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우리 공부한 거, 숙제 좀 해 보셨어요? 잠깐 한번 잊어버리셨을 거에요. 벌써. 그죠? 잠깐 한번 복습 간단히 하겠습니다. 이번 주 공부 들어가기 전에. 불교 공부 마음공부는 이 세 가지 방식으로 한다고 그랬어요. 어떤 교리든, 어떤 부처님 가르침이든 첫째가 뭐에요? inner mind. 네. 아주 좋습니다. 씩씩합니다. 두 번째요? inner mind 반대는 outer mind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불교 공부하면은 주로 내 내면만 살핀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은 내 내면을 가장 잘 살피게 되면 저절로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 혼자 일어나는 게 아니죠? 반드시 대상이 있어서 일어나고, 그러면 그 바깥경계에 대한,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마음이 일어나게 된 대상에 대한 것도 우리가 저절로 인식하게 되요.
그래서 그렇지만 우리가 먼저 그 사실을 먼저 이론적으로 먼저 알고 공부하면 더 좋겠죠. 그래서 불교공부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차원에서 해야 된다. 하나가 inner mind. 내면의 마음을 살피는 거고. 두 번째는 내 내면바깥에, 내 이웃, 상호관계를 살피는 거고, 그 대상, 대인 관계라고 했습니다.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나? 그 다음에는 eco/super-relationship이라고 그랬어요. 내 주변에 이웃 가족 또 친지, 친척, 친구관계만이 아니라. 그것이 이 자연, 우주 상황에 우리의 환경하고 요즘 환경문제도 심각한데 그 환경과 또 다른 사회에 속에서의 또 요즘처럼 글로벌 시대니까 세계 속에서의 그런 전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고 마음이 움직여지나.
이렇게 세 가지 수준에서 한마디로 굉장히 역동적으로 살펴봐야 된다. 마음이 그냥 평면적으로 이론적으로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가르침이나 그런 이치들이 내 내면에서 내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환경이나 전체생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이것이 작용하고 이루어지는가? 그 가르침들이 그렇게 사유하고 살펴봐야 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공부의 주교재는 뭐라고 그랬어요? 나 자신, 나의 마음이 주교재가 돼야 된다.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그냥 남의 마음, 부처님 마음, 아니면 뭐 일반적인 개념. 이렇게 공부해가지고는 마음공부에 큰 진전을 우리가 기대하거나.
또 공부해가지고 뭐 저 사람 절에 10년 다녔다는데, 아니 그렇게 기도 열심히 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든지, 아니면 관계 속에선 여전히 화내고 여전히 잘 오해하고 그런다면은 별로 공부하는 거에 대한 어떤 설득력이 없겠죠. 그러고 주변에서 부처님의 어떤 가르침이 잘 포교가 되지도 않고 긍정적으로 그런 어떤 마음을 일으키지를 못할 겁니다. 그 다음에 그렇게 하는데 이 가장 세 가지 관점에서 보는 게 뭐라고 그랬어요? 소통이라고 그랬습니다. 기억하세요? 나하고도 사실은 내가 친하거나 내 자신을 잘 알거나 내 내면에서도 그런 조화나 이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 마음이 내 뜻대로 잘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데. 그 소통을 가장. 우리가 그러면은 치유하는 불교읽기 했을 때는 그러면 소통을 장애하는 것들을 치유한다. 그럼 소통을 장애하는 게 뭐냐? 내 자신을 괴롭게 하고, 관계를 힘겹게 하고, 주변과의 전체관계에서 어떤 조화나 서로 위하고 서로 상생하는 그런 관계를 장애하는 것이 뭐라고 그랬어요? 여기 나와 있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생각, 나의 생각, 내 느낌, 내 감정, 내 기억, 내 행동들. 그런 것들 장애하는 나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또는 기억이나 행동들. 그런 것이 있으면 그것을 치유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런 소통을 장애하는 그런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기억 행동,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어디서 나오는 거냐? 그건 잘 알고 있죠? 삼독, 탐진치 삼독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너하고 나하고가 서로 상호보완적이고 상호 의존적으로 그리고 혼자서 못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혼자 사는 것처럼 내 중심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나, 너를 분리시켜서 아주 절대적이고 독립적이고 그리고 제 각각 사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죠. 그래서 요 두 가지가 가장 근본적으로 소통을 장애하는 탐진치하고. 나, 너를 따로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그 마음이 우리의 어떤 좋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서로 자비를 베푸는 그런 관계를 소통을 장애하는 근본원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고 또 영어로 하나, 그래도 도겐선사가 얘기한 것도 소개했었죠? 밑에 나옵니다. To study Buddhism is to study the self. 그러니까 불교를 그래서 불교를 공부하는 거는 자기에 대해서 자기를 공부하는 거다.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는 거에요. 자기를 공부하는 게 그럼 뭐냐 이거죠. 