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힐마인드]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경지,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Buddhastudy 2021. 11. 4. 18:56

 

 

 

 

인식이 바뀌어짐에 따라서

왜 태어났는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두려움 없는 삶을 살 수 있고

자유로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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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짜고짜 깨달음이란?

 

계속 내 내면의 껍질을 깨고 들어가다 보면

정말 근원과 맞닿게 되는 경험을 하게 돼요.

내 본성을 만나게 되고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 그 근원, 그 뿌리를 직접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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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상태

 

그냥 확~ 하고 알아버려요.

모든 질문, 모든 그런 해답이 동시에 그냥, 그냥 앎의 그 상태가 돼요.

그냥 다 알아버려요.

 

왜 태어났는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내가 왜 이 육신을 받고 이 자리에서, 저 부모님 밑에 자식으로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내가 이 별에 왜 왔는지

나의 미션, 나의 사명은 무엇인지를 금방 알게 돼요.

누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그냥 몸으로 그냥 아는 상태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우주가 돌아가는 그런 것들을

섭리라든가, 인사이드, 통찰력이 생겨요.

사람을 보는 기준도 달라져요.

인식이 달라져요.

생각도 달라져요.

몸과 마음과 생각이 그냥 딱 같은 라인에 모이게 되는 지점에

그 지점에서 모든 통찰력이 한꺼번에 폭발을 해버려요.

 

그렇게 된 상태가 깨달음의 상태에요.

이 깨달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냥 편안하게 사는 사람의 그 모습이에요.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할게요.

명상을 계속하다 보면

내면으로 계속 들어가서

끝내는 내 근원까지 도달해서

내 본성을 본다고 말씀드렸죠?

 

저는 레이싱 게임을 정말 좋아해요.

...

튜닝에 튜닝을 거듭하다 보면 질리게 돼요.

그 튜닝의 끝은 수행의 끝과 마찬가지인 거죠.

다시 순정상태로 돌아오게 돼요.

앵매도리 상태가 되어버리게 돼요.

 

돌이 돌일 때 제일 예쁘고요, 장미꽃은 장미꽃일 때가 제일 아름답습니다.

5월에 피는 꽃만 예쁘냐? 그렇지 않죠.

겨울에 피는 꽃들도 있어요.

그 꽃은 그 꽃 나름대로 예뻐요.

 

그런데 깨달음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선

나는 왜? 난 자동차인데, 배기량이 작은 일반 자동차인데

왜 저런 스포츠가 못 되는 거야?

나도 큰 타이어 달아줘, 나도 큰 엔진 갖고 싶어라고

 

그래서 큰 엔진을 조그만 차에다 구겨 넣어요.

타이어도 조그만 거에 맞춰져 있게 디자인되어 있는데

아주 큰 구경의 타이어를 그 조그만 차에 달아두죠.

그래서 어떤 모습이 되냐고요?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돼요.

그렇게 해서 이겨본들, 별로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자동차 튜닝을 예로 드렸습니다.

 

결론은 앵매도리(櫻梅桃梨)인 거죠.

(:앵두나무는 앵두꽃을, 매화는 매화꽃을, 복숭아나무는 복숭아꽃을, 배나무는 배꽃대로 피어나는 것으로 나무의 특성에 따라 꽃이 피는 시기도 서로 다른 것을 말한다)

 

그냥 내가 이 모습으로 살 때,

꽃이 꽃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벌이 벌이기 때문에 되게 귀여운 것처럼

우리는 우리이기 때문에, 이 모습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소중하고 대단한 겁니다.

 

이 모습은 우주에 이 하나밖에 없거든요.

이 모습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때, 그건 깨달음의 상태죠.

그건 깨달음의 경지에요.

그게 바로 이 지구별에 온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서 뭔가 상을 만들지 마시라.

뭔가 되려고 하는 사람의 그 모습을 만들지 마시라.

도인은 마치 펄렁거리는 옷자락이 많고, 길게, 수염에 뭔가 콩나물 대가리 지팡이를 들고서

나는 뭐 이러면서

이런 거 아니에요.

 

깨달은 자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내면의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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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해답은 내면에 있습니다.

 

모든 명상하는 사람, 모든 기도 하는 사람

정말 진솔한 내면의 탐구자들은요,

어떤 원인이 생기면, 그 원인을 결코 내 몸 밖에서 찾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해답이 없다라는 걸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삶을 결정하는 무의식

항상 이것을 주시해야 합니다./

 

항상 모든 문제를 내 내면으로 포커스를 맞춰서, 내 내면 안을 뒤져보기 시작해요.

어떤 내가 숨어있는지

어떤 잠재의식이 내 몸 안에 숨어있는지

얘가 언제 발현될 건지

얘가 나한테 어떤 치명타를 입힐 건지.

 

밖에서 찾아보세요, 해결될 수 없어요.

내가 당장 차가 없는데 내가 조그만 차가 있는데, 옆에 몇억짜리 차가 다니고,

그런 거 보세요.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러면 나는 난 조그만 차니까 저 차를 사야되겠어,라고

그 차 사보세요. 또 어떤가?

그 위에는 그 위급이 저 없을 거 같으세요?

그 위급도 존재해요.

늘 상대적인 거고, 그러면서 늘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돈이 필요해서 돈을 얻었지만,

반대로 내 건강을 희생하고, 내 가족들을 잃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안 되죠.

그건 진정한 이 별에 온 목적이 아니에요.

