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브라질 연방공화국 (Republica Federativa do Brazil)
줄여서 브라질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연방제 공화국으로
수도는 브라질리아(Brasilia)이고
최대도시는 상파울루(Sao Paulo)입니다.
브라질 국기의 이름은 포르투갈어로
‘노랑과 초록’을 뜻하는 ‘아 아우리베르지(A Auriverde)’이며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1992년 5월 11일에 제정되었습니다.
초록 바탕에 노란색 마름모가 있고
그 안에 파랑 원이 있으며
원 안에는 흰색 리본이 가로질러 있습니다.
초록은 산림 자원을, 노랑은 광업과 지하자원을
파랑은 하늘을 나타냅니다.
천구 안에 그려진 별자리는
브라질이 공화정을 선언했던 1889년 11월 15일, 8시 30분에
리우데자네이루 하늘에 펼쳐져 있던 모양을 상징했으나
1992년 개정 법령으로
26개 주와 1개의 연방특별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흰색 띠 안에는 ‘질서와 진보’라는 뜻의 표어가
초록색으로 씌어져 있습니다.
칠레, 에콰도르를 제외한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들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브라질은
남아메리카뿐 아니라
남반구에서 가장 넓은 국가입니다.
국토면적은 약 850만㎢ 로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이며
국토의 남북 길이로만 따졌을 때는
가장 긴 나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은 2020년 기준으로
약 2억 12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도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 6위입니다.
브라질의 1년 총 GDP는
2019년 기준 약 1조 8500억 달러.
이는 세계 9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캐나다, 이탈리아 등이 있습니다.
브라질은 대표적인 다인종 국가로
국가의 통계구분으로는
백인, 혼혈인, 흑인, 황인, 브라질 원주민으로 나뉩니다.
2005년 정부통계에 따르면
백인이 약 43%로 가장 많으며
흑인이 12%, 혼혈인이 33%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반면
브라질은 신대륙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웃국의 영향으로
스페인어 사용도 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가 사용되는 곳도 있습니다.
브라질 국민의 약 75%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며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톨릭 신자 수가 감소하는 반면
개신교 신자수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2_1. 역사
브라질 최초의 원주민은 기원전 11,000년경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당시 남아메리카의 선진문명국이었던 잉카제국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영향력이 전혀 닿지 않았던 탓에
브라질에 정착한 거의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부족끼리 모여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요.
해안지역과 아마존 강 유역에 살던 투피(Tupi)족과
남부지역에 정착했던 과라니 인이 있었고
내륙지역에도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대항해시대 당시,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로의 항로를 발견한 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경영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대서양 곳곳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로마교황의 중재로 양국은
1년여간의 협상 과정을 거쳐
1949년 6월 7일, 토르데시야 조약을 체결하는데요.
서경 43도 37분 지점을 기점으로 지구를 세로로 반을 나눈 뒤
경계선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의 아메리카 지역은 스페인이 차지하기로 한 내용이었습니다.
1500년,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에 의해
브라질은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 당시 브라질 땅에서는 약 2,000여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원주민이
2백만 명 정도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인들은 1530년부터 본격적으로 브라질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시작된 포르투갈의 브라질 지배는
1808년까지 약 300년 가까이 이어집니다.
개척 초기, 브라질에서는 다른 남아메리카 식민지들과는 달리
금이나 은과 같은 지하자원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포르투갈인들에게는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붉은 염료의 원료가 되는 ‘파우 브라질(Pau - Brasil)’이라는 나무가 발견되면서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고
브라질이라는 국명도 이 염료용 나무에서 기원했습니다.
그 당시 붉은색은
왕실이나 고위 성직자들의 의복을 염색하는 고급염료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았습니다.
한편, 파우 브라질이 고갈된 이후 새로운 산업을 찾던 와중에
1531년 포르투갈은 북동부 지역의 마데이라 제도에 사탕수수를 도입하여
플랜테이션 농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원주민은 거의 멸절되었고
대신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가 대거 유입되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마나우스를 중심으로 한 사탕수수 농장이
엄청난 번영을 누리는 것을 본 유럽의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은
앞 다투어 남아메리카로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미리 자리 잡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합심하여
새롭게 발을 들이려는 유럽 국가들의 시도를 저지시켰습니다.
2_2. 역사(식민지 시대)
1580년 포르투갈은 아비스 왕조가 단절되면서
60년 동안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와 연합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브라질은 일시적으로
스페인이 주도하는 이베리아 연합에 편입되었고
북동부 지역 일부는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공격을 받아
네덜란드 공화국에 점령되기도 했습니다.