자기를 공부하는 게 뭐냐를 생각해 봐야 되요. 나를 공부하는 거는 나를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진짜는 나를 잊는 거다. 나를 잊는 거라는 게 뭐겠어요? 나나나나 하는 그 내 중심적인 그 나를 내세우고 싶어 하는 그런 나, 그런 나를 잊는 거에요. 그럼 나를 잊는 거는 뭐냐? 나를 잊을 때에 우리가 진짜로 내 주변과 모든 일체와 친숙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지난주 우리 공부한 핵심내용들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유식심리학에 대해서 공부할 텐데요. 여기서 보면 두 번째 장입니다. 책 가지고 계신 분 계세요? 없으면 그냥 하죠 뭐. 1장에 그 나오는 내용인데요. 유식 심리학이라는 게 뭔가에 대해서 오늘은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유식은,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들어보셨어요? 공부해보셨어요? 유식이 뭔가? 아~ 다 까먹었어요? 그러면은 유식하면 굉장히 어려운 거에요. 유식하면 불교 안에서 중간 사상과 함께 유식사상철학 해서 굉장히 어려운 거다. 일단 골이 아프다. 이렇게 많이들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유식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왜냐하면 유식을 우리는 교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치유적으로 볼 겁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가 대승철학 그러면 대승 불교, 대승 철학 하면은 대승 불교에서 두 가지 양대 철학을 중간, 유식, 이렇게 하는데 저는 아예 유식심리학이라고 붙였어요. 심리학이라고 했을 때는 모든 심리학은 서양심리학이든 동양 심리든 불교심리든, 심리학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론적인 거하고, 하나는 실습이에요. 그런데 이론은 불교심리뿐만 아니라 서양심리학, 서양심리치료도 모든 심리학은 요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추고 실습파트입니다. 이론이라고 하는 거는 뭐냐 하면은 우리가 불교심리에서 우리는 팔만대장경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뭐냐? (마음 心심)자다. 많이 들어보셨죠?
그러니까 이 불교심리학에서 이론부분은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대체 뭔가? 우리가 뭐 모를 때 뭐에요? 제일 먼저 뭔가 연구할 때 어떻게 연구하죠? 그것이 뭐로 구성되어 있나를 봅니다. 그러니까 분필도 이것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 그러면 맨 처음에 뭘 공부하겠어요? 접근할 때? 아~ 이것이 뭐로 구성되어 있나? 뭐로 만들어져 있나? 이걸 보시겠죠? 그러니까 당연히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마음이 뭐로 구성되어 있나? 이걸 봅니다. 그래서 이걸 마음의 구조. 뭐로 구성되어 있나? 구조로 보죠? 불교에서 대표적으로 뭐로 봤어요? 나. 아니 사대 있잖아. 사대. 지수화풍으로 구성 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마음이라고 해서 이 마음 불교 안에서 마음 하면 몸하고 분리시켜서 보지는 않습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라고 보고 같이 취급해서 얘기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마음의 구조가 뭐로 구성되어 있나? 이걸 봤으면 그 다음 뭐겠어요? 그 각각이 어떻게 작용하나? 그 다음에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구성 마음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구성을 보고 그 다음에 그 마음의 작용을 보고, 그리고 또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작용을 하면은 건강한 거고 어떻게 작용하면은 불건강한 건가? 이런걸 보고 또 방금 말씀 드렸듯이 이 마음이라는 것이 마음이 자기 홀로 작용되는 게 아니라 반드시 뭐에요? 우리는 몸 신체와 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항상 우리는 뭐에요? 정신-신체적 구조라고 그럽니다. 신체적-정신구조라 그래도 좋고. 그래서 항상 마음이 움직일 때 몸하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잘 조화롭게 아니면 제각각 기능하는가? 그래서 마음이 힘들어도 어때요? 몸이 아파지고 증상으로 나타나고 또 몸이 힘들거나 몸이 병들어도 결국은 마음에 영향이 미쳐서 나오죠. 그러니까 그런 정신과 마음과 어떤 신체 몸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이런 거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두 번째 실습파트에 가면 뭐를 하냐 하면 실습에 가면은 그러면 대체 건강한 마음, 우리가 기분 좋고 상쾌하고 유식에선 그걸 선심소라고 그래요. 선한 마음,
그러니까 건강한 마음. 건강한 마음, 영어로는 wholesome mind 라고 그럽니다. wholesome mind다. wholesome mind. 그러니까 건강한 마음은 뭐고? 불건강한 마음은 뭔가? 이걸 우리는 뭐에요? 근본번뇌니. 수번뇌니. 이런 어려운 말을 하는데 제가 가능하면 그런 어려운 말은 안 쓸 겁니다. 왜냐 하면은 그 어려운 말을 하면 여러분들이 혹시 이 가운데 영어공부해보신분들 아시겠지만 처음에 영어 공부할 때 관계대명사니 관계형용하사니 관계부사니 이런 거 외우느라고 정작 말이라는 건 뭐죠? 가장 근본이? 기본이? 대화에요. 맞아요. 의사소통 하는 거거든요. 엄마들은 그런 거 문법 하나도 몰라도 아이가 “엄마.” 하거나 “응”하고 울면 여러분 어때요? 아시죠? 배가 아픈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잠이 오는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똥을 싼 건지 다 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의사소통하는데 상대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상태인가를 전달하는 하나의 전달수단이지. 