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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인류에게 바이러스 전염병이 계속 찾아오는 이유│인수공통전염병

Buddhastudy 2022. 3. 17. 18:31

 

 

 

자연에는 포식자가 있습니다.

사자와 같은 맹수들은 영양이나 인팔라를 잡아먹고

올빼미는 쥐를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자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포식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숙주의 몸에 기생하여 내부로부터 먹잇감을 찾는 병원체들입니다.

 

큰 맹수들이 익숙한 먹잇감 대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있듯이

병원체도 익숙한 보유 숙주 대신 새로운 표적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병원체가 공격 목표를 동물에서 사람으로 바꾸고

사람의 몸속에 자리잡는데 성공하는 경우를 인수공통전염병

즉 사람과 동물에 공통으로 전염되는 병이라고 부릅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의 병원체는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원생생물, 프리온, 기생충

이렇게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까다로운 것은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는 다른 병원체에 비해 엄청나게 작고 단순합니다.

그래서 찾아내기 힘들고 빨리 진화하고 항생제도 듣지 않습니다.

온갖 증상을 일으키면서 때에 따라 높은 사망률을 보입니다.

 

에볼라, 에이스, 광견병, 니파, 사스, 메르스 등이 잘 알려진 인수공통전염 바이러스들입니다.

모든 독감도 인수공통전염 바이러스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역시 인수공통전염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왜 이처럼 까다로운 포식자가 되었을까요?

 

바이러스는 스스로 복제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살아있는 숙주의 세포를 통해 복제를 하고

복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다른 숙주의 몸을 찾습니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기본 과제는 복제와 전파입니다.

바이러스는 이 과제를 아주 경제적으로 달성하도록 몸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내부에는 유전 물질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몸이 딱 복제에 필요한 지침서 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유전 물질은 바로 DNA 또는 RNA입니다.

에이즈의 원인인 레트로바이러스처럼 DNA를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도 있지만

더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은 RNA만 가진 바이러스들입니다.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돌연변이가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 입니다.

 

DNA는 두 가닥의 분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정 염기끼리만 결합합니다.

그래서 자기 복제를 할 때 염기 배열에 실수가 있어도 대부분 DNA 중합효소에 의해 복구됩니다.

 

그에 비해 한 가닥의 분자로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RNA 바이러스는

이런 짝짓기 시스템이나 교정 과정이 없습니다.

RNA 바이러스가 DNA 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율이 때로는 수천 배나 높은 이유입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바이러스는 자연선택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섭니다.

새로운 숙주의 몸에 적응하지 못하는 돌연변이는 생태계에서 사라지고

적응에 성공한 돌연변이는 살아남습니다.

 

이러한 자연선택의 방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돌연변이가 많이 일어날수록 그리고 새로운 숙주가 계속 공급될수록

선택의 행운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뿐입니다.

 

 

--바이러스의 보유 숙주

바이러스의 보유 숙주는 다양합니다.

, 돼지, 낙타, 사슴, 조류, ,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박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 중 박쥐는 바이러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사스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되고

니파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돼지를 통해 사람으로

메르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통해 사람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에볼라는 박쥐에서 바로 사람으로 전파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박쥐에서 천산갑을 통해 사람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왜 박쥐는 이처럼 바이러스의 인기 보유 숙주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박쥐가 복제와 전파라는 바이러스의 기본 과제에 적합한 특성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박쥐는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 존재해온 동물입니다.

5천만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수많은 종을 만들어냈습니다.

박쥐목에는 1116종이 있는데

이는 포유동물 종들의 약 1/5에 해당하는 수입니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한 가지 계통의 박쥐가 나뉘어 두 가지 새로운 동물종이 생겨나면 그들의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도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박쥐가 옮기는 바이러스가 놀랄 만큼 많아 보이는 이유는

박쥐 자체의 종류가 놀랄 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박쥐는 종의 수가 많은 만큼 개체수도 많습니다.

집단이 엄청나게 크며 대체로 따닥따닥 붙어삽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개체가 섞여 살면

직접 접촉, 체액,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입자 등으로 전파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박쥐의 평균수명이 길다는 점도 바이러스에겐 매력적입니다.

몸집이 작은 식충박쥐 중에는 20년에서 25년을 사는 것들도 있습니다.

감염이 된 후 장기적으로 다른 숙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런 매력적인 보유숙주가 비행능력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전파지역이 극적으로 넓어집니다.

과일박쥐 한 마리는 매일 밤 먹이를 찾아 수십km를 날아다닙니다.

일부 식충박쥐는 철새처럼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1,300km를 이동하기도 합니다.

 

넓은 지역을 날아다니며 먹다 만 과일을 뱉어내거나 배설물을 땅에 떨어뜨립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맛있는 과일 조각을 마다할 돼지는 없을 겁니다.

 

1990년대 초반에 발발한 니파바이러스는

박쥐에서 돼지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된 경우입니다.

 

 

--새로운 숙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항상 몸에 손상을 입는 것은 아닙니다.

바이러스가 숙주의 몸속에서 아무런 증상을 일으키지 않은 채

적절한 수준으로 자기 복제를 하고

다른 숙주를 감염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이러스와 보유숙주가 오래도록 상호 관계를 맺고

진화 과정에서 서로 적응한다면

바이러스는 독성이 줄고 숙주동물 종은 내성이 증가합니다.

일종의 휴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박쥐도 오랜 세월 동안 바이러스와 공진화를 겪었기 때문에

높은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바이러스와 숙주의 관계가 이렇게 우호적이지는 않습니다.

 

휴전 상태를 깨는 기회는 무작위로 일어납니다.

주사위를 수없이 던지다 보면 놀라운 행운이 찾아오는 것처럼

바이러스에게도 종간 전파를 일으킬 기회가 많이 주어질수록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숙주는 바로 호모사피엔스입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몸집이 큰 동물 중 현생인류처럼 많은 개체수를 가진 단일 동물종은 하나도 없습니다.

 

몸집도 크고 숫자도 많으며 군집생활도 활발하게 합니다.

박쥐와는 비교도 안되게 빠른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파지역도 극적으로 넓어집니다.

 

그런 숙주가 기존 숙주집단의 서식지로 알아서 찾아 들어 옵니다.

사냥, 개발, 관광의 목적으로 서식지를 침범하고

기존 숙주집단을 생태계에서 끌어내어 종간 접촉 기회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바이러스 전염병이 계속 발발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표적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종간 접촉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호모사피엔스는 생태계의 오랜 휴전 상태를 깨고

바이러스는 그 기회를 살려 막다른 골목을 탈출합니다.

 

 

 

<인수공통전염병>을 쓴 데이비드 콰먼은

인간과 자연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해도

우리는 자연의 일부일 뿐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며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도 아닙니다.

 

인수공통전염병 발발을 줄이기 위해선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과도하게 생태계를 침범하거나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행동에 대해 더 진지한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치르고 있는 큰 희생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과의 슬기로운 공생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인수공통전염병은 인간과 동물에 공통으로 감염되는 병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동물의 공생을 일깨워주는 병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