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취업시크릿을 위한 허용하기 사용법

Buddhastudy 2024. 3. 4. 19:34

 

 

세 번째 질문 한번 가볼게요.

 

취준생입니다.

취업을 목표로 하는데

많은 것을 허용하려 노력해도 적합한 채용 공고가 없습니다.

그리고 탈락이 반복될 때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요?//

 

 

--허용은 노력의 대상이 아니다.

허용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많은 것을 허용하려고 노력한다고 쓰셨어요.

좋습니다.

그분이 쓰는 표현 하나하나, 조사 하나 하나에서 뭐가 드러나냐면요.

그분의 관념이 드러나요?

 

관념 분석반을 운영을 하다 보면

이런 게 한 방에 보입니다.

중요한 게 있어요.

 

여기서 여러분들이 아셔야 될 가장 이제 중요한 게 있습니다.

허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잘못된 게 뭐냐면요.

잘못됐다기보다 계속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

허용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래요.

 

허용은 노력할 대상이 아니에요.

허용이라는 건 노력할 대상이 아닙니다.

허용이라는 거는 일종의 뭐에 가깝냐면요

앎에 가까워요.

 

예를 들어볼게요.

정은군, 본인이 점원이기 위해서 허용을 해야 돼요?

본인이 점원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돼요?

본인이 여자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한테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해요?

없죠, 필요가 없죠.

본인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죠.

내가 정은이라는 이 몸뚱이로서 연기를 하고 있다라는 것도 알고 있죠.

이게 허용이에요.

 

 

--시크릿은 모든 것을 허용하는 앎이다

시크릿 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조금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시크릿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앎의 차원이에요.

 

그리고 이 앎은

허용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허용합니다.

 

 

--허용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들 지금 마음속에 이런 걸 한번 떠올려 보세요.

내가 느끼는 어떤 라는 느낌 있죠?

라는 느낌은 항상 있잖아요.

라는 느낌 자체를 한번 느껴보세요.

 

그것을 느끼는데 어떤 별다른 노력 자체가 필요해요? 안 해요?

그냥 내가 나를 느끼는데

이 몸으로서의 내가 되더라도, 그 어떤 내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필요가 없어요.

 

진정한 허용이라는 거는

허용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믿음이 아니에요.

 

또 어디에 빠져버린 거죠?

허용이라는 개념도 그렇고 믿음이라는 개념도 그렇고

언어를 통해 전달이 되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렸죠, 이분법적인 실체화가 일어나버린 거라고요.

근데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허용과 믿음이라는 것을 구분 지어서 전달해 드려야 돼요.

 

우리가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해버릴 때는

나는 허용이라는 의미에 가깝게 앎이라는 의미에 가깝게

쓰고 싶어도 해당하는 단어가 없을 수도 있어요.

 

너무나 당연한 [앎은 인식의 차원]이고

[믿음이라는 것은 노력의 차원]이에요.

 

 

--믿으려고 노력하면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뭡니까?

내가 무언가를 믿는다, 믿고 싶다라고 할 때는 뭐가 전제가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인정을 하셔야 돼요.

믿는다라는 얘기는요. ‘못 믿는다라는 얘기예요, 사실은.

 

믿음을 위해서는 뭐가 전제가 돼요?

노력이 전제가 돼요.

? 못 믿으니까.

 

노력이 전제가 될 때 뭐가 발생해요? 여러분들 시크릿 하실 때.

긴장이 발생을 해요.

확언을 해도 뭐가 발생해요?

괴리감이 발생해요.

내가 뭐하고 있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죠.

 

예를 들어볼게요.

나는 멋있다. 나는 멋있다. 나는 멋있다’.

계속 반복하면서도 뭡니까?

나는 멋있다면서 속으로 울고 있죠.

그래요.

나는 부자다. 나는 부자다해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요.

? 이미 알고 있단 말이에요.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내가 멋있다라고 믿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단 말이에요.

 

반면에 바꿔볼게요.

앎의 차원은 어떤 것인가?

 

나는 오징어다.

노력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예를 들어서 하는 거예요.

웃으시는 분들은 공감하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우리가 취업을 위해서 뭐가 되든지 간에

내가 이미 취업을 목표로 많은 것을 허용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긴장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뭡니까?

균형력이 발생하고

역노력의 법칙이 발생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뭘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취업에 성공한다라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뭘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말은 허용이지만 믿음의 차원이 돼버린 거죠.