그 언어자체를 뭐 그렇게 복잡하게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 건 아니다. 그거는 뭐죠? 문법학자나 언어학자의 몫이고. 또 교학을 하게 되면 교학은 뭐에요? 교학자의 몫이고. 우리가 일반 우리 불자님들이나 우리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수행하는 데 하나의 필요한 어떤 수단이고 전달하는 이 전달도구지. 그 자체로 우리가 열심히 외우거나 공부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제가 가능하면은 어려운 용어는 쓰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마음은 뭐고. 불건강한 마음은 뭔가? 그리고 또 건강한 마음은 어떨 때 일어나고 불건강한 마음은 어떨 때 생겨나는가?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거 이론은 여기데 걸리죠. 그러면 우린 당연히 뭐에요? 건강한 마음을 원하죠? 건강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뭐에요? 행복하고 사랑하고 기쁘고 즐겁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감사하고. 불건강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괴롭고 원망이 일어나고 밉고 화나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게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이 불건강한 마음이 일어나고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유익한 그런 행복한 마음이 일어나는가? 그런 거에 대한 이야기. 이거 이론하고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내가 당연히 뭐에요? 행복한 마음을 내가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불행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고통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면 내가 이거를 건강한 마음으로 전환시킬 수 있겠나? 그런 거에 대한 겁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전환시키는데 생각으로 말로 전환한다고 해서 감정이 따라가는 건 아니죠. 내 몸이 따라가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또 어떨 땐 내 몸은 움직이지만 생각은 동의하지 않죠. 그렇게 될 때는 그런 부조화가 있을 때는 거기에는 반드시 불건강함이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조화가 잘 유기적으로 관계되어야 되죠. 그래서 실습은 바로 그것을 실습하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우리 경전들 가운데 많은 경전들은 어느 특정영역에 대해서 굉장히 세부적으로 잘 설명해두고 있지만 이 이론과 실습파트를 완벽하게 잘 골고루 잘 갖춘 건 그렇게 흔하지 않는데 불교식 안에서 경률론. 중에서 요 두 개를 아주 완벽하게 체계적으로 잘 갖추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세친 보살이 쓴 유식30송입니다.
그래서 전 유식 30송에 대한 말씀을 간단하게 드릴 거에요. 그 유식 30송이 이론적인 영역은 유식 30송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30개의 게송으로 아주 짧게 적어놓은 거에요. 그런데 그 30개 게송 안에 1송에서 25송까지는 요 이론, 이걸 바꾸어 얘기하면 교학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교학적인 부분에서 잘 설명을 해 뒀고요. 그 다음에 26송에서 30송 까지는 요거는 실습영역을 잘 설명해 놨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실질적으로 내가 실천수행을 실습이라면 실천수행이라는 얘기에요. 어떻게 하면 내가 실천수행을 해서 이렇게 건강하고 깨달은 마음, 부처님의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냐? 다시 말씀 드리면 1송에서 25송까지는 뭐에요?
중생의 마음. 괴로운 마음. 힘겨운 불건강한 마음이 도대체 왜 일어나며,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지를 잘 설명해 둔거고. 26송에서 30송까지는 그러면 내가 중생의 마음 괴로운 마음, 불건강한 마음으로 계속 살고 싶지는 않죠.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부처님의 마음, 깨달은 마음. 마음으로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전환할 수 있겠냐? 여기에 대한 전환의 단계를 다섯 단계로 아주 잘 성명해놨습니다. 그리고 그 5단계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수행을 통해서 그렇게 갈 수 있냐? 이런 걸 설명해놨는데. 혹시 제가 너무 열심히 말씀 드려서 이 수업이 유식 30송 수업으로 오해하실지 몰라요.
30송 수업은 아니고 치유하는 불교읽기 우리 앞으로 다음 주되면 사성제부터 시작할 텐데요. 그 전 과정에서 계속 적으로 이 유식 30송에 대해 30송의 기본적인 어떤 가르침. 그리고 기본적인 것들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에 대해서 일부러 한 주 이번 주를 할애해서 유식 30송이 뭔가를 조금은 알고 가셔야 되기 때문에 제가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앞에 부분은 중생의 마음, 괴로운 마음, 고통 하는 마음은 어떻게 발생하는 건가? 그거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괴로운 마음, 고통 하는 마음은 어떻게 일어나요? 예. 탐진치 삼독. 그리고 앞에 소통의 장애 주객이원성이에요. 그런데 제일 먼저 1송에 그렇게 설명해놨습니다.
