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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부탄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2. 1. 19:40

 

 

 

1. 소개

부탄 왕국(Kingdom of Bhutan)

인도와 중국 티베트 자치구 사이에 위치한 남아시아의 작은 산악국가로

수도는 팀부(Thimphu)입니다.

 

부탄의 국기는 1969년에 공식 제정되었으며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나누어진 삼각형으로 구성된 바탕에

중앙에는 하얀색 용이 그려져 있습니다.

 

부탄이라는 국명은

티베트어로 용의 나라를 뜻하는데

하얀색 용은 부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용이 발톱으로 잡고 있는 보석은 를 의미하며

노란색은 세속 군주, 주황색은 불교를 상징합니다.

 

부탄은 남아시아의 티베트와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있는 나라로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국가입니다.

 

부탄의 국토 면적은

39,000km²로 세계 134위이며

이는 대한민국 면적의 40% 수준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77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64위이며

포항시와 경산시의 인구를 합한 것과 비슷합니다.

 

부탄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약 28억달러로

세계 164위이며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레소토, 동티모르가 있습니다.

 

부탄은 공용어는 종카어이지만

네팔어와 티베트어, 영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민은 50% 가 티베트에서 이주해온 보태족이며

그 외에 초기 거주자들이 35%, 기타 소수종족이 15%로 구성됩니다.

 

부탄은 티베트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으며

그 밖에 힌두교와 기독교도가 소수 존재합니다.

 

 

2. 역사

잦은 지진과 화재로 인해 역사적 기록이 대거 소실된 탓에

19세기 이전까지 부탄의 역사는 개괄적으로만 파악이 가능한데요.

 

구루 파드마 삼바바가

비호의 등을 타고 티베트에서 부탄으로 날아와

타루 벨리에 있는 호랑이의 거처인 탁창(Taksang)에 정착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7세기 무렵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가 부탄 지역까지 진출하였으며

9세기에는 인도의 승려였던 파드마 삼바바가 부탄에 불교를 전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부탄은 1600년대 초까지

각 지역마다 라마(lama)들과 군 지도자들에 의해 분열된 상태가 지속되었는데요

티베트에서 이주한 군인들은 띰부 계곡 근처에 국가를 세웠고

이 당시 세워진 국가들은

영적 지도자인 데시 드럭(Desi Druk)'과 행정지도자가 각기 따로 존재했으며

봉건제와 비슷한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까지도 부탄에는 비슷한 관습이 남아있습니다.

 

17세기부터 티베트는 주변의 작은 왕국들을 통합하려는 목적으로

4차례에 걸쳐 부탄을 공격하였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1714년 몽골의 지원을 업고 다시 한번 부탄을 공격했으나

그것마저 실패로 끝나자

완전하게 부탄과 티베트가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1772년 부탄은 남쪽지역에 있던 소국을 침략하였고

남쪽의 소국은 영국 동인도회사에 부탄의 압력에서 보호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과 부탄은 몇 차례 국경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1864년부터 일어난 앵글로-부탄전쟁에서

부탄이 패하면서 영국에 일부 영토를 할양하였고

1907년 영국의 영향 아래에서 부탄은 우겐 왕축(Wangchuck)이 절대군주제를 선언하였습니다.

 

이후, 부탄 왕국은 친영정책을 펼치며 영국의 지원을 받아 영토를 통합해나갔고

1910년 외교권을 영국에 양도하며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탄 내부에서는 영국의 보호령조치에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기 때문에

19498, 부탄왕국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습니다.

독립 후에도 부탄은 절대왕권을 추구하면서 3대 국왕인 지그메 도르지 왕축이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회의 권한이 높아지고 민주주의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게 되었고

2008년부터는 선거를 통한 입헌군주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3. 정치 & 경제

부탄의 정치는 나라가 건국될 때부터

왕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세습 전제 군주제였고

의회의 권한은 매우 미미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변방에 위치해 있고 자원도 빈약하여

영국의 식민지배 시절에도 큰 수탈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2008년 부탄 총선이 실시되면서 절대군주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높습니다.

 

부탄의 국가수반은 용왕이라는 의미의 드룩 잘포(fruk gyalpo)'입니다.

이론상 왕은 세습되지만

의회의 2/3 이상 동의가 있으면 해임이 가능합니다.

 

현재 부탄의 국왕은

부탄 입헌군주제의 첫 번째 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입니다.

부탄의 의회는 상원의원 20명과 47명의 하원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이며

행정부의 수반은 임기 4년의 총리로

의회 내 다수표를 차지한 후보가 총리로 선출됩니다.

 

주요 정당으로는 평화번영당, 인민민주당 등이 있습니다.

부탄은 통계적으로 매우 가난한 최빈국 중 하나로

경제 규모도 협소한 편입니다.

