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_죽음이야기

8. 최준식 교수의 죽음 이야기 7월 31일 방송 (31:14)

Buddhastudy 2012. 2. 5. 22:48

  출처: 유나방송

그쪽 세계의 아름다운 얘기를 하는데 어떤 얘기를 하는고 하니. 미국 친구가 할리우드에 가면 Beverly Hills 라고 부자들 많이 사는 동네 있지 않습니까? 그 부자들 사는 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가 그 부자들 집 보면 수영장 있고 엄청나잖아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당연하겠죠. 빛의 영역과 색의 영역은 다른 거죠. 예수님도 뭐 그런 얘기하셨다 그러죠? 아버지 나라, 천국의 아름다움은 지상하곤 비교할 수가 없다. 뭐 그런 말씀을 했다라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 빛의 존재에 대해서 해석이 구구합니다. 과연 이게 누구냐? 이게 뭐냐? 기독교 신자는 예수로 혹은 신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또 가톨릭은 마리아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개신교 신자한테는 마리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교 신자들은 보살의 존재로 파악을 하기도 하는데. 불교 신자들한테는 예수나 마리아 같은 이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역시 뭡니까?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거죠. . 일체유심조입니다. 결국은 죽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죽어서의 고 때도 역시 자기 마음의 작용에 따라서 외계가 변하게 되는데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이 빛의 존재와 만나서 하는 일은요, 삶의 회고를 합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사고 순간에 나왔던 파노라믹한 영상을 이번에는 천천히 보면서 빛의 존재와 서로 조망을 하는 거에요. 영상이 어떤 경우에는 스틸, 정지 영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그러고, 아니면 동영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들어가서 활동하기도 하고, 아니면 밖에서 관망하는 그런 형태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로 재미나 다고 할까요? 교훈적인 것은 그때 그 영상을 보면서 그제서야 왜 내 인생에서 저런 일이 생겨났는가? 를 알 수 있었다고 그럽니다.

 

왜 나는 저때 저렇게 바보 같은 쪼다 같은 짓을 했는지. 왜 저때 나쁜 짓을 했는지. 또 왜 내 남편은 평생을 바람을 피우면서 나를 괴롭혔는지. 왜 나는 심장마비에 걸렸는지. 살면서는 알지 못했던 그런 사건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사건들. 이것들을 이제서야 바로 그 순간에서 알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까? 그게 다 펼쳐지는데 옆에 있는 빛의 존재는 거기에 대한 질책은 전혀 없고, 큰 사랑으로 감싸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뭘 깨닫게 하느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다른 사람을 해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건가? 이거를 깨치게 한다고 그럽니다.

 

참 자세한 얘기가 많습니다마는, 그러니까 우리가 죽은 직후에는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거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까르마, 업보의 법칙이 어떤 것이었는가? 지금은 우리가 모르고 있거든요. 아주 소수의 각자들만 알 수 있는 내용을 죽음 바로 직후에는 누구도 알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사자의 서를 죽기 전부터 읽어주게 되죠. 사자의 서는 잘 아실 겁니다. 3단계로 나누어서 과정이 그런 거거든요. 바로 육체를 벗어난 직후의 영혼은 대단히 깨끗하기 때문에 아직 저승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이승의 그런 편견 고정관념에서 해방됐기 때문에 그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 거기서 바로 깨달을 수 있겠다. 뭐 이런 가정이 거기 들어가 있는 겁니다. 두 번 정도까지 설명을 해주거든요. 그래서 만일 그때까지 이 영혼이 못 알아들으면 3번째에는 다음 생의 몸을 받을 때 좀 더 좋은 몸을 받기 위해서 코치를 해 줍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참 정말 정말로 용의주도한 그런 죽음 인도법이죠. 그래서 불교도가 되든 기독교도가 되든. 이런 것은 좀 심도 있게 생각을 해봐야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떻든 이런 빛의 존재와 같이 있으면서 이 사람은 살아서 처음으로 정말 사랑, 용서라는 그런 기운에 완전히 함몰, 빠지게 됩니다. 절대적인 사랑에 감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빛의 존재와 만났던 사람들은요. 이건 제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는데, 완전히 사람이 바뀝니다. 아주 세속적인 인간이었던 사람이 거룩한 종교적인 존재가 돼 버립니다. 그거거든요. 우리가 이런 사랑에 한 번만이라도 적셔지게 되면 우리 보통 인간들은 다 바뀝니다. 업보가 그렇지 못한 거죠. 우리 업보가 그런 사랑을, 가령 부모님으로부터라든가, 어떻든 이런 사실 이 빛의 존재사랑은 부모님 사랑보다 비교가 안 됩니다.

 

어떠한 조건도 없는 사랑, 예수님이 얘기하시던, 베드로가 물어보지 않습니까? 부처님, 7번씩 70번을 용서를 7번이라 그랬죠? 죄송합니다. 7번을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충직한 사람이거든요. 머리는 좀 안 되는데 충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7번 정도 용서한다. 그러면 우리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을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물어봤더니 예수님은 7번에다가 70을 곱해라. 490번 용서해라. 무조건 용서해라 이런 겁니다. 바로 이런 큰 사랑을 받게 되면 끝나는 거죠. 거기서는. 그렇습니다. 좌우간. 다시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요.

