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10. 야사의 출가

Buddhastudy 2018. 5. 17. 20:36


안녕하세요. 어제 저는 부르나 존자의 전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연달아서 전법에 대해서 한 사례를 더 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성 밖에 사라나뜨 녹야원에서 교진녀 등 5비구를 교화하신 뒤에 그들과 더불어 그 곳에서 정진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바라나시성의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인 야사라고 하는 청년이 아주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런 자세로 말을 타고 그 숲을 지나갔습니다. 이 청년이 이 숲을 지나가면서 아주 못 볼 것을 봤어요.

 

그것은 이 숲은 원래 시체를 갖다 버리는 곳이니까, 시체들이 버려져서 뒤엉켜 있는, 엎어지고 자빠지고 서로 엉켜있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막고 이렇게 지나갔어요. 자신은 이 모습을 보고 냄새, 이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괴로워하면서 지나가는데, 그런 시체더미에서 바르게 앉아서 편안한 얼굴로 명상하는 부처님을 본 거요.

 

그것이 너무나 인상이 남았어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숲을 지나갔는데, 그때 부처님께서 5비구들에서 그런 말을 했어요.

저기 말을 타고 가는 저 청년이 내일이면 이곳에 와서 출가 사문이 되겠구나.” 그랬어.

 

그랬더니 5비구가

부처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청년은 출가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도시에서 제일 부자인 구리가 장자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그는 결코 출가수행자가 되지 않을 겁니다. 또 부모가 허락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매일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그렇게 말했어요.

 

그것은 지금까지의 야사청년의 생활을 보면 이 다섯 비구들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아사청년은 그날 저녁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아름다운 무희들과 어울려서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마음껏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깊고 술에 취하고 지쳐서 다 쓰려졌어요.

 

그렇게 자고 새벽녘에 목이 말라 일어나보니까 타나 남은 희미한 촛불이 깜박거리는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보니까, 그 아름다운 춤추던 무희들이 다 술에 취해서 전부 쓰러져서 자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엎어져서 자고 있고, 어떤 사람은 누워서 자고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에 다리를 걸치고 자고 있고, 어떤 사람은 옷이 좀 벗겨져서 여자로서 보이지 말아야 할 부분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입에 먹은 것을 토해놓은 사람도 있고, 침을 흘리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그런 모습이 어제 낮에 숲에서 버려진 시체더미를 본 것과 거의 인상이 같았어요. 그렇게 아름답던 이 무도회장이 순식간에 무덤과 같았던 거요. 그래서 그는 너무나 놀라서

, 괴롭다. 괴롭다.” 하고 길거에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어요. 새벽녘에 말이오.

 

그러다 그의 머릿속에 어제 그 시체더미 속에서도 고요히 앉아있는 그 수행자의 모습, 부처님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는 마치 나방이 불을 찾아서 날아들 듯이 자기도 모르게 발길이 그 숲속으로 향했던 거요.

 

그 바라나시와 사라나뜨 사이에는 바루나 강이라고 하는 작은 강이 있는데,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 비싼 보석이 박힌 신발을 벗어놓고 건너서 숲으로 들어가서 부처님을 만났던 거요. 그것을 경전에는 저 숲속에서 훤한 빛이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그 빛이 환하게 비춰서 이 야사가 그 빛을 따라 갔다. 동방박사가 별 따라 왔다 하듯이 말이오. 이렇게 묘사 되어있는데,

 

이것은 그의 마음속에 붓다의 영상이 가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와서

부처님,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야사비구에게 법을 설했고, 야사비구는 그 법을 듣고 단박에 깨쳐서 수다원과를 증득했던 거요.

 

그래서 출가하기를 원했고, 부처님께서는

오라 비구여, 여기 좋은 법이 잘 설해져있도다.” 이렇게 해서 제자로 받아들였던 겁니다.

 

5비구는 원래 수행자였습니다. 부처님과 도반들이었어요. 그러다 깨치지 못했다가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쳤죠. 그런데 야사비구는 수행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사람이오. 세속적 쾌락을 누리던, 좀 말하면 망나니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도 부처님의 법을 듣고 단박에 깨쳤다는 거요. 왜 그럴까? 바로 야사비구가 그 어제저녁에 그렇게 아름답던 그 여인들이 오늘 새벽에 시체무덤과 같은 것을 봤다는 게 뭐요? 그게 바로 락이 곧 고임을 경험했다는 거요.

 

락이 곧 고임을 경험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거요. 그러니 부처님의 법을 금방 이해하고 깨달을 수가 있었던 거요. 그러니 우리가

 

절에 오래 다녔다고

또는 출가해서 스님이 됐다고

법을 빨리 증득하는 건 아니에요.

 

어쩌면 여러분들이 불교도 모르고 세속에 살았다 하더라도 자기의 경험 속에서 그 락이 고임을 경험한, 그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불법을 공부할 때, 의심의 여지없는 그런 믿음과 이해, 그리고 용맹정진이 나오는 거요.

