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

Buddhastudy 2018. 4. 10. 20:44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3년은 아이 육아는 엄마가 해야 된다는 것을 저도 그것을 굉장히 고민을 하는데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것을 엄마가 직장이며 뭐며 다 그만두고 1365일 아이랑 있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리고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제적인 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여기서는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질문을 드리고요.

저 같은 경우는 공부를 오래 해서 미국의 대학원 등록금은 아주 비싼데, 제가 빚이 아주 많게 되었어요. 그런 경우에도 아주 이자율도 높고 아주 빚도 많지만, 모든 걸 관두고 집에 있는 게 옳은 건지 저도 생각을 해 봤는데 제가 돈에 미쳐서 그러나 생각을 해 봤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쩔 수 없는 상황들 제가 이것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파트타임으로 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 감사하고 다 좋은데 제가 1365일 집에 있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그러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우울하고 더 애들에게 미안하고 더 불안해지고 그렇게 생각하면 더 부정적인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그거를 여쭤 보고 싶고 제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까, 제가 딸이 두 명인데 어떤 가치관으로 키워야 하나 저는 워킹맘 밑에서 자라서 일을 안 한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자랐거든요.

 

생각이 부정적으로 가다 보니 아이들한테 여자는 다 필요 없고 예쁘게 시집이나 잘 가면 돼

이런 식으로 제 딸들을 키워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제가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제 생각에는 제가 비즈니스를 차리면 시간도 더 유동적이고 아이를 제 일에 데려가기 쉬운 조건이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비즈니스를 차리는 시기적으로는 아이가 어느 정도의 나이일 때 추천을 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 제가 말하는 의도와 질문은 많이 안 맞습니다. 그냥 저는 원론적으로 병아리를 키우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지, 자기 어디 좋은 거 먹을 거 있다고 병아리 버리고 가지 않고, 강아지가 어미하고 같이 살 때, 어미가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개답게 키우려면 어떻게 키우는지 연구해서 키웁니까? 삶은 그냥 닮아서 깨닫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제일 간단한 얘기는

애기를 가지는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된다.

 

이게 요지에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힘들어 하면 결국은 그 힘들어 하는 엄마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이되기 때문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또 우리가 따져보면 조그마한 애 때문에 엄마가 힘들게 산다하면 조그만 애가 바로 엄마를 힘들게 하니까 불효잖아. 그죠? 그럼 불효가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아이 키우는 게 재미가 있고,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마음으로 애를 키우면 아이가 있어서 엄마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에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효자 짓을 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아이는 잘 크게 되어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가 큰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게 1번이고요.

 

두 번째 모든 생명이라는 자체가 어릴 때 자랄 때는 어미가 보호하도록 되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인의적인 게 좋다 하더라도, 어린 생명이라는 것은 자연생태계적인 원리에 맞아야 이게 건강해진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엄마가 애들을 키워라. 남한테 맡기지 말고 가능하면 키워라. 그러면 농사를 지어야 되는데 어떻게 하느냐? 애를 업고 농사를 지으면 되고, 애를 업고 설거지를 하면 되고, 애를 업고 직장에 나가면 된다. 이런 얘기에요. 일하지 마라.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새끼를 가진 호랑이가 일단 사냥을 하려면 새끼 놔놓고 일단 사냥하고 와야 안 됩니까? 새끼 데리고 사냥하려면 한 마리도 못하고 다 굶어죽잖아. 그러나 사냥만 딱 하고 나면 바로 돌아와서 새끼하고 같이 있는 거지, 사람처럼 출세를 위해서 뭐를 위해서 애 남한테 맡겨놓고, 아예 애 키는 사람 따로 있고, 자기는 자기 인생 따로 살고 이렇게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제일 좋은 것은 집에서 애를 키울 수 있으면 제일 좋고,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애기 업고 직장에 나가면 되고, 직장에 그런 조건이 안 되면 직장하고 타협해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하면 되고, 그렇게 가능하면 아이와 함께 있어주는 게 좋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릴 때는 애를 남한테 떼어놓고, 나중에 애에게 문제가 생기면 크면 애한테 달라붙습니다. 그런데 클수록 애하고는 떨어져 줘야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것은

 

3살 때까지 인간의 자이가 형성된다.

