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고통이 불행이 될 필요가 없다

Buddhastudy 2023. 9. 25. 19:54

 

 

pain은 통증 같은 것이다.

suffering은 여기에 정신적인 번뇌가 더해진 것이다.

 

병이 난다든지 직장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든지 하는

고통이나 삶의 어려움은

내가 그리고 있는 삶의 그림을 위태롭게 한다.

그 때문에 괴로움으로 번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므로

굳이 무언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거두어지면

삶은 더 풍요롭고 여유있게 바뀐다.

 

더 잘 집중할 수 있어서 하고자 하는 것도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고통이나 좌절, 실패는 불행이 될 필요가 없다.

감정을 인정해주고 보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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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살다 보면 고통을 많이 받잖아요.

그래서 마음공부도 하는 거고

 

근데 이 고통하고 불행하고 꼭 같은 말일까?

그래서 제목을 고통이 꼭 불행이 될 필요가 없다. 둘은 다른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다 보면 뭐 어려운 일이 많이 있죠.

중년 이후에는 특히 위기라고 할 정도로

큰 병이 난다든지, 또 큰돈을 잃어버린다든지

어떤 관계가 심각하게 깨진다든지

중년의 위기,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데의 위기는 대단히 힘이 듭니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또 막연히 좀 빨리 뭔가 자리를 잡고 싶다라고 하는 초조감

또 이런 것 때문에 고통이 많죠.

 

그래서 그걸 영어로 말하면 pain, 이렇게 통증 같은 거죠. 육체적인

혹은 심리적으로 상심하거나

또는 물리적으로 배가 고프다든지, 춥다든지 이런 것도 다 pain이죠.

 

그런데 그 pain도 여러 가지기 때문에

아주 순간적으로 배가 고픈 거는 밥 먹으면 되니까

이거를 뭐 나는 배가 고파서 불행하다.’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러나 몇 가지 반복되고 심각한 것들은

이 고통이, pain이라고 하는 것이

곧 나에게 suffering 번뇌가 되는 것이죠.

그런 번뇌로 넘쳐나면 나는 불행한 삶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을 얘기해 보도록 합시다.

 

suffering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의 확장형 혹은 넥스트 스텝인데

심리적인 고통, 즉 번뇌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죠.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 혹은 두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이 suffering은 직접적인 통증이 아니라 정신적인 거죠.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이 상황이 마땅하지 않아서 받아들이기가 싫은 겁니다.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싫은 것은 더 힘들잖아요.

그게 마음이 고된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거기다가 사건을 다루지 않고

스토리를 다루는 재주가 마음은 탁월합니다.

뭐냐 하면 마음은 이런 이런 사건들을 연결시켜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거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떤 고통을 겪는다,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하면

내가 그리고 있는, 내가 살고자 하는 라이프 플랜

인생의 어떤 좋은 그림이 있는데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요. 가기 위한 계단 같은 거죠.

 

그런데 두 번째 계단이 빠져버렸네

나 그러면 안 되는데 내 그림이 무너지는데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이번 생은 망한 것 같은데뭐 이렇게 되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굉장히 커져서

정신적인 고통까지 추가가 되는 것이 painsuffering의 차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은 마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살아보려고 했던 마음이 다치겠죠, 다치고.

그다음에 닫히겠죠,

닫혀버리고 마침내 마음이 죽어서 살아 있어도 생생하지는 않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것은 나이하고 상관없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런 식으로 스스로 닫아버리고 나면

거의 마음이 죽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울해지고 그다음에 그 극단의 자살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죠.

 

실제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청년들의 자살이, 전체적인 자살률도 높지만

특히 청년과 노년의 자살률이 높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painsuffering으로 정신적인 짐까지 추가해서 경험하게 되면

결과가 안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듬어봐야 될 것은

pain에서 꼭 suffering으로

그러니까 육체적 물리적 또는 상황적

실제로 고통스러운 일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곧 정신적인 번뇌로까지 굳이 가야 되냐, 좀 이게 뭐가 없냐, 방법이.

이걸 찾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쁜 일, 또는 뭐 안 좋은 일이 있고, 또 좋은 일도 있고 그렇잖아요

뭐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돈을 투자해서 실패할 수도 있고

아이가 대학에 합격할 수도 있고

또 불합격할 수도 있고

의도하는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정말 서로 합이 안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근데 이게 좋은 일을 만나면

그냥 그 좋은 일을 만끽하면 되는 것이죠.

이걸 계속 늘려가야 돼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거고

 

또 안 좋은 일을 만나면 안 좋은 일이 왔구나.’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자꾸 스토리를 쓰지 않는 것이죠.

이래갖고는 내 인생이 어찌 되겠나

이렇게 할 게 아니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나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실제로 나쁜 일이 일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나한테 좀 중요하고 위험한 일일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중해야 되죠.

집중해서 그 사안과 어떻게 보면 맞붙어야 되죠.

 

근데 그럴 때에 난 이 상황이 싫어, 난 도망가고 싶어.

어쩌다가 나에게 이런 일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이런 말, 한탄이죠.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갖고는 내가 그리고 있는 멋진 삶에 도달할 수 없어.’

이러면 실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되겠죠.

이런 것들은 전혀 에너지가 안 된다.

 

그래서 좋은 일은 만끽하자.’

그리고 안 좋은 일은 집중해서 대응하자. ’

이런 정도의 얘기가 되는데 그게 잘 안 되죠.

