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12화 - 소경과 봉사

Buddhastudy 2019. 5. 29. 20:50


사담 밖으로 나온 코너

전우용의 픽입니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건복지포럼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장애인 10명중의 8명이 일상생활에서 차별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로는 또는 공식적으로는 차별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실지로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이번 주 픽은 장애를 대해온 관점, 태도의 역사로 준비해 봤습니다.

 

옛날 얘기를 하려다보니까 아무래도 요즘에 혐오단어로 분류되는 그런 단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그 점은 미리 시청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지가 사실 그리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는 병든 몸이라는 뜻에서 병신이라고 불렀었죠.

 

환자가 혐오단어가 아닌 것처럼

본래 병신이라는 단어가 혐오단어는 아니었습니다.

 

이 단어가 혐오 단어처럼 쓰이게 된 것은

장애인들의 행동을 조롱하는 또는 비하하는

그런 속담들, 그런 말들이 주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 대표적인 예가 육갑하네라는 말입니다.

요즘엔 꼴깞한다이라고 하는 말을 잘들 쓰다보니까 꼴값의 과 육갑의 이 같은 갑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꼴값은 말 그대로 생긴대로이때 가격이라는 뜻이고요,

육갑할 때의 육십갑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육십갑자를 어떻게 짚었냐하면 오른 손을 들어서 감을병정무기경신임계 이게 십간입니다. 10개의 간이구요,

왼손을 들어서 엄지손가락으로 손가락끝마디들을 짚어나가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개입니다.

 

이렇게 10개와 12개를 조합해서 육십갑자를 셌는데,

만약에 손가락이 하나가 적거나 또는 하나가 많거나 그런 사람이 육십갑자를 세면 어떻게 되겠어요?

전혀 다른 십간십이지를 짚을 수밖에 없겠죠.

그거를 조롱해서 또는 비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뭔가 좀 터무니없는 또 잘되지 않을 일을 할 때, 그것을 병신 육갑하네라는 말로 썼었습니다.

 

그밖에도 장애인을 부르는 호칭들이 대게 그렇습니다.

순 우리말 호칭인데, 앉은뱅이, 절름발이, 언청이, 귀머거리, 벙어리, 곱사등이, 곰배팔이 하듯이 전부 자로 끝났어요.

 

여기에 그이, 저이할 때의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일상적인 호칭이어서 우리가 좀 비칭으로 많이 쓸 때는 지게꾼, 짐꾼, 막노동꾼 하듯이 자를 쓰거나

아니면 더 비칭일 경우에는 자를 쓰거나 그랬는데,

자를 썼다는 거로 봐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눈에 두드러지게 호칭 상으로 보통 사람과 차별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다른 장애인들은 전부 자로 끝났는데, 딱 한 가지 장애인들은 보통사람보다 더 높여줬어요.

아시겠죠? , 시각장애인입니다.

 

순 우리말로는 장님이라고 했어요. 장님이란 지팡이 짚은 어르신 이런 뜻입니다.

은 아주 높은 분한테 붙이는 접미어였으니까요.

아니면 소경이나 봉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소경과 봉사는 모두 벼슬이름입니다.

관직 중심사회에서 관직이름을 붙여줬어요.

 

그것도 소경은 고려시대 정사품벼슬, 꽤 높은 벼슬입니다.

봉사는 좀 벼슬 등급이 낮아졌어요. 조선시대 종 8품 벼슬이었습니다.

소경이 하는 일은 점을 치고 또 천문을 관측하는 일이었어요.

봉사가 하는 일은 역시 천문을 관측하거나 관상감 등에서, 아니면 혜민서 등에서 침을 놓거나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는 일이 점을 치거나 침을 놓거나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시각 장애가 오면 그 사람들은 벼슬아치와 같은 등급의 일을 한다. 이렇게 취급을 해줬던 것이죠.

 

첫째는 다른 장애와는 달리 시각장애는 대게가 중년, 장년 이후에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백내장이나 요즘처럼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뭐 이런 질환들이 결국 실명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보통 시각장애는 어른이 많아서 장님, 또는 소경 봉사처럼 벼슬이름을 붙여줬다고 생각이 됐구요,

 

두 번째로는 다소 신비주의적인 관점이었는데요, ‘육신의 눈이 감기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이렇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던 거 같아요.

신체적 장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정신장애에 대한 생각도 요즘과는 달랐습니다.

 

미셸 푸코는 중세 유럽에서 미친 사람이라는 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고 적었습니다. 광기의 역사라는 책에서 그렇게 적었죠.

정신 이상자들의 해석하기 어려운 말속에 신의 뜻이 담겼다고 봤다는 겁니다.

 

우리 말 미치다도 같은 의미였던 것으로 저는 봅니다.

미치다닫다, 이르다, 도달하다라는 뜻이 있거든요.

 

신에게 닿다, 도달한다이런 의미 였던 것으로 보고 있고요,

그래서 미쳤다는 말은 신들렸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로 많이 사용되었죠.

그만큼 두려움, 경외감, 이런 것들을 함께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옛날에는 심신 어느 부분에든 장애가 생기면 다른 부분의 능력이 커진다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일생동안 병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일시적으로든 항구적으로든 병신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았던 거죠.

 

의학발달에 힘입어서 선천적 장애인은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살다가 장애인이 되는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한국인의 반이상은요, 100년 전이었다면 전부 당달봉사라는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안경 덕에 시각장애가 있으면서도 스스로 장애인인줄 모르고 장애인이라는 생각없이 살고 있을 뿐이죠.

 

누구나 늙으면 장애인이 됩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잖아요.

 

옛날 말로 늙은 몸이 곧 병신이었고

늙은 몸이 곧 장애인의 몸이었습니다.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다.

 

내 미래가 장애인이다 라고 하는 것,

사실 알면서도 우리가 억지로 생각을 떨치려는 것 같긴 합니다.

 

최근에 일어났던 특수학교,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지역주민들과 교육청 사이의 갈등을 보면 아직도 장애인 차별이 없는 포용국가로 가기에는 좀 갈 길이 멀다 하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세계 보건 기구, WHO는 건강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

 

몸이 허약하지 않다거나 특별한 병이 없다거나 하는 이것이 건강이 아니라는 것이죠.

특히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완전한 상태라는 조항을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한,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것.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전우용의 픽,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