아주 우리가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뭔가 어느 시점에 몰록 무지가 나왔어요. 무지의 기원입니다. 자~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우리가 다 부처님이라고 그러죠? 그러면 우리가 깨달은 마음, 지혜. 그러니까 우리가 본질적으로 지혜롭다는 거에 대해서는 다 우리는 평등해요. 똑같습니다. 똑같은 부처님 마음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마음 쓰는 건 엄청 다르죠? 달라요. 우리가 부처라는데 중생이 다 부처라는데 어찌 다르냐? 차이는 뭐냐? 무지에서 차이가 납니다. 아니 깨달음에 무슨 차이가 없어요. 물론 그 깨달음에도 단계가 있어요. 깨달음에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무지에요. 누가 더 무지가 두껍냐?
무지가 더 두껍냐? 얇냐의 문제요. 깨달음 자체는 뭐죠? 하나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지가 뭐죠? 구름으로 비유하잖아요. 깨달음이 태양을 가리고 있어. 구름이. 그런데 구름이 더 두껍거나 전혀 틈이 없으면 빛이 한 빛도 나올 수가 없겠죠? 완전히 캄캄한 거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약간 비췄다가 말았다가 하는 이런 사람이 있고. 또 구름이 엷어서 조금은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아야 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전혀 그런 얘긴 뭐에요? 우리가 부처다. 우리가 깨달음의 수준에서 우리가 차이가 없다. 원래 본래 깨달았다는 거기에는 차이가 없단 얘긴 뭐겠어요? 우린 본질적으로 굉장히 고귀한 존재고 굉장히 절대적으로 평등한 존재란 얘기에요.
그런데 구름이 얼마만큼 많이 가리어져 있냐? 무지의 차이가 얼마냐? 이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면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서는 뭐겠어요? 그 무지를 걷어내는 작업이다. 이렇게도 또 생각하셔도 되겠어요. 내 무지를 이 두꺼운 무지를 그거를 뭐라고 그래요? 업장. 업장 소멸이라고 그러기도 하는데. 업장을 가볍게 가볍게, 엷게 엷게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 구름을 걷어내는 작업이 치유의 작업이라고 이해 하셔도 별로 안 틀립니다. 그래서 여기 보시면 치유 해가지고 Healing해 놨죠. 영어로. 그런데 이게 사전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더라고요. [의학에서 손상된 조직이 본래의 기능의 기능을 회복하는 거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치유라는 말이 말 개념은 의학에서는 손상된 조직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거다 했는데. 제가 방금 말씀 드렸듯이 우리는 원래 불성은 손상되어 있지 않다. 이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손상되어 있지 않고 온전히 오롯이. 그걸 본각이라고도 하고 진여라고 하기도 하고, 불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거 자체는 전혀 손상되어있지 않다. 이거야. 요 차이를 이해하셔야 되요. 이거에 의해가지고 서양에서 말하는 심리치료하고 요즘 말하는 불교상담이나 불교치료하고는 근본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냅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인식하냐? 이해하냐의 따라서 인간에 대해서 인간관에 대한 차이가 되겠어요. 그래서 이 부분은 사실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래서 밑에 보세요. 제가 두꺼운 글씨로 적었죠?
[불교에서 치유는 무지에 의해서 가려지고, 오염된 우리의 본성, 불성의 기능을 회복하는 거다.]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오염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본래 깨달음이나 본래 자성 불성이 오염되어있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가려져있어서 오염되어있는 것으로 보이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그거를 걷어내기만 하면 된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제가 다리가 하나 부러졌어요. 아무리 대단한 의술로 그 다리를 뼈를 연결시키고 잇고 요즘 뭐 의술이 좋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어때요? 안 부러졌을 때하곤 좀 다르겠죠? 네. 그러니까 부러진 게 아니라는 거에요. 깨달음이 부러졌거나 불성이 손상된 게 아니고 가려져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가려진 무지를 걷어내는 작업이다. 마음 수행이 그렇다고 생각하셔도 좋고. 심리치료가 그렇다고 생각해도 좋고. 이 책 제목에서처럼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서도 그런 관점에서 부처님의 기본적인 교리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거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JackKornfield 잭콘필드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 사람이 지금 미국에서 임상심리학자 이면서 한번 보세요. 서양의 심리치료서인데요.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었냐 하면 자촐심리학 학회에서 2년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서양의 심리치료서는 불건강한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불건강한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치중한다.