정신적인 기본 바탕,

심리바탕이 형성되기 때문에

아이 심리가 불안해 지면 안 된다.

 

그런데 제 엄마라 하더라도 정신 질환이 있거나 이런 사람은 어때요? 오히려 애기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키우는 게 낫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요. 그러니까 아이는 그저 키우는 사람을 따라서 자라게 되어 있는 거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의 심리바탕은 누가 엄마다? 할머니가 엄마에요. 그러니까 꿈꾸면 누가 엄마로 나타날까? 할머니가 엄마로 나타나는 거요. 용어는 할머니지마는 실제로는 엄마가 할머니가 된다. 이런 얘기에요. 만약에 앞으로 사회시스템이 바뀌어서 아빠가 아예 낳자마자 키웠다. 그러면 아빠가 아니라 뭐가 된다? 엄마가 되는 거요.

 

엄마라는 것은

기른 자라는 뜻이에요.

 

태어나자마자 딴 집에서 태어난 애를 내가 입양해 왔다. 그럼 아이는 내 아이지, 딴 집 아이가 아니에요. 인간의 심성은 혈통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자꾸 아직은 생물학적으로 혈통을 자꾸 따지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삼성에서 만들었냐? LG에서 만들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뭐로 까느냐? 이게 더 중요한 거와 마찬가지요.

 

지금 사람은 현재 과학적으로 안 해서 그렇지, 수정란 하나 만들어서 수정란을 분리시킬 수가 있거든요. 하나를 분리시키면 4개로 쪼개버리면 4개가 다시 독립적으로 수정란이 됩니다. 이것을 4명의 여성의 자궁에 집어넣어 인공수정해서 애기를 낳으면 4명의 다른 여자가 낳았는데, 애 생긴 것은 똑같습니다. 100% 똑같은 아이가 태어나죠.

 

그럼 이게 과거 종교적인 관점으로 하면 그럼 영혼이 4쪽 났느냐? 이런 문제가 아니잖아. 이건 컴퓨터가 공장에서 동일한 제품이 나오지만, 여러분들이 거기에다가 어떤 소프트웨어를 까느냐? 어떤 정보를 입력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들 갖고 있는 컴퓨터가 다 달리 작용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행복의 바탕, 사람의 심리가, 아까 저기 불안하다는데, 심리가 편안하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이것은 의식을 갖고 되는 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 심리가 그렇게 바탕이 되어야 되요.

 

이건 대부분 어릴 때, 3살 이전에 주로 형성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뭐라고 그래요?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3살 때 형성된 게 무의식적 자아에요.

나다. 하는 게 3

살 때까지 형성된 게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야 이런 정신적인 질환도 좀 많이 예방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이 사람들이 좀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두 번째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자생력을 갖도록 해주는 거요.

 

밥도 할 줄 알고

빨래도 할 줄 알고

청소도 할 줄 알고

자기 인생은 자기 살 줄 알도록 길러주는 것,

이건 엄마만이 할 수 있어요.

또는 부모만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부모들이 심리적 안정, 애기를 낳아서 아무데나 버리고 그냥 성질내고 이렇게 키우니까 아이들이 대부분 심리적 불안증세가 있어, 재주는 있을 줄 몰라도, 재능은 있을지 몰라도, 돈은 있을지 몰라도 행복하지가 못한 거요.

 

두 번째 이게 너무 부모가 공부만 가르치고, 아무런 생존력을 안 키워줘 놓으니까, 결혼해서 여러분들 남편 보면 자기 다니는 직장 빼놓고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집에 못도 하나 못치고, 청소도 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그 다음에 그 직장 떨어져버리고 자기 전공 분야 떨어져버리면 딴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거요. 그러니까 기계 부속품처럼 자꾸 만든다는 거요. 그렇게 되니까 고뇌가 더 심해지는 거요. 갈등도 심해지고.

 

그래서 그 사람이 농사를 짓든, 판사가 되든, 정치인이 되든, 교수가 되든, 그것은 부모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에요.

 

부모는 네가 어떤 상황에서든

네가 네 힘으로 살 수 있는 바탕을 해주는 것과

네가 어떤 상황에 살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이건 부모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오.

