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0)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635회] 인권활동을 하는데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분별심이 납니다

Buddhastudy 2020. 9. 18. 20:34

 

 

인권 쪽 활동을 조금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을 살기 위한 사회를 위해 투쟁을 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돼요

동시에 불교 수행자의 마음으로써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같이하고

어떻게 옳고 그름을 버리고 나를 낮추는 보살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까 제가 저분들하고 얘기하다가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 칼이라고 하는 물건이 있을 때

이 칼은 좋은 도구도 아니고 나쁜 도구도 아니고

그냥 칼일 뿐이에요.

 

이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고

또는 흉기가 되기도 하는 거다.

 

자기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좋은데

딴 사람보고 그거 안 돕는다고 성질을 내고 분노를 하면

그건 이미 흉기와 같은 작용을 하고 있다.

 

내가 채식을 하는 건 좋은 일이야.

그런데 다른 사람 육식한다고 막 성질을 내, 나쁜 놈이라고.

그런 건 흉기다.

 

내가 검소하게 사는 건 좋은 일이야.

그런데 남이 검소하게 안 산다고 욕을 해.

그럼 그건 흉기야.

 

자긴 지금 어떤 사람들의 소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자기가 그걸 하는 건 좋은 일이야.

 

그러나 그거 딴 사람들 안 한다고 이해 못한다고

자기가 지금 화가 나고 성질이 난다고 그러면 그건 째보야.

자기 성질대로 하는 거지 그건 정의하고 아무 관계가 없어.

 

자기가 옳다고 그게 옳은 게 아니야.

그건 자신의 관점이지.

 

내가 기독교를 다니는 건 좋은 일이야.

하느님을 믿는 건 좋은 일인데

딴 사람은 교회 안 다닌다고 하나님 안 믿는다고 지옥 간다고 저주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내가 혼자 사는 건 좋은 일이야, 나한테.

그런데 남도 출가 안했다고 저거 나쁜 사람이다, 세속에 물들어서...

이렇게 욕을 하면 안 돼.

그러니까 그거는 진리도 아니고 부처님의 법도 아닌 거야.

 

내가 만약 북한 돕기를 한다. 이 말이오.

북한에 지금 식량 부족으로 해서 제재에 해당되는 기업들 광산촌이라든지

수출해서 먹고 사는 그런데는

모든 활동이 중지됐기 때문에

월급은 고사하고 식량공급도 안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내가 거기 식량공급하는 거는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이거야.

 

그런데 여기 사람들이 식량이 없다고 도와라한다고 여러분이 안 돕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에게 욕할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데

길거리 가서 내가 가난한 어린이를 도웁시다하고 모금통을 내고

사람들이 보시하는 건 좋은 일인데

보시 안하고 그냥 지나간다고

저 인간 아이스크림 처먹으면서 보시는 안하고 간다고..

이렇게 욕을 하면 안된다는 거요.

이건 그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는 모금통을 갖다 발로 차면, 특별한 일 아니면

저런 인간도 있구나하고 다시 책상을 바로 세우고 모금을 하면 되고

약간 그게 대한민국의 법을 어긴다.

대한민국의 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를 위협한다. 폭력을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

신고를 해야 되는 거요, 경찰한테...

그건 범죄이기 때문에.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수행자로서 소수자 인권을 보호할 수 있지.

자기는 지금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수행적 관점을 쓰니까

소수자가 뭐고 다 일을 안해야 되나?

소수자의 관점을 가지고 인권을 옹호하려니까 화가 나서 해야 되나?

이 사이에 어느 걸 맞춰야 되나?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오.

 

자기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 하라는 거야.

그러나 안 한다고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만 가지면 보디사트바로서 자기 마음의 평정도 유지하고 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일도 할 수 있지.

 

--

스님이 애기를 낳았으면 3년은 엄마가 키우면 좋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애기 키우면서 직장 다니는 입장에서는

스님이 남자니까 또 두 번째는 가정을 안 이루고 사니까 저따위 소리를 한다.”

이렇게 안티 세력이 있단 말이오, 법륜스님한테.

 

이 문제에 한에서.

그럼 스님이 말 안하면 돼. 욕 안 얻어먹으려면...

그런데 스님은 아기 엄마만 중요한 게 아니고 애기도 중요하다는 거요.

 

애기 엄마는 자기가 성인이니까 자기 요구에 목소리를 주장하지만

애기는 자기 목소리를 못 내잖아.

그러면 모든 애기는 누구로부터 보호받고 싶을까?

자기 엄마로부터 보호받고 싶을까? 이웃집 아줌마로부터 보호받고 싶을까?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요?

애기 입장에서 보면....

 

젊은 여자들이니까 대답을 안하네.

이건 인간의 심리라는 거요.

 

만약에 남편하고 헤어졌거나 남편이 죽었거나 해서

등에 업은 한 살짜리 애기하고 손잡고 걷는 3살짜리 애기가 있다 이 말이오.

그런데 둘 데리고 내가 장사도 할 수 없고, 구걸도 할 수가 없어.

