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제23회

Buddhastudy 2015. 1. 19. 21:15

" altHtml=""> 출처: 불교TV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도 없는

대 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하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란

공부하는 길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나무아래 앉아서 정목입니다. 세상에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 누구에게나 멸시 당하고 버림받는 사람이 되어야 참 공부인이 된다. 라는 성철 큰 스님의 사자후가 오늘따라 가슴을 칩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정말 멸시당하고 무시당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공부의 길, 오직 그것만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척추를 곧추세우고, 눈 푸르게 수행정진하고 계실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께 합장공경 올립니다.

 

..

 

이 곡은 주인공이 원래 귀족출신의 딸인데, 어떻게 되어서 하여튼 버려졌겠죠. 그래서 집시들에 의해서 자라나게 되요. 그런데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내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어. 이렇게 노래하는 아리아가 나와요. 자기가 귀족출신의 딸이지만, 집시들의 손에 의해서 자라나다보니 자기 자신이 거지인 줄 알았겠죠? 마치 법화경 이야기 같지 않나요? 우리 모두 한사람 한 사람이 다 그렇게 귀하디 귀한 출신성분들입니다. 불성에서 나왔고, 불성의 한 근원에서 나온 자들이니 모두가 부처다 하는 걸 깨닫는 것 만큼 소중한 깨달음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거지인 줄 알고, 그저 중생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리석다. 어리석다했던 것이겠지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만 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리석 궁전이 원래 우리 집이었음을, 그래서 우리 모두가 부처의 자식임을, 그걸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서, 정월 대보름, 며칠 남지 않았잖아요? 대보름을 앞두고 날은 또 스님들께서 전국 선원이 이제 결제기간을 마치고 해제를 합니다. 동안거 해제와 더불어 또 우리 마음에 모두가 다 스스로가 출신성분이, 우리의 가문이 원래 귀하디 귀한 곳이었다. 하는 걸 다시 인식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남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만날 때 마다 서로 나누는 인사말에 우분투라는 말이 있데요. 발음이 참 예쁘죠?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이런 인사말이라 합니다. 인도에서는 나마스떼.’ 이렇게 인사하잖아요. 그대와 내 안의 신성한 불성, 신성에 경배한다. , 이런 말이 담겨 있다 해요. 그리고 우리 인사말은 안녕하세요? 편안하세요? 별 일 없으세요? ’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 있듯이 이 사람들의 우분투라고 하는 말속에는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굉장히 심오한 말이 담겨있지요? 의미가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데 어느 인류학자가 이 마을을 간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잔뜩 모아놓고, 저기 나무가 있으면 저기 나무아래 큰 바구니에 싱싱하고 맛있게 생긴 딸기를 잔뜩 담아서 그 나무 아래에 놓고, 누구든지 있는 힘을 달려가서 1등으로 도착한 사람에게 저 딸기를 바구니채로 주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답니다. 게임을 한번 해보자고 한 거죠?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들이 동시에 손을 탁~ 다 잡더니 일제히 일어나서 같이 자자자작~ 달려갔데요. 다 똑같이 도착한 거예요. 똑같이 도착하니까 누가 1등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 바구니 주변에 동그랗게 앉아서 그 딸기를 아주 맛있게 같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요.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물었데요. 네가 너희들에게 제안할 때, 누구든지 먼저 달려가면 1등 하는 사람한테 준다고 그랬잖아. 그런데 왜 모두 같이 달려간 거지하고 물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우분투. 그랬답니다. “나 혼자 기쁘면 뭐해요? 다른 친구들이 슬프면 내 기쁨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대답했데요. ~ 선사가 따로 없어요.^^ 우분투라고 하는 말이 하도 좋아서, 여러분에게 오늘 한번 전해드려 봤어요. 정말 그렇죠?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다. 나 혼자 달려가서 1등해서 혼자 독차지를 하는, 그렇게 받은 상, 나 혼자 즐거우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 친구들은 다 슬퍼하는데.

 

내가 혼자서 딸기 한 바구니를 다 먹는다 해서, 내 배가 불러졌다 해서 그게 곧 행복인가? 라고 말하는 그 아이들처럼 말이에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달이 두둥실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렇게 우리의 마음에도 두둥실 달이 떠오르게 될 거에요. 그런데 그 보름달이라는 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저 산 아래 지붕들을 내려다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지붕이거나, 부잣집의 지붕이거나,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관계없이 달빛은 똑같이 비추잖아요. 하나의 달이 하나이나 1천강에 비친다 하듯이, 하늘에 달은 하나 떠 있으나 모든 강과 바다에 똑같이 그 자비의 달빛이 내리는 것이죠.

 

우분투라고 하는 그 인사말을 들으니, 왠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내리는 자비의 보름달 같아서 그런 마음이 들어서 오늘 우분투, 인사말 하나 가르쳐 드립니다. 옆에 같이 TV보는 분이 있으면 우분투, 우분투이렇게 한번 인사해보세요. 합장하고 하면 더 좋겠구 말입니다.

 

..

