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볼리비아 다민족국(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
줄여서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 중부에 있는 내륙국으로
행정수도는 라파스(La Paz)이며 헌법상 수도는 수크레(Sucre)입니다.
볼리비아의 국기는 1851년에 제정되었으며
위로부터 빨강, 노랑, 초록으로 이루어진 3색기입니다.
빨간색은 볼리비아의 용맹한 군인을 상징하며
노란색은 풍부한 광물자원을
초록색은 풍요로운 대지를 상징합니다.
정부기나 군기, 공식행사 등에서는
중앙에 국장이 그려져 있는 형태의 기를 사용하며
민간기와 상선기에서는 국장이 없는 삼색기를 사용합니다.
또한 볼리비아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위팔라(Wiphala) 기는
2009년부터 볼리비아의 두 번째 국기로 인정받았습니다.
남아메리카 중부 내륙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북동쪽으로는 브라질,
남동쪽은 파라과이, 남쪽은 아르헨티나,
서쪽은 페루, 칠레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국토면적은 약 109만㎢로
세계 26위이며, 이는 한국 면적의 약 10배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1,16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80위이며, 대한민국의 20% 수준입니다.
볼리비아의 1년 총 GDP는 2019년 기준 약 424억달러로 세계 91위이나
1인당 GDP는 약 3700달러로 세계 120위 수준입니다.
볼리비아는 인구의 약 80% 가량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토착언어도 함께 쓰입니다.
메스티소가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며
그 외 원주민이 20%, 유럽계 백인이 5% 정도입니다.
종교는 인구의 80% 가량이 로마가톨릭 신자입니다.
2. 역사
볼리비아에는 약 2만년전 원주민이 이주해왔고
기원전 800년경 안데스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12세기, 티티카카호를 중심으로 아이마라 왕국이 형성되었는데
15세기에 잉카 제국에 의해 몰락했습니다.
1532년 잉카제국의 황제였던 아타후알파가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처형되면서 잉카문명은 몰락했고
그 후로 스페인이 식민통치를 시작했습니다.
1535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페루 부왕령이 되었고
1545년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 볼리비아 지역에 많은 도시들이 건설되었습니다.
1569년부터 페루부왕이었던 프란시스코 드 톨레도의 혹독한 지배가 시작되는데요.
은 채굴을 위해 많은 인디오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제했고
그 결과 많은 인디오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8세기 들어 볼리비아 지역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령으로 편입되었고
페루 및 볼리비아 전역에 걸쳐
스페인 지배에 항거하는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1825년 8월 6일,
시몬 볼리바르와 수크레가 이끄는 볼리바르군에 의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독립과 동시에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국명을 볼리비아 공화국으로 확정했습니다.
볼리비아는 1836년 페루와 통합하여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형성해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으나
전쟁에서 패하면서 연합은 와해되었습니다.
그 후에 다시 칠레와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또 패하면서
태평양 해안지대의 영토를 칠레에게 빼앗기고 내륙국으로 전락했습니다.
또한 1903년에는 브라질에게 아크레 주를 반강제적으로 빼앗겼고
1932년에는 파라과이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파코 지역도 빼앗겼습니다.
독립 이후 볼리비아는 주변국들에게 차례로 영토를 빼앗기면서
독립 당시의 영토에 비해 60%로 줄어들었고
볼리비아의 내부 정치 또한 혼란을 거듭해야 했습니다.
1952년, 멕시코 혁명과 더불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가장 의미있는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볼리비아 국민혁명이 일어납니다.
차코 전쟁 이후 새롭게 등장한 민족혁명운동당(MNR)은
수차례 시도 끝에 결국 1952년 4월 9일, 성공적으로 혁명을 일으켰고
빅토르 파스 에스텐소로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그는 국내외적인 혼란을 수습하고
대규모 토지개혁을 수행하였고, 농촌 교육을 촉진했습니다.
또한 가장 큰 주석광산을 국유화하여 국가재정을 확보했고
최초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원주민들을 정식으로 인정하려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12년에 걸친 국가개혁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1964년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파스 대통령 정권을 무너뜨립니다.
이후 20년간 군사통치 시기가 지속되었고
그 사이에도 수없이 많은 정권교체가 있었습니다.
1985년, 4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 파스 에스텐소로 대통령 이후로
볼리비아의 군사정권 시대는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습니다.
3. 정치 & 경제
볼리비아는 1825년 독립 이후로
185년간 200차례가 넘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거의 140년간 군사정권이 군림했습니다.
1982년 10월 민선정부에 정권을 이양함으로써
간신히 군부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1985년 이후로 4차례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볼리비아는 대통령 중심제로 임기 5년의 대통령은
국민 직접선거로 선출됩니다.
