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15_4. 앙굴리말라

Buddhastudy 2017. 6. 1. 21:12



옛날에 부처님 당시에 앙굴리말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번 따라해 봐요. 앙굴리말라. 인도 말이라 좀 어렵죠. 앙굴리말라. , 이 교단사회에 무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경전 공부를 하다보면 아주 특정한 인물들이 더러더러 등장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얘기는 조금 알고 있는 게 좋아요. 나중에 포교할 때도 그렇고, 가족들과 불교 얘기할 때도 그러한 얘기를 조금 알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앙굴리말라에 대한 얘기도 아주 대단히 유명한 얘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얘깁니다. 금강경도 기원정사에서 설해졌다. 했잖아요. 앙굴리말라는 바사위왕의 한 재상의 아들이었는데 나면서 아주 촉망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임시카라는 그런 이름 이었습니다. 아임시카. 그래서 그 아임시카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서 바라문, 특별한 스승을 통해서 거기 가서 공부하도록 보내졌습니다. 그 스승의 이름이 마니발타라 라는 스승이었습니다.

 

, 그래서 이 스승 마니발타라는 재상의 아들이자, 또 애가 아주 촉망했던 모양입니다. 건강하고. 그래서 금방 마니발타라의 스승의 논에 띄었고, 스승은 집중적으로 잘 지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니발타라가 무리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딴 도시로 출타할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자기 부인이 마니발타라는 부인이 있는 그런 바라문이었는데, 부인도 좀 지키고, 가정도 좀 돌볼 제자 하나를 남겨둬야겠는데, 누구를 남기나 고민하는 중에 이 마니발타라의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권유하기를 나는 아임시카를 남겨두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서 마니발타라도 훌륭한 제자니까 자기 부인을 잘 지켜주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전에 마니발타라의 아내가 아임시카에게 연정을 품었다 그랬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했지만 스승의 수제자가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거절을 합니다. 스승이 돌아올 날이 되었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고백을 합니다. “난 좋은데, 우리 어디 도망가서 살자.” 그런 제안을 해요.

 

그래도 아임시카는 난 절대 그럴 수 없고,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지, 당신하고 놀기 우해서 온 사람이 아니다.” 아주 강하게 거절을 해요. 그러자 이 여자가 아주 분한 마음을 품고는 자작극을 꾸미게 됩니다. 그래서 남편이 무리의 제자를 데리고 돌아온다는 그 날짜에 맞추어서 그날 아침에 자기가 옷을 다 찢어버리고, 그리고 손톱으로 얼굴에다 상처를 내고 온몸에 상처를 냈어요. 그리고는 침상에 떡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니발타라 바라문인 자기 남편이 와서 보니 아내가 그 몰골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물었을 거 아닙니까? “왜 이러고 있느냐?” “내가 당신이 믿었던 아임시카에게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래서 내가 저항하다가 이 몸이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아내가 또 다시 얘기해요. “제발 저 사람을 죽여 달라.” 이래요. “너무 분하다. 죽여 달라.” 자기가 그 토록 사랑했으면 놔둬야지 죽이기는 왜 죽여. 그러니까 너무 끔찍한 얘기를 하지. “저 사람은 제상의 아들이다. 내가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일 난다. 저 사람은 무술이 사실 나보다 뛰어나다. 잘못하면 내가 다칠 수 있으니 내말 믿고 놔둬라.”

 

그래서 부인은 자기 남편을 믿고 놔뒀는데, 스승이 무슨 나쁜 것을 가르쳤냐? 그게 문제거든요. 그래서 아임시카를 불러서, “그래. 그 동안 우리 집을 지켜주느라고 애썼다. 내가 보니 너는 이제 배울 것은 다 배웠고, 이제 하나만 더 가르쳐주면 너는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다. 부처의 지위에 오를 거니까, 그것을 잘 실천하도록 해라.” 하니까, 아임시카는 도를 이룬다는 그 말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스승이 가르쳐준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래. 꼭 해야 된다.” “꼭 하겠습니다.” “그래, 네가 100사람의 목을 자르고 죽여서 그 증거로 손가락을 끊어서 그걸 목걸이처럼 해서 걸고 다닌다면 그 100명의 목숨을 앗은 그 손가락, 엄지손가락 끊어서 목에 걸고 다닌다면 반드시 너는 성취하고 큰 도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 못된 것을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아임시카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긴 끈에다 엄지손가락을 끊어 목걸이를 만들어서 하는데, 그래서 그 이후로 사람들은 아임시카를 보면 도망가기 바빠요. 그 뒤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앙굴리말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앙굴리말라라는 뜻은 손가락을 엮어서 만들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손가락을 끊어서 엮어서 돌아다니는 사람.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공포의 대상이 된 거죠. 그러다가 나중에 99명까지 죽였으니까, 99명을 죽이고 한명만 더 죽이면 끝이 나는 거라.

