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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보이저호가 외계인에게 발견된 날

Buddhastudy 2022. 2. 23. 18:52

 

 

 

1977년 태양계 탐사 임무를 띤 보이저 1,2호가 우주로 발사되었습니다.

쌍둥이 탐사선들은 그동안 태양계 행성들과 위성들을 차례로 탐사하고

해왕성 너머에서 지구 사진까지 찍어 보내왔습니다.

 

태양계 밖을 벗어난 보이저호가

오르트 구름까지 도달하는 데는 최소한 1만 년이 걸릴 겁니다.

가장 가까운 다른 별까지는 최소한 수만 년

가장 가까운 다른 문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까지는 최소한 수천만 년이 걸릴 겁니다.

 

보이저호는 결국 다른 별들처럼 25천만 년을 주기로 은하계 중심을 하염없이 돌게 될 겁니다.

그러다 혹시 먼 미래에 다른 문명에게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과학자들은 그때를 위해 보이저호의 동체에 지구인의 메시지가 담긴 원판을 붙여두었습니다.

원판은 수백억 년까지 보존될 수 있도록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보이저호는 이제 지구인의 전령이라는 임무를 간직한 채 먼 우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은하계 중심으로부터 4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항성계

그곳에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행성이 하나 있었습니다.

 

푸른 행성의 바다와 9개의 대륙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었습니다.

생명체 중에는 스스로를 행성의 지배자라고 생각하는 지적 생명체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과학 기술은 두 개의 위성에 자신들의 발자국을 남기고

근접한 행성들에 탐사선을 보내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탐사선 중 하나가 우주 공간을 떠도는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물체는 자연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행성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외계의 어떤 존재가 만든 우주선이 분명했습니다.

그날은 푸른 행성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지적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한 날이 되었습니다.

 

외계의 우주선은 조심스럽게 행성의 연구소로 옮겨졌습니다.

오랜 우주여행으로 기계 장치 전반에 마모가 심했지만 한 부분만큼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우주선 외부에 붙어 있는 금색의 둥근 판이었습니다.

 

둥근 판에는 묘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동그라미와 사각형들,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 선들과 파동을 암시하는 무늬들

이해할 수 없는 이 그림들은 외계인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가 분명했습니다.

 

둥근 판을 조심스레 떼어내자 속에서 또 다른 둥근 판이 나왔습니다.

새로 나온 둥근 판에는 양면으로 조밀한 홈이 파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둥근 판 부근에서 그림과 똑같이 생긴 기계 장치도 나왔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의견을 모았습니다.

"겉의 둥근 판은 일종의 덮개에 불과하고 진짜 메시시는 속의 둥근 판에 있을 겁니다."

"조그만 기계 장치는 아마 메시지를 출력하는 데 필요한 장치이구요."

"그렇다면 덮개의 그림들은 메시지 출력을 위한 일종의 사용설명서이겠군요."

 

과학자들은 외계 언어로 된 사용설명서를 해독하기 위해 토의에 들어갔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의식 체계가 완전히 다른 고등 문명끼리 만난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시도할까요?"

"글쎄요, 각자의 언어라면 당연히 대화가 불가능하겠지만 우주에서 공통으로 통하는 언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우주에서 공통으로 통하는 언어라면.."

"과학입니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은 우주에서 공통으로 통하는 자연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두 문명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달라도 1 더하기 12가 되지 않거나

원소의 구성 상태가 다른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외계 문명들이 처음 만난다면 1 더하기 12,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면 수소

이런 식으로 서로 대답할 수 있는 자연 법칙을 물어가며 대화를 시작할 겁니다."

실마리를 찾은 과학자들은 사용설명서 해독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혼란

과학자들이 연구소에서 씨름하는 동안 바깥세상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다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푸른 행성 전역에 외교적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각국 정부들은 외계인의 메시지 속에 군사적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과학 기술이나

무기 제조 기술이 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외계 우주선을 독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외교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종교계에서는 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푸른 행성 사람들도 예측불허의 자연현상과 원시적인 조직사회를 겪으면서 의식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종교를 믿어왔습니다.

 

행성의 종교인들은 외계 메시지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계는 덮개의 그림이 신의 메시지라고 주장했습니다.

포용적인 종교계에서는 신의 은총이 전 우주에 미치는 증거로 삼았지만

급진적인 쪽에서는 외계에 선교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종말론까지 대두되자 신도들의 숫자가 급증했습니다.

 

종교계 외에 뜨거운 관심을 받은 쪽은 외계인을 믿는 단체들이었습니다.

우주 개발이 시작된 이후 푸른 행성에서는 외계 비행체 목격담이 꾸준히 보고되었고

목격자들을 중심으로 단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번 발견으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모든 외계인 단체들이 큰 지지를 얻었고 어떤 단체는 신흥 종교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목격되었던 비행체들이 이번 외계 우주선과 모양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은 끝내 해명하지 못했습니다.

 

각계각층의 혼란을 잠재우려면 외계인의 메시지를 하루빨리 해독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암호 해독 작업

"가장 쉬운 것부터 해봅시다."

"왼쪽의 그림들이 둥근 판과 출력 장치를 나타낸 것처럼 보이니 이 그림들 옆에 있는 부호부터 시작해봅시다."

