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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박탈당한 이유

Buddhastudy 2022. 2. 16. 18:58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한 때 우리는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이렇게 외웠죠.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외운 순서는 또 이랬다고 합니다.

아주 교양있는 우리 엄마가 방금 우리에게 피자 아홉 판을 주셨어요.”

(My Very Educated Mother Just Served Us Nine Pizzas)

My = Mercury (머큐리)

Very = Venus (비너스)

Educated = Earth (지구)

Mother = Mars (화성)

Just = Jupiter (목성)

Served = Saturn (토성)

Us = Uranus (천왕성)

Nine = Neptune (해왕성)

Pizzas = Pluto (명왕성)

 

 

그런데 지금은 수금지화목토천해, 어쩐지 끝마무리가 빠진 기분입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엄마가 뭘 주셨는지가 빠진 이상한 문장이 되어버렸겠죠.

아주 교양있는 우리 엄마가 방금 우리에게 ? 아홉 판을 주셨어요.”

(My Very Educated Mother Just Served Us Nine ?)

 

이는 현재 명왕성이 행성이 아닌 태양계 외곽의 왜소행성으로 재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재분류라고 하지만 사실상 장성급에서 병장급으로 강등이나 다름없죠.

 

 

--명왕성의 지위강등

명왕성의 지위 강등은 국제천문연맹의 2006년 결정을 따른 것입니다.

1919년에 창설된 국제천문연맹은 전 세계 천문학자들의 학술단체입니다.

천체를 명명하고 정의하는 공식 권한을 가진 천문학 기관이기도 합니다.

 

국제천문연맹이 명왕성의 지위 강등 조치를 내린 이유는

90년대 이후부터 태양계 외곽에서 작은 천체들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행성의 정의를 새로 내릴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제천문연맹이 내린 행성의 정의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행성은 항성의 주위를 돌지만 다른 행성의 주위를 돌지 않는다.

둘째, 완전한 둥근 모양을 갖출 만큼 질량이 크지만,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만큼 질량이 크진 않다.

 

이 두 가지 기준으로만 보면 명왕성은 행성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태양 주위를 돌고 위성이 아니며 완전히 둥급니다.

 

명왕성의 지위 강등은 세 번째 기준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행성은 주변에 잡동사니 천체들을 치워야 한다.

 

명왕성의 공전 궤도에는 수많은 얼음덩어리 천체들이 있습니다.

그에 비해 8개 행성 주변에는 잡동사니 없이 말끔히 치워져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조항은 명왕성을 행성에서 왜소행성으로 분류시키고

같은 이유로 화성과 목성 사이의 둥근 전체 세레스도

명왕성과 비슷한 에리스도 행성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만약 세 번째 조항이 없다면 우리는 행성의 순서를

수금지화세목토천해명에으로 외워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현재의 관측 속도로 보면 앞으로 외워야 할 행성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분명 번거롭고 혼란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반대의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천문 연맹이 내린 결정에

지구촌 곳곳에서 아쉬움과 반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뉴욕 헤이든 천문관의 관장이자 대중적으로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닐 디그레스 타이슨은

명왕성 마니아들의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헤이든 천문관은 국제천문연맹의 결정이 나오기 6년 전부터

명왕성을 태양계 전시 모델에서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는 전문학자들 사이에서도 나왔습니다.

반대편의 천문학자들은 국제천문연맹의 새로운 정의가 다소 성급한 판단이며

특히 치운다의 정의가 모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행성의 정의를 내린 국제천문연맹의 소위원회가

행성 학자들보다 소행성 학자들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심지어 명왕성의 행성 복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논란이 생긴 이유는

명왕성이 그만큼 우리에게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천체였기 때문일 겁니다.

 

명왕성은 오랫동안 지구인의 사랑을 받아온 막내 행성이었습니다.

막내답게 가장 작으며 막내답게 유별난 특징을 가졌습니다.

 

길쭉한 타원 궤도 덕분에 공전 주기

248년 중 20년을 해왕성보다 태양에 더 가깝게 위치합니다.

공전 각도도 황도면에서 17도나 기울어져 있습니다.

다른 외행성들이 기체형 행성인데 비해

명왕성은 내행성들처럼 암석과 얼음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우리에게 묘한 친근감을 줍니다.

