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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 54. '화엄경'이 무슨 경인가? #깨달음의길

Buddhastudy 2021. 11. 22. 19:18

 

 

 

 

대방~~~광불 화엄경

여래명호품 제7이리로다

~~~~~ ~~~~~~~~~~~

 

화엄법문 하러 여기 올라왔습니다.

금년 통도사 화엄살림대법회도 방장스님, 주지스님을 비롯한 큰 스님들의 원력으로

아주 원만하고 환희롭게 잘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화엄경은 권수가 80권인데

법회숫자로는 9번이에요.

그래서 초회설법, 이회설법, 삼회설법, 구회설법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80권내에 품수가 39품이거든요.

그래서 구회3980권이 화엄경인데

 

오늘은 권수로는 제12, 12번째 권이고요

품수로는 39품에서 제7 여래명호품이 39품에서 7번째의 품입니다.

 

그리고 법회 차례는 두 번째 법회에요.

초회가 끝났고, 2회 법회가 되거든요.

그러면 초회설법은 성불하신 부처님의 세계를 말씀하는 내용이에요.

권수로는 11, 품수로는 6품인데

부처님 성불한 세계를 말씀해서 그걸 소신인과라고 그래요. 소신_ 믿을 바.

화엄경에서 무엇을 믿느냐? 부처님이 성불하신 내용을 믿는 거죠.

믿어야 할 대상을 초회에서 말씀하시고

두 번째 법회에서부터는 능신_ 능히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믿어서 덕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래서 능신성덕이라고 그럽니다. 능신성덕.

 

부처님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불하셨냐? 그 결과를 보고

보살이 믿음을 내서 보살행을 닦으면

부처님과 똑같이 성불하는 그런 내용으로 쭉 나아가는데

27품에서부터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 29품까지가

그 믿음을 내서 덕을 이루어가는 내용이에요.

 

제일 마지막이 제29품이 뭐더라?

불부사의품, 여래심신상해품, 35품이 있는데 여래수호광명공덕품, 이 품이 제35인데요,

7품에서부터 시작해서 제35품까지는 전부 성덕품이에요. 덕을 이룬다.

그다음에 보현행품, 여래출현품, 이세간품, 그때는 성불하는 그런 내용이거든요.

2회가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해마다 올라오는데, 조그만 법당에서 밝게 하는 거 하고 좀 다르네.

1년 동안 많이 잊어버렸던 가봐요.

갈수록 눈도 침침해서 안경 안 쓰면 잘 보이지도 않고

또 큰 책을 펴려니까 넘기기가 하도 번거로워서 작은 책, 이런 거 들고 왔거든.

보이겠어요, ? 돋보기 안 쓰면 도저히 못 봐요.

이런 얘기부터 하고 있는 거예요, 시간도 없는데.

 

그러면 화엄경이 무슨 경이냐?

그거 조금 하고, 여래명호품 시작 부분 하고, 오전 마치고요

오후에는 여래명호품 본문하고 사성제품 본문하고 그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화엄경은요, 처음 시작을 법보리장에서부터 시작을 해요, 마갈제국 법보리장,

보리는 깨달음이거든요.

법보리장 중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이 시성정각이라,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

이렇게 출발하거든요.

 

화엄경은 정각을 이룬 내용을 설명하는 거예요.

9회 설법이 있지만, 그 정각도량을 떠나질 않아요.

정각도량을 떠나지 않고 2회 설법을 하시고, 정각도량을 떠나지 않고 3, 4, 5, 7, 8회를

항상 정각도량에 계시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을 해도 화엄경 내용은 부처님의 정각세계를 말씀하는 경이다. 이런 거죠.

 

그래서 그런 내용을 놓고 보면, 경에는 경 이름이 있어요.

그걸 경명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경 이름만 보면 그 경이 어떤 경인지 다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경명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경명.

 

그럼 화엄경 경명은 대방광불화엄경인데요, 이게 무슨 의미냐?

대방광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은 몸, 그걸 각체라고 그러고, 대체라고 그럽니다.

깨달은 몸, 각체에요. 각체.

그리고 화엄이라고 하는 건 각용, 그 깨달은 작용이죠.

 

불교는 부처님을 볼 때, 시상불이세요. 시상불, 부처님의 모습을 보이는 부처님이 있는데, 그것이 팔상성도로 시장을 해요.

처음에 태어나서 출가해서 깨달아서 설법해서 열반하시는 내용이 팔상시상이 거든요.

모습을 보인다, 이거죠.

이게 시상불이에요.

팔상으로 보이는 겁니다.

 

두 번째는 금강경에 보면 시상이 아니고 여읠 이, 여읜다, 떠난다. 이상성불이에요. 이상성불, 이상불입니다.

금강경에 오면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일체 모든 상을 여의는 것을 부처님이라고 한다.

