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친구들이 은연중에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2024.02.06.)

Buddhastudy 2024. 2. 26. 20:03

 

 

저에게는 오래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과 무기력증으로 인해

지난 3년간 거의 백수로 지내며

그동안 친구들에게 자주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친구들이 이제는 저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것 같아요.

평등한 관계가 아닌 상하관계도 진정한 친구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 친구들을 제외하면 저는 친구가 별로 없게 됩니다.

친구 없이 사는 삶도 괜찮은가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제 곁에 좋은 친구들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서 자신은 남에게 도움을 받기를 바라거나

노력도 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거나

남에게 나쁜 말을 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좋은 친구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남에게 잘해주지도 않고 베풀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나를 계속 존중하고

나를 위해 베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좋은 친구이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질문자는 어리석은 사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에 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거나, 능력이 없어서

남의 도움을 받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장애등급 판정을 받으면

국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여러 가지 복지 서비스도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는 데 어떤 지장이 있어서 도움을 받는 것은 꼭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도움을 주면 주인이 되고,

도움을 받으면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또래이고 서로 알고 지내면서

한 사람은 늘 도와주고

한 사람은 늘 도움을 받는다면,

당연히 거기에는 주종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움을 받는 자는 늘 고맙다고 해야 하거나

상대가 도와주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친구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친구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간관계라고 생각해 보세요.

인간관계에서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는다면

그 사람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설사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분 나빠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 아무런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무가 없음에도 나를 도와준다면

그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한 번 도와주고 말아도 고마운 일이고

열 번을 도와주다가 말아도 고마운 일이며

계속해서 도와주면 더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껏 나를 도와주다가 더 이상 안 도와준다고 해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질문자는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처지이어서

스스로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사람들이 질문자에 대해

약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으면 됩니다.

계속 도움을 받고 싶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친구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 관계에 대해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어요.

친구란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약간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저 알고 지내는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면

더 이상 도움을 받지 않으면 됩니다.

 

도와주는 사람으로부터 약간의 무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내할 수 있다면

계속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이렇게 사실만 바라보고 가볍게 받아들여야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겪는 번뇌는

진정한 친구 관계를 너무 이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친구는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여러 인간관계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여러 인간관계에는

애인 관계,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사업 관계 등이 있습니다.

애인 관계도, 부부관계도, 부모와 자식 관계도, 사업 관계도 아니면서

서로 잘 알고 지낼 때를 친구 관계라고 합니다.

 

질문자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남을 도와주는 일을 즐겁게 계속하는 사람도 있고,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마다 다릅니다.

계속 도와주면 진정한 친구이고

도와주다가 그만두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도와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안 도와준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안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특별히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좀 가볍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도와준다면, 내가 비굴하게 굴 것 없이

밝은 얼굴로 고마움을 표현하면 됩니다.

너무 위축될 필요도 없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좀 더 가볍게 생각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