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한 주일동안 잘 지내셨어요? 예. 지난주에 뭐 공부했어요? 우리가? 네. 좋습니다. 탐진치 삼독을 공부했는데 오늘은 오정심관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五停心觀오정심관 들어보셨어요? 아~ 그래요? 五停心觀오정심관 뭡니까? 아하~ 그래요. 예. 오정심관. 정_멈추다. 머무르다. 이런 정 자에요. 다섯 가지인데 어떤 게 있냐하면, 지난번에 삼독 공부했죠. 탐진치. 우리가 보통 깨닫지 못한 모든 중생들은 일반사람들은 이 기본적으로 약하게 또는 많게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이 3가지 독성에 중독되어있다. 중독된 상태에서 살아간다. 그랬어요. 이것이 삼독이다. 잘 아시죠?
가장 기본적인 게 업인데. 요기에 두 가지가 더 보태져요. 뭐가 있냐하면, 아만심. 그 마음인데 분별심. 우리 불교에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수행한다 했을 때 누구나 이 3가지 독성에 중독되어있고, 마음공부다. 또 불교 수행한다는 건 이 3가지 독성을 정화시키고 해독해 가는 과정이다. 그랬어요. 그런데 물론 그렇게 하는데. 또 그 외에도 굉장히 기본적으로 이거는 아주 기본적인 독성이고요. 이 독성에 의해서 2차적으로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뭐냐 하니까 아만심하고 분별심이에요. 그래서 이 오정심관이 뭐냐 하면는 우리가 보통 우리 몸이 너무 아프면 어때요? 심하게 아프면 보약이 효과가 없죠.
보약이 효과가 없으니까 뭐에요? 한의원 가면 치료제부터 먹어야지. 그래서 치료약부터 먹고, 또 우리가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마찬가지다. 마음 수행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는데, 만약에 너무 심하게 이런 독성에 중독되어 있다든지. 아니면 정도 이상으로 지나치게 이런 심리상태가 있으면 요거를 특별히 좀 다스려주고 치료를 해주고 가야된다는 거에요. 치료를 해주고 마음 수행을 해야지 만약에 그러지 않고 이것이 보통 보다 정도이상으로 너무 심한데도 불구하고 이 상태로 그냥 그대로 곧장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면서 시작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필시 부작용이 너무 심하게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수행을 10년, “아이고 저 사람 절에 10년 다니고 20년 다녔는데도 말짱 헛 거야. 보통사람보다 더 못해.” 이래. 왜 그러냐? 그거는 원래 업이 이런 게 좀 심한 상태인데, 이게 심해지니까 내가 수행을 마음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공부는 뭐죠? 기본적으로? 이것을 해독하는 과정이고 요걸 또 다른 말로 하며는 점점 자기를 내려놓는 과정인데 어떻게 해요? 내가 공부한다. 내가 금강경을 몇 번을 썼다. 내가 몇 독을 했다. 또 내가 사경을 얼마를 했다. 이런 공부도 했다. 저런 공부도 했다하면서 점점점점 아상이 더 강해진다. 그러니까 공부를 함으로써 내가 내려놔지고 결국은 내가 불교 공부를 통해서 내 가까운 이웃이라든지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요.
주변을 더 유익하게 더 효용하게 더 좋게 쓰여지는 게 아니라 더 내 상을 드러내고 나를 더 주장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거죠. 심하면 무시까지 하게 되고. 왜 그러냐? 애시당초에 출발할 때에 이런 부분들이 좀 평균보다 보통보다 무리하게 일이 많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등산을 한다 그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이미 다리한쪽이 부러졌는데 치료를 잘하고 가야지 그냥 막 출발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필시 가다가 중도에 병이 더 나죠. 그리고 충분하게 준비가 안 돼 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꼭 이게 심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어때요? 우리가 뭔 여행을 떠나려면은 옷도 단단히 입고 뭔가 먹을 것도 좀 챙기고 뭐 장비를 잘 들고 가야지 그냥 등산한다면서 예를 들어 뾰족구두를 신고,
아니면 그냥 물도 안 들고 갔다가는 중도에 필히 다치고 병이 들기 마련이죠. 마음공부도 마음수행도 이와 같다. 원리가 같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마음공부와 마음수행을 할 때는 반드시 요 5가지를 진단해 봐야 된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크고 작게 정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다 가지고 있어요. 깨닫지 못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개인에 따라서, 또 이전에 업에 따라서 어느 특정한 영역이 유난히 지금 두드러지면서 내가 현실을 사는데 인간관계를 하는데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영역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부분들이 뭔가? 한번 확인을 해 봐야 된다는 거지.
