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25회 설일체지원 (40:22)

Buddhastudy 2012. 7. 22. 19:54

  방송 보기: 불교TV

 

그래서 뭐든지 미운 것도 가까운 데서, 원망한 것도 가까운 데서, 슬픈 것도 가까운 데서 다 인연이에요. 그래서 안 좋은 일이 생겼어도 그 인연은 지금 지나가고 있으니까, 내가 가난한 인연이 내게 지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을 지금 바꾸면 돼요. 뭐로 바꾸면 돼요? 입 바꾸면 돼요. 말이 이뻐져야 돼. 말이. 말이 따뜻해져야 도. 짜증 하는 말, 싫은 말, 쟁쟁쟁 하는 말투 있잖아요. 고치셔야 돼. 관상학에서 아주 안 좋은 상중에 하나에요. 그러면 뭐가 생기냐 하면 부처님의 뭐가 생겨요? 그죠? 佛智불지가 생겨요. 그거를 불지가 이게 중요한 말이 뭐냐 하면 내가 지금 좋은 말을 하고 있고, 감사한 말을 하는 사람은 부처님지혜가 생기는데, 이게 불성이거든요. 그 불성은 지금 살아있는 마음이 佛性불성이잖아요.

 

그러면 일체지가 나한테 가동하기 시작해요. 움직여지신다는 거에요. 어떻게 해요?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살펴주고, 나한테 공덕을 쌓게 할 수 있는 기회와 복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속으로 계속 그것이 옮겨가고 있어요. 그게 지라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마음의 원력을 여기다가 딱~ 하나 집어 넣어버렸어. 이게 뭐죠? 원이에요. 이게 48대원이지 않습니까? 48개의 원이잖아요. 그 중 하나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내가 말하는 데로 뭐가 생겨요? 일체지가 부처님의 불지가 내게 살아서 요게 불성이잖아요. 불성이 지금 내게 작용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한다고요? 내가 원하는 데로. 누누이 누누이 말씀을 드렸어요. 뭐라고요? 원하지 않는 일은 세상에 생기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어디선가 차갑고, 어디선가, 어디선가 싫은 생각, 미운 생각, 원망하는 생각, 불평하는 생각, 불만족의 세계를 더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자석처럼 그것이 끌려와가지고 제 인생 안 속에 딱 안방처럼 들어와서 앉아서 불행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딱~ 차지하고 앉아있는 거에요. 그걸 반야심경에서는 무명이라고 말해요. 그냥 깜깜하게 어두운 거에요. 그걸 바꾸려면은 뭐가 있어야 되요? 지혜가 있어야 되요. 불성의 부처님의 살아있는 부처님의 지혜가 내게 생길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이걸 바꾸는 것은 뭐라고요? 그죠? 너무나 너무나 쉽게 뭐로 바꿔요? 나의 말 한마디로 이렇게 변해져요. 말의 힘의 위력이 있어요.

 

자기 말은 자기 스스로 혼자서도 방에 앉아서도 뭐라고 중얼중얼하는 사람 있거든요. 혼자 말하는 사람은 중증이 좀 있어. 그런데도 혼자 표현하지 못한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할 말이 있거든 하셔야 돼. 가슴에 딱~ 두지 말고 하셔야 돼. 그게 안 되면 지장사 법당에 오셔가지고 부처님께 얘기해요. 안 말도 말 안 해요. 중얼중얼해도 뭐라고 안 해. 저기 저, . 우리 절에서 기도하고 이렇게 해보잖아요. 지장보살~ 지장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런 거 쭉~ 같이 하잖아요. 그러면 하다가 방언하듯이 저쪽 집의 방언하듯이 중얼중얼하면서 막 욕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자기가 해소가 돼가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불경 안에서 나온 게 뭐라고 표현했냐하면 高聲念佛十種功德고성연염불십종공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열 가지

 

 

크게 하셔야 돼. 혼잣소리를 한 번씩 지를 필요가 있어요. 울고 싶을 때 그냥 우셔야 돼.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시고. 그래서 여기 좀 보십시다. 그래서 사람한테는요, 이거는 제가 설명한 것이 아니고, 저 서구에서 이 사람한테는 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거를 요즘 말로 얘기하면은 수준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수. 이렇게 말해요. 요즘 말로 제가 아무리 찾아봐도 수준의 정도다. 요렇게 표현할 수가 있는데요. 그래서 이거를 대다수 그래프로 정리해놓은 것이 뭐냐 하면 여기가 1,000지수라고 말하면 우리가 사는 것이 100지수라고 표현해요.

 

그런데 이것이 불경이 좀 읽다가 공부해 보면은 모든 사람들이 성인남녀들이 거의 95% 또는 내지 뭐죠? 85%의 사람들이 200지수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에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수죠. 이때 지수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을 뭐라고 표현했느냐 하면 행복지수라고 말하기도 하고, 다시 말하면은 불행지수라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라고 표현하죠. 이거를 지수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95%85%. 물론 이게 통계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차이는 굉장히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200지수 안의 수준 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거에요.

