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말라는 말이 아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함은 있을 수 있다.
다만, 어느 한쪽을 좋아할지라도
싫어하는 쪽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비난 없이, 단순히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것뿐만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똑같은 비중으로 평등하게 유효하다.
좋아도 너무 심각하지 않게
싫어도 너무 심각하지 않게 하라.
이렇듯 비난 없이 선호할 때
그 깊은 곳에 자비심을 품게 된다.
무분별의 지혜는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비난 없이 자비심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무게감이나 심각성이 없다.
상대를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 마음 안에서 먼저 상대방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음속에서만 상대를 미워해도
상대는 깊은 차원에서 그 마음을 읽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미워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을 떠올리며 환한 미소를 보내거나
행복하라는 축원을 보내거나
상대방이 웃고 있는 이미지를 그린다면
상대방의 마음에도 곧장 전달된다.
전날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나왔는가?
화해하려면 퇴근길에 마음속으로 아내를 향해 미소를 띠고
감사와 사랑을 보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그려 보라.
내 마음이 먼저 화해할 때
상대도 그 화해를 받을 것이다.
내 안에 그리면 바깥세상에도 그려진다.
상대방을 통제하려 들지 말고
상대방이 그저 자기 자신답게 행동하기를 허용해 주라.
아내에게, 자식에게, 친구에게
내가 원하는 기대와 역할을 강요하지 말라.
그들이 저마다 자기다운 빛으로써 존재하도록 허용해 주라.
상대방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을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해 주라.
내가 먼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주고
내가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내가 먼저 받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상대에게 주라.
주는 대로 받게 될 것이니.
나는 나답게, 또 타인을 타인답게
저마다 자기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서로가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줄 때
참된 관계의 꽃이 핀다.
엄밀히 말해,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 심지어 내가 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는 타인이든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나도 타인도 공한 허공의 성품일진대
누가 누구를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직 좌절하지는 말라.
할 수 있는 아주 쉽고도 강력한 한 무위의 행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온전하고도 완전한
진리다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나를 비우고 활짝 열어 두는 것이다.
빛나는 변화가 ‘저절로’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나와 나를 지켜보는 자 사이에 드넓은 빈 공간을 만드는 순간
그 틈 속에서 사랑과 지혜와 힘의 에너지장이 형성된다.
그 힘의 장에서 변화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온전하게 피어난다.
내가 누구에게 베풀어 준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 따라가야 할 곳으로 갔을 뿐이다.
내가 누구에게 사기당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인연 따라가야 할 자리를 찾아갔을 뿐이다.
모든 것은 언제나 있어야 할 정확한 곳에
그렇게 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네 것’과 ‘내 것’을 분별하고
‘주고’ ‘받았다’고 생각함으로써 번뇌를 만들어 낸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없다.
바로 지금 있는 그곳이 그것의 그의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다.
분별만 없으면 세상은 언제나 고요하고도 완벽하게
늘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