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라트비아’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Latvia ‘라트비아 공화국’입니다.
발트해 연안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리가(Riga)입니다.
라트비아의 국기는 위에서부터
밤색, 하얀색, 밤색 띠가 배치되어 있으며
밤색 띠는 하얀색 띠의 2배 크기입니다.
국기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1282년 외세에 맞서 싸운 라트비아 의용군이 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밤색은 전투에서 흘린 국민의 피와
국가 수호에 대한 결의를
하얀색은 시민의 성실함과 진실, 정의, 자유를 상징합니다.
1918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할 당시, 국기를 제정하였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속하게 되었을 때는 국기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1988년 독립하면서 공식 제정되었습니다.
라트비아는 발트 3국의 하나로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하며
인접국가로는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에스토니아가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6만 5천㎢로 세계 123위이며
경상남북도를 합친 면적의 2배 정도 크기입니다.
라트비아는 2019년 기준으로 약 2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경상남북도의 인구 6백만의 3분의 1 정도입니다.
라트비아의 1년 총 GDP는
2017년 기준 약 300억 달러.
이는 세계 95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파라과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구는 라트비아인이 60%며, 러시아인 25%, 그 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등으로 구성됩니다.
언어는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20%, 러시아정교회가 약 15% 이며, 그 외에 루터개신교와 무교인이 많습니다.
2. 역사
라트비아의 역사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현대 라트비아인의 조상격인 발트족이 이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12세기 말부터는
독일의 선교사들과 상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고
1201년 이들에 의해 리가(Riga) 시가 건설되었습니다.
13세기초 가톨릭세력이었던 독일 기사단은
독일인들을 대거 데리고 라트비아로 넘어왔습니다.
이후 16세기까지 라트비아 지역은 계속해서 독일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요.
1558년 러시아의 이반 4세(Ivan IV)가 리보니아전쟁(Livonia War)을 일으켰고
1561년에 독일의 지배를 받던 지역들이 뿔뿔이 분할되었습니다.
현재 라트비아의 서남부지역은
쿠를란트(Courland)공국으로 분리되었고
라트비아의 북동부지역인 라트갈레는
비제메와 함께 리보니아 공작령이 되었습니다.
1600년부터 1629년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은
리보니아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스웨덴은
1621년 리가를 점령하였고
1629년부터 리보니아공국은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1700년부터 1721년까지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발발한 대북방전쟁(Great Northern War)의 여파로
리보니아지역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고
1795년 쿠를란트 공국 역시 러시아의 지배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8일, 라트비아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농지개혁을 실시하고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걸쳐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1939년 소련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독소불가침 조약에 의해
라트비아는 다시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소련은 1940년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의 이른바 발트 3국을 점령했습니다.
소련의 압박을 버티지 못한 라트비아는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을 선언하였고
그해 8월 소비에트연방에 가입했습니다.
이후 라트비아는 공산당의 독재 하에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부분에서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지만
강요된 산업화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부터 라트비아인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고조되었고
소련에 반대하는 시위도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소련에 반대하는 독립 세력은
라트비아인민전선(LPF)를 구성하여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이듬해 선거에서 라트비아인민전선 후보들이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였고
1991년 9월 6일 공식적으로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라트비아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이며
의회의 임기는 4년의 단원제로 1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정부와 함께
발트 3국이 참여한 발트 의회(Baltic Assembly)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대통령은 임기 4년에 중임이 가능하며
의회의 간접투표로 선출됩니다.
현재 라트비아의 대통령은 2019년 7월 8일부터 역임 중인
에길스 레비츠(Egils Levits)입니다.
실질적인 내각의 통치 및 정치적 책임을 맡고 있는 라트비아의 총리는
현재 아르투르스 크리샤니스 카린슈(Arturs Krišjānis Kariņš)이며
전직 언어학자, 사업가, 경제 장관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소련경제에 의존하던 라트비아는
사회주의 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에는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속적으로 공업발전을 이루어 2000년대 들어서는 평균 7.5%에 달하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라트비아는 전통적으로 목재산업이 발달하여
목재가공 수출이 경제의 기반이 되어 왔습니다.
풍부한 목재자원은 이웃 국가인 스웨덴으로 수출하는데
대부분 글로벌가구기업인 IKEA에서 주로 사간다고 합니다.