 

이렇게 야사비구가 출가수행자가 된 뒤에 이 구리가 장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던 거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없어져버렸어. 친구들을 찾아 다 물어봐도 몰라. 아침에 없어져 버렸다는 거요. 그래서 찾아 헤매다가 바루나강변에서 신발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그 구리가 장자는 발자국을 따라서 사라나뜨 숲으로 오게 된 거요.

 

거기서 부처님을 뵙고 아들을 찾아온 사연을 얘기하고, 아들을 못 봤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좋은 얘기를 나눠주면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즉 그는 아들을 찾아왔지 부처님께 법을 물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쉽게 말하면 그냥 인사만 하고 일상적인 얘기는 했지 법을 설하지는 않았죠.

 

조금 있으니까 야사비구가 왔고, 아버지는 너무너무 기뻤죠. 그래서 당장 아들보고 집에 갈 것을 권유했고 아들은 거절을 했고, 그러자 아버지는 야사비구의 어머니 얘기를 꺼낸 거요. “너의 어머니가 얼마나 너를 찾는데, 네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마 몸져누울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자.” 이렇게 강권을 했습니다.

 

그러자 야사비구는

아버지, 제 얼굴을 좀 똑바로 보세요. 아버지가 지금까지 제 얼굴을 본 중에 오늘처럼 이렇게 얼굴이 기쁘고 행복한 적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아버지가 아들 얼굴을 가만히 보니 정말 아들 얼굴이 밝고 맑았어요.

 

자기가 아들을 본 중에 오늘같이 이렇게 얼굴이 밝은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 이 좋은 법을 두고 제가 왜 그 번뇌의 동굴로 다시 들어갑니까?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거절을 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할 말이 없는 거요. 그때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이 좋은 법을 듣고 깨달을 것을 권유했고, 아들을 보고 아버지도 감화가 되어서 부처님께 법을 청했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의 눈이 열렸던 거요.

 

그는 너무너무 기뻤어.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기쁨을 노래했어요.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위대하셔라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심과 같고, 덮인 것을 벗겨 내신 것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추어 주심과 같이 온갖 방편으로 저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승단에 귀의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삼보에 귀의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장하다 구리가 장자여하고 칭찬한 뒤에,

삼보에 귀의한 장자는 5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느니라.” 이러면서

 

첫째,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갖지 말라

셋째,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삿된 소견을 갖지 말라.

 

그러자 구리자 장자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께 맹세를 했습니다.

몸과 목숨이 마칠 때까지 이 좋은 법을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

이것이 재가신자가 처음 탄생한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소위 오계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는 불자가 되는 삼귀의 오계가 바로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구리가 장자는 집에 돌아가서 이 좋은 법을 바로 아내에게 권유를 했습니다. 아내를 데리고 다시 숲으로 와서 역시 부처님의 법을 듣고 아내도 마음의 눈이 열려서 부처님 법에 귀의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최초의 재가 여자신자다. 이렇게 해서 우바새, 우바이가 탄생한 겁니다.

 

이 소문을 듣고 이 바라니시에 있는 야사와 아주 절친한 4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이들이 생각하기에 야사가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었다고?” 그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걔가 수행을 해? 맨날 우리하고 술 먹고 노래하고 오입하고 다녔던 걔가 뭐? 수행자가 됐다고? 필히 다른 곡절이 있을 거다. 우리 구하러 가자. 뭔가 도술을 쓰는 어떤 사람에게 홀렸거나 속임에 빠졌거나 그럴 거다.”

 

그래서 4명이 야사를 구한다고 왔다가 야사의 권유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닫고 그 자리에서 출가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됐어요. 그런데 이 야사는 아마 그 당시에 부잣집 아들이고 하니까, 요즘말로 하면 국제적으로 놀았나 봐요.

 

친구들이 이 바라나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었는데, 여러 나라에서 50명의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이 야사는 출가해서 수행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는 뭔가 곡절이 있을 거다. 그러니 몇 명이 찾아가서는 요술을 쓰는 수행자한테 속을 테니까, 우리 전부 한꺼번에 가서 야사를 구하자.” 했다가 역시 야사의 권유로 부처님의 법을 듣고 다 수다원과를 증득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어요.

 

이렇게 해서 야사 등 55인이 출가하게 된 거요. 이것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당시에 아주 엘리트층에 해당되는 젊은이 55인이 출가했다는 얘기요. 이렇게 해서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했고, 마침내 아라한과를 증득했던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60명의 아라한 즉, 처음에 5비구하고 55인하고 이렇게 60명의 제자를 두고 전법 선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너희들도 해탈을 얻었다. ,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거라. 신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처음도 끝도 조리 있게 법을 설하 거라. 두 사람씩 모여 다니지 마라. 한 사람씩 홀로 길을 떠나거라. 나도 우루벨라 별장촌으로 가서 교화설법 하겠노라.”

