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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레바논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6. 22. 19:49

 

 

1. 소개

레바논으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Lebanese Republic ‘레바논 공화국입니다.

 

서아시아의 지중해 동쪽 해안에 면하는 중동 아랍국가로

수도는 베이루트(Beirut)입니다.

 

레바논의 국기는

위로부터 빨강·하양·빨강의 바탕이며

중앙에 있는 초록색 나무는 레바논에 건축재목으로 많이 쓰인 백향목입니다.

빨강은 외세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순교자의 희생을

하양은 평화와 순수 또는 눈으로 덮인 산들을

백향목은 레바논의 상징이자 불멸성을 나타냅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프랑스의 국기인 3색기 바탕에 백향목이 있는 기를 사용했으나

1943년 독립을 선언하며 2가지 색이 가로로 나뉜 현재의 기를 제정하였습니다.

 

레바논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과 동쪽은 시리아, 남쪽은 이스라엘과 접하며, 서쪽은 지중해에 닿아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1로 세계 165위이며

이는 경기도 면적과 비슷합니다.

레바논은 2019년 기준으로 약 6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11위이며

이는 경기도 인구 1300만명의 절반 정도 수준입니다.

 

레바논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520억 달러.

이는 세계 78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탄자니아, 리비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종 구성은 아랍인 95%, 그 외 아르메니아인과 다른 인종들이 있으며

공용어로는 아랍어를 사용합니다.

 

종교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반반으로 이루어진 이슬람교가 약 50%를 차지하며

마론파 기독교가 20%, 그 외 소수 종교들이 있습니다.

 

 

2. 역사

기원전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도시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로마의 지배를 받았는데

특히 로마는 기원전 64년경 레바논을 점령하고 기독교를 포교했습니다.

 

7세기에 들어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된 레바논 지역은

본격적으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11세기부터는 예루살렘의 관문에 위치한 지리적 영향으로

십자군 전쟁의 주요 전쟁터가 되었으며

1516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레바논공국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19세기까지 레바논은

오스만제국의 여러 세력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데요.

1861년 북부의 마론파 기독교인들이

먼저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이 패하면서

1922년 레바논은 시리아와 함께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2년후인 19441월에 완벽한 독립을 달성했습니다.

독립 후 레바논은 친서구적이며 보수적인 기독교파와

아랍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급진적 이슬람교파로 갈라진 세력의 날선 대립 때문에

정국이 매우 불안했습니다.

 

게다가 19485월에 터진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과

1970년대 발발한 요르단 내전 이후에

레바논 지역에는 2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레바논 남부지역은 사실상 정부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근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마론파 기독교도들은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는 팔랑헤(Phalange) 민병대를 결성하였습니다.

결국 1975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지원하는 이슬람교도와

이에 반대하는 팔랑헤 민병대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으며

시리아군까지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이스라엘은 빈번하게

레바논을 침공하여 점령과 철수를 거듭했고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랍평화군 역시

주둔과 철수를 거듭하면서 제 기능을 못했습니다.

 

특히 1982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시작된 레바논 전쟁으로 인해

레바논 전역이 거의 황폐화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레바논 사태는 정부군에 맞서

저항을 지속해온 기독교민병대 장군인 미셸 아운이

1990년 정부군에 망명하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습니다.

 

기독교파와 이슬람교파 등 민병조직들의 지도자들이 모여

거국내각을 출범하고 재건을 모색했으며

2005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철수하자

잇따라 시리아군도 철군했습니다.

 

 

3. 정치 & 경제

레바논의 정치는 종교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18개가 넘는 다양한 종파간의 세력다툼이 있고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인데요.

 

레바논의 정치는 종교적 다양성이 종파간의 갈등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종파들이 섞여 사는 나라인 만큼

1943년 건국 당시 제정된 국민협정에 따라

반드시 대통령과 군 참모총장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는 정교회 신자

군 사령관은 드루즈파여야 합니다.

 

레바논은 의회 투표를 통해

마론파에서 6년 임기의 대통령을 선출하며

2019년 대통령은 2016년부터 13대 대통령을 역임해온

미셸 아운(Michel Aoun)’입니다.