농업 부문은 낙농업과 돼지사육이 중심이며
공업 부문에서는 기계제조와 금속가공, 석유화학산업이 주요산업입니다.
무역상대국은 1990년대에는 과거 소련연방 국가들이 60%였으나
점차 러시아에의 의존을 줄이고
유럽연합과의 무역을 강화하여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독일, 영국 등의 많은 나라들과 교류하였습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라트비아의 경제도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어
IMF에 110억달러, 한화로 약 12조원을 빌리는 등 위기도 있었으나
2011년부터 다시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였고
현재 EU 회원국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라트비아는 발트 3국 중앙에 위치한 국가로
동유럽 평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의 지형은 대체로 평탄한 저지대와 높지 않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동부의 구릉지대에는 3,000여 개나 되는 호수가 있어
‘리보니아의 스위스’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라트비아는 여름에는 따뜻하고
봄과 가을에는 아주 온화하지만
겨울은 북쪽에 있어 추운 편입니다.
라트비아의 기후는
크게 해안과 내륙이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해안의 해양성기후를 나타내 온난하지만
내륙은 대륙성 기후로 비교적 겨울이 길고 좀 더 추운 편입니다.
국토의 2/3 이상이 삼림과 목초지, 습지 등이기 때문에
엘크, 사슴, 불곰 등이 살고 있습니다.
또한 내륙 운하에는 비버가
해안가에는 물개 등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는 동계스포츠에 강한 국가입니다.
라트비아의 아이스하키는 꾸준하게 세계랭킹 10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우수한 편이고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루지 등 썰매종목에서 강세가 두드러집니다.
실제로 이런 썰매를 탈 수 있는 정식트랙이 건설되어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로
스켈레톤계의 슈퍼스타로 알려진 토마스 두쿠르스, 마르틴스 두쿠르스 형제가 라트비아 출신입니다.
라트비아는 인터넷 속도 및 모바일 데이터 사용이
유럽연합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국가이며,
인터넷 속도는 세계 10위권 내외, 모바일 데이터 사용은 핀란드에 이어 2위 국가입니다.
가로등이나 공중전화부스 등에 설치된 공공와이파이도 4000여 곳에 달하고,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아,
민박집 수준의 작은 시골마을의 숙박업소에서도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라고 합니다.
라트비아 속담에 ‘매초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라트비아 사람들은 노래와 춤을 사랑한다고 하는데요.
5년마다 1번, 일주일 동안 펼쳐지는 라트비아 송&댄스 페스티벌은
1873년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국가적 행사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합창단과 무용대회 중 하나로
라트비아 문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축제인데요.
2008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노래와 춤의 축전’은
매번 약 4만 명이 참여하는 국제적 규모의 행사로
수백 명의 성가대와 민속 무용단체가 참가해
일주일 동안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축제를 펼칩니다.
5. 인물
라트비아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평생에 걸쳐 자유를 갈망한 발레리나로 알려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Mikhail Nikolaevich Baryshnikov)’가 있습니다.
구소련 시절,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Riga) 출신의 그는
전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타로 영화 '백야 White Nights'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1948년, 러시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바리시니코프는
12세에 발레를 시작하여 16세에 레닌그라드의 ‘바가노바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그는 곧바로 ‘바르나 국제 콩쿠르’ 대회 주니어 부분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냈고
3년 뒤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하여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키가 작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키가 큰 무용수들보다 더 높이 뛰는 점프력과 정확한 턴을 구사했습니다.
또한, 발레 테크닉 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맡은 역할에 대한 표현력에 있어서도 탁월했습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1974년
바리시니코프는 캐나다 순회공연을 하던 중 캐나다로 망명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미국 예술계는 그를 열렬히 환영했고
그는 금방 인기를 얻어 정착을 하게 됩니다.
작품으로는 발레 [지젤]을 비롯하여 [호두까기 인형], [돈키호테], [카르멘] 등 있으며
미국 CBS에서 방영한 TV용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TV 발레작품으로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리시니코프는 미국 공연계에 젊은 예술가들을 육성하기 위해
2005년 뉴욕시에 ‘바리시니코프 아트 센터’를 설립하여
각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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