자~ 첫 번째 탐욕입니다. 탐욕이 유난히 심한 건지. 물론 다 골고루 있다고 그랬어요. 두 번째는 화가 유난히 내가 심한지. 또 유난히 어리석은지. 아니면 아만_아만이 아집이죠. 아만 아집이 내가 유난히 센지. 아니면 늘 분별해. 분별이 뭐에요? 마음이 굉장히 산란해져요. 다른 말로 하면 알음알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 배우거나 뭐 하나 알면 늘 아는 척하고 판단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이런 경우 있죠. 공부 한개 하면은 그냥 하면서 듣지를 않아요. 하나 알게 되면 꼭 그걸 기초를 해서 판단하고 평가하고 분석한다. 그런데 우리가 근본적으로 공부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판단하고 분석하려고 평가하려고 하는 거 아니죠. 그 공부를 통해서 나 잣니을 포함해서 가족, 환경, 내 주변을 더 유익하게 하도록. 더 효과 있게 쓰여지도록 하는 것이 공부지. 판단하려고 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된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과연 내가 어떤 특성을 더 많이 갖고 있어서 일상을 인간관계, 대인관계하고 살아가는데 좀 심하게 장애가 일어나나. 마찰이 심해지나. 갈등이 심한가? 살펴보자. 거기에 따라서 애시당치에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처방을 달리 내리고 있어요. 처방을 다르게 내리는데 탐욕 같은 경우는 전형적으로 보통 부정관을 해요. 부정관하면 요즘은 이런 거 안 하죠. 백골관. 이런 거 들어보셨죠? 대표적으로 백골관 같은 거, 해골을 놓고 이렇게 명상을. 지금도 남방에 이런 게 가면 어떤 수행처 입구에다가 해골 이렇게 걸어놓고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탐욕이라고 하는 우린 보통 뭐죠? 식욕, 숙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요. 이런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그것이 누구나가 다 있지만 누구나가 원하지만 정도 이상으로 많은 겁니다.
지난주에 뭐라고 그랬어요? 탐욕이 필요하지 않는데 필요한 만큼 보다 더 많이 원하는 거. 그게 탐욕이라 했어요. 자아초월 심리학자 중에 스타니스라프 그로프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뭐라고 그랬냐하면 “당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그거는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수 없다.” 내가 굉장히 목이 말라. 그러면 물을 얻으면 어때요? 목이 너무 마르고 갈증이 나니까 물을 마셔버리면 굉장히 충족되죠. 시원하게 만족이 되요. 그러면 이게 마음이 쉬어지는 데 목도 마로지 않는데 계속 물을 원하면 어때요? 축적만 하겠지. 마실 수는 없고. 왜? 그러면 축정만 하니까 어때요? 내 마음은 시원해지거나 갈증이 내려놓지 않아지죠? 돈도 마찬가지에요.
만약에 내가 정말로 돈이 필요한데 그 필요한 돈이 생기면 어때요? 너무 감사하고 너무 유용하게 쓰지만 필요이상으로 많게 되면 어때요? 만족은 안 돼. 그러면서 끊임없이 축적하죠. 그런데 아무리 축적을 해봤자 그거로 인해서 진정한 의미의 충족은 일어나지 않는다. 탐욕은 그런 거에요. 내가 실질적으로 정말로 필요한 것 이상으로 너무 많이많이 끊임없이 원할 때. 그럴 때는 부정관을 하라 그랬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이게 또 부정관이 어떤 경우 좀 필요하긴 해요. 그래서 뭐? 그런 거 기본적으론 육신이 있어서 또 탐욕을 일으키는 거니까. 뭐 어떤 옛날에 표현할 때 무슨 우리 육신을 피고름에 주머니다. 또 예쁜 사람들보면 예쁘지만 사실은 그 안에 똥 오줌 들고 해골바가지 연상하고 그런데.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내가 또 기본적으로 성욕구가 많다 이러면, 사실은 내가 탐하는 건데 상대가 나한테 꼬리친다. 이렇게 좀 역으로 그런 투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것이 아주 심한경우에는 물론 조금은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까닭 잘못하면 부작용도 있고 요즘처럼 이제 긍정심리학, 긍정적인 마인드를 많이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때에는 요거보다 저는 대안으로 심할 때는 부정관을 해야 되죠. 그런데 그거보다는 좀 무상 같은 거 있죠. 내가 무상하다는 거에요. 아무리 탐해봤자 한생 잠깐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무튼 탐욕이 심한경우는 부정관을 하라고 그랬고요. 화가 많은 경우는 자비관을 하라 그랬어요. 그다음에 어리석음은 뭐에 대한 어리석음이냐. 인과법을 모른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연기법을 몰라요. 인연법을. 그래서 여기 어리석은 사람들은 인과법에 대해서 인연법에 대해서 관을 해라. 그래서 인연관을 하라고 그랬어요. 또 아만이 심한 사람, 유난히 또 아집이 심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 대한 집착이라 그랬어요. 아집은. 그리고 아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늘 비교해서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는 거지. 그러니까 아만, 아집이 심한 사람은 뭐를 하라고 그랬냐 하면은 계분별관이다. 계분별관이 뭐냐? 여러분 말씀드리면 금방 아실 거에요.
