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268회) 독재자들에게 희생됐다면

Buddhastudy 2010. 4. 25. 22:18

  방송 보기: BTN


우리들 마음 속에 히틀러 같은 독재성, 김일성 같은 독재성이 우리들 마음속에 다 있습니다. 여러분들 다 있어요. 부시 욕하지만, 부시 같은 그런 일방성이 우리들 가슴에 다 있어요. 우리들 자신에게도. 그러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극단적으로 나타나느냐의 문제지 누구에게나 다 있는 속성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지옥 같은 그런 고통을 겪을 경우도 있고, 아귀 같은 배고픔을 겪는 고통도 있고, 축생 같은 어리석음을 겪을 때도 있고, 아수라 같은 그런 극단적인 화 짜증 일방성 이런 게 다 아수라에 속합니다. 이런 성질이. 그 다음에 인간의 성질, 그 다음에 하늘의 성질, 신들의 성질. 이렇게 여섯 가지의 성격이 있단 말이오. 그 우리가 살면서 늘 겪는 거요.

 

우리들 속에도 다 있는 거요. 때로는 남편이 아내에게 히틀러보다 더한 폭력성을 가질 수도 있고, 또는 엄마가 자식에게 히틀러보다 더한 독재성을 가질 때도 있고, 때로는 어떤 여자분을 아내에게 히틀러 보다 더한 독재성을 가질 수도 있고, 또 부모라도 늙어서 병들어서 치매 들어 있으면 자식이 부모한테 히틀러 보다 더한 독재성을 가질 수도 있어요. 더한 일방성을 가질 수도 있다. 우리들에게 이런 폭력성이 다 있습니다. 중생심 속에 이게 들어있어. 그것에 한 판로일 뿐이요. 그러면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고통을 겪는 것은 꼭 히틀러의 과보만이 아니에요. 나에게도 그런 속성이 있는 거요. 나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속성만 있으면 고통만 겪어야 되는데 그런 속성도 있고, 하늘의 속성도 있고, 인간의 속성도 있고. 속성이 여러 가지가 있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윤회하는 과정이 어떤 때는 그런 속성의 과보로서 고통을 겪을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윤회하는 과정에서 천상에 속성으로 인해서 행복을 누릴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지옥의 속성으로서 지옥 같이 고통을 겪을 때도 있는 거요. 그래서 그것은 다 우리들 내부에 있는 속성이 외부조건과 결합해서 겪는 고통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요. 그럼 만약에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나쁜 업을 가졌냐? 그런 게 아니에요. 행복이란 건 물질만 가지고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계속 행복을 물질만 가지고 얘기하는 거요.

 

옛날에 아무리 잘 살아도 요즘 가난한 사람보다 더 못살죠. 그죠? 그럼 옛날엔 다 업장이 두텁고 요새는 다 업장이 가벼우냐? 그런거 아니에요. 업장이 두텁고 가벼운 거는 얼마나 행복하냐는 문제요. 얼마나 행복하냐? 여러분들이 어쩌면 북한사람보다 어떤 사람은 더 불행한 사람도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도 있을 거고. 그것이 업을 따르는 거지. 북한에 태어났다. 남한에 태어났다. 이게 업을 따르는 건 아니에요. 남한에 지금 우리가 여러분들이 자유를 누리고 민주를 누리고 있죠. 이 자유와 민주가 저절로 된 게 아니죠. 다 누군가가 온 갓 희생을 무릅쓰고 이렇게 자유와 민주로 오게 된 거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유와 민주화를 가져 오게 된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안 해주죠. 사실 평가를 해 줬어요. 평가를 해 줬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거 아니요 그죠? 국민다수가. 그런데 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한 기여를 했는데 또 다른 부분에서는 어때요? 능력에 부치니까 지금 또 평가를 나쁘게 보는 거 아니에요. 그죠? 평가를 나쁘게 해서 여러분들이 또 다른 분야에 대해서 또 지지를 또 하겠죠. 그럼 또 그 부분은 또 해소가 되겠지마는 여러분들은 또 다른 부분에 또 문제가 발생할 거요. 누구를 해도. 지금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사는 상태에서 지금 박대통령 그리워하고 전두환이 그리워하지. 그 시대에 가 살아라 하면 그리워하겠어? 안 하겠죠. 욕심 아니에요. 민주적으로 지맘대로 하고 사는 건 요즘같이 살고 돈은 그때처럼 벌리고. 두 가지를 다 하려니까 이건 이미 주어져 있고 돈 벌리는 건 좀 안되니까. 그 때를 그리워하지만은 그때 가서 보면 돈벌이는 조금 괜찮다 하더라도 다른 게 불만이라 못사는 거요.

 

마치 혼자 살 때는 결혼해서 살고 싶고, 결혼해보니 혼자 사는 게 더 나은 거 같고. 그래서 향수가 자꾸 생기는 거요. 그래서 수행은 자기 공부하는 게 수행이에요. 업에 대한 적용도 다 자기 업을 얘기하는 거요. 내가 남을 미워하면 내가 괴롭고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내가 좋다. 이게 업에 대한 얘기요. 이게 연기 법이요. 가난한 거 거기 전생에 죄가 많아 저거 저리됬다. 아이고 저 장애 된 거 저거 전생이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근대문명에 어긋나는 거요. 그래서 여자는 전생에 뭐가 됐다? 죄가 많아 여자 됐다. 그랬는데 지금 여러분들 그거 받아들여요? 안 받아들여요? 안 받아들이지. 인도에는 아직도 여자는 소보다 한 등급 밑이야. 여자는 죽어서 소 된 다음에 뭐 된다? 남자 되는 거요. 그건 여자가 예전에 차별 받고 열등하게 사니. 그거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뭐다? 그걸 이해를 원리를 이해 못하니까 아 여자는 전생에 죄가 많아 저렇게 고생을 하구나 이렇게 된 거요.

 

그런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 앞으로 그런 업 얘기는 하지 마세요. 이렇게 되면 굶어 죽는 거 다 지가 전생에 나쁜 짓 해가 이 생에 굶어 죽는다. 그럼 이세상에 고칠게 뭐가 있어. 이런 식의 어떤 이상한 논리를 끌고 와서 남의 아픔을 폭력적으로 하는 거나 똑같은 거요. 이건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은 그들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어떻게 서든지 살려 줄려고 하는 게 불법이고 하느님의 사랑이지. 그래서 이건 조금 교리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셔야 된다.

 

이거는 지금 불교를 과거 전통적으로 불교를 자기 수행에 적용 안하고 밖으로 적용해서 세상을 합리화 시키는 그런 원리대로 지금 교리가 그 동안에 흘러 왔거든요. 그에 따른 교리를 배우셔서 이런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은 제 비판을 좀 따갑게 듣고. 이렇게 불교교리 배우면 안배우는 것보다 못합니다. 모르는 게 훨씬 낫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공부를 새로 하라고 자꾸 얘기하잖아요. 저놈은 저래서 굶어 죽고, 저 놈은 저래서 전생에 저 두 부부는 원수가 만나 저렇게 싸우는 거요, 이래 버리면 해결할 게 뭐 있나? 바로 내가 나를 고집하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내가 내 고집을 버리게 되면 우리는 화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운명을 바꾸는 게 수행이란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