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232회 오신채

Buddhastudy 2012. 9. 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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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채라는 것은 향기가 지독하게 나는 채소를 말해요. 다섯 가지 채소. 예를 들면 마늘이라든지, 파라든지, 양파라든지, 부추라든지 이런 걸 말해요. 없어요. 아니요. 먹어도 되요. 누가 먹지마라 그래요? 으음. 문화가 그런 거는 냄새 나고, 이렇게 그렇다고 수행하는 사람들 먹지 마라. 이런 문화가 있어요. 그러나 계율에는 없어요. 문화는 있지. 계율에는 없다. 그러니까 절에서 고기 먹어요? 안 먹어요? 스님들. 안 먹잖아. 그런데 계율에 먹지 말라는 계율은 없어요. 안 먹는 문화가 있지. 으음.

 

이제 옛날에 절에 다니면 이런 얘기 있잖아요. 여자는 성불 못한다. 이런 얘기 절에서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 들었죠. 이런 것도 경전에 없어요. 여자가 성불한다는 말이 있지 여자는 성불 못한다는 말은 없어요. 그럼 여자가 성불 못 한다. 하는 거는 힌두교논리요. 불교가 인도에서 나왔으니까. 불교 속에 힌두교가 들어와 가지고 그런 논리가 마치 불교인 양 됐어요. 경전에 그런 구절이 있는 거는 없다. 고기 먹지 마라. 이런 것도 계율에 없어요. 그것도 문화 속에서 그냥 형성된 거요.

 

그러니까 남방에 가면 태국스님이나 미얀마스님이나 이런 스님들은 다 고기 드세요.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럼 불고깃집에 가서 볶아먹어도 됩니까? 그런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고기는 먹으면 절대 안 된다는 금기가 없다. 이런 얘기요. 왜 그럴까? 스님들이 기본 식사를 하는 방식은 걸식입니다. 남의 집에 가서 얻어먹는다. 얻어먹는 게 좋은 거 나쁜 거 가리게 됐어요? 안 가려요? 안 가리지.

 

그러면 농촌에 가서 얻어먹는 데, 옛날에 얻어먹은 사람한테 고기 줄까? 안줄까? 안주겠지. 그러니까 현실적으로는 고기를 먹나? 안 먹나? 안 먹어요. 거의 채식만 먹습니다. 그러나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안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먹는 거요. 계율에 먹지 마라, 이렇게 정해진 거는 없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짜장면집에 가서 신도가 짜장면을 사주는데 거기다가 젓가락 가지고 고기 주워내고 먹어야 돼?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 돼? 주는 대로 먹어야 돼.

 

그러니까 음식에 탐착하지 마라. 음식을 가려먹지 마라. 이런 계율은 있지마는, 고기 먹지 마라. 이런 계율이 있는 거는 아니다. 그러나 얻어먹다가 보니 일 년 내내 고기를 못 먹죠. 그러니까 고기를 안 먹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형성 돼 있습니다마는, 먹지 마라 이렇게 금기가 돼 있는 거는 아니다. 그러니까 아까 여자는 성불 못한다 하는 것도 불교가 아닌데도 불교인 것처럼. 고기 먹지 마라 이것도 불교가 아닌데 불교인 것처럼.

 

그럼 불교에서는 고기 먹어도 된다. 이런 말 있을까? 없을까? 그런 말도 없어. 그냥 음식을 가려먹지 마라. 이렇게 돼 있는 거요. 그러나 우리의 관습적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오신채를 먹지 마라. 이런 거는 더더욱 없는데 힌두교 사두는 오신채를 먹지 않습니다. 이것도 아마 제가 인도에 가서 연구 좀 해봤는데 아마 힌두교에서 온 논리 같습니다. 그래도 오래 우리가 안 먹다 보니 절에서 지금 저부터도 절에서 음식 만들 때 오신채 씁니까? 안 씁니까? 안 써. 고기 써요? 안 써요? 안 써.

 

이게 문화에요. 문화를 존중하는 건 좋다. 불교문화다. 불교문화는 인도에서 왔으니까 인도 문화다. 이건 괜찮지마는 그러나 부처님이 그렇게 해라라고 하는 어떤 의미 있는 가르침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문화는 지키는 게 좋아요? 어기는 게 좋아요? 지키는 게 좋지마는 그것은 바꿔도 된다. 금기사항은 아니다. 부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는 마라.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는 마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은 하지 마라.

 

거짓말하거나 욕설은 하지 마라. 술 먹고 취해서 행패 피우지 마라. 이런 거는 하지 말라고 딱 돼 있어요. 남한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불교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진리가 어떤 건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 수행자들은 옷을 어떻게 입었느냐? 버려진 옷을 주워 입었습니다. 버려진 옷이 있나? 가난한 사람이 다 주워가는데. 아무리 가난해도 안 입는 옷이 있어요. 그게 뭘까?