4대. 아만심은 내 프라이드 아니에요. 비교애서 우월하다. 내가 정말 또 열등감 느끼고 이런 건데, 우리가 기본적으로 뭐로 구성되어 있냐? 4대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다. 자기 자신. 또 오온입니다. 색수상행식 하는. 오온이 색수상행식인데 방금 좀 전에 반야심경 하셨죠? 그러다가 뭐에요? 관자재보살께서 시조견 비추어봤어요. 오온개공. 오온이 공함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뭐 하셨어요? 도일체고액. 도일체고액. 건넜어요. 뭘? 일체의 고통을 건넜다. 그러니까 오온이 결국은 뭐에요? 공한 줄 알면 일체의 고통을 겪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많은 고통 중에서는 내가 비교하고 아만 열등감을 내거나 우월감을 내거나 이렇게 해서 많은 고통이 일어나는 것들이 많이 있죠?
내가 무시당했다. 내가 어떻게 인정 받냐? 못 받냐? 사랑 받냐? 못 받냐? 그래서 이 부분을 하게 되면 결국은 그런 고통에 괴로움에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또 오온도 있고 12처, 18계 이런 게 있어요. 일일이 다 하기는 어렵지만 나중에 따로 시간이 가능하다면 요건 또 설명을 해드리기로 하고요. 그다음에 아만이 심한 경우는 이런 공부를 해야 되고. 또 분별심. 분별심은 굉장히 산만하다고 그랬어요. 자기가 공부한거, 자기가 아는 거 있으면 계속 그거로 분석하고 따지고 우리가 분석하고 따지고 기본 추리하는 건 뭐에요? 결국 우리가 공부를 할 때 태도가 뭐죠? 우리가 공부할 때 기본적으로 뭐하라 그랬어요? 문사수. 들어보셨어요? 문사수.
문_(들을 문).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요. 사_들은 내용을 사유해야지. 사색해야 된다. 그러니까 어떤 분은 들은 것도 별로 없는데 사색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럼 망상밖에 더 되겠어요? 1차적으로는 경을 보고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해야 되요. 사유할 건더지가 일단 있어야지. 그런데 별 건덕지도 없이 사유하게 되면은 번뇌 망상으로 가요. 일단 들었어요. 그러면 듣고 나서 그다음에 그 들은걸 가지고 내~~~ 분석하고 판단하고 그래서 오히려 분별심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잘못 가는 거죠. 공부를. 자~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때요? 들은 것이 사유를 해야지. 아~ 내 자신하고 비추어보고 일상의 삶에서 그러한가? 어떠한가? 이렇게 사유를 해야 되고. 사유로 또 끝나면 안되죠?
사유한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는 뜻이에요. 이해해서 그다음에 뭐하겠어요? 수_닦아야지. 닦을 수. 닦아요. 실제로 닦는다는 건 뭐에요? 실천한단 얘기지. 그렇게 해서 이것이 내재화 되면서 내가 이렇게 좋은 법문을 부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잘 사유해서 그 말씀에 대해서 충분히 사유하고 생각하고 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그 참뜻을 이해해서 그것을 뭐에요? 인간관계에서 현실 삶에서 실행을 해서, 그렇게 할 때는 내가 법문을 듣고 마음공부를 하고 수행을 한만큼 내 주변과 내 자신이 성장하고 유익해지고, 좋은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런 성장하는 관계가 되는데. 분별심으로 가는 수가 많다.