164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함에 따라
브라질은 다시 포르투갈의 영토가 되었고
이후 브라질의 포르투갈인들이
내륙으로 대거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1661년 네덜란드가 철수한 북동부 지역을 장악함은 물론
1680년에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무시하고
내륙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지금의 브라질 영토를 거의 대부분 확보하게 됩니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골드러시가 일어났는데
이 때문에 브라질의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하여
1763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금광 개발로 인해 18세기 동안에만
30만 명에 가까운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했고
더 많은 수의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808년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브라질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 포르투갈 왕실은 1821년 다시 리스본으로 복귀하였으나
섭정으로 브라질에 남아있던
황태자 돔 페드루가 1822년 9월,
스스로 황제 페드루 1세에 즉위하여
포르투갈로부터 브라질 제국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독립을 선언하긴 하였으나
독립 후에도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 계층이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지방 곳곳에서 반란과 공화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특히 1828년 브라질 최남단의 시스플라티나 주가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립을 쟁취하였는데
이곳이 현재의 우루과이입니다.
더군다나 1888년 공식적으로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브라질의 대농장을 경영하고 있던 집권 세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이듬해인 1889년
데오도로 다 폰세카 장군의 쿠데타로 인해
제정이 붕괴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2_3. 역사(근대사)
공화국이 된 브라질은 커피 재배를 통해 국가의 부를 축적했습니다.
이 시기를 특별히 카페 콩 레이치(café com leit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커피재배의 중심지였던 상파울루와
목축업을 기반으로 한 정당과 미나스제라이스를 기반으로한 정당이
일종의 동맹을 맺고
번갈아가면서 대통령을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지역의 주력산업을 따서 ‘커피와 우유’라는 뜻의
‘카페 콩 레이치’라 부르게 된 것이죠.
하지만,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리아이스의 동맹은
1929년 상파울루에서 2명의 대통령이 연달아 나오면서 깨지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 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브라질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라질 남쪽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가
1930년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바르가스는 여러 반란을 진압하고
브라질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고
대통령에 취임해 민족주의에 기반한 독재정치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바르가스의 독재정권도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곧바로 일어난 군사쿠데타로 끝이 납니다.
이듬해인 1946년 새로운 헌법이 채택되어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브라질의 정치적 혼란을 여전했고
1950년 선거를 통해 노동당의 지지를 얻은 바르가스가
다시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두 번째로 집권한 바르가스는
국가자본주의 육성에 전력하였으나
재정악화에 얽힌 분쟁으로 4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964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브랑쿠 장군은 군사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친미정책과 외국자본의 도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1967년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국명을 브라질합중국에서
브라질연방공화국으로 바꾸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 초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브라질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도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브라질 경제성장은 추락했고
오랜 기간 동안 정권을 장악하고
5명의 군사지도자가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해온
독재정권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도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결국, 1978년 취임한 피게이레두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군사정권의 독재가 끝나고
1985년 1월 선거에서 최초로 민간출신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20년만에 민간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그 후로 무너진 브라질의 경제는 다시 회복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브라질 정부는 1987년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으나
사회 곳곳에서 만연한 부정부패와
미봉책에 그친 정책들로 인해 위기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1998년에는 IMF로부터 지원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루이스 룰라 다시우바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강력한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경제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으며
현재는 브릭스(BRICs)라 불리는 세계 경제의 신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3. 정치
브라질의 정치 체제는 1822년 독립했을 당시
브라질 제국에서부터 출발하여
1889년 공화제로
다시 1964년 브라질 쿠데타를 기점으로
연방공화제로 변화해왔습니다.
현재 브라질은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연방공화제 국가로서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통치권한을 분배하고 있으며
각각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존재합니다.
브라질의 대통령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가 원수로
부통령과 함께 선출되며
임기는 4년, 연임은 1회로 제한됩니다.
2021년 현재 브라질의 대통령은
2019년에 취임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입니다.
군인 출신으로 1988년부터 리우데자네이루의 시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8년, 사회자유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된 후
결선투표에서 약 55%의 득표로 승리했습니다.
브라질의 제 38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극우정치가로
친시장적인 정책을 주창했습니다.
강한 통치권을 가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연방공화제 국가인 브라질은
총 26개의 행정주와
1개의 연방직할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주는 연방헌법 외에 독자적인 법률을 가지며
임기 4년의 주지사를 선출합니다.
브라질의 입법부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로
상원은 임기 8년의 의원 81명으로 구성되며
하원의원은 임기 4년으로
인구비례로 513명이 선출됩니다.
브라질은 무려 30여 개에 달하는 정당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다당제 국가입니다.
브라질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당만 추려도
노동당(PT), 브라질민주운동당(MDB), 사회민주당(PSDB),
브라질공산당(PCdoB), 브라질노동당(PTB), 진보당(PP),
브라질공화당(PRB)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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