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정토회)

즉문즉설_법륜스님***제 4편 기도문이 안 맞는 것 같아요

Buddhastudy 2011. 7. 28. 17:20

  방송 보기: 정토TV

기도문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1년 전 가정이 힘들어서 수련회에 간게 인연이 되어 정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음의 결정을 하기 힘들 때 각해보살님 찾아뵙고 기도문을 받았는데 "남편을 이기지 않겠습니다."하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스님법문을 들으면서...후회 없는 삶을 살기위해서 노력을 하는 가운데 큰 결정을 내려 이혼을 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기도문이 지금 현재 저한테는 해당이 안되는 것 같아서 언제나 항상 제가 기도를 이렇게 해야 되는지, 다시 기도문을 다시 받아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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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이 됩니다. 지금도. 애들이 몇이에요? 없어요?
보살님의 성격은 혼자 사는 게 좋아요. 같이 살려면 져야지. 혼자 사는 게 좋다는 게 맞는 거요. 같이 살려면 져야 되요. 왜? 이기면 상대가 죽어. 그러니까 보살님의 업이 좋다,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니 처음부터 자기 업을 알아서 업대로 살든지. 즉 출가를 해 비구니가 되든지. 사회활동을 하든지 이랬으면 아마 그동안에 괴로움 안 겪고, 아주 자금도 관리하고, 똑똑하고, 잘나가는 여자가 됐었을 수도 있어요. 결혼해서 신세 조진 케이스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그게 결혼을 했으면 어떻게 되느냐? 숙여줘야 되. 자기 업을 모르니까. 똑똑한 것만 갖고 살기 때문에 이게 안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업이 좋고 나쁜 게 없어. 업이 그 인연을 따라서 맞는 거요. 부드러울 때는 부드러워져야 되고 강할 때는 강해져야 되는데. 부드러워질 때 강해지거나 강해질 때 부드러워지면 사고가 생기죠. 그러니까 본인이 지금도 그 업을 알아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예를 들면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요. 남편이 문제가 아닌 줄을 본인이 확실히 알아야, 내 문제인지를 알아야, 남편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이나 이런 게 없다는 거요. 내가 그걸 못 맞춰서 생긴 문제고, 내가 그 인연을 몰라서 저질러진 문제지. 그 사람이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란 말이오.

그 사람이 말 못할 어떤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이거요. 어떤 경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인연이라면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런 케이스도 있어요. 그리 안했다면 다행이고. 그건 그 사람이 이 세상 적으로 보면 아주 나쁜 사람이지만은 그 사람의 인연으로 볼 때는 살려고 치는 몸부림에 속한단 말이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 인연을 확실히 기도를 해서 ‘아~ 이런 인연이구나.’ 하는 걸 알면, ‘이런 업이구나.’ 하는 걸 알면 바로 남편에게 대한 원망이나 이런 게 다 없어져요.

이건 내가 잘못했다 하는 후회를 하라는 게 아니에요. ‘아~ 내가 이런 인연이구나.’ 내가 처음부터 내 꼬라지를 몰라서, 내 인연을 내가 몰라서, 내가 어리석어서, 쥐가 쥐약을 먹듯이 이렇게 내가 실수를 했구나. 그래 애꿎은 사람을 괜히 고생시켰구나.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미움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거야. 그런데 지금 이걸 기도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느냐? 이 인연을 확실히 모르면 피해의식에 지금 젖어있다.

피해의식이 젖어있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가지고 한 번 또 결혼하니 죽고, 한 번 결혼하니 못살 인연이 되고 이러냐? 이렇게 자기를 한탄하면 안 돼. 두 번에 고통을 통해서 ‘아~ 인생이 이런 거구나’ 이걸 깨쳐야 되. 그러면 이것자체가 다 좋은 일이 되는 거요. 그러면 남편에 대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이 자식들이 이 인연을 안 받는단 말이오. 이 미워하는 게 어떤 미워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을 한탄하는 것이 내 가슴속에 있으면 이 자식들에게 미움이나 한이 어때요? 업이 이미 벌써 내려가 있죠.