믿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 얘기는 뭡니까?

내가 이미 내 시크릿에 실패했다라는 사실을

아주 깊숙한 곳에서 뭐예요?

인정하고 있는 거예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실패의 인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즐기고, 설계하고 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 안에서

항상 어떤 마음 상태가 펼쳐지고 있어요.

불안하죠, 서글프죠, 뭔가 답답하죠, 두렵죠. 그리고 또 뭡니까?

꼭 됐으면 좋겠다

뭐가 생겨버려요?

아까 탐진치 얘기했죠?

집착이 생겨버려 버려요.

 

여기에서 더 위험한 길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인위적인 노력을 통한 시크릿을 할 땐.

 

탐진치에 기반해서

강력한 한 점의 인식, 강력하게 결과를 있는 그대로 몰두해 버리면

그 일이 일어납니다.

일어나게 돼요. 나타나게 돼요. 당겨져요, 말 그대로.

 

 

--탐진치에 기반한 시크릿은 파멸을 불러온다

일어나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은

그 결과를 갖다가 끌어낸 마음상태 자체가

탐진치에 기반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뭘 불러오게 돼요?

 

탐진치가 표상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분리, 분열, 파멸

얘네들을 반드시 불러오게 돼요.

 

그래서 뭡니까?

내가 얻었던 것을 어떻게 하게 돼요?

잃어버리게 돼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게 돼요.

 

나의 욕망을 사용해서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니라

어떤 집착하는 욕망을 사용해서

이런 시크리 자체는 그것이 칼이 돼어서 돌아옵니다.

 

그래서 뭘 하라는 얘기입니까?

의도 자체를

시크릿을 할 때 그 의도 자체를

먼저 한번 들여다보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다른 게 아니라.

 

 

--허용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앎이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허용이라는 거는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그러함을 아는 앎, 그 자체예요.

발음이 중요해요.

, 그 자체예요.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면은

그 소망이 왜 생겼겠어요?

그것이 이루어진 상태가 존재하지 않으면

소망이라는 것 자체가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상대성 안에서.

 

?

결과가 있기 위해서 뭐가 있어야 돼요?

원인하고 과정에 있어야 돼요.

지금 어떤 나의 소망이 나타났습니다.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과정을 채워나가고 있죠.

 

이 얘기는 뭐예요?

어떤 하나의 결과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계속 흔들리고 있는 거죠.

흔들리다 보니까 어떻게 돼요?

떨어지는 게 당연하죠.

 

적합한 채용 공고도 없고, 탈락도 반복될 때 당연하죠.

이유가 뭡니까?

 

 

--실패해도 성공한 것이다.

이 세상은

이 고유 우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심층 무의식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관념의 인드라망이 투영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취업이 힘들어’ ‘나는 이번에도 안 될 거야라는 관념이

이미 작동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러면 그 관념에 충실하게

채용 공고도 없고,

지원하는 데마다 탈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죠.

 

이건 여러분들 기죽이기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냐면요.

아하, 내 시크릿 자체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구나라고 아시면 돼요.

이게 뭡니까?

희망을 가지는 겁니다.

뭐만 하면 돼요?

관점하고 관념만 바꿔주시면 돼요.

 

?

진짜 시크릿은 인식의 문제이고

그것은 뭐냐면 곧 자기 자신에 관련된 규정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관점을 전환하는 게 시크릿]이에요.

 

여러 가지 잡다한 마음의 스킬들을 시크릿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인식의 차원]이라는 얘기입니다.

인식의 차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시겠죠?

그 무엇을 하든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취준생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사실 우리는 누구나 취준생이죠.

인간의 삶은 이 취준생의 연속인 겁니다.

취준할 때 이 취업이라는 것을

단순히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이게 뭐냐면

새로운 관계에 매번

인간 존재는 새로운 관계성 안으로 매번 도전하고 있어요.

새로운 관계성들이 매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취준생이에요.

 

그 어떤 삶의 형태가 되든지 간에

우리가 취준생의 자리에 있다라는 것을 아시면

어떤 식으로 마음을 내셔야 할지 아시겠죠?

 

당연함으로 가져가세요.

허용은 인위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이 노력이 멈춰지는 지점이 있어요.

멈춰지게 만들어 내는 마음의 상태가 있어요.

 

그 마음의 상태를 먼저 인식하세요.

그러기 위해서 뭐가 필요합니까?