국민의 60% 가량이 농업과 임업 등 1차산업에 종사하며

대외무역 역시 대부분 인도에 의존하고 있고

매해 인도로부터 5억원 상당의 경제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고지대에서는

야크와 산양 등을 사육하는 목축업이 발달했고

비교적 낮은 중부지대에서는 쌀, 옥수수, 보리 등을 재배합니다.

 

수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히말라야 산맥의 수원을 활용한 전력이며

약간의 목재와 석탄자원을 인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공업 부분에서는 자급적인 성격의 수공업이 발달했고

아직까지 근대공업의 발전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수공업 기술은 매우 우수하여

배낭, 자수품, 카펫과 같은 직물 제품의 생산과

칼자루와 종교장식과 같은 금속 세공 분야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빼어난 자연풍광을 자랑하기 때문에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으나

국가차원에서 전통문화 수호를 가장 우선순위로 삼고 있기 때문에

관광업을 철저하게 제한하고 있어

국제선 취항여객기가 단 4대밖에 없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부탄이라는 국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중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을 뜻하는 보타안타(Bhota-anta)’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는 부탄이 티베트 고원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탄의 공용어인 종카어는

용의 나라를 뜻하는추위’(종카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부탄은 인도 북동부, 히말라야 산맥의 동단부에 있는 국가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티베트 고원과 경계를 이루는 북쪽지역에는 쿨라캉리산(7554m), 초모라리산(7314m) 7,000m 급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집니다.

 

국토면적은 크지 않으나 고도 차이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는데요.

가장 높은 북쪽 고지대는 고산기후를 보이며

수도인 팀푸가 속한 중부지역은 온대기후, 남쪽은 열대기후를 보입니다.

 

부탄에서는 자연을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준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어

산림의 비율이 60%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헌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부탄에서는 나무를 벌목할 때 반드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국민 대부분이 티베트계인 부탄에서는 풍속과 문화 역시 티베트와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건조하고 한랭한 티베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습윤하고 온난한 부탄의 기후차이로 인해 달라진 풍속도 많은데요.

티베트와는 달리 부탄에서는 남녀 모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장화를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리적 고립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으로 인해

부탄은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깨끗한 히말라야 산에 자생하는 대부분의 약초를 식용으로 하고 있으며

눈 속의 야생표범이나 고산지대의 염소, 검은목 두루미는 부탄의 명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부탄에서는 새로 짓는 건축물까지도

모두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법이 있는데요.

겉모습만이 아니라, 재료와 구조, 인테리어까지 모두 전통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또한 부탄에서 자라는 대나무로 만든 죽궁은

긴 사거리와 막강한 관통력을 자랑합니다.

부탄에서는 매년 여러차례 활쏘기 대회가 열리며

어린 아이들도 죽궁을 가지고 놀 정도로 활과 인연이 깊은 나라입니다.

덕분에 세계 국궁대회에서도 부탄은 매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부탄은 세계 유일의 금연국가이기도 합니다.

부탄 정부는 200412월부터 세계 최초로 종합흡연 금지법을 발표하였고

주민들은 공공장소나 야외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고 합니다.

 

부탄은 전통적으로 모계사회로 가정의 모든 재산분배권이 여성에게 있습니다.

남성들은 주로 집안일을 돌보며 여성들이 바깥일을 맡아 해왔습니다.

 

또한 보기 드물게 남성이 치마와 검은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남성의 복장 규제가 매우 심하고, 전통의상을 지켜내기 위한 정책 때문이라고 합니다.

 

 

5. 인물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은

부탄의 5대 국왕이자 최초의 입헌군주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입니다.

 

그는 전 왕인 지그메 싱계 왕축의 장남으로

200811, 공식적인 대관식을 치르고 부탄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은 부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에

미국의 유명 사립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와 쿠싱 아카데미, 위톤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받았습니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

겸손한 태도로 인기가 많아

정식으로 왕권을 승계받기 전부터

아버지가 참석하는 세계 곳곳의 행사에 동반하며 부탄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지그메 싱계 왕축은 200612

왕위를 아들인 남기엘 왕축에게 양위하고 물러났고

남기엘 왕축은 급작스럽게 왕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며칠 만에 정국을 안정시켰다고 합니다.

 

201110, 남기엘 왕축은 해외 유학파인 제선 페마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30세가 넘도록 혼담이 없어 국민들의 걱정을 샀던 남기엘 왕축의 결혼은

부탄국민들에게는 깜짝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국민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 왕족과 평민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아시아의 로열웨딩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남기엘 왕축은 왕으로 등극한 후

가장 시급했던 부탄의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직접 국민의 고충을 듣고 해결해주는 시스템인

Kidu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세계와의 교류를 통한 글로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수한 학생의 유학비를 지원해주는 등 부탄의 교육체계를 정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