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따로 있고 중생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부처 따로 있고 중생이 따로 있으면 중생을 부처라 그러면 욕이 되는데. 본래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어. 그런데 이 마음이 어리석으면 이름하여 중생이라고 불러. 마음이 어리석으면 하는 일마다 다 결과가 괴로움이 되. 그런데 이 마음이 깨달으면 어떠냐? 이 있던 괴로움이 다 사라져버려. 그래서 마음을 깨달으면 이름하여 부처라 하고. 마음이 어리석으면 이름하여 중생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씀씀이에 따라서 중생이 되기도 하고 부처가 되는 거요.
그럼 이 세상에 이렇게 중생이 많은 것은 다 마음을 어리석게 써서 그래. 그러면 어떤 중생이라도 그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치면 바로 부처가 될 수 가 있어.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되는 길이 열려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불교 신자가 되는 거거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마음의 어리석음을 깨우칠 수 있느냐? 이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말이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부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깨우친 자. 지혜로운 자란 말이오. 이 깨우친 자가 깨우치지 못한 이를 깨우치게 해주기 위해서 어떻게어떻게하면 깨우칠 수 있다고 가르친 게 뭐다? 불교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내가 깨우쳐야 그게 진짜 불교 신자지. 깨우치지 못하면 사실은 불교신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깨우쳐야지 이런 생각도 안내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사람을 범부중생이라 그러고. 내가 깨우쳐서 부처가 돼야 되겠다. 이렇게 좋은 마음을 낸 사람. 아직은 중생이지만은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운 사람이라 그래. 이런 사람을 뭐라 그러냐? 깨달은 중생이라 그래. 깨달은 중생. 중생은 중생인데 깨닫겠다고 마음을 낸 자라 그래. 이거를 보디사트바라 그래. 사트바는 중생이란 뜻인데. 보디는 깨달음이란 뜻이야. 그러니까 보디사트바, 보리살타, 요약한 게 뭐다? 보살. 이렇게 말해.
그럼 이 보살은 중생의 한 마음 냄으로 해서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만약에 처음 마음을 냈다. 초발심보살이라 그래. 그 다음에 점점점점.점점점점. 올라가가지고 거의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역시 뭐라고 부른다. 보살이라고 불러. 그러니까 여기가 중생의 세계가 있다면 여기가 부처의 세계가 있다면 그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에 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을 뭐라고 그런다? 보살이라고 부르는데. 그 보살은 차이가 굉장히 넓어. 처음 마음을 낸 이는 중생이나 크게 차이가 없는 사람이고. 마지막 단계에 있는 보살은 부처와 큰 차이가 없는 보살이야.
그러니까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중생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마음을 낸 사람들이고,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부처의 거의 버금갈 만한 보살이야. 그래서 두 보살은 비교하면 천양지차기는 치지만은, 이거는 하나짜리 보살이고 이거는 95짜리 보살인데. 그래도 보살은 보살이야. 어떻게? 보살은 보살인데. 여 있는 사람이 다 보살인가? 아니야. 중생도 있고 보살도 있어. 그런데 내가 그러면 저 여자는 중생이고, 저 여자는 보살이고. 그거를 거사가 모르잖아. 그러니까 몰라.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보살이라는 칭호를 받을만한지 어쩐지는 거사가 보기에는 아이고 하는 꼬라지 보니 저게 무슨 보살이고 싶은데.
그 보살의 기준을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에다 비교하니까. 아이고 저게 무슨 보살이고 중생이지. 하지만은. 그래도 이 법의 이치를 모르고 그저 쥐가 쥐약을 먹듯이 괴로워하는 사람에 비해서. 그래도 여기는 조금 눈이 띄어 가지고 마음을 바꿔서 요렇게 고통에서 헤어나는 그런 사람들이 여기 법문 듣고 있어요? 없어요? 있지. 그럼 보살이야. 초발심 보살이다. 그래서 이 단계가 있어서 53단계까지 있어. 그래서 53단계가 부처의 지위야. 부처의 지위. 그렇게 해서 가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왜 그러면 남자는 보살이라고 안 그러고 여자만 보살이라고 그러냐? 남자도 보살이라고 그래요. 문수보살 남자죠. 지장보살 다 남자요. 그 다음에 우리가 원효보살이라 그러잖아. 그죠? 남자에요. 남자 여자하고 관계가 없어.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여자만 주로 보살이라 그러고. 남자가 보살이 되려면 큰 성인이 돼야 보살이라는 칭호를 주고. 여자는 애만 낳으면 보살이라는 칭호를 줘. 왜 그럴까?