 

그럼 여기서 300, 400, 500지수까지를 넘어서면은 불교식의 개념으로 뭐냐 하면 아라한. 이게 뭐죠? 깨달은 사람. 아라한. 이것을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이건 뭐냐 하면 깨달은 사람이다. 깨달음을 가진 성취를 가진 분이 500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1,000)여기는 어디냐 하면은 붓다의 세계에요. 부처님의 세계라는 거에요. 붓다. 그런데 대다수 이것을 불경이랑 제가 비교해서 좀 살펴보고 들여다보니까. 이게 뭐냐 그러면요. 50010으로 나누면 50인데, 50만 넘어서면 아라한의 경계가 넘어가요. 윤회에서 벗어나 버려요. 걱정근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온갖 삶에 대한 탐착과 집착으로부터 아집으로부터 벗어나게 돼 있어요. 이게 벗어나는 수준이 자기 스스로 높여야 되는데 이 수준이 높아가지 않고 계속 요 밑에서 맴돌다 맴돌다 맴돌다 가버려요.

 

평생 살다가 죽을 때는 다들 뭐죠? 큰 병원에 링거 주사 맞다가 아이고~ 아이고~ 가는 게 전부 전체에요. 그거 수준이라는 거에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내가 180지수밖에 없고. 또는 210이라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해도, 뭘 해야 돼요? 똑같은 지금 현실을 지금 가지고 있는 이 현실 그대로에서 들여다볼 때 어떻게 봐야 돼요. 행복하게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사람은 이 지수가 점점점점 높아져 갈 사람이고.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요 가족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먹고사는 거 이런 모든 것들이 불행하게 느끼고 있다라고 느낄 수 있는 조건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상태에서도 좋게 보면은 자기 수준이 자기가 성장해 가는 거고, 그렇지 않을 때는 스스로 불행을 끌어안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보고 우리는 아집이라고 표현해요.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95%의 모든 사람이 뭘 가지고 있다고요? 아집을 가지고 있어요. 아집은 뭐냐 그러면 나라고 하는 것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삼척 아시죠? 그죠? 삼척. 양양 밑에 저 그 삼척 말고. 그래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뭐죠?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 이거 어떻게 잘 아시네. 이런 거는 안 가르쳐도 바로 척척 아시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삼척 속에 들어앉아 있어. 언제에요? 자기 수준이 깜깜한 수준에 150, 180 밑으로 내려 가면은 150지수로 내려면은 사람이 가지는 금수에요. 왜 금수냐 그러면, 다 뭐죠? 다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전부 거의 본능 속에서 삶에 대한 것들에 대한 아무도 깨어나지 않고 사는 거에요.

 

좀 하여튼 몰라도 그냥 안다고 합니다. . 이걸 아집이라고 그래요. 집이 있는데 왜 이 집을 가지고 95%에서 200지수를 넘어가지 못한다는 거에요. 그러면 석가세존께서 밝힌 것은 뭐예요? 당신이 깨달음을 얻으시고 난 다음에 끊임없이 유행하시면서 맨발로 다니시면서 법문을 설하시고 이끄셨잖아요. 그죠? 만나는 사람마다. 저 노예와 가난한 사람, 불행한 사람, 병든 사람,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거든요. 그 만난 사람 다니면서 뭘 보셨냐하면. 그러면 석가세존께서 보는 세계는 뭐냐 하면 아무리 100지수나 150지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로 지수로 산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사람에게는, 생명에게는, 이게 제일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생명의 본질 속에는 이거를 뭐죠? 전부 天壽천수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거에요. 천수 말 들으셨죠?

 

천수라고 하는 말은 오래 산다는 뜻이죠. 이건 뭐죠? 이건 영원히 산다는 뜻입니다. 영원히. 영원한 생명 속에 산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에요. 이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거꾸로 얘기하면은 모든 부족하고 모든 모자라고 모든 힘든 상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도 붓다의 눈에는 이걸 살펴보시면은 거기에는 1,000지수의 생명만이 가득하다고 보신 거에요. 이게 불교를 수행하는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 때문에 하시는 거에요. 이렇게 부족하고 이렇게 모자라고, 이렇게 안타까운 삶을 사는데도 나한테 뭐가 있어요?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 거기 깃들어 있다라고하는 사실을 석가세존이 45년 동안 그의 길을 전체 설명하신 거에요. 요게 정리가 되셔야 됩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부처님 법을 제가 말씀드렸고 여러분들이 들었죠? 고거를 받아들여서 아까 설명 드렸죠? 신구의 삼업에 그것을 녹여 넣으시면 되요. 그러면은 보다 가까이 1,000지수. 다시 말하면 이 모양새 때문에, 이 생활 때문에 모든 것을 초월해서 또는 내면 안에 그대로 같이 공존하면서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거에요. 요게 우리 오늘 법문의 핵심이에요. 천수의 힘을 우리가 가지고 산다는 거에요. 영원불멸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라고 분명히 분명히 거듭거듭 설명해 주시는 것이 오늘 부처님의 예경의 말씀의 핵심이에요. 그러니까 자기를 볼 때 어떻게 봐야 되요?

