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유나방송] 김재진 시인, 모란

Buddhastudy 2020. 11. 6. 19:17

 

 

모란

시 김재진

 

 

우리 만나던 밤은 모란이었다.

 

헤어지던 날은

바람이 섬의 모든 문을 흔들어 대고

자줏빛 심장마다 구멍을 뚫어 놓았다.

 

섬에서 피는 모란은 바람의 통곡이니

그것은 만날 수 없던 날의 타버린 심지 같다.

 

호랑이 눈 같은 불길 하나 가슴에 안고

한 생을 모란같이 살던 사람은

모란이 지면 따라서 진다.

 

바람의 유서 같은 상처를 남긴 채

모란이 질 때면 따라서 져라.

 

후두둑 지고 나면 섬의 오월은

밤을 지키는 맹수의 눈으로

등불 하나 없어도 환하게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