이거 어떤 분이 서양의 제가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상당히 중간, 용수보살의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하는 학자가 하나 있어요. 그분이 이런 특별히 제가 보기에 이런 사람이 거 같데? 특히 중간 같은 거 그렇지 않아요? 이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여러분이 이런 말 들어보세요. informationtertainment가 뭐냐하니까. infor는 infortmation정보라는 뜻입니다. 정보라는 뜻이고 정보+ Etertainment. 판서가 좀 어지럽네. 그냥 들으세요. Etertainment라는 거는 우리 보통 말해 엔터테인먼트. 오락. 놀이에요. 놀이. 그러니까 정보를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을 마치 정보처럼 그냥 뭐~ 듣고 공부하고 삼법인은 뭐다. 사정제는 뭐다. 나 다안다. 그냥 듣고 외우고 해가지고 infortainment을 만들어버려.
어마어마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느 한 개도 교학적 지식적으로 나온 게 아니거든요. 이론적으로 먼저 나온 게 아니잖아요. 부처님께서 출가하셔가지고 직접 다 수많은 과정을 고행하시고 또 나중엔 중도 수행을 하시고 다 거쳐서 실질적으로 체험해서 경험해서 나온 것을 잘 체계화시키고 요약해서 설명하는 거니까. 우리가 그걸 배우면 어때요? 이론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실제로 내 삶을 통해서 관계 속에서 그것이 확인되고 이해되고. 깨달아가야 되는데. 그냥 내 신구의 삼업에 깊이깊이 스며드는 게 아니라 그냥 하나의 정보가 된 거에요. 그렇다. 사실 육바라밀 보시지계인욕 이렇게 하면 보시도 하지도 않아요. 지계를 절도를 지키지도 않아요. 인욕을 하지도 않아. 그러나 다 안다.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그거 내가 육바라밀 안다. 삼독도 마찬가지에요. 삼독은 뭐에요? 탐지치다. 그럼 다 아는 거죠. 팔정도. 이런 식이 되면 그것은 부처님의 법이 아니고 뭐라고요? infortmation이 됩니다. 정보. 정보는 무수히 깔렸잖아요. 요즘 인터넷. TV보면. 그다음 Etertainment. 그걸 즐기는 거지. 내 이거 안다. 이거 안다. 나 이거 공부했다. 그러면서 계속 뭐에요? 증상만. 만만 점점 증가되어 진다. 불교공부를 까닭 잘못하면 그래된다. 그런데 애시당초에 그럴 가능성을 미리 뭐에요? 사전에 카바하는 게 뭐냐 하니까 오정심관이에요. 미리 진단하는 거에요. 아~ 내가 까닭 공부 잘못하면 그건 이미 우리는 세세생생 쌓아온 수많은 이전의 업이 있다는 거죠. 우리 개인적 특성.
그러니까 그 개인적인 윤환이 나는 평소 관계에서 보면 화를 유난히 잘 내는 건지, 나한테 화가 유난히 많은지. 아니면 내가 좀 탐욕심이 유난히 많은지. 아니면 내가 좀 어리석은지. 어리석은 것도 좀 문제가 사실 많이 되요. 어리석은 건지. 아니면 내가 유난히 아만심이 많아서 내 비교해서 우월감을 내고 질투심을 내고 이러는 건지. 그죠? 그렇게 일상 속에서 친구만나면 그냥 만나는데. 꼭 무슨 상표 입었나? 얼마짜리 입었나? 얼마짜리 백을 들었나? 얼마짜리 구드를 신었나? 차가 네가 좋나? 내가 좋나? 뭐~ 이렇게 아주 미세하게 만나는데 목적 차 비교하러 간 거 아니잖아요. 옷 비교하러 간 거 아닌데. 유난히 그런데 민감하다. 뭐? 반지를 뭐 끼었나? 등등.
그러면 이걸 조금 의심해 봐야 되죠. 가짜인가? 진짜인가? 분별심. 수업을 듣거나 강의를 들으면 앉아가지고 잘한다. 못한다. 이것이 정말 나에게 문사수를 하라고 그랬죠? 이런 과정을 안 하고 그러는 거는 이렇다면은 뭐에요? 이분은? 공부할수록 심각해지는 거죠. 그래서 이 부분을 뭐죠? 이게 미리 닦아야 된다 이거에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데 잘 보세요. 부정관 자비관 하는데. 분별심은 뭘 하라 그랬냐하면 이게 수식관을 해야 되요. 수식관 아시죠? 하나부터 10까지 또는 100까지 앉아서 호흡을 고르면서 하나, 둘, 이렇게 해서 주우욱~ 뭐에요? 10까지 세서 100까지 해서 99 98 97..