 

잘 안 되는데 왜 그런가 하면

이 고통이 정신적인 번뇌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

우리 마음이 갖고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책임감 같은 거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된다라고 하는 책임감

그다음에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이거는 내가 좀 이루고 싶다라고 하는 것들

 

그다음에 또 비교하는 것들이 있죠.

이 정도는 살아줘야 된다.

이 정도는 살아줘야 남부럽지 않거나 쪽팔리지 않는다.

이런 삶의 레벨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깨질 것 같으니까

내가 만약에 병이 나서 노동력을 일부 상실했다. 그러면

내가 그리는 이런 그림들이 깨질 것 같으니까

이래갖고 내 인생이 어디로 처박히겠노

이런 걱정을 하고 실망을 하고 불행감을 느끼는 것이죠.

 

근데 사실은 이것들이 다 뭐죠?

생각이라는 것이죠.

내가 하는 생각, 내가 그리는 인생의 그림

이것이 생각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사람과

 

그 생각이 자기를 끌고 가서, 멱살을 잡고 끌고 가서

너는 그런데 이것 이것 때문에 안 되니까, 너 인생은 이번에 나가리야.’

이렇게 생각해서 불행하게 되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차이는 클 것이다, 갈수록.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정신적 번뇌는 결국은 뭐냐 하면

마음이 더 나은 상태, 더 멋진 상태를 원하는, 탐하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런데 세상일이 나의 뜻, 나의 바람과 같지 않잖아요. 맞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 같지 않으니까

이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태를 불교에서는 두카, 괴로움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불교에서는 사람이 고통받지 않으려면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봐라.

왜냐하면

이게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하는 심리적 판단으로 보면

기쁘거나 괴롭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고

이러니까 마음의 평정심을 가질 수 없다.

있는 그대로 봐라라고 하는데

 

이미 마음이

내가 이런 삶을 살아야 돼라고 하는

욕심, 포부를 가진 사람은 어떤 조건들이 비틀어지면 바로 어떻게 됩니까?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큰일인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마음의 동의 없이 본다는 건 사실은 불가능하죠.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본다라고 하는 것은

왠지 패배자가 정신 승리하는 말같이 느껴지고

그러면 더 스스로 막 열패감을 느껴서

그거는 그런 식의 것은 정신 건강에 더욱 해롭다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렇지만 진실은 때로는 잔인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을 우리는 모두 가집니다.

뭐 나쁘지 않고 사회가 격려하는데

더 나아진다라고 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보면 열등감이죠.

 

내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 장차 아무것이 되겠다는 거잖아요

장차 뭔가가 되겠다.

내 자리를 잡고,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우뚝 서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반대는 뭡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이 상태가 불편하다

이런 것이잖아요.

 

근데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된다.

왜냐하면 너는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네가 뭘 이룬다하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중력 아래에 있어서

얼마만큼 하늘 높이 올라가더라도 다시 떨어지게 돼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사이에, 태어났다가 죽는 그 사이에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그 사이에

무엇을 하든지 그것은 즐겁게 해라, 즐겁게 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은 다 같은 조건인 것이죠.

 

그래서 인간은 또는 우리는

잘 된다라고 하는 것의 개념을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다라고 이미지를 그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돌이나 쇠처럼 단단하고 강해져야 된다.

부딪히면 저쪽이 깨져야지 내가 깨지면 안 된다.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죠.

 

그런데 예를 들면 물은 어떨까요?

물은 돌이 팍 들어오면 돌을 막아낼 수는 없죠.

출렁하고 이렇게 하지만 다시 또 잔잔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유연한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더 낫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죠.

 

근데 조금 더 들어가서 허공은 어떨까요?

번개가 내리치고

하늘에서 막 구름, , 헬기나 전투기들이 서로 싸움을 하고 막 이렇게 해도

허공이 흠집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돌 같고, 쇠 같은 삶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물 같고, 허공 같은 삶이 훨씬 건강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상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물결이 출렁거려도 물이 없어지지는 않고

허공에 온갖 것들이 생겨나도 허공 자체가 없어지지 않으니까

여유를 가질 수가 있죠.

여유를 가지고 또 유연하게 삶을 만끽할 수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물은 잔잔할 수도 있고 바람이 불 수도 있고

또 허공은 맑을 수도 있고 흐릴 수도 있고

하지만 허공 자체가 깨지지는 않는다.

이런 것들을 확실히 알게 되면

이 다가오는 현상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토록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나도 어디 몸이 아플 때가 있고

이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하지만 이 고통이 곧 정신적인 번뇌로까지 갈 필요는 없다.

그것을 단절하는 것은

더 나아지고자 하는, 더 잘 살고자 하는, 더 멋진 존재가 되고자 하는

나의 탐욕이다.

 

근데 그것이 나를 설레게 해야지

그것이 왜 나를 주눅 떨게 하고, 괴로움에 빠지게 하는가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친김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기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또 슬퍼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한 것은

마음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잖아요.

느끼지 못한다라고 하면 죽은 마음이죠.

 

그래서 [어떤 것도 부정하지 말자. Let it be.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두 번째는 [어떤 것도 그렇다고 해서 붙잡아두지 말자. Let it go.]

 

그래서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Let it be, Let it go 하는 그 마음이

사실은 진정으로 건강한 마음이죠.

 

나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겠어,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겠어라고

밀어내는 것이 아니고

어떤 감정이 들어오더라도

, 왔구나

그리고 때가 되면 가겠죠.

 

그래서 Let it be, Let it go

이것이 우리가 고통을 불행으로 느끼지 않는 뭐랄까 열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