 

부모가 진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걸 줘야 된다는 거요. 나머지는 돈이 부족하면 누가 자금을 대신대서도 할 수도 있고, 선생이 가르칠 수 있고 이런 거예요. 이 두 가지는 선생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확실히 해야 되는데, 부모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안 한다는 거요.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주로

자연생태적인 원칙에 맞게 해야 됩니다.

 

그러나 사회가 하는 것은 일반 생태계하곤 틀립니다. 인위적인 사회니까. 여기는 교육시스템이라든지 이런 것은 우리가 바꾸고,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게 있겠지마는. 그런데 오늘날 부모가 없어요. 전부 이웃집 아줌마만 있어요. 인물 잘나야 되고, 공부 잘해야 되고, 예를 들면 이런 애를 좋아하는 거요. 같은 자기자식인데도 이런 애는 좋아하고, 공부 못하면 싫어하고 이러는 거요. 그건 이웃집 아줌마에요.

 

그러니까 정말 부모라면 정말 못생겼고, 장애고, 지능이 떨어지고 이래서 세상 사람들은 다 내치더라도 자기 엄마는 제 부모는 그 아이를 사랑해야 되고, “너도 행복할 수가 있다.” 격려해 줄 수 있어야 부모에요.

 

예를 들면 동성애라든지 이런 증상이 발견 되었으면, 누구한테 세상 사람한테는 말 못해도 부모한테는 말할 수 있어야 되고, 세상으로부터는 일부 종교에서는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제 부모는 그것을 감싸고 너라도 행복할 수가 있다.” 이렇게 격려 받을 수 있어야 부모다. 이 얘기요.

 

그런데 지금 부모가 별로 없어요. 다 이런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자식을 그냥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 똑똑한 직원 뽑듯이 애들도 그런 식으로 하려고 그런다. 제가 그래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기를 낳아서 우리 어머니도 나 키울 때, 나만 키우고 살았어요? 농사짓고 부엌일 하고 빨래하고 다 살았지. 그러나 늘 그 엄마 언저리에 두고 살았죠. 일하면서 밭에도 업고 가서 놔놓고 밭 매고, 업고 밭 매고, 놔놓고 밥 매고 이렇게 살았지.

 

그러나 관심의 1은 자식이죠. 내가 출세를 해야 되기 위해서 자식을 남한테 맡긴다. 이런 것은 없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 애를 잠시 맡겨놓고 어디 가서 동냥을 얻어오는 일은 있지마는.

 

그래서 현대적으로 자식이 어릴 때

엄마로부터 전적인 사랑을 받아야 되는데,

엄마의 제일의 가치가

돈이든, 지위든, 딴 거고, 아이가 제2의 가치가 될 때,

아이는 심리적으로 충족감을 못 느낀다.

사랑을 만끽 못한다.

 

그래서 늘 껄떡거리게 되요. 여러분들 뭘 해도 마음에 흡족하지 않고 늘 뭘 하고 싶어서 했는데도 늘 부족하고, 남하고 말했는데도 부족하고, 이것을 껄떡거리는 거라고 그러거든요. 늘 뭔가 덜 채워진 것 같은, 이런 것은 다 어릴 때 사랑결핍증입니다.

 

이런 것은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수많은 사람들을 제가 상담하면서 심리가 어릴 때 기본, 인간심리바탕이 형성될 때, 약간 에러가 나니까, 죽을 때까지 고생하니까, 그래서 제가 그 말 못하는 아이들을 대신해서 어떤 아이도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거요.

 

그래서 제일 안티세력이 뭐냐? 30대 직장 맘입니다. 스님은 남자에다가 중이니까, 직장 다니는 엄마들 마음 모르고, 도대체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직장 그만 두라는 거냐. 해서 바글바글해요.

 

그래도 저는 욕하는 것은 욕하는 거, 이해는 되요. , 당신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신이 나중에 애 키우고 40~50되어 봐라. 40~50대는 아줌마들은 적극적 지지층입니다. “스님 말이 맞습니다. 어떻게 그걸 스님이 아셨습니까? 애를 키워볼수록 그렇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그래요. “애들을 다뤄볼수록 스님 말이 맞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건 어린애니까 커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경험 안해 본 사람, 지금 당장 힘든 사람에게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내가 항변을 안 하는 거예요. 20년 후에나 네가 깨달을 일이니까. 20년 뒤에 가서 보자.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요. 그러니까 꼭 애를 키워라. 이 얘기 아닙니다. 애를 그냥 내가 직장 다니고 뭐해도 애를 남한테 맡겼다. 상관없어요. 선택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내 아이가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때, 후회하지 마라 이 얘기에요.

