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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4대문명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3. 7. 5. 19:34

 

 

 

지구의 나이는

클레어 패터슨이 운석 파편의 납 연대 측정으로 간접 지질 조사한 바로

45억년 정도가 되었으며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난 이후로

점차 진화하며 인류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선조라 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원인(猿人)

300 만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지구역사의 0.0006%에 불과하죠.

 

100만년전부터는 세계 각지에서

자바 원인 등을 포함한 호모 에렉투스가 나타나

석기와 불을 사용했습니다.

 

15만년전에는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나서

오랜 기간동안 천천히 진화하였으며

지금으로부터 수만년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에 크로마뇽인이 등장했죠.

 

빙하기도 끝나고 신석기로 접어들며

수렵과 채집을 해오던 인류는

1만년전부터는 농경과 목축을 하며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및 농경에 적합한 큰 강들이 있는 곳에서

4대문명이 발생하는데요

티그리스 및 유프라테스강, 나일강과 인더스강,

그리고 황하 강 유역에서 세계 4대 문명이 발생했고

그 외 지역에서 미케네, 마야 문명 등이 생겨났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4대 문명 중에서 가장 먼저 농경이 시작된 곳으로 알려진 곳은

티그리스 강 상류에 있는 자르모였습니다.

자르모는 이라크 북동부 키르쿠크의 동쪽 50km쯤에 있는 지역으로

이 에서는 기원전 6~7000년경부터 밀과 콩 등을 재배하며, 가축을 키웠죠.

 

유목민 생활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변경 과정으로

다른 말로는 획득경제에서 생산경제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자르모 유적지에서는

채색 도기라든가 돌도끼 등의 장신구 등이 발견되었고

천을 짜는 기술은, 후에 이집트와 인도로 전해지게 되죠.

 

기원전 3500년경에 이르러서

현재까지 밝혀진 최초의 인류 문명이라 하는 수메르인의 우르를 시작으로

메소포타미아에는 많은 도시 국가들이 세워지고

그들은 설형 문자, 태음력과 점성술을 사용하는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그러다, 기원전 2350년경을 전후로 하여

북쪽에서 내려온 아카드 인의 침입을 받으며 정복당하게 되죠.

기원전 2000년 경에 접어들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바빌로나아가 통일하게 됩니다.

 

바빌로니아 왕국은 기원전 700년경까지

수차례나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며

8왕조가 번갈아 교체되었죠.

 

1왕조에 있었던 유명한 왕으로는

함무라비 왕이 있었으며,

그는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지금까지도

전 세계 교과서에 유명세를 떨치게 됩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천문, 수학을 발달시켜

지금의 요일 개념인 일주일을 7일로 정하고

12시간을 6060초로 나누는 등

현대 사회에도 요일과 시간의 개념을 쓰게 되었죠.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신화와 홍수에 대한 전설 등은

그리스 신화나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문명>

이집트의 땅이 비옥한 것은 정기적인 나일강의 범람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이어 농경 생활을 시작했죠.

 

기원전 4000~5000년경

아라비아 남부로부터의 이주민인 함족은

나일강 하구에 정착하여

점점 나일강 유역과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갔습니다.

 

그들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에 많은 도시국가를 세웠고

기원전 3000년경, 상이집트의 메네스왕은 상하 이집트를 정복함으로써

최초의 이집트 통일 국가를 건설하게 되죠.

 

고대 이집트 왕조의 기간은 1왕조시절의 1대왕 메네스로부터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 정복될 때까지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이 이어졌으며

26번의 왕조가 바뀌게 되는데

한 왕조당 적게는 5명의 왕이

많게는 10명의 왕이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고왕국 시대의 수도는 멤피스였으며

다수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이 시절 동안 지어졌습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 권력의 상징이었죠.

 

중왕국 시대의 이집트는 수도를 테베로 옮기게 되었고

다양한 건축물을 짓게 되는데, 중왕국 후기에 가서는

서아시아의 힉소스인에게 델타 지대를 약 150년간 정복당했습니다.

 

하지만, 중왕국 막바지인 기원전 1570년경

18왕조 1대왕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인을 몰아내며 신왕국이 시작되었죠.

 

신왕국의 이집트는 제18, 19왕조에 전성기를 이루어냈으며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 시절에는

최대로 영토를 넓히게 되는데

남쪽으로는 수단, 북쪽으로는 시리아를 정복합니다.