애기를 낳았을 때 엄마가 애기에게 향하는 마음에는 털 끗만큼도 바라는 마음 없이 보살펴요. 애기를 향하는 엄마의 마음은 3시에 똥을 눠도 애 때리지 않고, 3시에 일어나 울어도 애를 때리지 않고, 3시에 오줌을 눠도 애 걱정하면서 기저귀 갈아주고, 이렇게 밥상머리에서 똥을 눠도 애 야단안치고 애기 걱정하고. 그러니까 갓난애기에게 엄마가 내는 마음은 거의 이거는 관세음보살같은 마음이야. 그래서 여자는 보살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 해. 그런데 남자는 그렇게 순수하게 100%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내본 적이 별로 없어. 그래서 남자는 보살 칭호 받으려면 조금 어려워.
그런데 여자는 고때는 보살인데. 요게 애가 크면 고게 시종일관 안하고 고걸 꼭꼭 갓난애기한테만 그렇게 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요구조건이 생겨서 후퇴를 해. 애기를 딱 낳으면 보살이 됐다가 그 다음부터는 자꾸 뒷걸음을 쳐, 그래서 엄마는 보살이야. 여자는 중생 중에도 상 중생이고. 엄마는 사람가운데도 성인에 속해. 그런데 여자는 여자인 동시에 엄마지. 그래서 이게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한 사람인데 여자마음 낼 때는 중생 중에도 상 중생, 남자보다 더 못하고, 엄마 마음을 딱 낼 때는 남자보다 더 높고 그래. 그래서 이 세상에 어떤 남자도 다 엄마의 아들이야. 그런데 고런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이 차별 없이 낼 수 있으면 관세음보살같은 사람이 되지. 관세음보살이 딴 게 아니라, 그런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니까.
우리는 어떠냐 하면. 주로 착한일 하면 저거 복 줘야 되겠다. 나쁜 일 하면 저거 벌줘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잖아. 그런데 관세음보살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다~ 다 도와줘. 경찰이 도둑놈을 쫓아. 그럼 경찰은 쫓아가면서 뭐라 그럴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내 저 도둑놈을 좀 잡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겠지. 도둑놈은 도망가면서 관세음보살님 관세음보살님 제발 좀 안 잡히게 해 주세요. 이러겠지. 그럼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해야 될까? 둘 다 안 도와줘. 한 번 생각해 봐.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할까? 관세음보살한테 기도하면 다 들어준다는데 그럼 어이 해야 두 사람 기도가 다 들어 지나? 한 번 생각해 봐.
경찰기도 들어주면 도둑놈기도가 안 들어지고. 도둑놈기도 들어주면 경찰기도가 안 들어 지는데. 관세음보살은 자기가 도둑놈으로 화현을 해서 경찰한테 잡혀줘. 그럼 도둑놈 기도도 들어줬나? 안 들어줬나? 들어줬지. 경찰 기도도 들어줬나 안 들어줬나? 들어줬지. 대신에 관세음보살은 고생 좀 해야 되. 그래서 중생의 죄를 내가 대신 짊어진다. 그렇게 말하는 거요. 중생의 죄를 내가 대신 짊어진다. 그러니까 범부 중생은 관세음보살한테 기도할 때 내 죄를 관세음보살보고 뒤 집어 씌우는 거요. 당신 좀 가져가세요. 이 말이에요.
그런데 보살이라는 칭호를 우리가 받았다 이 말이오. 그럴 때는 내 죄를 관세음보살한테 뒤집어씌우면 그거는 중생이고. 나도 관세음보살처럼 남의 죄를 내가 조금 뒤집어 써야 되겠다. 요렇게 마음을 내면 뭐다? 보살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보살이라는 칭호를 이왕지 얻었으니까. 꼭 내 죄를 갔다가 남편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하지 말고. 남편 죄를 내가 좀 뒤집어 써주고, 자식 죄를 내가 좀 뒤집어 써주고, 부모 죄를 내가 좀 뒤집어 써주고, 세상 죄를 내가 좀 뒤집어 써준다. 내가 대신 비난받을 거 있으면 내가 대신 좀 받아 준다.
그래서 보왕삼매론을 보면 억울함을 당하여 밝히려고 하지마라. 이러지. 보살은. 왜? 남의 것을 좀 뒤집어 써줘야 되. 그래야 보살이야. 그런데 여기는 남의 거는 고사하고 제가 지어놓고도 제 것도 안 받으려고 미꾸라지새끼처럼 요리 빠져나가려고, 저리 빠져나가려고, 고렇게 꾀를 쓰면서 기도를 하니까. 보살이 되기 조금 어렵지. 그래도 여자한테 왜 보살이라 하는지 알겠어요?
'법륜스님 > 즉문즉설(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31회) 소극적이고 소심한 아내 (0) | 2011.04.28 |
---|---|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30회)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엄마 (0) | 2011.04.27 |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28회) 꿈에 대한 집착 (0) | 2011.04.25 |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27회) 불편한 며느리 (0) | 2011.04.22 |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26회) 사회적응을 못하는 직장인 딸 (0) | 2011.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