 

또한, 국회의원은 기독교와 무슬림이

각각 64명씩 동수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레바논은 종파갈등으로 오랜 내전을 겪었지만,

중동지역에서는 민주주의가 잘 운영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레바논은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1차산업은 거의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산업별 GDP구성비율에서는

서비스업이 7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금융업은 내전 종식 후 복구사업 중 가장 성공한 분야입니다.

 

최근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의 금융업은

연간 10%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과 생산 산업 분야에서는

포괄적인 산업정책의 부재와 부족한 인프라, 오래된 장비와 숙련노동자 부족 등으로

크게 낙후되어 있어

상당수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사업이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레바논은 지중해 연안의 좁은 해안평야 지대를 제외하면

전체가 산으로 되어 있으며

국토 중앙에 레바논 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습니다.

 

국토 면적은 매우 작은 편이나

지중해에 면한 좋은 위치와 아름다운 환경 덕에

예부터 중동의 진주(Pearl of Middle East)”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좁은 해안평야에서 레바논산맥에 걸치는 지역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납니다.

여름에는 기온이 높고 비가 적으나 겨울에는 따뜻하고 강수량이 많은 편입니다.

연평균 기온은 20도 내외이며 내륙으로 갈수록 기온이 높고 건조해집니다.

 

특히 수도인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야경이 화려하고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합니다.

 

다른 중동나라들과는 달리

여성들이 히잡이나 차도르를 하지 않고

심지어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술도 직접 생산하고 있어

다른 아랍국가들과는 달리 확실히 자유로운 분위기입니다.

 

레바논의 교육제도는

아랍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가장 잘 정비되어 있어

오랫동안 중동지역의 교육중심지였습니다.

 

특히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교는

아랍세계의 학술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의료시설 역시 잘 발달되어 있어

인접 아랍국가에서 질병치료 목적으로 레바논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레바논에서는 농구의 인기가 굉장한데다

농구실력 역시 아랍 최강이라고 합니다.

 

한 레바논은 이집트, 터키, 모로코와 더불어

중동권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이기도 합니다.

특히, 뮤직비디오와 TV오락프로그램 제작이 매우 활발한 편인데요.

중동 가요계에서 레바논 가수들의 인기는 가히 독보적이라고 합니다.

 

아랍 전역에서 인기가 많은 대표적인 레바논 가수로는

낸시 아즈람, 하이파 와흐비, 엘리사르 쿠리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다른 아랍국가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며

유행을 이끄는 트렌드 세터이기도 합니다.

 

 

5. 인물

레바논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전 세계적으로 3천만부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가수

엘리사르 자카리아 쿠리(Elissar Zakaria Khoury)’가 있습니다.

 

엘리사로 알려진 그녀는

레바논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이며,

World Music Awards에서 중동 예술가를 위한 세계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1972년 레바논출신 아버지와 시리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명문 레바논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정치보다는 무대에 관심을 가졌고

쇼 비즈니스와 음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나갔습니다.

 

그녀의 데뷔는 20대 초반

레바논에서 4년마다 열리는 가장 큰 음악대회인

스튜디오 엘 판 Studio El fan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실력있는 신인 가수로 주목받은 그녀는

1999년 세계적인 레코드사인 EMI 레코드에서 앨범을 발매하였고

같은 해 미국의 샴푸 대기업 브랜드인

헤드앤숄더 Head & shulders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그녀는 국제적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엘리사의 활동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았고

2000년대 초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앞에서 공연한 유일한 아랍 예술가로

레바논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됩니다.

 

이어 2002, 파리에서 뮤직 비디오를 찍을 당시에는

아랍어 예술가로서는 처음으로 파리의 명품브랜드인

Christian Dior과 활동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엔터테이너로 영향력이 커진

그녀는 2010년 이후로 중동에서의 여성질병에 관한 캠페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방암 검진이 금지되어 있는 중동 문화권에 대해

금기를 깨는 활동을 권장하며

질병을 이기기 위해서는 여성건강검진으로

암을 조기 예방할 수 있다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