 

모행성 대비 크기로 보면

태양계에서 가장 큰 위성을 가지고 있는 천체가 명왕성입니다.

그런 유별난 막내가 하루아침에 ‘134340 플루토라는 어색한 이름의 왜소행성이 되었으니

아쉬운 마음이 생길 만도 합니다.

 

 

--행성 발견과 강등의 역사

사실 어떤 천체가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얻고

다시 박탈당한 사례는 명왕성이 처음은 아닙니다.

맨 처음 사례를 들자면 엉뚱하게도 태양과 달입니다.

 

행성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방랑자를 뜻합니다.

그때는 밤하늘에 움직이지 않는 천체는 ’, 움직이는 천체는 방랑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태양과 달은 아주 오랫동안 다른 방랑자들과 함께 태양계 행성에 속했습니다.

 

그러다가 1543,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착되면서

태양과 달은 행성을 지위를 박탈당하고 대신 지구가 그 자리에 들어섭니다.

 

지구의 지위 변화를 두고 강등인지 제자리 찾기인지는

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망원경이 발명된 덕분에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행성인 천왕성(1781)과 해왕성(1846)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발견된 행성은 천왕성과 해왕성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801년부터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세레스, 팔라스, 주노, 베스타 등이 계속 발견되자

1851년에 들어서는 태양계 행성의 숫자가 무려 18개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새로 발견된 행성들은 다른 행성에 비해 크기가 지나치게 작았습니다.

결국 소행성이라는 새로운 천체 분류가 만들어지고

태양계 행성의 숫자는 하루아침에 18개에서 8개로 줄어드는

대량강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로부터 80년 뒤인 1930

미국 로웰 천문대에서 일하던 24살의 천문학도 클라이드 톰보는

극한의 수작업 끝에 아홉 번째 행성을 발견해냅니다.

 

극한의 수작업이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하늘의 동일한 영역을 며칠 간격으로 사진을 찍은 뒤

두 사진을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미세한 움직임의 차이를

순전히 눈으로 잡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진 작업을 몇 개월 동안 반복합니다.

 

명왕성은 미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행성이었기에

특히 미국인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미키마우스의 반려견 이름도 명왕성(Pluto, 플루토)

미국에서 만든 새로운 원소 이름도 명왕성(Plutonium, 플루토늄)

 

 

--명왕성의 위기

별탈 없이 행성 지위를 누리던 명왕성은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위기를 맞습니다.

 

1992년에 발견된 에리스를 시작으로

해왕성 너머에 얼음 천체들이 계속 발견되자

학계에서는 명왕성도 수많은 얼음 소행성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국제천문연맹은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행성의 재정의를 내리고

천문학자 424명의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투표 결과는 90% 이상이 강등에 찬성.

 

2006825, 그날 이후

명왕성은 76년 동안 누려왔던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 지위에서

왜소행성들의 대장으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국제천문연맹의 결정이 나기 7개월 전에

명왕성 탐사 임무를 띤 뉴호라이즌스 호가 발사되었습니다.

뉴호라이즌스 호는 지금까지 우주로 발사된 물체 중에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탐사선이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7개월 만에 명왕성에 도달할 수는 없었습니다.

강등 결정이 나고, 수금지화목토천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져 가던 2015년에

최초의 명왕성 근접 사진이 지구로 전송되었습니다.

 

막내는 확실히 유별났습니다.

명왕성 표면에는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하트가 그려져 있었으니까요.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애정의 표현이었을까요?

 

많은 지구인들이 명왕성의 하트를 보면서 잠시나마 우주의 낭만에 빠졌습니다.

혹시라도 투표 직전에 명왕성의 근접 사진이 있었다면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하네요.

 

--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영상은 바로 공공의 적,닐 디그레스 타이슨이 쓴 <명왕성 연대기>를 참고했습니다.

 

명왕성 발견의 역사, 강등 과정과 사회적 이슈를 재미있게 풀어놓으면서도

공공의 적에 대한 오명을 벗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보이는 책이었습니다.

 

타이슨은 대중의 비난과 상관없이 명왕성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저도 공식적으로는 왜소행성이라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는 아홉 번째 행성으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지금까지 북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