 

~ 그런데 이때 빛의 존재로부터 받는 레슨이 귀중한 레슨이 있는데요.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뭐냐? 아주 간단해요. 4글자입니다. 배움과 사랑. 그건 뭐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지혜와 자비죠. 불교 안에 다 있습니다. 이게. 유대인들은 그런 얘기를 한다고 그래요. 인간은 죽어서 아무것도 갖고 갈 것이 없다. 두 개만 빼고. 뭐냐? 배움과 사랑이다. 이때 배움이라는 거는 무슨 컴퓨터 배우고 말이죠. 돈 버는 이런 배움이 아니고요. 자연이라든가, 우주, 또 인간 내면에 대한 그런 지혜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공부 열심히 해야 됩니다.

 

지금 공부 안 하면 안 됩니다. 열심히 사랑을 하고, 퀴블러 로스 박사는 그래요. 이생에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 그거 간단한 얘기지만 단호한 얘기죠. 할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말로는 이렇게 합니다만 거의 실행에 못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할 수 있죠. 여담으로요. 여러분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클까요? 알고 짓는 죄가 더 클까요?

 

보통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 아니죠. 알고 짓는 죄가 더 크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런데 아닙니다. 알고 짓는 죄가 더 작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모르고 짓는 죄는 끝까지 참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짓는 죄는 참회 할 수 없습니다. 참회하면 됩니다. 지혜. 확실히 알고 있어야 되겠다. ~ 이 빛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는가? 이건 아까 말씀드렸던 케니스 링이라는 교수는 진아, 하이어셀프라는 말을 씁니다. 저는 진아라고 불교식 용어로 참나라고 했는데. 전체적인 나, 심층적 자아. 이렇게 해석을 하고. 신으로 봐도 좋겠고. 원홀, 큰 전체. 원 에너지 큰 기운. 일심. 원마인드. 대승기실론에 나오는 원 마인드.

 

폴스 마인드. 다 좋겠다고 이렇게. 이건 다 미국사람들 얘깁니다. 이게 사실은 빛의 존재가 다른 존재가 아니고 바로 납니다. 우리는 그 일심. 그거를 저는 우주의식이라고 현대 용어로 씁니다. 우주의식 속에서 다 하나죠. 이 세상에는 우주의식밖에는 없다고 얘기하죠. 그게 대승기실론 사상이기도 하고, 또 불교의 기본 사상이기도 합니다. 우리 이 개아의 의식은 바로 우주의식이 개별화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 우주의식과 하나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빛의 존재나 나나 사실은 같은 우주의식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재미난 것은 요. 이때 빛의 존재가 뭐라고 그런고 하니, 종교에 대해서는 안 물어본답니다. 재밌죠? 네가 무슨 당신이 교회를 잘 다녔냐? 장로를 했냐? 불공을 잘 드렸냐? 이건 일체 물어보지 않는다 그럽니다.

 

다만 판단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사랑했는가? 또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이것만 본다 그럽니다. 이게 맞는 얘기죠. . 처음에는 기독교에서 근사체험연구를 하는 거에 대해서 반겼다. 그래요. ~ 드디어 천국과 지옥 얘기가 나오는구나. 그런데 봤더니 종교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오는 거에요. 예수를 믿건 말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에요. 그다음부터는 비판 일색으로 돌아가게 됐다. 라는 내용을 칼 베커 교수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 지금 제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는데 지금 종교는 불교건 기독교건 이슬람교건 대부분 도그마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인류는 바로 이런 전 근대적인 종교의식에서 벗어나는 그런 진화 과정에 바로 들어가 게 있죠.

 

~ 이렇게 하다가 빛의 존재가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당신은 여기 아직 올 때가 아니다. 스스로 귀환한 것을 마음먹도록 얘기를 한답니다. 이렇게 해라. 강압적인 것이 아니고. 스스로, 당신은 이 생에 할 일이 있어 왔는데 그 일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된다. 그걸 쉽게 받아들이게 얘기를 한다고 그래요. 그때 장벽 앞에 서게 되는데 그 장벽이 저승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벽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문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사막. 아랍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이게 사막으로 나타난다 그러고. 폴리네시아처럼 맨 바다만 봤던 사람들은 이게 바다로 나타난다 그래요. 역시 또 마음의 작용이죠.

 

한국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의 경우를 봤더니 삼도천이라 그래서 불경에 나오는 건데 강이 흐른다 그러죠. 이 강을 건너면 저승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것. 이런 강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아마 한국도 강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 여기에서 건너가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고, 다섯 번째 마지막 단계죠. 귀환을 하게 됩니다. 빛의 존재와 상의 한 다음에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해서 육체로 돌아오고. 요번에는 육체로 돌아올 때는 무슨 터널체험 같은 것이 아니고 그냥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눈을 뜨게 되고, 이제 새 삶이 시작이 됩니다.

 

근사체험을 하고 온 다음에 완전히 달라진 그런 모습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굉장히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이 사람들은 굉장한 종교인이 돼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