아주 오래된 얘긴데 보스턴에서 명상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그 하버드 하면은 세계적으로 똑똑한 학생들이 다 뭐했다고 우리가 알고 있죠? 그 하버드 생을 한 그룹으로 모아놓고 그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는데, 수식관을 시켰어요. 그래서 수식관 시키니까 보스톤 글로브에 난겁니다. 신문에. 하버드 생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나름대로 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였는데 너무 시시하잖아. 1에서 10까지 100까지 세고 다시 99. 너무 쉬운 숙제라고 생각하고 다 앉아서 셌는데 도중에 뭐에요? 끝가지 잘 세는 사람이 없더라는 거에요. 그 쉬운 걸 못하더라. 수식관을. 왜? 항상 우리가 공부하는데 다르잖아요. 과제가.
아이고 너무 쉽지 않아요. 앉아 가만히 편안하게 앉아서 허리세우고 눈감고 하나, 둘, 셋, 숨을 들이쉴 때마다 하나, 내쉴 때마다 둘 하든지. 이렇게 가르쳤는데 아무도 끝까지 잘 못 세더라는 거에요. 중간에 틀리더라는 거에요. 참 특이하다. 놀랍다. 하는 발견을 해서 신문에 난 일이 있어요. 그런데 이 수식관 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처음 들어갈 때에 까닭 잘못하면 화가 많은 사람이 계분별관을 한다든지 수식관을 한다든지 화가 많은 사람이 수식관하면 어때요? 제가 이렇게 지도해 볼 때 수식관 하니까 열이 터져하더라고. 못 견뎌요. 그러니까 뭐에요? 화를 좀 이렇게 뽑아내야지. 그게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또 그런데 우리가 보통 뭐냐 하면 이게 분별심이 심한 사람이 수식관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따지기 좋아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따지지 말고 앉아서 수를 세라는 걸 할 수 있어요? 너무 쉬워서 안 해요. 분별심이 심한 사람은 뭐를 좋아하냐? 인과법. 인연법이 좀 복잡하지 않아요. 이런 걸 하는 걸 좋아해. 또 계분별관은 4대 오온. 사대 지수화풍 끝나니까 안 되지만 오온 12처 18계로 가면 조금 복잡하죠. 그러니까 이런 걸 좋아해요. 또 어리석음. 생각하는 거 골치가 아파요. 문제의식이 별로 없어. 이런 사람은 뭐 좋아하겠어요? 가만히 앉아서 아무생각 안 해도 돼. 그냥 단전에 힘주고 숨만 잘 쉬고 있으면 되니까. 이게 편하더라 이거에요.
그러면 뭐에요? 수행을 했는데 과연 효과가 많냐? 이거지. 효과적으로 그렇지 않다. 실질적으로 자비관, 자애명상, 자애명상하고 보통 metapractices 라고 그러는데 요거 두 가지에요. 자비관할 때 이 자아 같은 경우는 metapractices 해갖고 그야말로 자애로움. lovingkindness 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하는 거죠. 그러면은, 신구의 할 때 뭐에요? 신하고 구까진 되는데 의까지는 안 돼. 그런데 자비관까지 들어가면 lovingkindness compassion되요. 그러니까 비라고 하는 건 연민심이니까 연민심을 낸다는 건 동정심하고 다르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삶이나 인생에 대한 어떤 그런 인연법. 그런 거에 까지를 조금 알아야 온전하게 이 자비관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무량심이 가능해. 慈悲喜捨자비희사. 까지 가능해요. 그래서 이쪽에 아주 원조다 싶이한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Sharon Salzberg라고. 그래서 이 자비관, 慈悲喜捨자비희사. 자비관만 하는데 하루 종일 가가지고 우리 보스톤 절 근처에 있어요. 그래서 제가 8박9일짜리를 두 번을 했어. 이 분한테 가서 같이 하는데. 자비관할 때 하다보면 의외로 자기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한테 자비를 보내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의외로. 그러니까 우리는 굉장히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으로. 그냥 내가 사랑한다. 이거야. 또 부모가 자식을 당연히 사랑하지 가족이니까 당연히 사랑하지 할 거 같지만 자비관을 해보면 그렇지가 않는 거에요.
