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유나방송] 김재진 시인,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

Buddhastudy 2020. 11. 4. 19:41

 

 

둥근 우주같이 파꽃이 피고

살구나무 열매가 머리 위에 매달릴 때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나는

걸을 수 있는 동안 행복하다.

 

구두 아래 길들이 노래하며 밟히고

햇볕에 돌들이 빵처럼 구워질 때

 

새처럼 앉아 있는 후박꽃 바라보며

코끝을 만지는 향기는

비어 있기에 향기롭다.

 

배드민턴 치듯 가벼워지고 있는

산들의 저 연둣빛

 

기다릴 사람 없어도 나무는

늘 문밖에 서 있다.

 

길들을 사색하는 마음속의 작은 창문

창이 있기에 집들은 다 반짝거릴 수 있다.

 

아무것도 찌르지 못할 가시 하나 내보이며

찔레가 어느새 울타리를 넘어가고

울타리 밖은 곧 여름

 

마음의 경계 울타리 넘듯 넘어가며

걷고 있는 두 다리는

길 위에 있는 동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