 

돈을 빌려놓고 나중에 이자 쳐서 갚으라니까, 내가 그때 왜 돈 빌렸던가. 이런 소리 하지 마라는 거예요. 이자 쳐서 당장 갚아라. 다음부터는 빌리지 마라. 이 얘기에요. 그런 일이 생기면, 아이고 애한테 어쩌니 저쩌니 하지 말고,

 

아이고 그래도 내가 내 살기 바빠 너를 버려놨더니 네가 그렇게 됐는데, 그래도 안 죽고 살은 것만 해도 고맙다. 고맙다.” 공부 1등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학교 다니는 것만 해도 고맙다.” 학교 안 다녀도, “감옥 안 간 것만도 고맙다.” 이런 관점에서 보라는 거요.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니까,

선택을 망설이지마.

자기가 선택하고 이런 원리가 있으니까

이런 선택을 하면 나중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니까

그때 가서 후회하니 어떠니 하지 말고,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결과를 안 받겠다 그러면

지금 돈이니 뭐니 보다는

아이한테 조금 충실해라. 이렇게 얘기 하는 거요.

 

여러분들이 자녀를 어떻게 키우든 내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게 뭐 좋으면 나부터 애 낳아 키우지, 뭣 때문에 안 키우겠어요. 하하하. 저는 막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까 그냥 쥐약 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먹고 안 먹고는 누가 하는 거다? 자기가 하는 거요.

 

나보고 그래요, 스님. 먹어야 되요? 안 먹어야 되요? 네 알아서 해라. 죽고 싶으면 먹고 죽기 싫으면 안 먹고. 그런데 저한테 자꾸 어떤 결정을 내려달라고 해봐야 제가 아무 도움을 안 줍니다. ? 모든 인생의 결정은 누가 해야 된다? 자기가 해야 되요. 왜 하느님 부처님을 자꾸 끌어들여요.

 

부처님은 그냥 쥐약 들었다. 이 말 밖에 안 해요. 쥐약 들었으니까 먹지마라. 이것은 나중에 만든 말이에요. 쥐약 들었다. 이 말 밖에 안 해요. 먹고 안 먹고는 네가 알아서 해라. 살려면 안 먹죠.

 

그런데 쥐약 들은 줄 모르면 먹지 마라 그러면 좀 먹으면 안 될까? 먹으면 안 될까? 미련을 못 끊잖아. 그런데 쥐약 들었다면 딱 끊어져요? 안 끊어져요? 끊어지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한 거요. 진실을 알면 딱 자유로워지는 거요. 미련이 딱 끊어지고.

 

우리는 설마 들었겠나.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니까, 자꾸 좀 먹으면 안 될까? 조금만 먹어보면 안 될까? 저는 그 두 번만 물으면 그래, 먹고 죽어라.” 그래요. “네가 먹고 죽겠다는데 누가 말리냐.” 이렇게 제가 냉정하게 얘기한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성인을 자꾸 여러분들이 명령하는 사람, 우리 인생에 간섭하는 사람, 이렇게 들으시면 역사과정에서 잘못되어서 그래요. 성인은 절대로 우리 인생에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진실을 깨우쳐줘서 우리가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그리고 우리 인생을 늘 목줄을 잡고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내가 더 자유롭고, 내가 더 주인 되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에요. 다리 아픈 사람에게 지팡이 주는 거와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지팡이도 다리 아플 때 자기가 고맙다고, 다리 다 낳았는데도 계속 짚고 다니면 무슨 소리 듣는다? 다리병신 소리 듣잖아. 그죠? 내가 다리 아플 때 짚었던 지팡이라도 다리 나으면 버려야 되요? 짚고 다녀야 되요? 버려라. 이게 성인의 가르침이에요. 이정도로 우리에게 사랑을 갖고 계시는 거요.