 

이후로 이크나톤이라 불리는 아멘호테프 4세는

수도를 아마르나로 옮기고 태양신 아톤만을 숭배하며

이전에 있었던 신들에 대해 부정하며

세계최초의 종교개혁을 실시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의 시도는 오래가지 않아

신하들에게 반발을 받게 되었으며

이집트는 다시 다신교를 숭배하게 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히에로글리프라는 그림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천체운행의 계산으로 산출되는 날짜와

천체의 출발시각 등을 정하는 역법에 뛰어났습니다.

 

많은 수의 신들을 받드는 덕에 신관의 권력이 강해졌으며

이승이 끝나고 저승 세계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미라와 많은 다수의 부장품들을 무덤에 넣어두었죠.

 

 

<인더스 문명>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 지대에서도 문명이 발생합니다.

인더스 문명이라고 하는 이곳에서의 대표적인 유적지는

하라파와 모헨조다로가 있죠.

 

하라파의 최전성기는 기원전 2600년경부터 기원전 2000년까지 추정되며

유적의 넓이는 사방 약 1킬로미터로

크게 성곽요새지구와 시가지구로 나뉘었습니다.

 

성곽요새지구는 회의장이나 목욕탕, 곡물 창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시가지는 크게 파괴되었으나

성벽의 주위벽과 그 북쪽에는

제분장, 곡물창, 노동자 아파트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하라파와 인더스 문명을 함께 대표하는 유적으로 꼽히는 모헨조다로는

하라파와 마찬가지로 서쪽의 성곽요새지구와 동쪽의 시가지구로 나뉘었습니다.

 

모헨조다로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모든 인더스 문명권의 목욕탕 중 가장 큰 목욕탕이 있었으며,

남쪽과 북쪽으로 계단이 있어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되었죠.

모헨조다로의 목욕탕은 목욕을 하는 목적보다는

제례를 행하는 장소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잘 정비된 도시에는 공중목욕탕뿐만 아니라

포장된 도로와 배수 시설이 갖춰졌으며

건물은 대다수 벽돌로 건축되었죠.

 

인더스 문명이 사라지게 된 이유로는

강의 범람으로 사라졌거나

혹은 아리아인의 침입을 받아 멸망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인도인을 차지하는 아리아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1500년경 이곳으로 침입하며 원주민을 정복했다는 가설이 있죠.

그후 아리아인은 문명의 중심지를 겐지스강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황허 문명>

앞서 세 문명보다는 다소 늦은 기원전 2000년경

중국에서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황허강을 두고 문명이 형성됩니다.

 

황허문명은 황허 유역에서 나타난 중국의 고대 문명을 뜻하기도 하죠.

기원전 1600년경, 은이 도시 국가를 통일하면서

중국 최초의 왕조를 세우게 됩니다.

 

농업과 목축이 발달한 은나라에서는

청동기와 갑골 문자 등을 사용했죠.

 

은나라의 다른 말로는 이라는 표현이 있어

상나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좀 더 명확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은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였을 뿐이며

은이라는 명칭은 다음 나라인 주나라가 상나라의 주민들을 낮게 부르는 호칭이었던 거죠.

 

하지만, 중국의 문헌 기록에는

이 아닌 이라고 표기가 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기원전 1046년 주나라 무왕은

상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이는 자신이 신하의 몸으로 기존의 왕을 공격한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에

주나라 건국의 정통성이 흔들리는 상황이었죠.

 

이때, 사용한 주나라 무왕의 아이디어는

천명사상이라는 것을 도입해서

하늘의 명에 따라 어지러웠던 상나라를 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 쿠데타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상나라를 폭군으로 묘사하였고

상나라를 보다 작은 나라로 표현하기 위해

은나라라고 기록하게 되었죠.

 

은나라 혹은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경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 존재하였으며

전설상의 하 왕조 뒤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군소 국가의 연합체였지만

점점 강력한 정치 체제가 잡혀갔죠.

 

기원전 13세기 경 안양 현에 도읍을 정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청동기 주조 기술, 전차, 갑골 문자 등으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메노스 & 미케네 문명>

4대 문명의 큰 강들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에게해를 둘러싼 그리스 지역에서 미노스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발원하였습니다.

