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나는 누구인가 19. 깨달음, 입자와 파동을 알면 끝난다(2)

Buddhastudy 2023. 9. 7. 19:26

 

 

그렇다면 도대체 실제 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태생적 특성에 의해 정보를 입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것으로 본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게 만든다.

정보가 진짜이고, 입자가 편리를 위해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양자역학의 결론은 모든 것이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은 관측 결과로 인해 깨진 지 오래이다.

입자는 파동을 3차원 방식으로 치환한 가상적 개념이다.

 

2차원 평면 세계 사람들이

사각뿔을 평면화시킴으로써 실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파동을 3차원 입자로 치환함으로써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하지만 편리를 진실로 믿어서는 안 된다.

믿고 싶은 것만 믿어서는 진실을 영원히 알 수 없다.

 

1923년 노벨상을 수상한 밀리컨의 경우처럼

자신의 믿음을 위해 반대되는 실험 결과를 모조리 삭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양자역학에서 봤을 때

파동의 증거는 충분히 나왔지만, 입자의 증거는 없다.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는 입자는 모두가 입자성을 말한다.

입자와 입자성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입자는 물질이지만 입자성은 여전히 그 정체가 모호한 정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자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실험실 밖에서만 존재한다.

우리의 관찰을 통해 그것이 3차원 정보와 맞닿을 때

비로소 입자라는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입자,

이것은 두 개의 밑변과 한 개의 높이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맞춰진 인식 대상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

이것이 곧 파동이다.

파동은 항상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것을 관측에 의해 3차원과 접하게 되면 입자성을 띠게 된다.

고양이의 생과 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벽돌보다 그것을 구성하는 시멘트와 모래가 진실에 가깝다.

쪼갤수록 진실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먼 옛적 광활한 우주를 논하다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쪼개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그 결과 오늘날 양자역학, 입자물리학, 핵물리학, 응집물질물리학, 분자생물학 등이

크게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이런 노력을 거쳐 얻게 된 보배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동이 입자에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파동은 입자에 매인, 우리 3차원의 한계를 넘어

고차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안내자이다.

 

 

그렇다면 물질의 속성인 파동을 어떻게 해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파동이 관측에 등장하면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매질이다.

이것은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됐는데

바로 이 문제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번의 큰 오류에 빠지게 된다.

매질을 찾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입자로 되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입자를 포기하면 매질은 필요가 없다.

물이나 공기와 같은 매질은 입자가 파동을 이룰 때만 필요한 대상이다.

 

 

그렇다면 매질도 없이 홀로 파동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건 마치 황무지의 돌을 던졌더니 갑자기 물보라가 일어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정보란 [결정이 유보되어 여러 가능성을 고루 함축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상태 중첩으로 있고 그것이 움직이면 파동을 이루게 된다.

정보의 특성이 매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평면 세계 생물들이 사각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높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 없이는 영원히 사각뿔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획기적인 사고의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참된 존재는 어떤 입자나 물질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정보로 되어 있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 하나를 이해하는 데 있다.

[정보가 우주를 구성하는 참된 질료]라는 사실

이것을 바로 인지하는 것은 2차원 평면 세계의 생물들이 높이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러려면 입자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려운 일이다.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어떡하든 입자로서 미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양자장론이나 초끈이론도 그렇고

요즘 상당히 부각하고 있는 루프양자중력이론도 그렇다.

 

특히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입자에 대한 중독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핵심만 간단히 설명하면

원자핵보다 수천억 배나 작은 공간양자들이

고리로 연결되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가설이다.

 

이로써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 함인데

입자에 대한 불변의 집념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정보를 질료로 삼게 되면

철학의 첫째 화두인 제1원인의 문제가 풀린다.

정보는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비유비무한 통합적 개념이다.

그렇기에 자존의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

유인 물질에서 제1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또한 공간의 유한과 무한의 문제 자체도 사라지고,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던 실존과 차원에 대한 논의 역시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

시각을 좁혀 현대물리학을 보아도 여러 난제들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다.

앞서 본서의 전편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역학의 문제 대부분에 대한 밑그림을 보여준다.

 

다만 생활의 편리에 있어서는 여전히 입자로 치환하여 계산하는 것이 유익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3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3차원을 떠받치는 입자와 질량 물질에 대한 개념이 없이는

우리 세계를 지탱할 힘도 없고 발전시킬 여력도 없다.

 

편리와 진실에 대한 구분만 확실히 한다면

다시 말해 [편리를 위해 입자와 질량, 물질을 취했다]는 점만 분명히 인지한다면

지금까지 쏟아부은 인류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파동의 실제를 강조하다 보니 설명이 다소 길어졌다.

아무튼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결정이 내려진 3차원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관측하면 양자 세계의 파동이 3차원으로 쪼그라들면서 결정된다.

상태의 중첩이 깨지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물리 법칙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양자역학에 있어서의 관찰자는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지닌다.

비유하자면 관찰을 통해 3차원의 정보를 고차원 파동에게 전달하는 [차원의 전도사]라고나 할까.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우리의 관찰이

특정한 실험실 내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나의 관찰에 온 우주가 반응한다.

내가 안드로메다에 가서 관측을 해도 양자의 세계는 그 관측을 의식하여 반응한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였던 나에게

온 우주가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놀라운 호응을 보내는 것이다.

 

내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온 우주가 나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