 

우리보고 좀 도와줬다고 평생 내 종노릇해라. 이렇게 가르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건 다 이런 가르침을 가지고 중간에서 이용해서 지가 컨트롤 하려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얘기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애기라는 성질이 이렇다. 이런 원리를 설명하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애기를 남의 손에 맡기면 나중에 나한테 애기가 정이 없습니다.

 

할머니한테 맡겨서 키우면 엄마는 형식적으로 이성적인 엄마고, 마음에서는 할머니 생각이 늘 나는 거요. 꿈을 꿔도 할머니 생각이 나고. 그러면 엄마는 섭섭하죠. “엄마 놔놓고 할머니 생각하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지가 엄마 노릇하지도 않아놓고.

 

그래서 옛날에 왕조사회에서 한 3~4대 내려가면 왕들이 다 신통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왕후가 애를 키우는 게 아니에요. 전부 애를 낳으면 그날로 누가 키운다? 궁녀들이 키우는 거요. 궁녀들이라는 게 출신이 하녀출신이잖아요. 천민출신이다.

 

그러니까 심리적으로는 기른자를 받아서 심리가 낮은 신분의 심리고, 그런데 자기 행동거지는 어때요? 이성적으로는 자기가 왕자잖아. 그죠? 이 언발란스가 어긋남이 얼마나 커요. 그러니까 다 엄청난 콤플렉스에다가 엄청난 폭력적인 이런 왕이라서 다 성격이 이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왕조사회보면 여자들끼리 질투하고 싸우는 게, 죽이고 살리는 것도 엄청납니다. 그러니까 그런 악쓰는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건강한 심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123대까지만 괜찮지, 그 밑에 내려가면 다 그래요.

 

그래서 기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제가 말하는 기른자라는 것은 기른자가 엄마라는 뜻이지, 그런데 보통은 낳은자가 기른자의 역할을 지금 거의 겸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낳은자가 죽어버리면 아무 아이한테 영향이 없습니다. 딴 사람이 키우면 그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낳은자가 없으면 딴 사람이 키우면 되요. 입양, 이거 어릴 때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처님을 자꾸 엄마가 죽어서 염세주의다. 그것은 모르는 소리에요. 부처님은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엄마의 여동생이 이모죠. 이모가 엄마 역할을 했어요.

 

그러니까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와서 엄마 역할을 했으니까, 이모라는 것은 거의 엄마와 똑같잖아. 그것은 딴 데서 들어오는 양모하고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아무런 친엄마와 똑같은 사랑을 받고 자랐죠.

 

그런데 자꾸 남성중심으로 얘기를 하니까 자꾸 양모라 그러거나 이모라고 자꾸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그냥 엄마라고 하는 게 제일 낫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무슨 그런 엄마가 죽었기 때문에, 생모가 죽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정신적으로 뭐가 있었다. 이런 것은 너무 인간 심리를 모르고 그냥 통속적으로 하는 소리다. 이거요.

 

그런데 3살 넘어서 돌아가시면 영향이 있습니다. 입양도 3살 넘으면 그 전에 자랐던 환경에 영향이 있습니다. 바탕이 어떻게 형성되나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가능하면 그래도 뭐, 잘났든 못났든 사실은 애기한테 제일 정이 많은 게 누구에요? 생모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요?

 

생모보다 약간 정신이상이 있다면 몰라도, 주로 공부를 많이 하면 정신이 이상이 생겨요. 이 생물학적인 생모의 그 본능, 모성의 본능이 공부를 너무 많이 하면 마비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공부를 안 하면 원시적이면 100% 모성애로 작동을 하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자기 닮는 게 자기 자식 아니겠어요? 잘났든 못났든, 자기가 키우는 게 좋다는 거고, 어쩔 수 없으면 그건 다른 상황으로 받아들여져야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런 문제를 이해해야 된다.

 

할머니가 키웠으면 나중에 아이가 엄마하고 정이 좀 떨어지는 거를 엄마가 받아들여야 되요. 무의식세계, 의식은 엄마다 하지만 무의식 세계에서 안 가는 것을 어떻게 해요. 내가 이분을 엄마라고 정해놨는데, 의식세계는 엄마 엄마하고 얘기해도 정이 안 가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요. 마음이 안 움직이는데.

 

어떻게 재미있었어요? 너무 심각했어요? 하하하. . 애기 잘 키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