 

화장하거나 장례 치른다고 시신을 인도에서는 관에 안 넣습니다. 그냥 이렇게 매고 가요. 그럴 때 그 시신을 덮는 천이 있어요. 시신을 이렇게 덮는다. 이 말이오. 이걸 糞掃衣분소의라 그래. 이거는 화장터에 가면 벗겨서 던지고 불을 태울 때, 이거는 아무도 안 입습니다. ? 부정한 옷이다. 여러분 부정 탄다. 이런 말 들어봤어요. 부정 타기 때문에. 이 옷은 누구도 안 입어요. 그래서 수행자들이 그걸 주워 입었어요.

 

그다음에 밥은 남의 집에 얻어먹었어요. 잠은 나무 밑에서나 동굴에서 잤어요. 그러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밥을 얻어먹으면 고기 줄까? 안줄까? 안주겠죠. 주로 채식을 먹었어요. 그다음에 거지들한테 누가 초대해서 음식 잘 줘요? 안 줘요? 안 주죠. 그래서 걸식했어요. 이렇게 생활을 했어요. 기본적으로.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糞掃衣분소의가 아닌, 버려진 천이 아닌, 다른 천을 입는 사람도 가끔 있고, 하루에 한 끼만 먹게 돼 있어요. 얻어먹는 주제에 한 끼만 먹어도 돼요. 그런데 두 끼 먹는 사람도 가끔 생기고.

 

그다음에 빈집에 가서 자는 사람도 가끔 생기고. 물고기든 음식을 먹는 사람도 가끔 생기고, 초대받아 가서 음식 먹는 사람도 가끔 생겼어요. 그러니까 데바닷타라고 하는 부처님 제자 중에 아주 똑똑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렇게 많은 대중이 있는 자리에서 부처님께 손을 딱~ 들고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부처님 수행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첫째 분소의만 입어야 합니다. 두 번째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 같은 거 고기든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집에 식사초대를 받아서도 안 됩니다. 으음. 그리고 빈집이나 이런 인공적인 건물에 들어가서 자서는 안 됩니다. 자연 상태에서 자야지. 제 의견이 어떻습니까? 이랬어. 그러니까 부처님이 빙긋이 웃으시더니 데바닷타여~ 수행자가 그렇게 수행하는 것은 참 좋다. 그러나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수행자가 분소의를 입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분소의가 없다면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 이랬어요. 분소의가 없으면 분소의만 입어야 된다. 이러면 분소의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벌거벗고 있던지. 안 그러면 새 천을 사가지고 시체 한번 덮었다가 벗겨내서 입어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죠. 이게 형식주의죠. 그러니까 분소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지마는 분소의가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 하루 한 끼 먹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참 좋은 일인데. 성장하는 아이들, 사미. 어린아이들이 스님이 된 경우는 두 끼 먹을 수도 있다.

 

어른은 신체를 유지만 하면 되니까. 한 끼 먹어도 되지마는, 어린아이는 그 먹는 음식 중에 성장하는데도 에너지가 들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두 끼 먹을 수도 있다. 또 환자 같은 경우에는 저녁에 먹을 수도 있다. 이거요. 으음. 그다음에 얻어먹는 것, 걸식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신심 있는 믿음이 견고한 사람이 정말 스님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한다면 먹을 수도 있다. 어떤 다른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그다음에 물고기가 들지 않는 채식만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걸식한 음식 중에 물고기가 들은 것은 받아먹어도 된다. 또는 환자라든지 이런 경우에는 특별히 그런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숲이나 동굴에서 자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나 이런 날은 빈집에 헛간이라든지 이런 게 있다면, 그것이 설령 인공구조물이라 하더라도 어때요? 가서 잠잘 수가 있단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대바닷다의 주장이 맞다 싶어요? 부처님의 말씀이 더 맞는 거 같아? .

 

그러니까 불교가 앞뒤가 꽉 막힌 그런 융통성 없는 게 아니다. 원칙도 없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건 아니오. 원칙이 분명히 있지마는 그렇다고 꽉 막힌 그런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삶이라는 것은 늘 이렇게 꿈틀거리기 때문에, 그것을 자로 딱 재어놓고 이렇게 자를 수는 없는 거다. 이거요. 이것이 이제 진리의 세계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뭐라고 그랬어요? 진리는 우리를 속박한 게 아니라 우리를 뭐한다? 자유롭게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랬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불교 신자라면 성경도 좀 읽어야 될까? 안 읽어야 될까? 그러면 기독교 신자라면 불경을 읽어봐도 되나? 읽으면 절대로 안 되나? 안 읽으면 지만 손해야. 그러니까 그런 거는 경직됐다. 그건 진리가 아니다. 아까처럼 편협됐다. 이래야 된다. 편협 됐다. 이거에요. 그건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거꾸로 속박한다. 그건 진리가 아니다. 이런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