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97회 육도윤회, 심우도가 뭔가요

Buddhastudy 2012. 11. 5.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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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육도라는 것은 여섯 가지 서로 다른 세계에요. 1, 지옥은 고통만이 있는 세계에요. 그러니까 생명으로 태어난 것은 살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강제로 죽여 버려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죽임을 당하는 세계가 뭐다? 지옥이에요. 칼로 갖고 목을 베버리든지. 창을 갖고 찔러버리든지. 불로 갖고 태워버리든지, 뜨거운 물에 삶아버리든지, 얼음 속에 넣어서 얼려버리든지. 이렇게 죽는 고통을 뭐라고? 지옥. 이래 말해요. 이게 이제 제일 살기 어려운,

 

두 번째가 아귀. 아귀는 뭘 상징하느냐? 살려면 뭘 먹어야 되잖아. 그죠? 먹을 것이 부족해서 제대로 못살아. 살기는 사는데 이건 죽여 버리는 건 아니에요. 강제로. 그런데 그 음식이 공급이 제대로 안 되가지고 이게 발육이 더디고 늘 배고파 껄떡 꺼리고 이렇게 해서 기아에 허덕이는 그런 고통을 아귀라 그래. 굶어 죽었다. 병들어 죽었다. 이런 건 다 어디에 속한다? 아귀도에 속해요. 총 맞아 죽었다. 칼 맞아 죽었다. 이런 건 어디에 속한다? 지옥에 속하는 거요.

 

그다음에 축생이라는 것은 뭐냐? 이건 이제 이게 짐승에서 따온 거요. 보고. 축생이라 이름 붙인 거는. 옛날 같으면 여름에 복날에 잡아먹으려고 봄에 가서 강아지를 한 마리 사와서 키우잖아. 그죠? 그럼 강아지가 주인한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따라다니고 그러죠. 주인이 귀여워해 줘. 밥도 주고. 뭐 하려고 그렇게 한다? 잡아먹으려고. 그래서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것과 같고 쥐가 쥐약을 먹는 거와 같다. 살려고 하는 짓이 죽게 된다.

 

내가 좋아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고통으로 돌아오는 거요. 이런 어리석음. 전도몽상이죠. 이런 어리석은 세계를 뭐라고 한다? 축생. 이렇게 말해요. 짐승 털을 놔 가지고 옛날에 토끼 잡거나 할 때도 자기 딴엔 배고파 먹으려고 했는데 치여죽죠. 그죠. 이런 게 다 축생도에 속한다. 지금 여러분이 하려는 행위 중에 행복하려고 결혼해가지고 부부간에 갈등이 있어가지고 그것이 고통의 원인이고 행복하려고 자식 낳아 자식 때문에 머리 머리 고통을 겪고 죽겠다고 하는 거, 이런 건 다 축생의 고통에 속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사람 몸을 갖고 있지만, 정신은 어디에 떨어졌다? 축생도에 떨어진 거요. 진짜 배가 고파 먹을 것이 없어 껄떡거리거나 반대로 너무 뚱뚱해가지고 먹고 싶은데 냉장고에 가서 몸무게 달아보고 냉장고 문 못 열고 껄떡거리는 건 그것도 뭐다? 그것도 아귀도요. 아귀도. 이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배고파서 먹을 거 찾는 거보다 더 고통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옛날에 무서운 소리 무서운 소리 해도 제일 무서운 소리는 뭐다? 쌀독 긁는 소리다. 아시겠어요? 이보다 더 무서운 소리가 없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고통이 있는 거요. 그다음에 힘도 있고, 능력도 있고 한데, 항상 자기가 옳아. 그래서 마~ 보기만 하면 싸워. 이건 뭐다? 아수라다. 현대인들은 점점 아수라도로 갑니다. 별들의 전쟁하는 거 봤죠. 그저 레이져광 쏴가지고 지구도 부숴버리고, 별나라도 부숴버리고, 뭐든지 박살 내버리잖아. 그죠? 이게 아수라에요. 그다음에 천상이란 건 뭐냐? 천상이라는 건 사람이 원하면 원하는 게 그래도 50% 이상 이루어져. 마음이 편안하고 살기가 좋아. 이런 게 천상이오.

 

그래서 우리의 이 삶은 육도를, 늘 하루에도 육도를 돕니다. 평생에도 육도를 돌고, 또 저생과 내생 사이에도 육도를 돌고 그래요. 지구상에도 나라로 따지면 지옥에 가까운 나라도 있고 아귀도에 가까운 나라도 있고, 축생도에 가까운 나라도 있고 아수라도에 가까운 나라도 있고 인간계에 가까운 나라도 있고 천상계에 가까운 나라도 있고. 또 그 나라 안에도 어때요? 축생 아귀도에 있는 사람 있고, 축생도에 있는 사람도 있고, 또 그 사람 중에도 그 머릿속에서 이런 고뇌가 같은 사람도 돌고 도는 거요.

 

여러분들 인간 세상에 사는 중에도 육도를 윤회하는 거요. 그래서 우리는 늘 이런 육도를 윤회하는데 육도윤회에 근본 뿌리가 뭐다? 욕구에요. 욕구. 그래서 이 세계를 이 육도가 포함된 세계를 뭐라고 한다? 욕계다. 이렇게. 부르는 거요. 이 심우도라는 거는 어리석은 중생으로부터 시작해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러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그 과정을 소를 찾는 그림으로 설명해놓은 게 뭐다? 심우도에요. 그러니까 목동이 소를 찾아가는 그런 형식을 빌려서 진리를 찾아가는 거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서 어떻게? 뭘 찾아야 될지 모르는 그런 첫출발에서부터, 그러다가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고, 흔적을 알게 되고, 그다음에 소 뒤, 엉덩이짝을 보게 되고, 그러고 소를 발견하게 되고, 소를 타게 되고, 이런 식으로. 그렇게 해서 보통 공으로 돌아가는 이런 삶까지가 8번째죠. 사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끝이 나야 되요. 그러나 대승불교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래십대발원문에 비유한다면 출발이 뭐요? 원아영리삼악도 원아속단탐진치 원아상문불법승 이렇게 해서 원아결정생안양 원아속견아미타하면 끝나야 되잖아. 안양에 이르렀다. 극락에 이르러 누굴 만났다? 아미타부처님을 만났으면 끝나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원아분신변진찰 원아광도제중생 이런단 말이오. 이 몸을 인연 따라 티끌처럼 나투어서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는 거요. 그것처럼 이런 삶 다음에 다시 어때요? 냇가에 가서 낚시 짓을 하고 있다.

 

바로 이 세상에 돌아와서 이 세상 속에서 한가이 노니는. 그런 진리를 찾아가는 이걸 우리가 법계로 나누면 몇 법계로 나눈다? 사법계가 있습니다. 원효대사 제가 설명할 때 네 가지 법계를 설명했는데 첫 번째가 사법계. 두 번째가 이법계. 세 번째가 이사무애법계. 네 번째가 사사무애법계. 이 네 가지 법계로 또 이 진리의 세계를 설명합니다. 화엄경에서는 네 가지 법계로 설명을 하죠.

 

그런 거를 소를 찾아가고, 소를 타고, 돌아오고, 집으로 돌아오고, 공으로 돌아오고 다시 낚싯대를 매고 낚시하는 모습으로 이렇게 가는 걸로, 그것도 그림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그런 어떤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것이 十牛圖십우도(혹은 心牛圖심우도) 그림이다. 이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