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11화 - 여권의 역사

Buddhastudy 2019. 5. 27. 20:10


지난 주 까지는 사담 속 코너였지만, 이번 주부터는 사담 밖 코너로 바꿔볼까 합니다.

사담과 픽의 주제가 같다보니까 시너지 효과를 좀 줄 수 있는 주제로 잡아 볼까합니다.

 

오늘 픽에서 드릴 말씀은 여권에 관한 얘기입니다.

다른 나라에 들어가는 자기 국민을 위해서

이 사람 우리나라 국민입니다. 여행하는 동안 잘 보호해주십시오.” 라고

특별히 불이익을 주지 마십시오.” 라고 부탁하는 증서가 여권이죠.

 

현대 한국인들에게 휴가 때 계획이 뭐냐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라고 물으면 가장 자조적으로 할 때 나오는 소리가 방콕입니다.

보통은 진짜 방콕에 가는 것이 바람직한 또는 자기가 원하는 휴가일정이고, 어쩔 수 없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스스로 자조감을 느끼는 그런 행동이 되는 거죠.

 

그만큼 여행은 우리 일상 속에 깊이 다가온 아주 가까이 다가온 행위가 되었습니다.

여행만큼 즐거운 일이 없고, 여행만큼 자유로운 일이 없고, 여행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현대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제가 현대의 상식이라고 굳이 말씀드리는 것은 1989년에 와서야, 불과 30년 전에야 비로소 부분적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고, 전면 해외여행 자유화는 그 뒤로도 몇 년이 더 지나서야 이루어진 셈이죠.

불과 한 세대 만에 여행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본래 여행(旅行)의 여()라는 글자는 500명의 군대라는 뜻이었습니다.

군대에도 여단이라고 하는 단위의 부대가 있죠.

여행은 대규모 무리를 이루어서 스스로를 보호할 정도의 그런 정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떠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의 땅에서

혼자, 아니면 소수 인원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어떤 피해를 당할지도 모르고,

잡혀가 노예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강도대상이 되어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500명 단위가 되어야 떠날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의

여행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죠.

 

여행자가 숙박하는 곳을 여관, 또 영어로는 호텔(Hotel)이라고 합니다.

이 호텔이라는 단어는 호스피탈(Hospital=병원)과 어원이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행자는

물도 맞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은 곳에서

국가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돌아다녀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상 병을 달고 다녔습니다.

 

보통 행려병,

여행을 뒤집으면 행려가 되는데요,

행려병이라는 말을 많이 붙였죠.

 

여행자를 보호하는 시설과

환자를 보호하는 시설의 이름이 본래 같았어요.

이랬다가 근대 이후에 호텔과 호스피탈이 분리되었던 거죠.

그만큼 여행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제국주의에 의해서 세계체제가 만들어지고, 만국공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간에 대등한 관계가 형성된 다음에 가서야 여행자의 안전을 보증하는 문서, 여권이라고 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그 뒤로 유럽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의 신분 안전을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문서로서 호조(護照)라는 것을 발급해주었죠. 비자(visa)에 해당합니다.

 

한국인에게 한국 정부가 여권을 발급해 준 것은

1902년 수민원에서 하와이 이민을 보낼 때 처음 발급해줬죠.

 

처음에 여권은 행복과 자유, 모험의 증서가 아니라 노예문서와 비슷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가 국가를 잃었기 때문에 나라 잃은 민족이었기 때문에 외국에 나갈 때는 일본정부의 여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 대다수가 일본의 여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가장 많은 여권을 발급한 해가 1937년인데, 그 해에도 여권 발급 건수는 72건에 불과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 정부의 여권 없이 무보호 상태로 해외로 떠나곤 했던 것이죠.

 

그랬던 여권, 특히 해방 이후에 이 여권을 갖는 다는 것은 정부 외교관이나 아니면 해외 상사 주제원이나 특수신분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었죠.

 

그런데 이제 여권은 한국인들 대다수가 가지고 있고, 또 몇 년에 한차례든, 일 년에 한두 차례든, 순수하게 여행의 목적을 쓰는 그런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여권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여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가장 많은 여권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죠.

 

그 동안 노예문서처럼 쓰였던 여권에서

우리가 있어도 굳이 발급받을 필요가 없었던 일제강점기의 여권에서

그리고 특권층의 상징이었던 여권에서

우리가 해외 어디에 나가서나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고,

또 그 여권 하나로 전 세계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그런 여권을 만들어냈다는 것,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한 일일 거 같고요,

 

또 이런 여권의 역사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의 여권에 대해서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전우용의 픽, 여권 이야기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