그러니까 병을 이론 증상을. 우리가 만약에 불면증이다. 우울증이다. 그러면 우울증은 일주일에 한번 얼마큼 자주 불면을 호소하고 얼마나 자주 죽고 싶어지고 뭐 이런 거 있죠? 살고 싶지 않고. 뭐 이런 마음들. 그런 거 일은 일주일에 몇 번 일어나면 몇 번 이상 일어나면 우울증이다. 이렇게 진단한다는 거에요. 그런 뒤에 센포라는 전문 책이 있어요. 그런 책에 근거해가지고 병이나 증상을 진단하고 또 그런 진단. 어떻게 치료할건가? 이런 거에 대해서 병에다 초점을 많이 뒀는데. 우리 불교의 가르침은 건강한 심리상태에 포커스를 뒀다는 거에요. 사실 그렇죠. 경전 보면 우리 많이 읽는 금강경이라든지 화엄경이이라든지 깨달음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부처님 마음을 이야기하고 다 그렇게 건강한데다 사실은 굉장히 많은 할애를 하고 있어요.
깨달음이 뭐다 하는 거. 부처님 마음이 뭐다 하는 거요. 그래서 건강한 마음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 건강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성취할 수 있나? 이런 쪽에다가 많은 할애를 하고 있으니까. 서양심리학 치료하고 이 불교심리치료하고 상호 굉장히 보완적이다. 이 얘기죠. 그러니까 이 둘을 서로 보완적이니까 같이 통합하고 융합해서 공부하면 굉장히 좋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밑에 보세요. 불교심리학에서 유식 30송은 유일하게 불건강한 심리상태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지금 보셨죠? 1송에서 25송까지는 불건강한 마음을 어떻게 해서 발생하고 또 그것이 본질이 뭐고? 구조가 뭐고? 지금 다 적어놨네요.
건강 불건강 정신신체 유기체적 그런 모델에 대해서도 해 놨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송. 26송에서 30송까지는 어떻게 해서 불건강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치유하고 전환할 수 있나? 이런 모델에 대한 방법에 대한 것을 해놨다 이렇게 해 놨습니다. 예. 그러면 이 유식에서는 불건강한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냐? 기본틀은 이해하시면 좋겠어요. 8식의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대인관계를 하거나 뭔가 일상을 살면서 우리가 안다. 그죠? 내가 저거 안다. 경험한다를 어떻게 알아요? 눈으로 봤든지. 귀로 들었든지. 혀로 맛봤든지. 몸으로 감각으로 접촉해봤든지. 안이비설신이에요. 그죠?
그거로 우리는 안다고 해요. 경험한다고 하죠. 맛을 보기도하고 소리 듣기하고 너무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전5식하면 조금 어려워서 그렇죠. 우린 날마다 하는 겁니다. 그죠?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럼 의식은 뭐에요. 맛보거나. 따져보죠. 어떤 보살님이 요리 잘하는 음식 잘하는 보살님하고 한번 옛날에 미국에 있을 때 식당에 간 일이 있는데. 그 보살님은 음식을 즐기지를 못하더라. 왜냐하면 아이고 요건 고춧가루를 더 넣었네. 덜 넣었네. 한국 식당에 갔는데 요거는 뭐 넣으면 좋은데 안 좋은데. 그러느라고 그분은 음식을 온전히 체험을 못해. 경험을 못해요.
그러니까. 자~ 6식은 뭐 하는 거냐 하면 내가 그렇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했죠. 6식은 내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따지는 거야. 그래서 그걸 분별사식이다. 그런 말 많이 하죠. 분별하지 마라. 들어보셨어요? 예. 불교 공부하시면 아마 분별 안 좋다는 얘기 많이 들으셨을 거에요. 분별하지 마라. 그게 분별입니다. 내가 그냥 뭐에요? 그냥 식당에 왔으면 손님으로 왔으면 그냥 손님으로 그쪽에서 해준 걸 나는 마음껏 체험하면 되는데. 따진다 이거에요. 분별하는 거. 그 분별이라고 그래요. 6식입니다. 그렇게 분별식이라고 해요. 그래서. 의식입니다. 그 다음에 그러고 요렇게 분별하고 나면 왜 분별하지 마라 하겠어요? 분별하면 어떻게 되요? 감정이 나와요. 판단을 하죠. 이 집 잘한다. 못하네. 이렇게 좋은 감정 싫은 감정 내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안 좋다는 거에요. 거기에 무슨 소통이 있겠습니까? 소통이 없죠. 소통을 장애 하는 게 이 분별심. 그 다음에 말나식이라 그래서 제 7식은 뭐냐 하면 자아의식(말나식)이라 그럽니다. 자아의식. 영어로 에고라 그래도 괜찮아요. 셀프라고 그래도 되고. 예. 그러니까 이걸 7식을 말나식이 뭐냐 하면 자아의식이에요. 자아의식은 어떻게 발생 하냐 하면 내가 뭐든지 경험을 하게 되면 그냥 온전하게. 처음 경험하면 어때요? 아~ 참 뭐 좋다. 이렇게 그냥 경험으로 있다가 죄금 좋아하고 경험하다가 조금 더 지나면 반복해서 하면 어때요? 분별이 나오거든요. 그러면서 뭐가 나오냐 하면 거기 그때 뭐가 발생 하냐 하면 我아가 발생한다. ‘나’다 하는 게 발생한다. 그래서 자아의식이라고 하는 거에요. 이게 7식이 바로 ‘나’라고 하는 아만. 완전히 주범입니다.