 

, 노랫속에 꿀 한잔을 탄 거 같으죠? 정말 부드럽고 감미롭습니다. 브라더선 시스터문. 태양과 달이 오누이 관계인 걸 노래한 건데, 태양과 달은 오누이 관계일까? 아니면 아버지 엄마처럼 부부관계일까? 또는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일까? 문득 생각해 보게 됩니다. 태양도 달도 이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부처님이고, 신이고, 우리 모두에게 끊임없이 사랑과 자비와 그저 은혜와 감사만을 베풀어 주는, 그게 태양이고, 달이죠? 태양 같은 사람, 달 같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게 어쩌면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을 연마해가야 할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그런 마음과 그런 심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지요?

 

..

 

 

편지 소개하다 보니까 정말 가슴이 울컥해 지내요. 세상에 모든 부모님들, 자기 자식 낳아서 키우는 한 생애도 얼마나 고달픕니까? 그런데 피와 살을 나누지 않았지만, 내 자식이다. 다시 품어 안을 수 있는 부모마음, 이건 보살심이 아니고는 하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이런 사연을 접하다보면, 내가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제 자신에게 화두를 던져 물어봅니다.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며 자비를 운운하지만, 내가 그렇게 모든 자식들을 진실한 부모처럼 품어 안아 키울 수 있을까? 내 가슴에 자식으로 끌어안아 키울 수 있을까? 반문해보게 되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아이들 입양해서 많이 키우잖아요.

 

내 자식이 아니지만, 친자식 이상으로 키우는 훌륭한 분들을 보다보면 이 세상이 왜 이토록 아름답게 돌아가는지를 알 거 같아요. 각박하다 말하고, 황폐하다 말하고, 팍팍하다 말하고, 내일이면 곧 인류의 종말이 올 거 같은 이런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런 모든 사람들이 부모마음 가지고 네 자식, 내 자식 가리지 않고, 키우는 그 마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에 용재오닐이라는 비올라 연주자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잘 아실 거에요. 그 어머니가 뇌성마비 장애인이든가 그렇죠? 미국으로 입양이 되잖아요. 그런데 그 엄마를 키워준 부모님, 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로 이 용재오닐을 키웁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걸리는 곳을 차를 타고 가서 레슨을 받도록 했다는,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용재오닐의, 그 말하자면 음악성을 바로 알아차린 거죠. 그 용재오닐이 비올라를 연주해서 세계인들에게 기쁨과 그 환희를 전해줄때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 그렇게 내 자식과 같이 똑같이 키워주신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한분 한분 앞에 예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제가 감사드리네요. 그 가족들이 하시는 봉사가 바로 우리 모두가 다 같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저는 음악으로 감사를 대신하겠습니다.

 

..

 

이 나무 아래 앉아서 방송은 제가 여기 앉아 진행자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방송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 하나하나가 다 한분 한분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보시더라고요. 왜 지난번에 여기 불, 파랗게 들어왔을 때 가스통 위에 올라앉아있는 거 같아서 불편하다 말씀하셨잖아요. 불 당장 껐잖아요. 훨씬 보기가 좋으신가요?^^ 책 순서가 바뀌거나 뭐가 안 나오면 그거 왜 소개 안하지?” 당장 전화를 하신데요. 이번에는 사연이 하도 감동스러워서 좀 앞 순서로 돌렸구요, 이제 이번에 바랑 속에서 책 한권 꺼내겠습니다. 제 앞으로 한권의 책이 도착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분인데요, 맹난자씨라고요, 맹닌자 선생님의 수필집이 나왔더라고요.

 

이 맹난자 선생님은 뭐, 한마디로 소개를 드릴 수 없을 만큼 우리 불교계에서는 보배 같은 그런 분입니다. 지하철 게시판 보면 혹시 풍경소리에서 하는 지하철 가다보면 시, 이렇게 쓰여져 있지요? 그런 것들을 하시는 편집 위원장을 지내시기도 했어요. 수필가 맹난자 선생의 수필집. ‘나 이대로 좋다.’ 이거를 책을 읽다 보니까, 어느 사이 제 가슴에 서서히 보름달이 둥글게 차올라 오듯이 그렇게 기쁨이 생기더라고요.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환지본처. 불성으로 근본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은 오늘 환지본처 읽어드리겠습니다.

 

먹기 위해 살 것인가?

살기 위해 먹을 것인가?

 

이런 논제를 가지고 우리는

제법 심각하게 설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인생 경력이 짧은 대학생들의

그저 탁상공론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 슬하에서 밥을 먹는다는 일에

어려움을 알 리 없었고,

살려면 먹어야 한다는

먹을 수 있는 기능의 소중함도 알지 못할 때였다.

 

그때는 젊고 건강했으며

세상 풍파를 덮어주는 부모님이라는

거대한 지붕이 있었을 때였으니까.

 

요즘은 밥이 어려워

동반 자살을 결심하는 가장이 늘어나며

각종 범죄와 카드빚 신용불량자가 나날이 늘어나서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나도 밥이란 그냥 먹어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다 남의 부모가 되어보고서야

인생의 책임과 밥 먹는 일의 고달픔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하게 되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밖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가족이 둘러 모인 식탁에

어머니가 따끈한 된장 아욱국을 차례대로 차려서

앞에 펴 놓으며

식기 전에 먹어라.” 미소 띤 그 말씀도

얼마나 듣기 좋던가.