 

미노스 문명 또는 크레타 문명은

기원전 27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까지 번성했으며

그리스의 크레타섬에 있던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이죠.

 

그리스 지역은 산지가 많고, 땅이 비옥하지 않아

농사를 짓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의 주식인 밀 농사보다는

올리브 등의 과실나무를 재배하고 양을 키우게 되었죠.

 

내륙의 목축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바다로 나가 외국과 무역을 한다거나 어업에 종사하기도 했습니다.

 

바깥세상과 이질적인 문화를 많이 접한 이 지역 사람들은

일찍부터 예술에 눈을 뜨기도 하였죠.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크레타인들은

화려하고 밝은 미노스 문명을 만들어 나갔는데

대표적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크노소스 궁전이 있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낮은 언덕에 위치해 있고

궁전의 가운데에는 장방형의 커다란 뜰이 있으며

거실이나 침실 등 여러 종류의 방들이 에워싸고 있죠.

 

그리고 저장실에는 술과 식량들을 넣어두는

커다란 항아리들이 길게 열을 지어 있어

크레타 왕족의 부유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후 기원전 1600

크레타 문명을 정복하고 번영한 미케네문명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조상들로 추측되기도 하며

오리엔트 문명을 그리스에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죠.

 

400년간 지속된 미케네문명은

위계질서가 강한 제도적 특성을 보였는데

촌민을 뜻하는 다모(damo)

촌장을 뜻하는 파시에루(pasireu)

왕을 뜻하는 와나카(wanaka) 등의 점토판의 단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생산의 주요 주체인 농업은 촌민이 도맡아 하는 편이었으며

제작 등의 고급 기술은

다른 식민지로부터 데리고 온 노예들이 담당했죠.

 

밝은 분위기의 미노스 문명 때와는 달리

실용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케네문명의 문화는 거대한 성채가 발견되었으며

인물의 문양이 새겨진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장식물을 통해서

포세이돈 같은 신들을 숭배한다고 추측하게 되었죠.

 

그들의 멸망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도리아인들이 남하하며 선진 무기에 뒤처져

미케네의 왕국들은 모두 멸망하게 됩니다.

 

 

<올멕 & 마야문명>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언제부터 인류가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현재는 베링육교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베링해협은 현재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해협을 말하는데

기원전 2만년경의 베링해협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몽고계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했다는 설이죠.

 

아메리카에서는 B.C 1500년에서 B.C 1200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추측되는

올멕 문명이 있습니다.

고대 멕시코에서 일어난 문화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모체를 이루고 있죠.

 

이들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올멕이라는 의미는 고무가 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올멕인은 라벤타, 산로렌소, 트레스사포테스 세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며

이 중 산로렌소가 종교,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죠.

올멕 문명은 천문학과 문자가 발달하였으며

큰 돌을 이용하여 피라미드나 돌 비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메리카에서는 올멕 문명 이후에 나타나는 여러 문명에 영향을 끼쳐

어머니 문명으로 부르기도 하죠.

 

올맥인들은 중미 전 지역과 남미 중북부에 서식하는 재규어를 숭상하였으며

인간과 재규어가 합체한 신을 섬기거나

그 인형조각을 만들기도 했었죠.

 

반인-반재규어 상에서는

인간의 삶은 또 다른 자아인

다른 동물의 운명과 결합된다고 믿었는데

올멕인들은 바위나 도끼 등에 반인-반재규어 상을 조각했습니다.

 

이후 기원전 600년경부터 기원전 400년경 사이에

마야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는 마야 문명이 발생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인접해있던 올멕 문명은 멸망하기에 이르죠.

 

마야 문명의 초기는 화전농사를 기반으로 촌락의 형태를 띠다가

기원후에 접어들면서 티칼의 신전 건축 같은 기술을 보이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마야 문명은 선택된 신관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과테말라, 온두라스 전역으로 뻗어나가게 되죠.

 

마야 문명은 오랫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가운데

16세기 스페인의 에르난테스 데 코르도바가

유카탄 연안에 상륙하면서 정복당하고

긴 세월의 마야 문명은 멸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인류의 탄생과 4대 문명에 대하여

10분 정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알고 있는 4대 문명 이외에도

미노스 & 미케네 문명

그리고 아메리카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았는데요.

지금까지 재밌는 이야기와 함께하는 세계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