그래서 이 자아의식은 4가지 상태로 작동을 해요. 뭐냐 하니까. 우리가 말하는 자만심. 비교하면 자만심 나오죠? “아~ 이거보다 내가 더 잘하는데.” “내가 음식 잘하는데.” 아니 먹으러 왔지 분석 판단하러 온 거 아니죠. 심사하러 온 거 아니었죠? 또 오해하지 마세요. 그분을 흉봤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요 자아의식 그게 주범이 누구냐? 7식이에요. 왜? 비교하면. 처음에. 아만심은 비교하는 데서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는 거에요. 요 안 적어놨네요. 4번뇌를. 아만심이고.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아만, 그다음 아애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거에요. 사랑은 나쁘지 않지만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사랑은 반드시 뭐에요? 상대 배려가 안 되니까. 자기 상대 존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까 반드시 소통을 장애하죠.
그 다음에 아애고요. 자기중심적인 사랑. 아만아견아애입니다. 그 다음 자기에 대한 견애가 있다. 뭐냐? 나는 무의식적으로 영원히 살 것처럼. 나는 절대적으로 다른 사람하고 의존적 관계라 아니라 독립적 존재로. 이렇게 이해하는 거에요. 그 다음 저장식(아뢰야식)이에요. 아뢰아식이에요. 경험하는 것은 뭐에요. 내 안에 축적되어요. 축적되어 있으면서 그것이 시시때때로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떠올라오죠. 떠 올라오면 일없이 좋아지거나 일없이 싫어지거나 온통 이런 반응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의 마음. 괴로운 마음은 바로 4가지 형태. 8식의 구조로 작동이 되는 거고. 그럼 부처님 마음은 어떠냐? 4가지 지혜로 작동이 됩니다. 네 가지 지혜로 작동되는데 그 밑에 보세요.
성소작지. 묘관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 어렵죠? 기억하실 필요 없어요. 눈귀코혀. 몸. 어떻게 작동 되요? 내 지금 7식에 내 자아의식을 빛나게 하거나 자아의식을 기분 좋게 하거나 드러내는 쪽으로 내 눈은 그걸 보려고 하고 그죠? 내 귀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 하고 그런 소리를 들으려고 그거 어긋나면 어때요? 화가 나죠. 기분 나빠져요. 그러고 내 코는 뭐에요? 그걸 냄새 맡고. 다 이 5가지 감각. 기관이 다 내 자아의식을 나를 빛나게 하고 내 아만심. 내 자아의식을 드러내는 쪽으로 작동을 해요. 그게 중생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나만 그러냐? 너도 그렇죠. 저도 그렇죠. 그러니까 서로 부딪치고 소통이 안 되는 거에요. 그런데 부처님 마음은 어떠냐?
깨달은 마음은 눈은 늘 보고 싶은걸 보거나 듣고 싶은걸 귀가 듣는 게 아니라. 그냥 보여 지는 것을 봅니다. 들여지는 것을 듣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는 왜곡하거나 오해하지 않죠.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걸 듣고 싶어 하고, 보고 싶은걸 보고 싶어 하고, 내가 원하는 걸 찾으려고 하고 그러니까 5가지 이 기관들이 하나의 7식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헛것이 보이기 시작 하고, 헛것이 들리기도 하고, 왜곡되고 오해하고 착각하고. 그러는 거에요. 그런데 깨달은 마음 부처님 마음으로 가는 건강한 마음은 보이면 보고, 들리면 듣고 그러지 뭐. 안 보이는 걸 억지로 보려고 하거나, 안 들리는 걸 억지로 들으려고 하거나, 들은걸 오해하거나, 마음대로 편집해서 듣거나, 그러지를 않는다는 거에요. 간단하죠. 그게 성소작지라는 거에요.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유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아~ 이 識식이라는 개념이에요. 이 식. (알 識식)자입니다. 그렇죠. 이 알 識식이 바로 智지혜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유식30송의 치료에요. 그리고 전부 부처님의 치유하는 불교읽기가 전교리들이 이런 쪽으로 갈 겁니다. 그러니까 이 알 識식은 뭐에요? 내가 아는 거죠. 어떻게 중생의 마음으로. 그렇게 오염되어서 아 는 거에요. 여기에 철저하게 뭐가 들어가 있어요? 자아의식이 들어가 있어요. 나를 빛나는 쪽으로. 그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이해하고 그렇게 듣고 싶어 하는데 智여기로 하면 있는 그대로 들리는 데로, 보이는 데로, 느껴지는 데로 생각하고. 이렇게 간다. 그러니까 이쪽으로 가면 여기는 자아의식이 7식이 없어졌고 다 소멸되고 8식 소멸되고 다 이것을 여기서 전환된다.