 

다시 말하면 부처님 한분으로 시작된 이 좋은 법이 61명으로 늘어났고, 부처님까지. 61명이 다 흩어져서 각각 한명씩 흩어져서 전법의 길을 떠났다는 거요. 부처님은 이렇게 해서 다시 우루벨라촌, 부처님이 6년 고행하시던 그 지역으로 돌아오셔서 우루벨라 가섭 등, 1천명의 제자들을 교화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왕사성으로 가서 빈비시라왕을 교화하고 중림정사를 창간하고, 그곳에서 사리푸트라, 목갈라나, 마하가섭 존자 등, 쟁쟁한 제자들을 교화했던 겁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깊이 돌아봐야 될 것은 이 야사비구의 법을 얻은 기쁨입니다.

첫째, 자신이 법을 증득하고 기쁘니까 아버지가 찾아왔는데도 아들이 아버지에게 끌려가기 전에 도리어 아버지가 아들의 영향을 받아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지 않습니까.

 

아들을 데리러 온 어머니가 오히려 아들의 영향을 받아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친구를 데리러 온 친구들이 오히려 야사의 영향을 받아서 그들 또한 부처님의 제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전법의 힘이다.

 

오늘 우리 절에도 행자들이 있는데, 가끔은 부모님들이 아들이나 딸을 데리러 오는 경우가 있어요. 대학 다니다가 학교 안다니고 절에 와 있다든지, 이런 경우에는 와서 멱살을 잡고 끌어갈 때도 있고, 문간에서 지킬 때도 있고, 여러 경우가 있죠. 이럴 때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첫째가 끌려가는 존재,

둘째가 도망가는 존재. 이런 경우는 참 많죠. 누가 찾아오면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죠.

세 번째는 내쫓는 경우입니다. 안 만나주고.

이런 것은 다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요.

 

일부러 집에 가서 데려오지는 못할망정, 자기 발로 찾아왔는데 얼씨구나 좋다하고 부모가 찾아오면 부모를 교화하고, 형이 찾아오면 형을 교화하고 이렇게 해야 되죠. 이렇게 안 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아직도 법을 증득한 기쁨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결국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끌려가는 수준이니까, 어떤 분은 부모가 찾아왔는데도 도망을 갔다든지, 부모가 찾아왔는데도 돌멩이를 던져서 못 오게 했다든지, 그런 게 굉장한 수행자다. 이렇게 칭찬받는 정도이지 않습니까.

 

왜 법을 아는 자가 도망을 가며, 법을 아는 자가 쫓을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외면을 할 필요가 뭐가 있냐? 이거야. 아들이 찾아왔다고 고개를 돌리고 안보고,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 뭔가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요.

 

오늘 우리 불교가 이 수준을 아직도 못 넘어서고 있는 거요. 이 야사비구와 같이 자기를 찾으러 온 부모를 친구를 그의 기쁜 얼굴을 보고, 그의 깨끗한 마음을 보고, 오히려 감화가 되어서 부처님께 인연을 지어줘서 법을 듣고 깨쳐서 그들을 교화했다.

 

이런 불교가 불교의 본래 모습이에요. 외면하고 도망가고 내쫓는 게 불교의 참 모습이 아니에요. 그것은 이조 500년 척불에서 내려온 소극적 불교, 회피적 불교, 은둔적 불교의 유산입니다. 그러니 우리 불자들이 이 5월 부처님오신 좋은 달에는 부처님의 법에 대한 공부를 좀 하시고, 법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소극성이 탈피가 된다.

 

막 미쳐 길거리 다니면서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소리치는 그런 전법이 아니고, 정말로 기쁨에 충만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옆에 사람들이

, 무슨 좋은 일 생겼나? 웬일이고? 얼굴이 젊어졌는데?” 이렇게 됨으로 해서, 내가 비록 배운 건 적고, 지위는 낮고, 건강은 못하고, 여러 측면에서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의 자유

행복에 있어서만은

천하 누구 부러워할 것이 없을 경지가 되면

 

돈 있다고 뻐기고, 지위 높다고 뻐기고, 지식 있다고 뻐기고, 나이 많다고 뻐기고, 남자라고 뻐기고 하다가 괴로우면 기가 죽는 거요.

 

뭐 좋은 일 없겠어? 너 어째 그렇게 기쁘냐? 나한테도 좀 일러줘.” 이렇게 될 때,

그래, 이 좋은 법을 한번 들어봐라.” 하고 법문을 줄 수도 있고,

이런 수련회에 한번 참가해봐라.” 이렇게 했을 때 그들도 경험하고 기뻐한단 말이오.

이런 좀 더 적극적인 그런 전법의 5월 달이 되도록 여러분 스스로, 또 남에게도 법을 전하는 일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