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은 하나의 인격이다.

Buddhastudy 2024. 5. 28. 19:25

 

 

...

 

요즘에 자기 사랑하고

그다음에 내면아이의 소통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사랑, 그다음에 내면아이의 소통

 

 

--감정이란 무엇인가?

 

바로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감정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살펴볼게요.

 

감정에 대해서 그 테마를 정한 거는

감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감정을 안다라는 것은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다루는지 그것을 안다라는 것은

내 삶의 보다 더 깊은 부분을 이해하는 것하고도 같아요.

 

 

--감정이 없는 순간은 없다

 

왜냐하면 자세히 한번 살펴보세요.

감정이 없는 순간은 사실 없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삶에서.

감정이 없는 상태도 있지 않냐고

무감정한 상태, 그런 상태에도 있지 않냐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될 게 뭐냐면

무감정이라는 것도 감정 없음이라는 하나의 감정 상태예요.

 

우리가 자꾸 언어의 함정에 빠져서 착각을 합니다.

있다 없다의 함정에 빠져서

무감각, 아니면은 감각이 예민한 상태

그거 감각이 예민한 상태를 갖다가

예를 들어서

그것의 상대편에 있는 것은 무감각이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감각이 없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감각이 없다라는 감각의 형태로 있는 거예요.

감각이 없다라는 감각 형태로 있는 겁니다.

 

 

--무감정도 감정이다

 

격렬하게 고양된 어떤 에너지가 아닐 뿐이지

무감정의 상태 또한 감정이라는 뜻이에요.

 

무감정, 감정이 없음, 없음이라는 형태의

감정 없음이라는 형태의 감정이 있는 거죠.

자세히 한번 관찰을 해보시는 거예요, 자세히.

 

여러분이 체험하는 모든 순간에서요.

항상 동반되는 게 있습니다.

그 순간에 대한 앎하고요.

그다음에 그 순간에 대한 느낌하고요.

그다음에 그 순간에 대한 감정이 없는 순간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살펴보시면...

없어요.

 

 

--감정, 느낌, 앎의 삼위일체

 

어떤 형태로든지 있습니다.

[감정][느낌][]이라는 것

이게 [삼위일체]를 이루는 겁니다.

 

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은

우리는 어떻게 보면은

감정의 노예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보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요

감정이라는 것은 절대로 벗어나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죠.

나의 일부분이에요.

 

하지만 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에 대해서 규정하고, 동일시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감정은

동시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주역이기도 합니다.

행복하게도 만들지만, 또 동시에 힘들게 하는 주역인 거예요.

 

 

--현실 자체로는 힘들지 않다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어떤 현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현실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은, 우리가 알아야 될 게 뭐냐면은

현실 그 자체 때문에 힘든 건 아니에요.

현실 그 자체 때문에 힘들다기보다는

진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현실 자체라기보다는 감정이에요. 감정 때문에 그래요.

 

하나의 현실이 있어요.

그다음에 개개인의 관념 회로에 맞춰서 [현실출력회로]라고 부르죠.

나에게 닥친 현실에 부여되는 의미

그 현실에 부여되는 가치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정

얘네들 때문에 우리가 울고, 웃고 하는 거죠.

 

그렇다면은 이 감정이라는 것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요?

그거를 아는 게 중요하겠죠.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전적인 정의는

검색을 조금만 해보시면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패스하고

그게 아니라 감정이 가진 특성의 측면에서 한번 바라보는 겁니다.

 

 

--관념이 생명력을 얻은 상태가 감정

 

감정이라는 것의 정체

감정이라는 거는 생각의 흐름인 관념이

생명력을 얻은 상태예요, 다른 게 아니라.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뭐냐 하면

생명력을 얻은 관념이 바로 감정이며

이 감정은 동시에 하나의 인격입니다.

일종의 소인격체라고 보는 게 편해요.

 

이 감정과 그것에 흐르는 느낌

그리고 그 감정이 내려진 규정으로서의 앎이

삼위일체되어 있는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서]예요.