그러나 내가 지금이라도 풀면 이 아이들 속에 있는 게 많이 풀리게 되죠. 그래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됩니다. 남편이 살았느냐? 안 살았느냐? 죽었느냐? 뭐, 같이 지금 사느냐? 안 사느냐? 이런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거는 여러분들이 선택을 하시면 되요. 살기 싫으면 안 살아도 되고. 그러나 내 가슴속에 있는 이 근본 것은 풀어야 되는 거요. 그래서 기도는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이게 다 풀어지면 정말 내가 이 다시 말하면 젖으면 그러면 이제 기도는 그만 둬도 되겠죠.

그런데 그게, 맺힌 게 그게 쉽게 풀릴까? 없는 김에 기도를 좀 더 해봐야 되. 모든 사람이 다 없다 그래. 다 잊어버리고 원망도 안 한다 그래. 그런데 그거는 좀 더 해봐야 되. 그리고 그게 없으면 그런 게 정말 없으면 기도 그만해도 되겠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안 들어? 뭔가 잠재되서 남아 있으니까 나하고 안 맞다 자꾸 이런 생각이 들지. 정말 없으면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아~ 그분들이 참 잘 돼야 되겠다. 나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서 그 분들을 위하는 마음의 기도가 계속되기 때문에. 이 기도를 바꿔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안 들어요. 이 기도를 그만 해야 되겠다. 바꿔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이게 잠재 돼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좋은 질문 해 주셨어요. 이혼을 했다 그러면 어때요? 뭐 그런 얘기하는데 조심하고, 사람이 다 그러겠지만. 이런 수행할 때는 열 남자하고 살았다 해도 그런 거 중요한일이 아니야.

앙굴리마라는 99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해탈을 했잖아. 그죠? 우린 지금 해탈의 차원에서 논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거 뭐 인생에서 집안이 어떻고, 어떤 일이 벌어졌고, 강간을 당했고. 여러분들이 자기생각에 빠졌을 때는 입에 못 담을 얘기 같지만은 이 해탈을 논하는 자리에서는 그런 거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거 주저주저하면 공부하기 어려워요. 그런 걸 놔버려야 공부가 되지. 그냥 오직 자기의 의심이 있으면 의심만 가지고 있는 거지. 그게 무슨 얘기라도 해야 되.

이거 뭐 남편 욕할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이 누구를 욕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비판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이 고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자리란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위에서 듣는 사람도 아우~ 저 사람은 저랬나. 그런 생각 할 필요도 없고, 남이 또 그런 생각 할 꺼다. 이런 생각 할 필요도 없어. 또 그런 생각을 하면 그 하는 자기만 괴로운 거요.

내가 늘 얘기했잖아. 인도에 갔을 때 사람들이 화장실이 없으니까. 버스에서 내려서 버스 세워가지고 화장실 갔다 오세요. 오른쪽은 남자, 왼쪽은 여자, 500미터까지 갑니다. 사람 안 보일 때까지. 그러다 하루이틀사흘나흘 일주일지나면 그냥 차 옆에서 다 눠. 절로 가라 해도 안가. 차에 타고 있으면 바지 벗는 게 엉덩이가 다보여. 그래서 내가 올라오면 ‘아이고 멀리 가지도 않고 거기서 엉덩이 봤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요? ‘본 지만 괴롭지 뭐’. 명언이에요. 그야 말로 정말 명언이에요. 엉덩이 보여준 사람이야 누가 보는지를 모르니까 무슨 생각이 있겠어. 본 사람은 거 머릿속에 뭐가 자꾸 생각나지. 본 지만 괴롭지 뭐. 거 참 명언이란 말이오. 그러니 다 자기 문제란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