의외로 8박9일 하는 동안에 한국에서도 조금 해보면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거나 따뜻한 말로 하는데 낯간지러워하고 의외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만, 내가 내 자식을 남편을 아내를 가족을 친구를 부모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사랑한다는 요것만으로 충분치가 않다. 뭐에요? 그 상대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가야지. 일방적으로 난 너를 위하니까. 그런데 정작 그 대상은 사랑받는다는 그런 느낌이 안 일어난다. 그러면 뭐? 안 되는 거에요. 일방적인 게 아니에요. 양방적이어야지. 그래서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아무 심리치료에 아주 유명한 대가죠.
프로이트가 창시자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죠. 심리치료에서는 정말로 뺄 수 없는 사람인데. 프로이트 제자가 하루는 프로이트한테 물었어요. “언제 심리 치료가 일어 나냐?” 치유가 언제 일어나느냐고 물었을 때 “치료자가 내담자를 진실로 사랑하고” 진실로 해요. 부모가 자식을 진실로 사랑하고, 그다음에 “내담자가 이 치료자가 진실로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때, 그때 치유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부부간에도 마찬가지고 부모자식 간에도 마찬가지고 모든 관계에서 마찬가지에요. 자기 혼자 뭐 내가 그게 아니고 난 사랑했는데 억울하다. 내가 그렇게 위해줬는데 뭐냐? 뭐? 배신감 느끼고 이게 다 소용없는 일이에요. 처음부터. 뭐죠?
내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위해줬어요. 사랑했어. 배려했어. 존중했어. 거기서 끝나면 소용이 없는 거에요. 상대도 정말로 내가 의도한대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지. 그렇게 체험하는지. 존중받았다고 그렇게 느끼고 체험하는지. 거기까지 가야. 그럴 때 거기에서 우리가 굉장히 성장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좋은 에너지가 서로 상승작용 하는 거지. 나 혼자 내 마음으로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 된다. 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저한테. 사랑하고 자비 차이가 뭐냐? 사랑하고 자비의 차이가 뭐냐?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사랑은 뭐에요?
내 마음으로 그냥 가능한거야. 내 혼자 사랑해도 짝사랑 있잖아요. 이게 착각이다. 사랑이. 사랑이 일방적인 것도 가능한데 자비는 뭐냐 하면요, 이것도 일방적으로 낼 수 있는 거죠. 한쪽에. 그렇지만 달라요. 이 사랑은 자비에는 기본적으로 사랑하지만, 이 사랑에다가 뭐가 들어 가냐 하면, 지혜가 들어가요. 왜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눈물콧물 분노 온갖 인생의 유행가한번 들어보시면 뭐~ 예니 지금이나 거의 많은 경우가 다 사랑하고 울고불고 좋아하고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이 일어나느냐? 뭐가 여기는 뭐가 필수가 아니다? 지혜가 필수다.
지혜가 들어가게 되면 뭐겠어요? 완벽한 사랑, 이상적 사랑, 그러면 뭐에요? 저절로 사랑이 뭐로 변화 되요? 자비로 변환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정말로 완전해지면 자비와 하나 다를 게 없겠죠. 그런데 그렇게 완전해지면 얘는 더 이상 그런 대중적인 일반적인 사랑이 너무 많이 오염되어 있잖아요. 사랑이. 그죠? 그러니까 자비로 바뀐다. 이 자비에는 뭐에요? 근원적으로 우리의 어떤 존재에 대한 이해라고 그럴까요?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뭔가 이런 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과 어떤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그렇게 머무르는 거죠. 그럴 때 그런 게 가능해져요. 그래서 요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자비명상을 하는데 해보면, 아이고 난 자비명상해서 굉장히 효과를 봤다는 사람하고 어떤 사람은 뭐 그저 그렇더라. 별로. 이렇게 재미없어하는 사람 차이가 뭐냐? 화가 아주 많은 사람은 정말 효과를 봐요. 그런데 뭐 마음속에 크게 화가 없는 경우, 또는 화도 두 종류가 있어요. 일방적으로 아니면 더 많이 상처를 준 사람하고 화가 많아서 상처를 늘 줘. 주변을 힘겹게 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뭐에요? 늘 화가 많은 사람한테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아가지고 계속 적으로 상처받으면서 생겨나는 화있죠? 아~ 그런 사람보고 가까이 있는 사람을 뭐 자비를 보내세요. 뭐 이렇게 하세요. 이러면 어떻게 될까요? 이게 안 되죠 잘. 그러지 않아도 억압된 상황에서 사랑까지 하라니까.
