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글 쓰겠다는 아들, 걱정 돼요.

Buddhastudy 2017. 7. 21. 20:11

 

 

안녕하세요 스님. 아들 때문에 고민이 돼서 나왔어요. 자녀가 인제 대학을 서울로 가가지고 서울에서 대학생활 하고 그 이후에 인제 취업준비를 위해서 계속 지금 30살이 됐는데요. 취업준비를 위해서 계속 뒷바라지를 해왔는데 지금 30된 나이에 갑자기 글을 쓰겠다고 그래가지고요. 글을 쓰겠다고 해서 너무 충격 받았거든요.//

 

글을 쓰겠다는데 왜 충격적이에요? 그동안에 공부한 것 가지고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아?

글은 나이가 많아야 나오는 거요.

 

글을 쓰는 것은 자녀의 자유니까. 자기는 20살이 넘었으니까 더 이상 뒷바라지를 안 하면 되지.

내친 게 아니오. 왜 그것을 내쳤다고 그래?

아니오, 고민할 것 없어요.

부모의 의무는 20살에서 끝났다니까요.

 

밥 한 알 지원 안 해줘도

윤리적으로 법률적으로

부모의 잘못은 아니에요.

 

그런데 더 해주는 것은

개인의 자유니까

그것은 제가 뭐라고 못하겠어요.

 

여러분들은 스님한테도 보시하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다른 애들한테도 젊은 애들한테 장학금 주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는데, 자기가 자기 아들한테 뭘 지원하겠다는 것을 내가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스님한테 보시 안 해줬다고 나쁜 사람이 아니고, 다른 학생한테 장학금 안줬다고 나쁜 사람 아니듯이,

 

자기가 20살 넘은 자녀에게

어떤 지원을 안했다고 털끝만큼도

그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이 말이오.

더 해주는 것은 자기 선택의 자유니까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고.

 

그러니까 아까 금방 질문한 사람하고 정 반대잖아. 자기는 지원해주는 대신에 아들은 말 들으라는 거 아니야.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겠다는 거 아니야. 그러면

 

아들은 원하는 게 이거요.

내 맘대로 살고, 지원도 받겠다. 이거요. 그래.

그러니까 그것은 아들의 요구에요.

 

부모는 네가 알아서 살고 내 말 들어라. 이거야.

 

대부분 부모는 다 지가 빨리빨리 취직해서 자립해서 살면서도 부모 말 잘 들으면 좋으나? 안 좋으나? 효자라고 하지. 이렇게 이해가 서로 상충되는 거요. 그러니까

 

20살이 넘어서 자식이 부모 말을 듣던 안 듣던

그것은 자식의 자유에 속하고,

20살이 넘은 자식한테 지원을 해주든 안 해주든

그것은 부모의 자유에 속하는 거요.

 

그러니까 자기의 책임은 끝난 거요.

자식도 자기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끝난 거고,

자기는 자식을 도와야 할 의무가 끝났다 이 말이오.

 

그러면 이제 성인과 성인의 관계에서 내가 더 지원해 줄 테니까 너 내 말 들어라.” 이것은 부모가 제안할 수 있고, 자식은 지원만 해주면 간섭 안하면 어때요?” 이렇게 제안해 볼 수 있는 거요. 아시겠어요? “난 지원 못하겠다.” 이러면 안하면 되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지원 안하는 것은 내 자유지만

너 작가 하지마라고 간섭할 권리는 자기한테 없다.

 

아까 젊은이가

엄마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할 권리가

자식한테 없듯이.

 

자기가 그렇게 살면 자기는 어떻게 되느냐?

죽을 때까지 자식의 무거운 짐을 지어야 됩니다.

그것을 각오하셔야 돼.

 

? 제가 한번 봅시다. 우리 친구들이 쭉 있는데, 동창들이 한 20명이 있는데, 그 중에 누가 힘이 들어서 동창들한테 돈을 빌리러 갔어요. 아무도 안 빌려주는데 제가 빌려줬어. 그러면 그 사람이 다음에 돈 빌릴 때 나를 찾아올까요? 저 스님한테는 한번 빌렸으니까 딴 동창한테 찾아갈까요? ? 나한테 찾아오겠죠. 이게 염치가 없어서 그래요? 그게 자연스러움이오? .