 

그래서 1명을 찾는데 사람들이 앙굴리말라 얘기만 들리면 다 도망을 가고 숨고, 그런 지경이 된 거요. 앙굴리말라는 한사람을 더 찾아야겠는데, 도저히 못 찾으니까,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요. 어머니를 죽일 거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저만치 보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멀리서 보시고 저놈이 저희 어머니를 죽이는 저런 극악무도한 저런 놈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부처님이 그 사이에 나타났어요. 그러자 이놈은 자기 어머니보다는 수행자가 더 앞에 있으니까 수행자 부처님을. 그 사람은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 줄 몰랐겠죠. 앙굴리말라는 칼을 들고 부처님을 해하려고 덤벼드는데, 아무리 덤벼들어도 다가가지지를 않고, 칼로 베어도 부처님 몸에 베어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악몽을 꾸거나 할 때 보면 쫒아가도 안 쫒아가질 때도 있잖아요. 그러한 스스로 그런 나약한 힘이 된 거죠. 그래서 그때 부처님한테 얘기합니다. “당신 누구 길래 내가 쫓아가도 다가가지 않고, 칼로 베어도 당신은 내 칼끝에서 멀어지느냐고그제서야 부처님의 힘을 느끼고는 부처님하면서 당신의 제자로 좀 받아 달라.”고 그제사 하소연을 합니다. 그 전에 부처님의 간단한 법문이 있었겠죠. 그때 하신 법문이 무아의 법문이 아니냐. 내가 없는 법문을 쭉 듣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제자로 받아주기를 간청하죠.

 

그때 부처님은 모든 사람,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살인마라고 불렀을 거 아닙니까?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절대 물리치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데리고 기원정사로 돌아왔다고 그랬어요. 대단한 일이죠. 그러자 딴 제자들이 부처님 이러다가는 우리 불교가 망합니다. 살인마를 숨기고, 살인마를 공부시키는 이런 종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큰일 납니다. 부처님 안 됩니다. 내 보내야 됩니다.” 앙굴리말라 때문에 죽은 사람의 그 가족들이 얼마나 떼를 지어서 몰려왔겠습니까? “저 놈 잡아 죽이라. 난리가 났겠죠.

 

그런데도 부처님은 앙굴리말라는 이제 없다.” 이랬어요. 앙굴리말라. “그전의 포악했던 앙굴리말라는 여기 없노라.” 이랬거든요. 그러면서 앙굴리말라를 위해서 오히려 토굴을 지어줬어요. 그래서 기원정사에 가보면 앙굴리말라 토굴 터라 해서 큰 토굴 터가 하나 있습니다. 아무튼 앙굴리말라는 거기서 더 공부를 해서 끝내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랬습니다. 무아의 법을 통달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그래서 불교는 중생, 아주 철저한 중생도 나중에는 대단한 부처님이 되는 그런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게 불교입니다. 그 앙굴리말라 살인마도 결국은 성자가 될 수 있는 그런 힘이 불교에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예를 들면 얼음이 얼면 절대 안 되는 거죠. 물이 얼음이 되면 동화될 수가 없잖아요. 누구와 섞일 수도 없고, 그런데 물이 풀리면 함께 화합하죠. 얼었다는 아상인상수자상등 자기라고 하는 상이 가득 차있어요. 그게 얼음이라. 그게 중생이라. 그런데 아상인상중생상이 딱 풀어지면 즉, 얼음이 풀어져서 아주 부드러운 물이 되면 전체가 다 한데 어울리죠. 그러면 그 자리가 바로 부처님의 자리가 된다. 비유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얼음과 물은 성분은 똑같아. 똑같잖아요. HO 얼면은 얼음이요 풀리면 물이라.

 

우리 존재라 하는 것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으로 아주 딱딱하게 얼어있으면 중생이요, 풀리면 넉넉한 부처가 된다, 부처님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불교 공부라 하는 것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고 하는 이 상을 잘 풀고 상을 버리고, 바로 아까 말했던 상락아정, 그리고 힘, 상락아정력을 증득하는 그런 부처가 되는 공부가 바로 불교수행이다. , 오늘 공부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