 

지금의 수준이 낮아요. 나는 물질적 토대가 힘들어요. 먹고 사는 게 어려워요. 일하기 싫어요. 불행해요. 사랑이 없어요. 만족감이 없어요. 늘 이러는 사람들이 거의 많거든요. 그러니까 요 안에서 벌떡벌떡 하다가 가는 거에요. 절대 못 벗어나는 거에요. 벗어날 수가 없는 거에요. 오직 부처님 가르침만이 이 지수가 높아져요. 다시 말하면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는 거에요. 수준이. 여기 저 좀 보세요. 아는 척. 이렇게 하죠. 그죠. 다 아는 척하고 살아. 어떻게 아는 게 많은지 경로당에 가보면 모르는 할머니 하나 없고요. 전부 아는 척이에요. 아니 아는 게 어떻게 많은지. 우리보다 훨씬 많죠. 그래서 뭐죠? 없는 데 자꾸 있는 척 하다 보니까. 좋은 거 자꾸 들고 다녀야 되고. 그거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자기가 내세워질 수 있는 것은 그건 다 뭐라고요? 아집에 불과한 거에요. 들고 다녀봤자. 누누이 말씀을 드렸거든요. 텔레비전의 뉴스 같은데 보면 뭐죠? 가방 시원찮은 거 들고 다니면 창피해서 못 들고 다닌다는 거에요. 그거 다 있는 척 자랑하려고, 자랑하면 아무 소용없어요. 전 세계로 뒤져보면요. 명품 좋아하는 데는 일본하고 우리나라밖에 없어. 요즘 중국이 슬슬 닮아간 답니다. 세상이 잘난 척해. 잘난 척하는 것은 좋잖아요. 절대 재물에도 의존하지 마시고. 명예에도 의존하지 마세요. 또 뭐죠? 사랑에도 의존하지 마세요. 자식에게도 의존하지 마시고. 물론 나쁜 뜻의 얘기가 아닙니다. 많은 기대를 하면 할수록 그 기대가 무너질 때는 내가 힘들고 내가 억울해져서 못씁니다.

 

그러니까 혼자 자유로워하셔야 돼. 혼자 기쁨을 찾는 의식구조를 하나하나씩 좀 공부를 하셔야 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면서 생명의 본질이 자기에게 깃들어 있는 줄을 알아야 돼.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이게 자기 지수로 아무리 세어 봐도 그건 자기 지수죠. 절 좀 보셔야 돼. 아이고~ 내가 나이가 들었는데, 아이고 스님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 망신은 안 떨겠습니까? 이렇게 늘 말하거든요. 아니 저한테 칭찬하는 사람도 많지만, 또 시비를 분별하고 앉아서 없는 얘기도 만들어서 떠드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연연해 할 거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삶을 살다 보면서 잘한단 말 들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편안하게 사는 게 최곱니다. 칭찬 덜 받아도 괜찮아요.

 

그래도 편한 게 좋지. 며느리한테 대접 꼭 받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한 번씩 며느리랑 일전씩 딱~ 하면서 사는 게 인생사야. 안 하려고 하지 말고 하는 게 좋아. 그런데 적당히 해야지. 으음. 뿌리가 뽑힐 때까지 하는 게 요게 한국 사람들의 문제거든요. 그 정신 때문에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잘 사는 거에요. 뭔 얘기를 헌다. 지금. 수준이, 자기 수준이, 자기 지수. 자기 수준이 어디 있는지를 봐야 되는데. 자기 수준이 붓다의 수준으로 자기를 들여다보셔야 돼. 안될 때는 따라가야 되요. 안될 때는 뭐죠? 베껴야 돼. 그리고 하나하나씩 배워 가시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안에 본질적으로 생명의 본질이거든요. 원만 완전한. 우리들의 삶 속에.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원만하고 완전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성의 세계가 딱~ 자기한테 있어요.

 

이게 완벽하게 있는데, 이걸 다 사용하지를 못하고. 돈이 천만 원이 있는데 매일 500100원짜리만 사용하다가 끝나. 이게 얼마나 억울한 짓이야. 흡사 통장에 천만 원 넣어놓고 100200원 잊어버려서 그래. 잊어버려서. 자기의 본질 속에 깃들어 있는 위대함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시원찮고, 시원찮고, 모자란 자기 자신만을 채워서, 그런데 그것도 자기가 그걸 원하고 앉았다는 거에요. 고약하게 삶을 살아가는데 자기 스스로 그걸 원해서 만들어서 살아가는 걸 모르는 거에요. 이러니까 부처님이 얼마나 안타깝게 사람을 대했겠어요.

 

저처럼 이렇게 시원찮은 매주도 이게 눈에 뜨이는데. 거룩하신 붓다께서 살펴보시면 얼마나 연민으로 가지고 세상을 대하셨겠어요. 오늘 시간이 다 된 거 같으네. 늘상 와서 이렇게 정리해가지고 와서 한 번도 정리를 제대로 못 하고 가. 으음~ ~ ~ 다 같이 좀 따라 하도록 하겠습니다. 說一切智願설일체지원. 내가 말하는 것은 다 뭐죠? 일체가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한번요. 따라 하겠습니다. 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 꼭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말하는 데로. 그렇죠. 그죠. 으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