시상에서 이상으로 와요, 상을 여의는 거로 와요.

 

화엄경에 오면 원만불이에요. 원만불.

원만불이 뭐냐?

부처님의 몸이라는 것이 8상으로 형상을 통해서 보인 몸이 아니라

그 깨달은 몸이에요.

이걸 각체라고 그럽니다. 각체.

 

그 각체가 대방광인 거예요.

끝이 없어요. 대방광이라는 건.

그리고 정해진 게 없어요, 그리고 안 통하는 데가 없어요.

8상으로만 본다든지, 상을 여의는 거로만 보면 그게 안 되는 건데요.

 

이 화엄경은 각체와 각용을 말하기 때문에

그 각체는 대방광이고 각용은 화엄이라.

원만자재한 거예요. 원만자재.

하나도 모자라는 것이 없고, 하나도 남는 것이 없는 그런 세계가 대방광이고 화엄이기 때문에 원만성불이 되는 거요.

 

그래서 화엄경의 부처님은 원만불이고

금강경의 부처님은 이상불이에요. 상을 여의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소법도, 아주 작은 것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다.

이렇게 나와요. 이상.

 

그런데 화엄경은 일미진중의 함시방을 해요.

가느다란 티끌 속에 시방세계를 다 담고요, 티끌티끌마다 시방세계와 다르지 않아요.

또 무량원겁이 즉일념이에요, 한량없는 길고 긴 세월이 일 찰나이고

일 찰나가 한량없는 긴 세월인데 이게 왜 이러냐?

 

이 시방과 미진과 또 일념과 원겁이 전부 부처님의 깨달은 각체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각체를 비유로 말할 때 해인삼매라고 그럽니다.

해인삼매는 비유이고, 법으로 말하면 각체, 깨달은 몸이에요.

팔상으로 보인 몸이 아니라 깨달은 몸, 각체를 말하는 거죠.

그 각체를 다른 말로 하면 불신이라고 하거든요, 부처님의 몸.

각은 불이고, 몸 체, .

 

화엄경에 오면 시상불이나 이상불을 넘어서서 부처님의 몸은 깨친 몸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지혜 지, 몸 신, 지신이에요. 지헤의 몸인 거예요.

그럼 그 지혜의 세계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나요. 거울의 그림자처럼.

거울에 그림자처럼 드러나는 것이 법계입니다.

그래서 진허공변법계, 일체 세계 만상의 존재가 부처님의 각지소현이에요.

그 깨달은 지혜에 나타난 바에요.

그것이 그 넓고 넓은 바다에 많은 그림자가 비치잖아요.

그걸 도장 인, 그림자라는 뜻이죠.

종이에 도장 꽉 찍으면 종이 위에 도장 자국이 딱 드러나잖아요.

그 도장 자국이 바로 종이거든요.

 

그것처럼 바다에 수많은 그림자가 드러나지만, 그 바다 속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별도 없고, 바닷물에 비추어진 해도 없고, 달도 없고, 사람도 없고, 산도 없고, 뭐만 있죠?

물뿐인 거예요. .

 

그래서 보일 때는 그 그림자로 비춰진 그 그림자가

산도 보이고, 사람도 보이고, 나무도 보이고, 돌도 보이고, 달도 보이고 별도 보이고 해도 보이지만,

그건 물뿐이에요.

요게 깨달음이에요. 물뿐인 거예요.

 

그래서 별도 물이고, 요게 아주 중요해요, 요게 해인삼매 각지소현.

일체 법계가 각지소현인 거에요.

그 각의 지혜에서 나타난 것이에요.

 

분명히 물속에 별이 보이는데, 별이 아니라 그건 물이었다.

분명히 해가 보이는데, 그 물속에 들어가 보면 해가 없어요. 물뿐이에요.

 

그래서 일체 법계가 각지소현인 거예요. 깨달은 지혜에 나타난 바에요.

그래서 그걸 지영이라고 그럽니다. 지혜 지, 그림자 영.

일체 만물이 지영이다. 지혜에 비추어진 그림자다, 이거예요.

 

, 이거 참, 중생이 모르는 건 이걸 모르는 거예요.

우리 눈에 비친 모든 게 다 우리 마음의 물에 비추어진 그림자인데,

거기서 비추어진 그림자 모양만 알고, 그 마음 물을 우리가 몰라서 미혹하다고 그럽니다.

그걸 미혹하다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리 작은 것도 물에 비추어진 그림자일 뿐이고요

아무리 큰 것도 물에 비추어진 그림자일 뿐이니까

큰 것이라고 그래서 절대 큰 게 아니고요, 그냥 하나의 물일 뿐이에요.

작은 것이라고 그래서 절대 작은 게 아니오.

그러니까 큰 건 큰 것의 자체가 없고, 작은 것은 작은 것의 자체가 없어서

오직 영상해인이다. 영상은 그림자, 바닷속에 비추어진 모습니다.

해인과 영상뿐이에요.

 

그러니까 일미진이 시방세계에 포함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고

시방세계가 일미진에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게 화엄이에요.

 

아무리 작은 거라고 하더라도 다 이게 각지소현이고, 각지에 나타난 바이고

아무리 큰 거라고 해도 각지에 나타난 거니까,

이 각지로 볼 때 뭐든지 다 원만한 거예요.

모자라는 게 없어요.

 

큰 게 비추어졌다고 그래서 각지가 모자라는 게 아니고

작은 게 비추어졌다고 그래서 각지가 모자라는 게 아니거든요.

원만해요.

 

하루를 살아도 모자라는 게 아니에요. 다 그게 각지의 소현이고

100년을 살아도 그게 남는 게 아니에요. 각지의 소현이에요.

이게 원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