 

그러면 누가 돈 없다고 그 사람한테 빌리러 오면 그 사람이 누구 추천을 해줄까? 이게 자연스러움이오.

 

인도에 가서 내가 실험을 해보면 그대로 나타납니다. 내가 우리가 여러 명이 길을 가는데 아이들이 와서 박씨씨, 박씨씨하고 구걸을 해요. 내가 줬다. 그러면 아이들이 아, 저 사람한테 받았으니까 딴 사람한테 붙을까? 나머지 애들이 다 나한테 올까? 이게 자연스러움이오.

 

자기가 자식을 도와주면 자식은 부모에게 도움을 얻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말이오. 이것은 담보도 필요 없죠, 신용보증도 필요 없죠, 이자도 필요 없죠, 그런데 부모한테 오지 뭣 때문에 딴 데 가서 돈을 빌리겠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형제가 돈이 필요해서 내가 돈을 빌려줄 때는 형제간에 이자 받고 못 빌려줄 거 아니오. 그리고 기한을 정해 못 빌려줄 거 아니오. 영수증도 안 쓸 거 아니오. 그러면 내가 돈을 형제한테 무료로 빌리기도 하고, 은행 융자도 받고, 사체도 했다 하면 내가 망해버리면 아무도 못 갚지만 내가 돈이 생겼다 그러면 어느 거 제일 먼저 갚을까? 형제 거 무이자로 주니까 그거부터 갚을까? 사체부터 갚을까? 두 번째 은행 거 갚을까? 형제 거 갚을까?

 

그러니까 형제간에 돈 빌려주면 돈 받을 가능성이 있나? 없나? 없어. 그런데 형제간에 빌려줬는데 어떻게 동창이라고 빌려줬는데 돈을 안주나.” 이것은 어리석은 거요. 그것은 아예 빌려줄 때 받을 가능성이 없는 거요. 10명이 만약에 돈거래를 형제간에 했다하면 돌려주는 형제, 그런 케이스가 있다면 10명에 1명꼴이 안됩니다. 그러니까 못 받는 게 당연한 거요. 형제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고 그 동창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 이해하셨어요?

 

그러니까 돈 거래를 해야 될까? 안해야 될까? 안해야 돼. 천만 원 빌려달라면 백만 원을 얼른 줘버려야 돼. 그러니까 돈 거래 하지 말라는 것은 빌려주지 말라는 얘기지 돈을 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아이고, 천만 원 없다. 그렇게 어렵다고? 내가 100만원 이거라도 조금이라도 보태서 써라.” 이러고 얼른 빨리 정리를 해야 돼. 안 그러면 욕을 얻어먹든지, 욕 얻어먹기 싫으면 말은 빌려준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한다? 받을 생각을 포기해야 돼. 겉으로 갚지 마라.” 이런 말 할 필요 없어. 속으로는 이거로 끝내야 돼. 그래야 우애가 깊어져. 돈 잃고 사람 잃는 일이 생긴다.

 

자기가 30살까지 아이를 지원했다면 자기는 죽을 때까지 지원할 가능성이 높아. 이미 10년을 아이가 의지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부모의 지원을 전제로 하고 글을 쓴다는 거겠죠. 안 그렀겠어요? 그죠? 그거는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선에서 자기가 내 글 쓰는 게 내 맘에 안 들기 때문에 끊는다. 이거는 옳은 태도가 아니에요. 그 글을 쓰든 뭘 하든 그것은 그의 자유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지원을 못하겠다. 이렇게 정리하지, 글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말귀 알아들었어요? 그러면 간섭이오. 남의 인생에 간섭하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할까만 정하면 되지

자식이 어떻게 할 거냐는 논할 필요가 없다.

 

조금 더 밀어주지. 자기는 밀어줘야 속이 시원하잖아. 안 밀어주면 자기가 걱정이 되잖아. 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는 것보다는 그거 밀어주는 게 낫잖아. 내가 딱 얼굴 보거나 말하는 거 보니까.

 

자기가 좋아서 걱정이 되어서

자식 지원하는 그것은 어쩔 수 없어.

 

그러나 그것은 자식한테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자기한테 부담이 되고,

모자간에 갈등의 원인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