둘은 다 내가 책임은 못 져.

그래서 한 애를 누구 아는 친척에게 맡겨야 되겠다.

그런데 나는 누구를 맡기면 더 좋을까?

젖먹이 어린애를 맡기는 게 좋겠죠. 그래야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누구도 젖먹이 어린애를 봐주려고 안 할 거 아니오.

똥오줌 가리는 3살짜리 애를 돌봐주려면 돌봐주려고 그러지.

그래서 언니 집이나 할머니 집이나 큰 집에나 3살짜리 큰 애는 맡기고

작은애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업고 다니면서 보따리 장사해서 먹고 살았다.

 

크면 할머니 집에서 이모네 가서 고모네 가서 먹고 사는 게 훨씬 나은 생활을 한 큰 애가 정신적으로 나중에 고통을 호소할까?

엄마하고 길거리에서 천막에 자면서 산 한 살짜리가 커서 상처를 입을까?

어느 쪽이오?

왜 큰애가 상처 입어? 큰 애는 조건이 훨씬 좋은데...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사는 조건이 좋은데...

 

이게 사람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엄마한테 나중에 커서 원망하면

엄마는 그래도 너는 괜찮았다. 네 동생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렇게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건 이해를 해.

애기 키우는 엄마가 힘드는 건 이해하니까 욕을 해도 스님이 변명은 안하잖아.

힘드는 거 아니까.

 

그러나 가능하면 애기를 키워줬으면 좋겠다. 3살까지는.

그때까지는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란 말이오.

4살부터는 학습이 가능한 시기니까 유치원에 보내면 된다는 거요.

 

그러면 그건 애기의 인권을 나는 옹호하는 사람이오.

자기는 누구를 옹호하고? 애기 가진 엄마 인권을 옹호하는 거고

나는 누구의 인권을 옹호하는 거다?

애기의 인권을 옹호하는 거다.

 

그러면 자기하고 나하고 누구 편에서 옹호하느냐의 차이밖에 없지

스님은 애기 가진 엄마들의 심정을 무시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다른 것도 다 그래.

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요.

내가 애기 가진 엄마의 어려움을 위해서 투쟁을 하는 건 해도 된다는 거요.

 

지금 스님이 욕 얻어 먹는 건 2가지에요.

하나는 애기 3살 때까지 키우라는 얘기. 이게 지금 제일 큰 저항세력이요.

 

다른 건 북한동포, 인도적 지원.

그런데 북한 정부 지배층은 자기 의사를 자기가 주장하나 안 하나? 하지.

미국하고도 맞짱뜰 정도로 주장을 하잖아.

한국의 정부도 자기 입장 말하지.

한국의 시민단체들 자기 입장 말하나? 안 하나? 하지.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자기 입장을 말 못하잖아.

누구도 대변하는 사람 없잖아.

그러니까 제가 대변하는 거요.

 

그래서 나는 딴 거보다도 북한 주민들의 심정을 좀 대변해서 인도적 지원을 얘기하는 거고

갓난아기들의 심정을 대변해서 3살까지만 좀 엄마가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는거요.

그런데 엄마가 죽었다. 그러면 내가 엄마보고 키우라고 그러겠어?

딴 사람이 대응을 해야 되겠지.

 

또 살아있어도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

그래서 저는 세계어린이를 돕잖아요.

 

부모인데도 자기 자식을 키울 수 없는 조건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학교도 못 보내는 사람들

그거는 우리가 대신 엄마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내 직장, 연봉, 이런 걸 생각해서

애기보다도 더 다른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면

그래서 애기를 두 번째 세 번째 가치로 생각한다면

그럼 애기를 안 낳아야 한다는 거요.

 

애기는 이 세상에서 엄마로부터

1번의 가치, 모든 것

엄마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시 여기는 그런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람이 되는 거요.

 

안 그러면 그냥 뭐... 지금도 얼마든지 인공자궁에서 키울 수도 있다. 이 말이오.

육체만 사람이지 사람이 되는 게 아니예요.

 

바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이 인간의 사랑의 정신적인 것을 받아야 되는 거요.

지금 여러분들이 막 ..하지만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안고 젖을 물고 자란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까?

젖병 쥐고 먹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까?

그러니까 지금 갈수록 정서적인 불안이 심화되는 거요.

그것만 이유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문제를 이해관계 측면에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정말 아이를 우리가 낳아서 키운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고

불안 없이 자랄 거냐, 그거는 기성 사회가 아이에 대해서 보호해야 되는.

이게 만생명의 원리 아니오.

 

닭은 힘이 작지만 병아리를 품고 있을 때는 사람한테도 저항하고 덤비는 거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런 보호본능, 이게 종을 온전시키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건 괜찮아.

남자에 비해서 여성의 권리가 피해받는 건 강력하게 주장을 해야 해.

그런데 이 문제는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기와 엄마의 문제에요.