그래서 불교에 치료라고 하는 것은 수술해서 제거하고 없애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식을 가지고 전환해서 지혜로 옮겨가는 겁니다. 그래서 성소작지가 그렇죠? 앞에 분별식이라 그랬죠. 6식. 분별 안 하죠. 그리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냥 그때그때 보니까 분별식을 묘관찰지라 합니다. 묘하게 있는 것도 있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나중에 이거는 眞俗二諦진속이제 설명해야 되는데 뒤에 무상무아나 이런데 가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그 다음에 평등성지. 자아의식이 이 지혜 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부처님 마음에 가게 되면 자아의식이 없으니까 에고가 비었죠. 투사를 안 하죠. 예.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요? 그러면 절대 평등해서 그때 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중생이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딱 깨달으시고 보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시기를 망설이고 가르치기를 망설인 이유가 뭐에요? 깨달아서 딱 보니까 일체 만물이 다 부처더라. 이 말이에요. 모든 중생들이 다. 그런데 인도를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요즘 그래도 우린 절대 평등하다 그러면 이해가 가죠. 인도의 2500년 당시에 지금도 인도 어떻습니까? 얼마나 카스트제도가 아직 여전히 많이 남아있고, 남녀차별이 아직도 많이 있고 계급의 차이가 많이 있죠. 그런 데서 그때 부처님 당시에 아니 지금도 여자는 이번에 제가 얼마 전에 인도 성지순례 갔다 왔거든요. 현지인 얘기가 여전히 여자는 아직도 1:1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소유물, 제사목록에 들어가는데 여자도 성불한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남자들이 부처님 안 믿을 거에요. 아마.
또 그것도 말이지. 더 아주 하층 천민계급도 성불한다. 그것도 부처다 그러면 누가 믿겠어요? 부처님 아마 죽이려고 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수한 경전과 엄청난 그런 방편들이 많이 나오죠. 그래서 법화경에도 보면은 여성이 성불하지 않고 남자 몸 받고서 성불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 와가지고 지금 그대로, 문자 그대로 믿어가지고. 아니 그러면 또 내생에 내가 태어나서 남자 몸받아가지고 성불해야지. 이렇게 또 이해하는 사람 있어요. 그러면 그거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굉장히 오해하고 잘못 이해하는 거죠. 그야말로 문자에 집착하고 글 그대로 보는 게 됩니다. 그게 알음알이에요.
나중에 되면 제가 반복해서 설명해 드릴 거에요. 제가 이 부분은 굉장히 많이 해야. 충격을 받은 영역이라. 자~ 어쨌든 절대 평등하다는 걸 아셨다는 거에요. 왜? 자아의식이 안 들어가니까. 에고가 안 들어가니까. 있는 그대로 보니까 다 부처더라는 거죠. 그러니까 에고가 들어가고 자아의식이 들어갈 때 우리가 열등감이 나고 비교해서 분별해서 그렇게 해서 내가 우월감을 느끼고 열등감을 느끼는 거지. 이 자아의식이 딱 사라지고 나면 7식이 멈추고 나면 그렇더라. 그 다음 저장식은 이거는 저는 기억식이라고도 바꿔서 좀 쉬운 말로 하는데. 아~ 이거는 내가 경험한 것들이 다 경험이 뭐에요? 우리가 다음을 이해하는데 편리하게 쓰여 지기도 하지만 역으로 굉장히 먼저 오해하고 착각하는데 쓰여질 수도 있죠.
이 경험의 영역이 전혀 새로운 걸 이해하는데 전혀 뭐죠? 부정적인 영향을 안 미친다는 얘기에요. 그렇게 해서 이 지혜로 그래서 이거를 대원경지란 말을 해요. 크고 원만하고 맑은 거울이 돼서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거지. 내 경험을 근거로 해서 “저이가 저렇게 해서 말했을 거야.” “저 인간이 저렇게 해서 그럴 거야.” 나라면 어떻게? 이러지를 않는다. 우리 이전의 경험들이 내가 약간 슬픔경험이나 상처받은 경험 있으면 내 경험에 비추어서 상대를 그렇게 해석하거나 이해하거나 오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내 이전의 경험들이 현재를 경험하거나 이해하는데 전혀 그런 오염을 시키지 않는다. 더 쉬운 말로 뭐에요?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다는 거죠. 그야말로 그냥 있는 그대로, 그대로 인식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그 다음에 마지막에 이 수업의 끝인데요. 지금 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거. 안다는 것은 곧 경험한다는 얘기거든요.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그죠? 유식이라는 건데 이 유식이라는 게 영어로는 Mind-Only마인드온이라고도 합니다. Mind-Only 또는 Consciousness only. 혹시 또 Consciousness하면 이것이 영어로는 의식이라고 번역되니까 정신분석에서 얘기하는 의식 무의식으로 이해하실 수도 있는데 그런 뜻 아닙니다. 여기서는 그냥 식이라는 의식 무의식을 다 포함합니다. 자~ 이 오직 Only에요. 오직 안다. 이런 얘기에요. 그 우리가 굉장히 많이 들으셨을 거에요. 일체유심조. 그죠?
