심이 없고,

세상의 오용락, 아무 관심이 없다.

오직 이 문제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되니까 부처님은

왕위도 버리고, 아내도 그만두고, 자식에도 미련을 끊고

부모가 말리는데도 그 미련을 끊고 출가하셔서

밥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다 떨어진 분소의, 시신을 사서 버린 천을 걸치고

이렇게 수도를 해서

그 고뇌의 원인을 발견해 내셨다.

 

그래서 그분은 평생 수도자로서 편안하게 살았고

다른 사람의 고뇌에 대해서 도움을 주는 그런 분이 되셨다.

그래서 지금 우리도 이런 혜택을 받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 구도심으로 가면 그런 문제의식은 참 좋아요.

근데 먹을 건 먹으면서

고기는 먹으면서, 소고기는 먹으면서 개고기는 먹지 마라 하고

돼지고기는 먹으면서 고양이 고기는 먹지 마라 하고

그러면 이게 모순이라는 거예요.

 

인도에서는 소고기는 절대로 못 먹는다

근데 한국 사람 먹는다

그러면 인도 사람은 성인이고 한국 사람은 죄인이냐?

아니잖아요.

식성이 다르죠.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는 절대 안 먹고

우리는 돼지고기 좋아하잖아요.

그 문화가 다르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이나 만주나 이쪽 지역은 개가 식용이었어요.

그럼, 유럽에서는 안 먹고 한국 사람 먹으면

한국 사람 나쁜 사람이냐?

이렇게 보는 거는 옳지가 않다.

 

그런데 오늘날 가치가

서양적 가치 기준으로 돼 있기 때문에

서양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죠.

왜냐하면 정글에서 또는 이민 가서

정글에서 생활할 때 개는 자기를 보호하는 아주 든든한 우군이란 말이에요.

집을 지키고 사냥을 하는데

그러니까 개는 그냥 한 가족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개가 아니고

그냥 한 가족이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엄청난

자기 가족을 죽이거나 잡아먹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문화하고

이 농경문화에서 개를 키우는 거는

그런 성격의 개가 아니라

그냥 식용으로 개를 키우는 문화하고는 문화가 다르다

이런 얘기예요.

 

근데 우리는 한 가지 문화로 모든 거를 결정을 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까 아프카니스탄 전쟁이 났을 때

애완용 동물 동호회, 그걸 너무 좋아하는 동호회는

돈을 내서 전세 비행기를 띄워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버려진 애완용 동물을 유럽으로 데리고 가면서

수많은 사람은 버린다는 거에요.

사람은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니까.

 

이런 것이 과연

그럴 수는 있어요.

이걸 나쁘다이리 말하면 안 돼요.

사람은 다 자기 좋아하는 게 있고, 자기 기호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것이 절대적인 선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또 그걸 절대적인 악인 것처럼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자기가

이런 동물들의 그런 아픔을 보면서

동물 해방 운동을 하는 거는 좋지마는

거기에서 자기가 늘 슬피 울고, 괴롭고, 가슴 아파한다면

이거는 정신적인 질환에 속하는 거예요.

 

우리가 풀 베는 거 보고 가슴 아파 애가 막 늘 울고불고하면

그 정신 질환이라 그러지

그걸 누가 풀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겠어.

나무 베는 거 보고 막 완전히 사람이 넘어가면

그걸 어떻게 정신질환이라 그러지

어떻게 그거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겠어요?

 

사람이 죽는 것들을 막 핑계 쳐놓고

고양이 개 죽는 것만 가지고 막 울고불고 날뛰면

그 고양이 개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해야 안 되겠어요?

 

그러나 이제 거기에 가치를 두면

사람만 목숨 중요하고 고양이 목숨은 중요 하느냐?’

이렇게 또 재기 하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선택을 한다면

사람 목숨을 더 우선시하자는 거 하고

짐승 목숨은 필요 없다는 거 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는 내 목숨을 남의 목숨처럼 생각하고

우리나라 사람의 목숨,

남의 나라도 우리나라 사람처럼 생각하고

동물들도 사람처럼 생각하자 하는 거는

평등성을 넓혀가는 과정이에요.