이렇게 말로 하고 끝내면 누구나 다 알겠죠?

현실은 그렇지 안잖아요.

 

 

--마음수행이 필요한 이유

이것을 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일련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애석하게도.

 

각 잡고 하는 그런 수행만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과 만나는 공부가 필요]해요.

 

내 삶을 형성해 내고 있는 관념의 망이, 관념의 네트워크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이며

-어떻게 내 삶을 설계하고

-비이원성에 대한 그 공부들도, 이성적으로도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명상생활도 하고

이런 식으로 준비하시는 거예요.

 

하다 보면은 뭡니까?

하다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한 균형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걱정하실 필요가 없는 거예요.

 

 

--실패의 긍정을 통해 교만이 정복된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무언가에 실패했다그러면은 기분을, 관점 자체를 바꾸세요.

아하 실패할 만해서 실패했구나

 

이 얘기는 뭡니까?

내 시크릿 자체는

시크릿은 현재 의식의 차원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깊은 심층 무의식의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루어지고 있는

나의 시크릿 자체는

항상 성공하는구나]

실패할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 교만함이 꺾어져야 합니다.

어떤 교만함이냐?

우리는 이제까지 현재 의식의 차원에서 빙산의 일각이거든요.

현재 의식의 차원.

 

이만큼이에요. 현재 의식.

여기는 뭐예요?

무의식의 차원이에요.

 

현재 의식의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만이

나의 마음이고, 나의 의도고, 나의 본래의 모습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이게 교만이에요.

 

시크릿도 어디서 하고 있어요?

여기서 하고 있죠.

여기(심층)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왜 여기, 현실을 도출해 내는, 출력해 내는 관념의 인드라망들이

여기에서 연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책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잠재의식을 바꾸라, 뭐를 하라, 뭐를 하라.’

전부 다 어느 차원이에요?

여기, 심층차원이죠.

 

들어가 보셔야 되는 겁니다.

어디로?

내면으로 깊이깊이 한번 들어가 보시는 거예요.

근데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명상 수행하시는 분들 많은 분들이

대부분 눈 감고 어디로 들어가고 있어요?

내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죠.

단전에 집중을 해도 그렇고.

 

딱 눈 감으면 어둑어둑하잖아요.

그래서 어디로 들어가긴 들어가야 될 것 같은데

집중을 하죠.

내면 어딘가쯤에 어떤 몸의 느낌에 집중을 하죠.

사실 뭐 어디에요?

간이 될 수도 있고, 장이 될 수도 있고

거기에 집중해서 내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면 내면으로 향한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면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라는 말은 뭐냐면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인지하고 있는 세계 자체가

현재 의식의 영역

그러니까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나 있는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받아들이시고 편한 마음으로

일단 마음부터 가라앉히셔야 해요.

가라앉히면 의식은 자기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마음 가라앉히는 훈련부터 먼저 해보시는 게 중요한 겁니다.

 

 

정리해 볼게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허용이라는 것은 앎이에요.

앎이고 이 앎이라는 것은 순수한 인식입니다.

그래서 노력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아요.

 

노력이 필요한 상태는 믿음의 차원이고

이것은 뭡니까?

무언가를 어떤 목표 대상을 쟁취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행동하는 그 형태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 밑바닥에 이미 깔려있는 건 뭡니까?

힘겹게 노력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다라는 사실은

사실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거는 믿지 못한다라는 얘기예요.

 

믿습니다하고 소리 지르죠.

밉습니다사실 뭐예요?

무슨 뜻이에요?

못 믿겠으니까 크게 소리 지르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거 고찰해 봐야 해요.

교회나 성당이나 그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기도 정말 열심히 하시는 분들 계세요.

통성기도, 성령 쇄신 기도,

절 가면 하루에 3천 배씩 하시는 분들 계시고

진짜 열심히 하시는 분들 계세요.

왜 열심히 하는 거예요? 기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

이유가 뭘까요? 진짜 이유가.

 

안 이루어져서 그래요,

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절실하게 매달리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접근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은

이 기회를 빌어서 말씀드리는데

안심하세요.

 

 

--노력하는 나 자신을 먼저 안아주자

안심하시고

그렇게 인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먼저 안아주세요.

그때 치유가 시작되면서

나의 관점이

믿음의 관점으로부터 앎의 관점으로 변하기 시작할 겁니다.

 

세 번째 질문 여기서 마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