아이와 어른의 문제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르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이 얘기하려는 본론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를 자기는 제기하지만

마치 나도 이렇게 북한 동포를 생각해서 배고픈 사람 생각해서 말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세상이 아무리 비난해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

그냥 해나가면 돼.

꾸준히...

 

스님은 뭐 20 몇 년째 하고 있잖아. 아무리 욕을 해도...

그것 때문에 그만 둔다 이런 거 없어.

배고픈 사람 있으면 도와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배가 고프냐 안 고프냐 이게 나한테 중요하지

미사일 쏘냐 안 쏘냐 이런 건 나한테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인도적인 문제에서는.

 

미사일 쏜다고 애가 배가 불러졌냐? 아니다.

애가 미사일 쏘았냐? 아니다.

그런데 왜 중단을 해?

 

그러니까 인권운동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인데

자기가 생각을 잘못하면 자기가 싸움닭이 돼.

저항을 하고 욕을 하고 이렇게.

그래서 자기 심성이 나중에 상처를 입게 돼.

 

항상 자비심을 가지되

자기가 소수의 인권을 위해서 장애든 소수자든

소수의 인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일이오.

대학생부터 그런 일을 하는 건 아주 좋은 일이오.

격려 박수 부탁드립니다.

 

--

어떻게 재미있었어요?

젊은 사람은 요새 우울한게 많은가 봐.

 

인생이라는 거는 항상 스님이 얘기하잖아.

한 마리 다람쥐처럼 토끼처럼 살아라.

다람쥐 토끼도 별문제 없이 잘 사는데

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힘들게 사냐.

 

그게 너무 사명감, 욕심, 이런 거에 찌들어서 그래.

좀 가볍게 살아야 돼.

 

아침에 눈 딱 뜨면 제일 가볍게 사는 방법,

, 오늘도 살았네!

안 죽고 살았다!

이건 굉장한 선물이야.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고

부처님께 감사드려야 해.

 

그래서 밥 먹었겠다, 뭐가 걱정이오?

배고픈 사람은 어떨까?

여러분들이 밥을 먹는데, 맛이 없다.

요새 밥맛이 없어. 이렇게 말해.

 

그런데 그 맛 없는 밥이라도 배고픈 사람은

그런 밥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겠지.

 

어제 그저께 우리 행복학교 하는데

주제를 이렇게 냈어.

 

남편이나 아내가 원수 같을 때, 원수, 웬수.

남편과 아내가 원수 같을 때가 언제냐 그러니까

어떤 분은 술 처먹고 왔을 때,

어떤 분은 밤에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뭐 온갖 얘기가 나왔어.

 

어떤 젊은 사람한테 물으니까

저는 아직 미혼입니다. 이랬어.

 

그래서 그 질문이 나한테 딱 왔어.

저도 미혼입니다. 이럴까?

저의 대답은 뭘까?

원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ㅎㅎㅎ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여러분들 법륜스님 좋아 보이지?

그래서 한번 바꿀까?

 

67 된 법륜스님이하고 25살 하고

나하고 바꾸자하면 금방 바꿔줄게.

우울증 걸린 저하고 바꿀까요?

바꾸자, 괜찮아요.

25살이란 그것만 갖고도 어때요?

그 어떤 지식과 지위와 돈보다도 그게 더 큰 재산이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얼마나 큰 재산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는 거요.

 

그러면 법륜스님처럼 저렇게 되려면 고생 꾀나 좀 해야 될까? 가만히 있어야 될까?

고생 꾀나 해야 되겠지.

어떤 젊은이가 물어요.

스님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생하면 된다.

해볼래?

아니오.

 

여러분들은 공짜로 먹으려는 거요.

이렇게 되려면 엄청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거 안 거치고

그냥 나도 법륜스님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걸 욕심이라고 그래.

 

여러분들이 지금 자기를 소중하게 여겨야 돼.

부모님이 나를 어릴 때 어떻게 했고, 어떻게... 했고 이런 얘기 하지 말고

그래도 낳아줬으니 내가 이 세상에 살잖아 그지?

그래도 키워줬으니 살잖아.

그래서 부모한테는 항상 뭐라고 해야 한다?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해.

이걸 긍정적 사고라고 그래.

이미 지나간 걸 가지고 뭐라고 해봐야 소용없어.

 

남자 친구가 떠났다.

그러면 내가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날 기회가 생겼나? 안 생겼나?

그래서 고맙나? 안 고맙나? 고맙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자리를 비켜주셔서.”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항상 자기 긍정이라고 그래.

항상 삶을 이렇게 가져야 해.

즐겁게 살겠습니다라고 해서 즐거워지는 게 아니라는 거야.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삶이 즐거워지나? 안 즐거워지나?

즐거워져.

 

나는 어릴 때 일찍 죽는다, 단명한다는 얘기를 듣고 살았어요.

40 넘으면서 내 인생은 굉장히 편해졌어요.

살 만큼 살았나? 안 살았나? 살았어.

이제 덤이야. 전부 다.

그래서 늘 웃으면서 살잖아.

늘 덤이야.

 

,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