(정서= 감정, 느낌, 앎의 삼위일체가 생명력과 인격을 얻은 상태)

이 정서가 사실 우리네 일상의 모습을 결정한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앎하고요.

동시에 뭐냐면은

이 순간에 대한 어떤 규정, 그것을 아는 앎이 되겠죠.

그리고 또 뭡니까?

지금 이 순간의 어떤 느낌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느낌,

그리고 이 느낌이 구체화되고, 해석되어져서 나타나는 감정

생명력을 얻은 거예요.

얘네들이 삼위일체로 되어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은 이 감정이들이

생명력을 얻으려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그런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어떤 이유가

이게 도대체 뭘까요?

 

 

--스스로를 어필하는 것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을 어필하여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스스로를 어필하는 거예요.

누구한테?

바로 나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존재가 왜 존재하느냐?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그런데 존재한다라는 것이 인정받으려면

무언가에 의해 인식이 되어야 돼요. 나타나야 돼요.

무언가에 의해 인식될 때

그 존재가 나타나고

자기 자신의 존재가 증명이 되는 겁니다.

그게 존재의 속성이고

이 속성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에요.

 

존재가

나는 뭐 있는지 없는지, 인식되든 안 되든 상관없어.”

그러면은 세상 자체가 어떻게 되겠어요?

되게 재미없겠죠.

재미없다라기보다 드러나지 않습니다.

 

 

--존재의 속성

 

존재가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어필하고,

인식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세상에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존재의 속성이고

그 속성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메인 카르마는 사건과 감정을 발생시킴

 

그런데 이 공부를 조금 해보면은 알게 되죠.

세상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관념 중에서

소위 이야기하는 인드라망의 연동을 통해

인연 관계의 연동을 통해서 수많은 메인 카르마들이 만들어집니다.

한 인간의 일생에서.

그리고 이 메인 카르마는 뭐를 발생시키죠?

사건과 감정을 발생시킵니다.

 

이렇게 발생된 사건과 감정,

이것이 하나의 시선,

그러니까 관점을 통해서 정리된 것이 개개인의 세계관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게 되죠.

나의 세계관과 다른 사람의 세계관이 같을 수는 없어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세하게라도 조금씩이라도 다 틀려요.

조금씩 달라요.

틀리다라기 보다 달라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는 겁니다.

이 세계관이 하나의 렌즈, 통로, 혹은 채널

채널이 되어서 세상을 성형하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영상

이 채널을 틱하고 클릭했죠?

틱하고 클릭하는 순간 어떻게 돼요?

세상이 상영되죠.

이 영상이 지금 상영되죠

똑같아요.

 

 

--가슴을 열자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사건에 불과한 시공간의 흐름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으로 만들어 주는 열쇠가 됩니다.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삶으로 만들어 주는 열쇠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감성영역을 이해하고

이 가슴의 차트라를 여는 것이

삶을 보다 진실되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큰 힘이 되는 겁니다.

동시에 현실 창조에 관여하게 되죠.

이 감정이라는 에너지들이.

 

 

--감정의 흡입력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우리가 감정을 대면할 때 감정을 대변할 때

주시자로서 지켜보는 방식이

지켜보는 시선이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면요.

어떻게 되냐면

금방 그 감정에 동일시가 돼요.

그래서 끌려갑니다.

그게 감정이 가지는 흡입력 때문이에요, 흡입력

 

여러분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력이에요.

중력으로서 어떤 특징이 있냐면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로 끌어당깁니다.

끌어당겨서 떨어뜨리죠.

떨어뜨리는 힘이 있어요.

 

 

--감정은 일종의 인격

 

감정이라는 것은

그 생각의 흡입력이 강렬해진 상태를

생명력으로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은 일종의 [인격]이 되는 거예요.

 

물론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반응하며

다양한 감정을 체험합니다.

 

중요한 거는 뭐냐면은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상태를 경험할 수는 없다라는 사실이죠.

심지어는 감정이 없는 상태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뭡니까?

감정 없음이라는 형태의 감정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될까요?