"둥근 판이 어떤 작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이 부호들은 운동에 필요한 요소인 방향이나 시간을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가로선과 세로선이 각각 10을 나타내는 이진법 숫자라고 가정했을 때 이런 수가 나옵니다."

"작동 시간이라고 하기엔 수가 굉장히 크네요."

"외계인들이 현명하다면 자신들의 시간 단위로 표시해두진 않았을 겁니다."

"시간 단위는 문명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도 알 수 있는 시간 단위가 필요하겠군요."

"그 시간 단위 역시 우주에서 공통으로 톻하는 어떤 자연 법칙에서 나올 겁니다."

"예를 들어 특정 원자가 스핀 운동을 하는 시간은 전 우주에 공통으로 똑같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오른쪽 아래 그림이 양성자 하나,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처럼 보입니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하면서 가장 간단한 원소이기 때문에 첫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그 옆에 수소를 하나 더 그려둔 이유는 뭘까요?"

"자세히 보면 막대의 모양이 다릅니다. 혹시 전자가 한 번 스핀 운동하는 것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수소의 스핀 운동 시간이 얼마죠?"

"수소가 한 번 전이할 때 방출되는 복사에너지의 파장은 (1420MHz), 방출시간은 (7.042x10^-10)입니다."

"그렇다면 수소의 전이 시간을 위의 숫자들에 한 번 대입시켜 봅시다."

 

과학자들의 예상은 정확했습니다.

수소의 전이 시간을 숫자들과 곱하고

거기에서 나온 시간대로 둥근 판을 회전시키니까

오른쪽 그림과 일치하는 주파수 파장이 방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동그라미 주위의 부호는 둥근 판의 1회 회전 속도였고

측면도 아래 부호는 둥근 판 한 면의 총 재생 시간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서둘러 재생에 필요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기계 위에 출력 장치를 올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둥근 판을 회전시켰습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흘러나온 것은 놀랍게도 외계인들의 말소리였습니다.

 

 

--외계인의 메시지

파동과 파장, 음색과 패턴의 다양함으로 봐서 말소리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된 인사말인 듯했습니다.

 

최소한 55개의 인사말을 가진 사회,

그들도 다국가 다민족 사회 속에서 여러 갈등을 겪으며 살고 있을까요.

 

인사말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번에는 외계 행성의 자연의 소리와 동물들의 소리가 나왔습니다.

동물들의 소리는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래도 자연의 소리는 익숙했습니다.

 

바람 소리, 천둥 소리, 파도 소리,

물이 부글부글 끓는 소리들은 푸른 행성에서도 비슷하게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아마 기압이나 대기의 구성이 우리와 비슷해서 그럴 겁니다.

 

어쨌든 자연의 소리가 우주 전체에 보편적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라는 사실에

과학자들은 무한한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익숙한 소리가 끝나자 둥근 판 한 면의 재생이 끝났습니다.

 

뒷면에서는 다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어떤 사물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소리 같은데 수학적으로 완벽한 파장의 조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소리들은 어쩌면 그들의 또 다른 의사소통 수단일지도 모릅니다.

성별이 있다면 구애의 수단일 수도 있고

집단의식이나 휴식을 돕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과학자들 중 누구도 이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자신들이 소리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이는 깊고 낮은 소리에 더 반응하고

어떤 이는 마치 돌멩이를 굴리는 듯 시끄러운 소리에 더 반응했습니다.

그래도 이 알 수 없는 소리 덕분에 처음으로 외계인과 정서적인 교감이 이루어진 듯했습니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는 다른 형태의 주파수들도 흘러나왔습니다.

그 주파수들은 덮개의 파장 그림과 똑같은 형태로 방출되었습니다.

사용설명서가 알려주는 대로 주파수를 화면에 투시하자 놀랍게도 화상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첫 사진은 덮개 그림과 똑같은 동그라미였습니다.

아마 그림을 보면서 수평과 수직 비율을 보정하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연구소 안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이며 화면을 주시했습니다.

 

외계인들의 행성도 찬란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자연이 숨을 쉬고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외계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생김새에 모두들 충격을 받았지만

해부 구조와 생명의 사슬, 생식 과정과 생명의 탄생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그들의 의도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으며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도시와 문명을 이루고 생명을 기원을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둥근 판 속에는 신의 메시지도 없었고 무기 제조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 속엔 오직 우주의 한 점에서 살고 있는 어떤 생명체가 자신들의 삶을 알리고자 하는 속삭임만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마지막으로 외계 행성의 위치와 나이를 알아냈습니다.

둥근 판에 일부러 입혀둔 우라늄을 통해 연대를 측정하고

펄서의 맥동 주기로 위치와 시간을 계산했습니다.

 

그들은 은하계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결코 답장을 해주거나 방문을 할 수 없는 먼 곳입니다.

메시지를 보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0억 년 전이었습니다.

 

외계인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존재하더라도 사진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서로가 존재했던 시간이 달라도 서로의 모습과 생각이 달라도

우리는 생명체 대 생명체로서 깊은 유대를 느꼈습니다.

 

그로 인해 우주는 이전보다 덜 외로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외계 우주선의 오랜 임무는 훌륭히 완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