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과학·북툰·SOD

[북툰] 석탄이 3억 년 동안 해온 일

Buddhastudy 2022. 5. 26. 20:13

 

 

 

13세기 후반에 중국을 여행했던 마르코 폴로는

중국인들이 장작처럼 타는 검은 돌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연료라고는 거의 나무가 전부였던 당시 유럽이었으니

중국의 가정용 석탄이 신기해 보였을 법합니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4000년부터 땅에서 석탄을 파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화덕과 용광로를 데우기 위해 석탄을 사용했고

 

기원전 1000년 경에는 구리를 제련하는 대에도 석탄을 활용했습니다.

사실 마르코 폴로가 살던 중세 시대에 그 용도가 잊혔을 뿐

석탄은 고대 유럽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기원전 3000년경 영국의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는

화장용 장작더미에 석탄이 활용되었던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300년 무렵 그리스에서는

대장장이들이 석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을 점령한 로마인들은

석탄을 캐내어 용광로와 가정용 벽난로에 썼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로마식 공중목욕탕의 물을 데우는 데에도 석탄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석탄은 별로 중요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숯을 만들 나무가 풍부하고, 수차 같은 동력도 충분한데

굳이 힘들게 석탄을 캘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석탄이 본격적으로 인류의 땔감이 된 시기는 18세기 산업혁명 때부터였습니다.

1700년대 후반에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실용화되면서

영국의 공장들은 빠르게 기계화되었습니다.

작은 증기기관은 나무를 써도 되었지만

더 큰 기계를 움직이려면 더 값싸고 농축된 에너지원이 필요했습니다.

 

대규모로 캐내기만 한다면

석탄은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연료였습니다.

 

 

--새로운 연료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영국에서 최초의 대규모 탄광들이 개발되었습니다.

웨일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를 가리지 않고 거대한 탄전이 형성되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일꾼들이 탄광으로 몰려들었고 수백만 톤의 석탄이 채굴되었습니다.

 

1800년에 이르렀을 때 영국의 석탄 채굴량은 전 세계 채굴량의 무려 83%를 차지했습니다.

 

19세기에는 산업혁명이 다른 나라로 전파됨에 따라 석탄 채굴도 같이 전파되었습니다.

독일의 루르 계곡 일대에 대규모 석탄층과 철광 퇴적층이 개발되면서

그 지역은 강력한 산업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프랑스, 벨기에, 헝가리,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석탄 퇴적층이 발견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주로 애팔래치아 산맥 주변에서 큰 석탄층이 발견되었습니다.

 

20C, 석탄 수요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다시 급증했습니다.

탄광업은 이제 전세계로 퍼져갔습니다.

남아프리카, 인도, 일본에서 대규모 석탄 퇴적층이 개발되었고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양질의 석탄층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남북한에 골고루 탄광이 들어섰습니다.

 

21C, 오늘날 전 세계의 석탄 생산을 주도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2020년에 중국에서 생산된 석탄은 자그마치 39억 톤이 넘습니다.

이는 전 세계 석탄 생산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마르코 폴로가 지금 중국을 방문한다 해도 여전히 놀랄 만한 중국의 석탄입니다.

 

 

--석탄기

석탄은 산업혁명만 일으킨 게 아니었습니다.

석탄 탐사로 인해 지질학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지질학자들은 주요 탄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석탄이 특정 순서로 배열된 암석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순서의 지층을 함탄층이라고 불렀습니다.

 

함탄층은 이후 석탄기라는 지질시대를 명명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석탄기는 말그대로 지층에 석탄이 많이 포함된 지질시대를 의미합니다.

연대상으로는 약 36천만 년 전에서 3억 년 전, 데본기와 페름기 사이에 위치합니다.

 

석탄은 지질시대에 매몰된 식물이 열과 압력을 받아서 변질된 가연성 암석입니다.

, 석탄의 근원은 식물입니다.

 

 

그런데 석탄은 왜 석탄기 지층에만 광범위하게 존재할까요?

식물은 석탄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지층에는 석탄이 없는 걸까요?

 

여기에는 여러 생물학적 사건과 지질학적 사건이 얽혀 있습니다.

먼저 식물의 크기입니다.

데본기 후기까지만 해도 나무 크기의 육상 식물이 없었습니다.

육상 식물은 석탄기에 들어서야 커졌습니다.