돈을 벌러 이 별에 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여튼 그 좋은 인식이 그냥 알아버리게 돼요.

말이 되게 빙빙 돌리는 것처럼 되겠지만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지식 습득이 아니기 때문에.

깨달음은 그냥 앎이에요, 앎의 상태에요, 앎의 상태에 놓여지게 되요.

여기에는 시공간의 개념은 없거든요.

시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냥 알아버리는 거예요.

 

지식을 습득한다라는 거, 어떤 데이터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간다라는 건

시간의 베이스인 거죠. 중력의 베이스인 건데

그 중력 시간이 없어져 버린 상태에서 그냥 앎 그 자체인 거죠.

 

깨달은 자는 그냥 알아버린다.

누가 설명하지 않고, 배우지 않았는데도 그냥 스스로 알아버린다.

 

그리고 어떤 문제점도 내 내면에서 답을 구해요.

어떤 깨달음, 앎에 대한 그런 것들이 궁금하면

스스로 명상상태에 들어가서 내가 그 답을 캐내죠.

누구한테 묻지 않아요.

자기가 진정한 자기의 우주에서 주인이 되는

내 우주의 내가 주인이 되는 공부입니다.

 

이게 절대적일 수가 없어요.

우리는 오감에 갇혀 있는 동물이고

오감을 기준으로 해서 모든 것들을 인식하게 되잖아요.

눈으로 귀로, 이것으로 인식을 하게, 판별을 하기 때문에.

 

만약에 이 우주에 식감, 이식감, 30감을 가진 존재는 어떻게 받아볼까요?

그 깨달음을 어떻게 얘기할까요?

깨달음은 절대적인 경지가 아닙니다.

상대적인 거고, 그 길을 가다 보면 인간으로서

이 정도 경지면 그래도 이 우주에서 내가 갖고 있는 우주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선일 거까지에요.

 

그 선의 상태가 심우도라는 그런 표현도 있고요

또 매슬로의 욕구 8단계, 그런 것도 있고요.

아마 그 끝은 거의 비슷해요, 자아실현.

그리고 심우도에 나와 소가 없어진 상태

본성의 상태로 회계했다는 거죠

본성의 상태로, 지금 거기 진입했다는 얘기에요.

 

공자가 얘기했던 고희, 칠순이 고희죠?

그 정도면 내가 어떤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 행위가 우주의 진리와 전혀 어긋나지 않는 경지라고 얘기했거든요.

그 정도면 충분히 내가 원하는 삶을 원활하게 살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가 깨달음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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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마음공부는요

 

우주의 주인이 되는 공부이고요

내가 왜 이 별에 왔는지, 내가 이 고통을 왜 겪고 있는지

저 사람이 왜 내 엄마·아빠인지, 저 사람이 왜 나를 싫어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떠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왜 나는 남들보다 과잉반응하는지

이것만 제거되어도, 이 원칙만 알아도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편안하고, 아주 자유롭게 원활하게

파도를 타면서 리드미컬하게 돌파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사람이 바뀌어요.

존재가 바뀝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육신은 3개월에 한 번씩 모든 세포가 다 교환이 된다고 해요.

100일마다 새 사람이 나타나는 거죠. 육신 자체가.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면

이 마음을 관장하고 있는 마음의 그런 힘들은, 육신까지도 녹여버리게 되거든요.

리사이클이 한번 일어나거든요.

새로운 인식으로 인한, 새 살, 새 뼈가 만들어지게 되죠.

 

그러면 사람이 바뀌죠. 존재가 바뀝니다.

만나던 사람이 달라져요.

내 주변에 오는 것들이 달라져요.

내 수준에 맞는 사람들이 오게 될 거예요.

그건 분명합니다.

 

그러면 차츰차츰 레벨을 쌓을 때,

환경이 바뀌어지고 인생이 닳아짐에 따라

인생이 아주 원활하고

왜 태어났는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 품게 돼요.

 

다 품게 되면 도량이 넓어지게 되고

그 도량이 넓어지는 것만큼 나중엔 인류도 품을 거예요.

이 우주를 품게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깨달은 자는 그런 사람입니다.

 

저도, 우리도, 다 그쪽으로 모두 다 가야 해요.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두려움 없는 삶을 살 수 있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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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 무의식, 내면아이

 

내 마음을 닦아야만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했는데

마음은 잠재의식이에요.

무의식이에요.

 

얘는 또 다른 나에요.

얘는 나보다 지능이 10배 이상은 좋아요.

이 아이와 함께 가는 거예요.

이 아이를 드러내고 규명해 낼 때, 그 아이를 품을 수 있을 때, 내가 도약하는 거예요.

그래서 머리가 따로이고, 마음이 따로이고, 마음이 따로 인 거예요.

 

그 아이를 내면에 있는 그 에고, 내면 아이라고 얘기하는데

잠재의식에 기록되어 있죠.

이 잠재의식을 거둬낼 때,

그 존재를 분명하게 알 때,

이 잠재의식은 또 다른 나라고 말씀드렸죠?

 

요 아이를 거둬내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진정한 명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에도 명상의 최고는, 제가 뽑은 최고의 명상법은

덜어내는 명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내면의 아이를 덜어내는 거고요,

잠재의식을 덜어내는 거고,

에고를 덜어내는 거고

원죄를 덜어내는 거고,

업보를 덜어내고, 까르마를 덜어내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어요.

내 안에 불성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내 안에 참나, 진아를 볼 수 있습니다.

본성을 만날 수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