제가 초기에 이래가지고 아주 실패를 여러분 했어요. 자기를 막~ 죽이고 싶어하는데 제가 “그래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자비심을 내라. 감사해라.” 뭐 이랬더니 나중에는 막~ 하다가 안 되니까요, 저에 대한 분심이 일어나더라고요. 화가 나더라는 거죠. 그때 제가 참 유감스럽게도 이 오정심관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공부를 할 때, 내가 공부한 만큼 얼마나 그것이 효과를 낼 수 있냐? 효과적이냐? 할 때는 이런 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내가 일없이 자꾸 어느 수행이 끌릴 때, 그 끌리는 데로 따라갈게 아니라 미리 진단을 해봐야 되요. 진단을 해보고 어느 것이 더 좋은가? 나에게 더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해야 되는 거죠.
그러면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번 뭐를 읽어보냐 하면 자비명상. 왜 제가 자비명상을 자꾸 강조하냐하면 화에 대해서 우리가 평균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의외로 화더라고. 화. 사람들이 그 불자들이 저한테 요청할 때 화나는 마음, 이거를 어떻게 다스려야 될지. 관계 속에서. 거기에 대한 질문들이 많이 나와요. 주로. 그래서 오늘 화에 대한 걸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자~ 이 책의 제목이 자비관이 조용히 눈감고 한번 들어보세요. 자~ 허리세우시고. 네. 허리세우시고. 필기는 좀 안하셔도 괜찮아요. 마음을 배꼽 밑 단전에다가 주의를 보내보세요. 자~ 숨을 편안하게 들이쉬시고 내쉬고. 자~ 한번 들어보세요.
제목이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자비관입니다. [마음의 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모든 생명의 행복을 염원하는 자비관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자비관은 자비명상이나 자애명상으로 불리며, 빨리어로는 메타명상이다. 자비명상은 四無量心사무량심을 배양하는 훈련이다. 四無量心사무량심은 자애 연민 기쁨..이라 그랬어요. 자애훈련은 모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을 향한 따뜻하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배양하는 것이다. 연민훈련은 고통 받는 생명들을 향해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배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우리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다.] 자~ 오늘은 한번 눈 감은 상태에서요, 자기 자신을 향해서 한번 잠깐 자애명상 한 번 해볼까요?
자~ 눈감으시고 저 쳐다보지 마세요. 보지마시고 마음을 배꼽 밑 단전에다 보내세요. 그러면 이제 자기 자신을 향해서 따뜻한 기운을 보내봅니다. 자~ 나 아무개가 오늘 하루 편안하기를. 살짝 자기 자신을 향해서 가볍게 미소를 한번 미소 띤 얼굴을 한번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어보세요. 자기 자신을 향해서 가볍게 미소지어봅니다. 네. 입모양을 아주 살짝 미소 지어 보세요. 오늘 하루 마음이 편안하기를. 자기 자신의 이름을 아무개가 “아무개야,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오늘 이 시간이 내게 주어진 삶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 되기를.” “오늘 내가 만날 많은 인연들과 함께 가장 편안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네. 조용히 눈뜨세요. 방하착이 뭘 내려놓으라는 거에요? 대체? 자기를 내려놓으라고? 자기가 내려놔집니까? 불가능해요. 내려놓으려고 내려놓을수록 내려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뭐에요? 반작용에 의해서 더더욱 집착이 일어나요. 그래서 사실 방하착은 뭘 내려놓는 거냐? 제가 어그제 감만 생각해봤더니 방하착은 경계, 대상을 놓는 거더라고. 내안에서 온갖 괴로운 생각이나 느낌이나 기억이 일어났죠. 괴로운 생각이나 느낌이 이러나면 그냥 자기혼자 그러나요? 반드시 뭐가 있어요? 괴로운 대상이 있죠? 마음속에. 그 대상을 놓으라는 거에요. 그게 자식이 됐든, 그게 부모가 됐든, 친구가 됐든 돈이 됐든. 뭐가 됐든 그걸 놓으라는 거에요.