 

그러나 자기 목숨은 팽개치고 남의 목숨을 구하고

자기 가족은 팽개치고 남의 가족을 구하고

자기 나라 사람은 다 죽어도 남의 나라 사람을 구하고

사람은 다 죽어도 짐승만 구한다 이러면

그럼, 그는 성인이냐?

그렇지가 않다.

그건 오히려 불평이다. 불평등이다.

 

동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건 좋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동물을 아끼고 사랑한다면서

아파트에서 개가 짓는 소리가 이웃집에 방해된다니까

목 그거를 잘라버리고

꼬리 치고 이렇게 귀찮다고 잘라버리고

거기다가 옷을 해 입히고

색깔을 칠하고.

 

그건 다 자기는 아끼고 사랑하는 법이에요.

근데 그게 개나 고양이가 원하는 거겠어요?

개나 고양이가 진짜 원하는 거는

자연 속에서 그냥 사는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가치가 형성되고

그걸 막 중요시하고

이런 문화가 지금 형성돼서

애완용 동물에 대해서 비판했다가는

지금 완전히 막 난리죠.

 

이런 것이 정신적으로 보면 집착이다, 집착.

어떤 것에 정신이 거기에 딱 필이 꽂혔다

그래서 다른 건 잘 안 보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지금 굳이 얘기한다면

그런 동물도 사람처럼 가능하면 자유롭게 살도록 한다 하는 그 좋은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과잉이 돼서

그거하고 자기하고 일치가 돼서

지금 울고불고 하는 거는

좀 사로잡힘, 필이 꽂힘, 집착의 강함

이것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괴로움이 생겼다.

 

그래서 동물 애호 운동을 하지만

이렇게 집착하는 거는 올바르지 않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

 

그런데 내가 동물이 자유로운 거를 원한다면

동물애호운동이

그저 뭐 잡아죽이느냐? 고기를 먹냐 안 먹냐?

이런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자체가 동물 학대예요, 엄격하게 말하면.

가축만 학대가 아니고

 

그러니까 닭을 사람이 안 잡아 먹으면 제일 좋고

잡아먹는다 하더라도 살 때는 좀 자유롭게 살도록 두고 잡아먹든지

소든 개든 좀 자유롭게 살도록 해줘야 되는데

사육장에 가보면 그게 지옥이지, 어디 그게 산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고양이니 개니 집에서 키운다면서 난리를 피우는데

그것도 엄격하게는

동물의 생리에 볼 때는 그것도 일종의 학대입니다.

 

근데 본인이 애완이라고 하니까 그걸 어떡하겠어요?

아내라고, 자기가 사랑한다고 여자를 집에 가둬놓고

먹을 것만 주고, 좋은 것만 보석만 차려주고, 외부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이거를 자기는 사랑이라고 할 때

우리가 좀 더 자유로우면서 볼 때

그것도 일종의 학대다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예요.

 

이게 다 집착해서 생기는 문제니까

가능하면 자기는 그걸 막 갖고 또 성질내지 말고

운동을 하더라도

모든 생명은 태어난 자기 성질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건이 된다면 좀 열어놓는 쪽으로 우리가 활동해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예 내가 채식만 하고 육식을 안 하든지

이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은

그것만 갖고 되는 건 아니거든요.

 

육식을 하더라도

우리 생명의 어떤, 생명 현상, 생명의 성질에 좀 맞도록

모든 사람과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100%는 안 되지만

가능하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앞으로의 관점에서

생명보호, 동물애호

저는 이런 게 필요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도량에 가축 기르는 거를 금지하셨습니다.

애완용 동물이고 뭐고 간에

다 결국은 사람들이 자기 필요에 의해서

누군가를

자기 외로우니까 그걸로 대신하는 거거든요.

 

그런 것에서 좀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관점을 가졌으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