모든 것은 다 마음이 만든다. 했는데 이거와 관련된 얘기입니다. 唯오직 識식뿐이다. 오직 알뿐이다. 오직 알뿐이다가 뭐냐 하니까 우리는 어떻게 알았어요? 8식 구조로 알았죠? 전5식, 6식, 7식, 8식 이렇게 알았어요. 그렇게 알뿐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오직 그렇게 알뿐이라는게 뭔 얘기냐 하니까. 내가 아는 거 하고, 네가 아는 거 저희가 아는 거 다 다르다는 거에요. 우리가 아는 게 다 다르다는 얘기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이 부딪쳐요. 내가 아는 거가 반드시 상대도 그렇게 알 거라 생각하면 그건 굉장히 착각입니다. 굉장히 우리는 다르게 알아요. 같은 사건, 같은 물건, 같은걸 놓고도 엄청 다르게 압니다.
그러니까 왜 그 저기 한국에도 번역됐을 거에요.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화성에서 온 남자, 어디 금성에서 여자인가 뭐 국내 번역된 책도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남녀가 서로 다르게 안다는데 남녀만 다르게 아는 게 아니라. 여자끼리도 남자끼리도 우리는 다 생긴 게 다 다양하듯이 우린 다 다르게 압니다. 다르게 경험한다는 얘기에요. 그런데 다르게 경험하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전제를 하고 있냐 하면 나처럼 상대도 그렇게 알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같이 있었으니까. 같은 지금 공간에 있죠. 같은 시간대 2012년이죠? 어떤 사람은 1900년대 사상이나 사고. 어떤 사람은 저기 뭐 4차원 2050년대의 사고. 그것도 뭐죠? 경우마다 상황마다 굉장히 다른 시공간을 갖고 있어요. 왜?
제가 말씀 드렸죠?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몸하고 달라서 시간 공간의 조건을 제약을 안 받고 시간의 제약을 안 받는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지 멋대로 얼마든지 돌아다니고 저 과거 현재미래 마음 것 돌아다니고 상상하고 또 이 공간 저 공간 지금 여기 있으면서도 우리 집에 뭐 아니면, 저기 부산에 대구에 내 안방에 마음데로 들락날락 거린다 그랬죠. 여기 지금 여러분 지금 안방에 가보세요. 하면 가면 침대 있죠? 지금 화장대 보이죠? 네. 그게 다 보인다. 그런데 지금 몸은 그렇게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다르고 그렇게 서로가 찰나 찰나로 서로 경험한 게 왔다 갔다 다르기 때문에 그 찰나 찰나마다 쌓여지면서 우린 굉장히 다른 경험들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무의식의 전제가 같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아셔야 될 건 내가 뭔가 알았을 때 뭔가 주장하려고 할 때 내 감정이나 내 느낌이나 아니면 내 생각이나 내 기억이나 이런 걸 딱 가지고 뭔가 이게 관계 속에서 약간 갈등이 생긴다든지 약간 찝찝하다든지 뭔가 편하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내가 지금 뭔가 저 사람하고 나하고 다르게 아는 것이 지금 부딪치고 있는 거에요. 충돌하고 있는 찰나고 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서 굉장히 다르게 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은 그래서 유식 다음에 뭘 붙였냐 하면 무식무경이라 그랬어요.
내가 아는 그 대상 그 경계는 없다. 이 말이지. 내 혼자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다. 유식을 떠올리시면서 판단유보를 하셔야 되요. 그러니까 항상 여러분은 저거는 저렇다. 마침표. 저는 항상 유식을 말씀드릴 때는 마침표를 찍지 마라. 여지를 남겨라. 항상 나랑 오해가 찝찝하거나 뭔가 있을 때 그렇다라고 단정 짓지 마시고 마침표거든요. 단정을 짓는 건. 그러니까 마침표를 찍지 마시고 여지를 남겨라. 스페이스를 둬라. 이거야. 마음의 그 스페이스를 둬야지 바로 이 유식은 그걸 얘기해. 그래야 그래야만이 이 識식을 보면서 우리는 나중에 이 智지로 전환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고 여러분은 한 주일간 유식을 생각을 많이 하고 오세요. 왜냐하면 다음 시간엔 고통에 대한 걸 공부할 테니까. 고통이 대체 왜 일어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유식을 한주일동안 잘 사유하시면서 생각하시면서 한 주일 지내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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