헌법에 의해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을 보장하고 있으나
행정부의 힘이 매우 강한 편입니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5년의 상원의원 27명, 하원의원 130명으로 구성됩니다.
볼리비아는 페루와 함께 아메리카원주민의 인구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상당했고
1952년 이전까지는 원주민들에게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6년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는
원주민과 메스티소 모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국민통합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중남미 최빈국 중 하나인 볼리비아는
1990년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광물자원의 가격폭락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볼리비아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석, 금, 은과 같은 광물자원을 활용한 광업과
석유,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자원 수출입니다.
볼리비아의 천연가스는 무려 23조 입방피트로 추정되어
남미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은 양입니다.
인구의 40% 가량은 농업, 어업, 축산업과 같은 1차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기간시설이 취약하고 투자가 부족하여
생산량은 크게 떨어지는 편입니다.
대표적인 농산물로는
감자, 옥수수, 사탕수수, 커피, 콩 등이 있습니다.
또한 볼리비아는 전 세계 코카의 3~40%를 점유하는 대표적인 코카인 생산국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코카인 제거 계획에 따라
1987년부터 코카재배농지를 다른 농작물 재배지역으로 대체해 나가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볼리비아는 북쪽과 동북쪽은 브라질,
동남쪽은 파라과이, 남쪽은 아르헨티나,
서북쪽은 칠레와 페루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109만㎢로 한국의 약 10배 크기에 해당하지만
국토의 53%가 산지입니다.
국토는 크게 서부의 안데스 산맥지역과 동부의 저지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 중턱에 위치한 서부지역은
평균 해발고도가 4,000m가 넘을 정도로 고지대며
볼리비아 고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고원 지방에 인구의 다수가 거주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수도 라파스는 해발고도 3,830m에 위치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수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국토의 2/3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동부의 저지대는
아마존 강의 지류가 관통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원시림으로 덮여 있어 거주지역으로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볼리비아의 기후는 지리적으로 열대권에 속하지만
고도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납니다.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는 일교차가 크고 평균 15~20도의 온대성기후를 보입니다.
동부밀림의 저지대 지역은 연평균 30도가 넘을 정도로 무더우며
비가 많이 내리는 고온 다습한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입니다.
남미국가답게 볼리비아에서도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지만
국제대회에서는 큰 활약을 하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그나마 고지대라는 특성 덕에 안방불패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남아메리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홈경기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축구 강호들을 좌절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원정경기에서는 거의 패하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진출은 지금까지 딱 3번에 그쳤습니다.
볼리비아를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살라르 데 우유니(Salar de Uyuni)’, 우유니 사막이 있습니다.
우유니 사막은 안데스 영봉과 가까운 볼리비아 남서부 포토시 주와
오로루 주에 자리잡은 건조 호수입니다.
사막 가운데에는 선인장으로 가득 찬 ‘물고기 섬’이 있습니다.
우유니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낮에는 푸른 하늘과 구름이 사막에 투명하게 반사되어 절경을 이루고
밤에는 하늘의 별이 호수 속에 들어있는 듯한 장관을 연출해
해마다 전 세계에서 방문객이 몰려듭니다.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지나
녹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우유니 호수가 생성되었는데
이후 건조한 기후로 물이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5. 인물
볼리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사회주의운동당 출신으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총 13년 9개월 동안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재임한
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입니다.
1959년 볼리비아 칸톤에서 아이마라족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4명의 형제를 가난으로 잃을 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코카나무 재배에 뛰어들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코카재배농민조합의 회장직을 역임했고
1996년 지역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2005년 대선에서 53.6%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2006년부터 2019년까지 볼리비아 역사상 최장집권한 대통령으로
2010년대 중후반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경제침체에 빠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당시에도
연 4%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을 정도로
볼리비아의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집권 이후로
천연가스 사업을 국유화하여 국가재정을 확보하고
산업인프라와 복지를 크게 확충했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볼리비아의 최저임금은
브라질과 페루를 추월했고 절대빈곤과 문맹률을 크게 낮췄습니다.
또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서
그는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2014년 볼리비아 2부 축구리그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뛰기 위해 정식계약을 맺기도 하였으나
연습도중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아쉽게 프로데뷔는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연임을 1회만 허용하는 법을 무시하고
2019년 4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선거결과에 대해서도 여러 부정부패 의혹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미주기구OAS와 UN합동조사단이 볼리비아 대선을 점검한 결과
득표수 조작과 같은 부정선거 정황이 많이 포착되었고
이에 국민이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펼쳤습니다.
결국 에보 모랄레스는 2019년 11월 대통령직을 사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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