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깨달아 괴물이 된 사람들, 깨달음의 함정

Buddhastudy 2021. 10. 27. 19:21

 

 

 

인간은 그 어떤 부와 권력을 지녔어도

시간과 공간 앞에서는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온갖 수행법이 나왔고

마침내 깨달음이라는 열매가 등장했습니다.

 

깨달으면 시공의 제약에서 벗어나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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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깨달음의 상태란 어떤 것일까요?

 

인류는 수없이 많은 시도를 통해

3가지 깨달음의 공통점을 찾아냈습니다.

 

1, 연결입니다.

외계로부터 단절되어 있던 나가

어느 순간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온 우주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2. 합일입니다.

외계와의 연결이 발전하면

연결망 자체가 사라져 하나가 됩니다.

우주 자체가 나가 된 것이지요.

 

3. 나와 우주 같은 구분도 사라져

순수의식만 남게 됩니다.

 

 

정리하면 연결에서 합일

그리고 본성이라 일컫는 순수의식이 됨으로써

성불하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먼지처럼 왜소한 존재인 나가

수행을 통해 몸집을 불려 우주가 되고

더 나아가 만물의 바탕인 순수의식이 되었으니

엄청난 발전일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깨달았다는 사람치고

연결과 합일, 그리고 순수의식에서 벗어난 경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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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들은 정말로 깨달은 것이 맞을까요?

 

인간은 뭔가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종종 꿈에 나타납니다.

 

꿈이라지만 실제처럼 매우 정교해

속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꿈은 잠을 잘 때만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명상할 때도 의식의 뇌파가 떨어져

현재 의식이 통제력을 잃으면

꿈과 유사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텅 비워지고

나의 경계가 사라져 우주와 구분이 없게 되지요.

 

생각이 잘 일어나지 않으니

그냥 존재만 하고 있는 느낌도 듭니다.

 

도가에서 말하는 대우주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상태입니다.

 

이때 양념으로

어떤 신비 현상이 첨가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나가 사라졌으니

생로병사에 대한 걱정이 없고

번뇌 망상의 두려움도 일체 없습니다.

이렇게 되니 깨달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실상은 깨닫고 싶은 욕망에

스스로 도취되어 그려낸 한바탕의 꿈일 뿐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입니다.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고 번뇌가 소멸되었는데

이것이 깨달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요.

 

물아일체의 여부와 번외의 유무는

깨달음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싯다르타는 물아일체를 통해 해탈을 이루고

번뇌를 소멸해 열반에 이르렀지만

이런 것들이 깨달음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존 브라만의 수행법을 버리고

홀로 수행에 정진함으로써 불교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해탈하고 열반에 머물러 봤자

그냥 자신의 정신 현상에 불과합니다.

 

깨어나서 진리에 대해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그저 해탈, 열반, 연결, 대우주, 본성

순수의식 같은 단어 몇 개만 앵무새처럼 평생 떠들게 됩니다.

물론 거룩한 미소도 빠트리지 않으면서요.

 

수행자들은 유일신 종교를 향해

맹신이라고 비판하지만

수행자들 역시 맹신이란 점에선 똑같습니다.

 

그들은 유일신의 자리에 괴상망측한 관념을 넣어

그것을 절대적으로 신앙하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깨달음을 어떤 초월적 상태로 믿게 되는 순간

괴상한 모습의 인간으로 됩니다.

 

깨달음의 관념에 도취되어

중생구제를 읊조리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누가 되었든 자신의 깨달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내지 못하면

그건 그냥 착각이고 꿈일 따름입니다.

 

당신은 정녕 우주의 바탕에 머물다가

가끔 깨어나 우주를 휘적휘적 걸어 다니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깨달음의 함정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자청해서 빠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깨달아 붓다가 되고 싶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수행의 첫발은

깨달음에 속지 않는 견식을 갖추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의심의 눈을 뜨고 이성의 불을 끄지 않는 한

당신의 수행은 옆길로 새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