 

그런 날이 늘 이어지는 줄만 알았는데,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족의 식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얼마 전 TV에서 본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도 잊혀지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절대식량.

유태인 학살을 피해 숨어 지내야 하는 그에게

물 한 방울, 빵 한 조각은 그대로 생명이었다.

먹어야 살기 때문이다.

 

많지도 않은 월급에 좋은 시절을 다 바쳐야 했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젊음의 그 시간을 되돌려 받고 싶은 심정이다.

 

남보다 늦은 결혼과 취직,

남편을 도와 집 장만을 위해서 라는 목표로

애들을 제쳐두고 직장으로 뛰어야 했던 시절.

 

무더운 오후였다.

솟대 같은 친정이라도 있으면

몸살기가 있을 때 가끔씩 달려가 누우련만,

그날따라 미열도 느껴지고

몸이 무거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을 때였다.

 

신발은 굽이 있는 구두였고,

핸드백을 든 양손에는 무거운 찬거리가 들려있었다.

 

눈앞에 언덕길은 턱에 차오르고

날은 저무는데 어두워지는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아이들이 배고플 시간,

황망히 집 근처에 다다를 때였다.

 

내 앞에 맨발로 우뚝 나타나신 부처님.

묵묵히 가사를 수하시고

한 손에 밥을 빌어 드신 채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애민한 눈빛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듯 보였다.

힘겹던 내 삶의 무게가

그대로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부처님께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빌어 오신 것만은 아닐 터이다.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법도대로 일상을 지키고 나서

환지본처하여

높은 정의 상태에 드렸다는

금강경의 한 대목이 뜨겁게 가슴에 차올랐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 인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는데

밥 때가 되자 부처님께서는 가사를 입으시고

바리때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시어

그 성안에서 밥을 걸식하실 적에

차례차례로 일곱 집까지만 빌어 마치시고는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환지본처하여 진지를 잡숫고 나서

자사와 바리때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는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그냥 무심히 지나쳐 읽었던 금강경의 한 대목

나는 거기에서 목이 메고 말았다.

 

마음속으로 합장을 올리고

그 자리에 서서 거기에 계신 듯

반배를 드렸다.

 

우리는 저마다 가서 도달해야 할 환지본처가 있다.

분명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닐터이다.

 

각자 그 환지본처에 도달하고나 애써 밥을 먹고

밥을 먹은 다음 높은 정에 드신 것을 보여주신 부처님처럼

우리는 저마다 도달해야 할 본래 그 자리를 알고 있다.

 

삶이 귀찮고 고달프다고

일상생활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쟁의 공포와 아사를 극복하고

방송국으로 돌아온 피아니스트가

다시 제자리에 앉아서 들려주던

쇼팽의 음악을 잊지 못한다.

 

아름다운 선율로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던 그의 손길과

따스한 눈빛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본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화장실 오물로 목을 축이고 생명을 연명했던 것이다.

 

맨발로 밥을 얻어 나오시는 부처님의 모습에서

나는 크나큰 생의 위안을 전해 받으며

무언의 설법을 다시금 되새기곤 한다.

 

..

 

정말 여러분 말씀 마따나 시간이 참 잘도 흐르네요. 45분이라고 하는 시간이 뭐, 510분 이야기 나눈 거 같아요. 그런데 벌써 45분이 후떡 지나가니까 여러분이 시청하고 계시면서 보고 있을 땐 더 짧게 느껴지는 거, 아마 이런 느낌일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오늘 마음의 발원문 삶이 힘든 순간의 기도. 함께 공양 올리겠습니다.

 

당신 앞에 가만히 두 손 모읍니다.

이생에 당신과의 인연에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당신이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아픔이나 고통,

그리고 슬픔이나 외로움이 있었다 해도

이제 그것은 지나간 과거이며 오래전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순간의 당신과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 되었으니

모두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받아들이십시오.

오래도록 육체에 따라 다니던 통증이나 아픔들

정신적으로 따라다니던 우울함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은

모두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증상들이니

이제 세포에 기억되어 있는 그 모든 감정의 찌꺼기들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충분히 힘들었고

이제 그 통증과 아픔들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지나 온 생애에서 얻었던 기쁨과 지혜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전생에서 느꼈던 슬픔과 두려움, 질병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불성의 밝고 하얀 빛 속에 녹아들도록 놓아버리십시오.

 

그리고 이생에서 얻었던 기쁨과 지혜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이생에서 느꼈던 슬픔과 두려움,

질병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불성의 밝고 하얀 빛 속에

녹아들도록 모두 털어버리십시오.

 

당신과 내가 인연 맺은 동안 부족했던 모든 것,

부디 용서 바랍니다.

 

당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좋은 부모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바른 진리가 펼쳐진 국토에 태어나서

물러나지 않는 용기로 정진하여

완전한 깨달음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발원문 한 줄, 마음에 새기면서 이번 주도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저는 다음 주에 찾아뵙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