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퇴직한 남편과 갈등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2024.02.07.)

Buddhastudy 2024. 2. 26. 20:09

 

 

퇴직한 남편과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잘 지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임금피크제가 되어서 9개월 전에 희망퇴직을 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는 서로 바빠서 마주칠 일이 잘 없어서 그랬는지

갈등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퇴직한 남편에게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주위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맞춰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행주걸이에 집게가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걸려 있지 않으면 잔소리를 하고

빨래가 말라서 제습기를 껐는데

아직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았는데 껐다고 잔소리를 하고

샤워할 때 벗은 옷을 장에 넣어두면 못 찾는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남편이 귀찮을 정도로 먼저 물어보고 있습니다.

제습기 꺼도 돼요?’, ‘창문 열어도 돼요?’, ‘밥은 언제 먹을 거예요?’

하고 일일이 물어야 하는 제 자신이 서글퍼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남편이 동네 사람들과도 갈등을 일으키는데

윗집 세탁기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다며 윗집에 연락하고 항의했습니다.

세탁기 사용 시간을 아침 6시에서 밤 12시로 조정하고

세탁기 밑에 소음 방지 깔개를 까는 조건으로

층간소음 문제가 일단락되긴 했습니다.

또 관리실에서 동대표인 우리 집에

난방 문제를 상의하고자 왔는데

미리 연락하지 않고 왔다고 짜증을 내며 관리실까지 가서 항의했습니다.

퇴직 후 몰랐던 남편의 새로운 모습에 당황스럽고 힘듭니다.

자신에게 맞추지 않으면

화를 내는 남편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남편은 아마도 직장을 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까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면서 회사 간부라는 이유로

좀 떵떵거리며 살았던 모양이에요.

현역에 있을 때는 자존감이 높아서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고 살다가

로 삼아 살던 직장이 없어지고 나니까

공허한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사람들이 하는 말을 흘려버리지 못하고

퇴직하고 직장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무시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남편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서

배려해 달라고 부탁하기는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남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서

아니꼽거나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또한 자기 처지를 초라하게 여기지도 말고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좀 채워줘야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로 삼아왔던 직장과 직위가 없어지니까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온갖 것으로부터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남편의 허전함을 채워주려면

예전보다 한 10배 정도는 더 존중해 준다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

당신이 직장을 그만둬도 좋고, 돈을 못 벌어도 좋고,

짜증 내도 좋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남편을 존중해 준다면

1~2년 뒤에는 좀 개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부부로 산 세월이 있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왜 나만 남편을 존중하며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기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알아서

허전해하는 마음을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개선이 안 된다 싶으면

정신과 진료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고요.

지금 당장 정신과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하면

자기를 정신병자 취급한다고 노발대발하고 더 악화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은 질문자가 옆에서 이해해 주고 존중해 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왕이십니다이런 마음을 갖고

남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밥 먹고 나서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때를 봐서

여보,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준다면

남편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질문자가 퇴근해서 좀 더 빨리 귀가를 해준다면 더 좋습니다.

물론 직장 일이 바쁘고 친구 관계도 있겠지만

남편은 퇴직해서 아무 할 일 없이

집에서 질문자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생각보다 늦게 귀가한다 싶으면

머릿속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우스운 말로 백수가 과로사한다이런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1년 내지 2년 정도만 지나면

남편도 놀러 다니느라 바빠질 겁니다.

바빠지면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지내다가 퇴직하고 비는 시간이 생기니까

마음이 공허해지면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을 간호한다는 생각을 갖고 좀 맞춰주면

점점 갈등이 사라지고 관계는 좋아질 겁니다.

 

...

 

질문자가 수행자이니까 이런 관점을 가질 수가 있지

수행자가 아니면 힘든 일입니다.

보통은 남편이 직장 다닐 때는 돈이라도 벌어 주니까 봐주지만

퇴직하고 직장도 안 다니는데 귀찮게 한다 싶으면

싸움으로 격화되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더 정성을 기울여서 보살펴야지

부딪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정신적인 문제가 없다면

1년 내지 2년간 보살피다 보면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전문의를 찾아가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

 

퇴직하고 1년 내지 2년 동안은 굉장한 공허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목에 힘주고 직장 생활하며 살던 사람이기 때문에

퇴직하고 나면 마음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심정을 세상 사람들이 어찌 다 배려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질문자라도 남편 옆에서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남편이 공허감을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