그게 놓는 게 쉽지 나를 어떻게 놔요? 나를 놓으면 죽으라는 얘긴가? 안 된다. 그래서 요 시간에 하실 땐 저를 들면 안 돼요. 저를 들고 쳐다보고 자꾸 하시면 자꾸 저가 들어져서 안 됩니다. 특히 탐욕 같은 경우는 제가 아까 부정관에서 무정관을 말씀드렸는데. 지난 시간에 여러분이 제가 뭘 말씀드렸어요? 원력을 말씀드렸어요. 원력. 탐욕자체를 어떻게 내려놓느냐? 이거에요. 뭐 가진 거 다 내놓고 그런다고 그만 살 거에요? 힘들어요. 누구나 기본적으로 탐욕은 있어요. 이 탐욕 자체를 갖고 씨름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정신분석에서 탐욕일때 욕구가 뭐라고 그랬죠? 기본적인 욕망이라고 그랬죠?
재물욕, 수면욕, 성욕, 식욕, 명예욕, 이런 거. 그럴 때 정신분석에선 승화라는 말을 씁니다. 승화. 승화시킨다. 이거에요. 뭔가 그런 욕망자체를 드러내면 관계가 다 깨지고 현실사는 데 힘들죠. 그러니까 이것을 예술이나 운동 스포츠나 다른 방향으로 전화시켜서 사회가 생각할 때 바람직한 방식으로 치환해서 전환해서 내놓는 다는 거죠. 그럼 우리 불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원력을 세워라. 이거에요. 탐욕은. 욕심자체를 갖고 씨름하지 말라는 거에요. 무익합니다. 그럴게 아니라 욕심자체를 어떻게 변환시키냐 하면 원력으로 변환시켜요. 그러니까 상생이죠.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가 더불어서 함께 좋을 수 있는 그런 원력을 세우는 거죠.
우리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성장하고 더 나은 삶을 삶 수 있냐? 그래서 내 그런 탐욕심을 그냥 직접 실험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욕심이 문제야. 이러면 안 되니까 그런 원력을 세워서 더 나누고 그죠? 점점 나눠가면서 그래서 대승불교에선 일번이 뭐에요? 보시하는 거에요. 뭐 대단한 걸 하라는 게 아니라, 말로든 또는 아주 작은 거든. 뭐든 지간에 서로 나누면서 서로 그렇게 나아가면 이것이 하나의 트랜스폼이죠. 변환시킨 거. 전환시켜서 그렇게 되면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유식에서 전식득지하는 지혜로 변환이 가능한거죠. 그래서 다섯 가지를 생각하시면서 자 여러분 이제 좀 있으면 명절도 오고 조금 몇 주 쉬게 되는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치성한가? 다 치성하다. 그러면, 그래도 한 번에 한 개씩만 하셔야지 너무 자기를 못살게 지치게 하면 지쳐서 운동도 너무 심하게 하면 뭐에요? 빨리 중도에 그만 두잖아요. 그러니까 살살, 살살 하시는데 그 가운데서 그냥 함께 무엇이든 일단 한 번에 한 개씩 발견하셔가지고 거기에 따르는 훈련을 하시면 되겠어요. 그렇게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어느 정도 이렇게 치유해가다보면 그 다음에 37조도법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념처 수행을 하게 되면 훨씬 더 원활하게 원만하게 이렇게 넘어가는데. 만약에 이런 부분에서 충분히 사유하고 생각하면서 법문을 듣고 또 나는 어떤 부분이 그러한가?
과연 그걸로 인해서 내가 어떤 인간관계를 망치고 있나? 관계들을 망치고 단절하고 미워하고 이렇게 온갖 복잡한 걸 일으키는가를 사유하고 발견하고 생각해서 뭐에요? 행동으로 바꾸고 말로 바꾸고 행동으로 바꾸고 생각으로 바꿔서 이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하시고 그다음에 이제 본격적인 지혜, 수행으로. 지혜를 증득해가는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수행으로 하게 되면 굉장히 원만하게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시간동안에 여러분 요거 한번 잘 열심히 사유해보세요. 나는 어느 유형인가를 사유하시고 또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스님법문 > 서광스님_치유하는불교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8회 탐진치학 (0) | 2013.05.12 |
---|---|
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7회 삼학 (0) | 2013.05.05 |
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6회 육도윤회2 (0) | 2013.04.28 |
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5회 육도윤회1 (0) | 2013.04.28 |
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4회 사성제2 (0) | 2013.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