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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과학] 국가가 전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는 X약

Buddhastudy 2024. 4. 3. 19:31

 

 

나치와 반나치의 싸움이 한창이던 2차세계대전

한 유대인의 아들이었던 모리스 자노위츠는

나치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군에 입대한다.

 

사회과학에 푹 빠져 있던 그는

심리전 사단에 배치되었고 그의 임무는 하나였다.

나치 정신의 미스터리를 푸는 것!

 

독일군은 왜 그토록 열심히 싸웠을까?

이건 오랫동안 과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린 난제였다.

독일군은 엄청난 수적 열쇠에 몰려 있었고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싸웠을까?

그토록 나치즘에 완벽하게 세뇌당한 것일까?

나치즘의 좀비가 된 것일까?

 

그동안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해왔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건 강한 이데올로기다.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

자신이 지지않은 사상에 대한 믿음

최고의 군대는 자신들이 역사 속 정의의 편에서 있으며

자신들의 세계관이 옳다고 믿는 군대다.

승리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 나치의 군대는 탈영률이 제로에 가까웠고

그들은 역사에서 가장 강한 군대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연합군은 이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계략을 펼친다.

독일군에게 나치 철학이 얼마나 추악한 사상인 알려주자.

세뇌당한 그들의 사상을 깨부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자.

 

연합군은 독일군 지역에 수천만 장의 선전용 전단을 뿌렸고

노르망디에 주둔했던 독일군의 90%가 이 전단을 보았다.

어떻게 됐을까?

 

몇 달 뒤 모리스는 이 심리전의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독일군 포로들을 한 명 한 명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즉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누구도 자신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치즘의 세뇌당해 싸우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나치 사상에 관심조차 없었다.

 

몇 주에 걸친 신문 끝에 알아낸 그들이 싸운 진짜 이유는 바로

전우애

그것 딱 하나였다.

 

학교 선생님이건, 경찰관이건, 세탁소 사장이건, 의사건 할 것 없이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전국민이 무기를 들어 목숨을 바친 이유는

서로를 위해서였다.

 

한 독일군 포로는 모리스의 심문에 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무엇이 군인을 싸우게 하는지

당신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잘 알겠다.

 

그리고 다른 포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치즘은 전선에서 10마일 떨어진 후방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우애였다.

이건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었던 미국군도 다르지 않았다.

병사들은 진급의 기회가 있어도 다른 사단으로 전출되어 한다면

그 기회를 거절했고

부상자들은 휴가를 거부하며

심지어 병상에서 몰래 탈출하는 병사들은 도망가기 위해서가 아닌

빨리 전장으로 달려가 함께 싸우기 위해 탈출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믿는다.

겉으로는 선해 보이는 사람도

벼랑 끝에 몰리면 악한 본모습이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선해진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니

이 말이 어리석게 느껴지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9개월 동안 런던에만 8만 개의 폭탄이 떨어지고

100백만 채의 건물이 파손되며

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 런던은 카오스가 되었을까?

혼란을 틈타 이성의 고비가 풀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 길렀을까?

 

실상은 정반대였다.

범죄율은 오히려 떨어졌고

몇몇 사람들은 폭탄이 떨어지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땐 정치적 견해로 서로 싸우거나

빈부를 사람을 나누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열정적으로 서로를 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아닌 다른 재난 속에서는 어떨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타이타닉>에서의 상황은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사람들은 공항에 빠지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영화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현실 속 타이타닉호는 정반대였다.

한 생존자는 공황이나 히스테리의 징조는 없었고

비명을 지르거나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승객 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침착하고 질서정연하게

위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911일 테러 사건은 어떤가?

탈출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은

쌍둥이 빌딩이 불타오른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왔고

소방대원이나 부상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줬으며

사람들의 입에선 비명이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생존자는

아니에요, 먼저 가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비켜드릴게요라고 사람들이 말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어떤가?

이 이야기들이 놀라운가?

하지만 나는 이례적인 특별한 사건들만 골라서 보여준 게 아니다.

재난이 닥치면 결과는 항상 같았다.

 

델라웨어대학의 재난연구센터에서

1963년 이후 발생한 700여 건의 재난을 분석한 결과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침착하게 행동해 대혼란은 발생하지 않았고

살인, 강간, 강도와 같은 범죄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가끔 약탈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존 물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 다였다.

 

미디어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악함을 다루지만

진짜 위기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진짜 본성, 선함이 나온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믿게 되었을까?

브레흐만은 우리가 심각한 약에 취해 있다고 말한다.

이 약은 위험에 대한 오인, 불안, 무기력을 증가시키고

기분 저하, 타인에 대한 경멸과 적대감을 갖게 하는 중독성이 강한 약이다.

그 약의 이름은 바로

뉴스!

 

수학자 클로드 섀넌은

통신 회사가 정보를 전달할 때

얼마나 과금을 해야 하는지를 계산하기 위해

수학적으로 정보의 가치를 정의했다.

 

섀넌은 엔트로피를 이용했다.

물리학에서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나타낸다.

정리된 방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

어지러운 방은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

 

우주의 엔트로피는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광활한 우주에서

엔트로피가 잠시 낮아지며 발생하는 천체들과 생명체들은

너무나도 특별하다.

 

그런데 정보에도 엔트로피가 있다.

사람이 걷는다라는 건 높은 엔트로피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걸어다니고 이 정보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난다라는 정보는 아주 낮은 엔트로피를 가질 것이다.

사람이 걷는다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난다라는 정보는 엄청난 가치를 가진다.

이렇게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순간, 우리는 그 정보에 주목하게 되고

뉴스는 이를 보도한다.

 

테러리스트의 공격, 격렬한 폭동, 자연재해와 같이

예외적인 사건일수록 정보의 가치는 커진다.

따라서 미디어는 값어치가 높은 이 정보를 신나게 보도한다.

 

한 미디어 분석팀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어느 한 지역에서 범죄가 감소하면 감소할수록

실제로 그 지역 신문에서는

해당 범죄에 대해 더 많이 보도한다고 한다.

그만큼 그 정보의 값어치가 높아진 것이다.

 

한 청년이 나이든 할머니를 도와줬습니다라는 뉴스를 들어본 적 있는가?

자녀가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뉴스를 들어본 적 있는가?

 

사람들의 밥 먹듯이 하는 선한 행동은

정보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뉴스에 악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적다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값어치가 매우 높다.

 

미디어 연구팀은 이렇게 결론 짓는다.

뉴스와 현실은 서로 관련이 없거나.

심지어 역상관이 성립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대혐오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 어떤 진화심리학자는 사람들의 선함을 두고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호모사피엔스가

버림받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도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인간의 선함을 폄하한다.

 

하지만이 관점은 너무나도 잘못되어 있다.

사람들은 진화론적으로 생존을 위해 선해진 것이 아니다.

선한 사람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게 진짜 진화론이다.

 

사람들의 본성이 악하다고 말하면

현실을 잘 아는 시니컬한 비평가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의 본성이 선하다고 말하면

현실을 잘 모르는 순진한 애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난 용감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선하다.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 인간의 악함은

어쩌면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