석탄기에는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들이 밀림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식물들이 서식하는 강의 범람원과 삼각주, 바닷가 옆 호수에는 거대한 습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습지는 여러 대륙의 충돌 과정에서 생겨난 산맥들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길게 형성되었습니다.

 

석탄기의 습지는 그 전의 습지와도, 오늘날의 습지와도 달랐습니다.

오늘날에는 나무가 죽으면 흰개미나 다른 여러 분해자들이 빠르게 분해합니다.

하지만 석탄기에는 나무를 소화할 수 있는 곤충들이 아직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습지에서 식물이 죽으면 썩지 않고 늪에 고인 산성 진흙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엄청난 양의 식물이 죽는 족족 지각 속에 영원히 파묻혀버린 것입니다.

복합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된 이러한 사건들은 석탄기 전에도 석탄기 후에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식물이 너무 많이 땅속에 파묻히면 지구는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끌어들입니다.

이산화탄소에 포함된 탄소는 원래 식물이 죽으면 다시 대기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석탄기의 탄소는 많은 양이 식물과 함께 땅속에 갇혀버렸습니다.

즉 석탄의 축적은 탄소의 축적을 의미합니다.

 

탄소가 땅속에 축적되기 전인 석탄기 초기는 온실 기후였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고 극지방에는 빙하도 없었습니다.

해수면이 높아서 대부분의 대륙이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탄소 축적이 진행된 석탄기 후기는 냉실 기후로 바뀌었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지고 남극에는 빙하가 생기고 해수면이 낮아졌습니다.

그 뒤로 지구는 대체로 냉실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자연 환경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구의 탄소 중 많은 양이 석탄과 석회암의 형태로 지각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구는 생태계라는 자체 온도 조절 장치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생태계는 대기와 대양의 탄소 순환을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지구의 온도가 너무 치솟거나 너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해줍니다.

 

어쩌면 지구의 이웃 행성인 금성과 화성은

이 온도 조절 장치가 없어서 혹은 있었는데 조절에 실패해서

뜨거운 온실이 되었거나 차가운 사막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도 조절 장치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작동해오던 온도 조절 장치가

처음으로 급격한 작동에 들어갔습니다.

 

인류는 1700년대 이후로 석탄을 캐내어 태우고 있습니다.

3억 년 동안 축적된 탄소가 300년 만에 한꺼번에 방출된 것입니다.

급격한 탄소 방출로 인해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온실 상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석탄은 모든 화석연료 중에서 최악의 온실기체 생성물입니다.

또한 석탄 채굴은 엄청난 양의 폐석더미와 독성을 띠는 진창과 황폐한 풍경을 남깁니다.

 

그리고 석탄은 산성비를 유발합니다.

석탄에는 황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석탄을 태우면 황산이 만들어집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황산은 빗물과 섞여 산성비로 변합니다.

산성비로 인해 한때 독일 남부의 검은숲이 파괴될 뻔했고, 미국 남동부의 숲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20세기 후반부터 각국에서 석탄 채굴에 대한 규제가 시행되었습니다.

덕분에 산성비가 줄어들고 경관도 덜 훼손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석탄은 경쟁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태양에너지 기술의 발전, 대체 에너지원의 개발, 유가 하락, 천연가스의 공급 과잉 등으로 전 세계 많은 광산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2016년에는 북아메리카 최대의 석탄회사인 피바디 에너지가 파산 신청을 했으며

미국 동부에서는 석탄 채굴이 거의 중단되었습니다.

광산업의 원조인 영국에서도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았습니다.

 

현재 거의 유일하게 석탄을 대규모로 채굴해서 태우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도 심각한 대기오염 때문에

석탄 채굴을 줄이는 쪽으로 가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석탄 산업이 중국 경제 전반에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석탄 수급 사태를 겪으면서

사양화되어가는 석탄 산업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끌고 가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시스템인지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석탄은 현대 문명을 건설한 위대한 동력이었습니다.

또한 석탄은 많은 양의 탄소를 땅속에 가둬 놓은 저장고였습니다.

이러한 석탄을 태움으로써

우리는 후손들에게 현대 문명과 온실 지구를 동시에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석탄의 시대는 종말을 맞는 듯합니다.

우리는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가

결코 인류를 위한 공짜 땔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온실 기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화석 연료를 충분히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큰 숙제가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삶이지만

석탄이 던져주는 수억 년짜리 숙제가 무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