앞에서도 다른 영상에서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하나의 감정을 대할 때는

그것을 인정해 주면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져요.

재밌죠.

 

이유가 뭘까요?

저항이 사라져서?

예 맞습니다.

 

 

--인정받으면 가라앉는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죠.

얘네들은 인정받기 위해 존재하는 소인격체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허용 작업의 첫 번째 스텝은

바로 [인정해 주기]입니다.

 

무엇을 그 감정이들이 존재한다라는 사실

그것을 인정해 주는 거예요.

이때부터 비로소 내면아이하고 대화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런데 인정해 주기자체는

일종의 임시방편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돼요.

첫 번째 스타트를 딱 끊는 거고.

 

 

--인정하면 고정관념이 보인다

 

그 이후에 대화하고

그다음에 허용을 통해서 진심이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인정 행위는

오히려 타협, 혹은 굴복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아셔야 돼요.

 

 

--허용은 포기가 아니다

 

그래서 릴리징이나 흘려보내기

그런 수행을 하시는 분들은

단순히 흘려보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게 나중에 가면은 일종의 체념과 같은 내려놓음이에요.

그래서 이러한 내려놓음은 허용이라기보다는

포기에 가까운 거죠, 굴복의 일종의.

혼동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마음하고 감정을 인정해 준 다음에는

여러분 마음이 편해졌다고 자리 털고 일어나는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됩니다.

그럼, 그건 해결이 덜 된 거죠. 그렇죠.

 

나중에 이게 익숙해지면 어떻게 되냐면요.

그 마음편함의 상태에 중독이 되는 또 다른 감정이 만들어져요.

그때부터 이제 뭡니까?

마음공부를. 영성수련을 하나의 도피처로 찾게 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은연 중에.

영성수련을 하나의 영적인 도피처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공부하시는 분들 중에

사회성이 떨어지시는 분들 상당히 많아요.

상당히 많아요.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서 나를 지켜본다, 어쩐다그러면서

편해지니까 감정에 이렇게 끄달리지 않으니까요.

그 상태에 그 감정에 끄달리지 않는 상태에

편한 감정이 충돌이 돼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면아이하고

적극적인 소통과 허용으로 나아가셔야 된다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방편으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는 거예요.

본말전도라 그러나요?

 

 

--감정을 소인격체로 바라보자

 

무엇이 진정으로 핵심인지를 알고 있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이걸 잘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감정을 하나의 소인격체로 [대우]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 내면아이가 된 감정이들하고 [대화]가 가능해지는 거예요.

 

이처럼 감정을 하나의 소인격체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새로운 인간론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거죠.

새로운 인간론의 시각이 열리는 거예요.

인간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거예요.

 

나중에는 비이원의 눈으로 본

인간이라는 것의 그 규정, 그거에 대해서도 다루겠지만

어쨌든 오늘 영상의 핵심은

바로 [감정을 생명체로, 인격체로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감정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 잊지 마세요.

나 또한 감성체가 되는 것입니다.

 

 

--가슴 대 가슴의 대화

 

이렇게 하나의 [인격 대 인격]

[생명체 대 생명체]

감정이들과 나란히 설 때, 마주대할 때

우리는 우리 눈의 수많은 내면아이와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대화는 머리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말 그대로 [가슴 대 가슴]으로 이루어지는 [마음의 대화]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감정의 교감과 공명이에요.

교감과 공명

 

여러분, 머리로 헤아리는 행위는

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해하게 만들어 주죠.

그러나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결코 실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내면화의 소통, 허용작업이라는 것은

이해 영역을 넘어

실감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슴을 여는 것이죠.

 

 

 

오늘 영상에서는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봤습니다.

이 영상을 보신 분들은 오늘부터 한번 당장 실행에 옮겨보세요.

 

내 안의 감정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밀어내려고 하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나한테 인정받기 위해 나타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러지 말고 이제부터는 뭐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를 해보는 겁니다.

경의를 표하고 예의와 존중을 표하는 거죠.

그때 대화가 일어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또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