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덕마음공부]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Buddhastudy 2024. 3. 18. 20:33

 

 

집착하지 말라고 흔히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정확히는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라!".

 

마음공부 특히 불교는

지혜의 가르침이고

그것의 핵심은 깨우침에 있다.

 

집착하는데 않으려고 마음을 억누르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만약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은 저절로 긴장에서 풀려나게 된다.

그 지혜의 키워드는 무상이다.

조건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생멸 현상은 고정시킬 수 없다.

상황을 맞이하는 주체도 일관되지 않다.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저것을 원한다.

 

우리의 인식 또한 각자의 번역기를 돌리고 있어서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우주는 완벽히 대칭적이다.

번뇌는 이것만 취하고 저것은 멀리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의 몸과 정신 활동은

조건화된 것이고, 변하는 것이며 영원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좌선할 때도, 일상 생활할 때도

이것이 명상의 주제이고 화두다.

연극인 것이 확실하다면

뛰어들어도 좋고 바라만 봐도 좋다.

기왕이면 뛰어들어서 신나게 연기할 수 있다.

번뇌는 사라진다.//

 

 

 

오늘은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제목으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무슨 일을 이루려면 사실은 열심히 해야 되죠.

그래서 미쳐야 미친다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일을 열심히 또 자나깨나 그 생각을 하고

그다음에 그것이 되고 안 되고에 따라서

나의 희비가 엇갈리고 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을 성공적으로 슈팅이루어 내어야

어떻게 보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죠.

 

예를 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 같은 거는

자나 깨나 그건 버릴 수가 없잖아요.

무한 AS를 해야 되는 그런 마음이 끼고 있죠.

 

근데 이 개체가 다르다, 다른 개체다 라고 하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라고 하는 거를 머리로는 알지만

몸은 그렇게 잘 안 되죠.

 

그러니까 자나 깨나 자식 때문에 근심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고

자식이 이렇게 돼야 된다 저렇게 돼야 된다라고 하는 그 to be 때문에

더 걱정하게 되고

또 자식 간에 갈등하게 되고 이런 게 있고요.

 

그다음에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누구든지 루즈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성공한 사람, 위너가 되고 싶은 것이죠.

그것도 성공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돈에 집착하고

그다음에 자아에 대한 어떤 자존감

이런 거 다치고 싶지 않죠.

마음의 상처 입고 싶지 않은 겁니다.

 

또 생명

이런 것들은 다 집착하게 되죠.

그건 우리가 생명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비교적 자연스럽게 집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집착, 혹은 욕망의 관례가 있는 거죠.

이게 두 가지 정도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인정할 만한 거고

-하나는 문제가 있는 건데

인정할 만하다, 혹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런 겁니다.

내가 그 일을 열심히 집요하게 추구를 하는데

그러면 살아있는 것 같고, 신바람이 나고, 설레이고

일을 하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이 좀 어려워도 할 만하고

그다음에 실패해도 다시 하고 싶고

이런 거는 뭐 괜찮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이럴 경우에는

세속적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거죠.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 눈에 좋게 보입니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 반대도 있겠죠.

 

야 그거 집착이야 내려놔라고

충고를 듣게 되는 행동 양식이 있는 것이죠.

그 정반대로 신나지 않고, 설레지 않고, 아득하고, 너무 지루하고, 너무 어렵고

자기가 갈려나가는 것 같고, 영원히 마모되는 것 같고

그리고 성공해도 기쁘지 않고 심지어는

이런 것들은 반대잖아요.

그런 것들은 번뇌를 일으키는 집착이니까

이거는 생각을 해봐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이 집착은 외부에서 만들어져서 나한테 주입된 욕망이 아닌가?

거기서 비롯된 집착이 아닌가?

나는 이거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무슨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집착이 아니고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집착이야, 그건이렇게 표현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마음공부에서 집착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는 겁니다.

집착하지 말라가 아니에요.

정확하게는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알아라

이게 지혜죠.

 

그래서 불교라든지 마음공부는 지혜의 공부다.

지혜를 공부하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집착하지 마라, 내려놔라하라고 하는 것은

좀 억지로 강제로 하는 거잖아요.

그것은 욕망을 누르는 거잖아요.

근데 그 본능적 욕망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그 욕망을 이해하고 벗어난 사람은 있겠죠.

 

그래서 지혜를 공부하는 것이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럼 지혜가 뭐냐?

근데 그 지혜의 키워드가 뭐냐?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상하다는 것이죠, 무상하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번뇌 구조가

머무르고 싶은 것

그다음에 유지하고 고정하고 싶은 것이 안 되잖아요.

뜻대로 안 되잖아요.

그럼 괴로워지는 것이죠.

 

그래서 지혜의 키워드는 무상,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무상인데 무상은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황이 무상하죠.

고정되어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

모든 것은 급격히 혹은 서서히 변화하잖아요.

그 이유는 이걸 쪼개보면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결합해서 하나의 현상이 나타나니까

그 현상은 조건들이 또 재구성되거나 흩어지면 바뀌는 거죠.

모이면 현상이 나타나고 흩어지면 변동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는 정해져 있는 이치라는 것이죠.

그게 팩트고,

 

- 두 번째는 그 상황을 대응하는 주체도

상황에 따라 주체도 변하는 것이죠.

배가 고플 때는 아무거나 맛있잖아요.

배가 부르면 웬만한 건 맛이 없잖아요.

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거는 제가 너무 좀 생물, 정난화한 표현을 비유를 들었지만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상황에 따라서 사람의 대응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된 정체성이 있냐?

 

타고난 DNA, 타고난 성격

또는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성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마어마한 경험 속에서

깨져 나가고, 바뀌어져 간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게 중요한 건데

[상황에 대응하는 주체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자아에 관한 것이죠.

[자아가 좀 느슨해지거나 희미해지거나 흐릿해지면

일단 자존감의 상처나 마음의 상처가 줄어들죠.]

 

왜냐하면 그 입을 존재가 희미하니까

이 부분이 중요한 포인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존감을 최대한 살리고

자존감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막아내는

그런 공격과 방어를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길이 있는 겁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시고요.

 

-세 번째 무상의 특징은 인식의 주관성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갈 때 올 때 마음이 다르잖아요.

이때는 이게 아주 귀해 보이는데

상황이 달라지면 귀하지 않은 것이죠.

 

누구나 그 인식에서 편견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는 자기만의 고유한 번역기,

상황을 해석하는 번역기를 돌리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편견이죠.

그리고 이 편견은 때때로 터무니없이 증폭되어서

실제보다 훨씬 더 상상을 통해서

우리는 미래의 어떤 최악의 상황을 당겨와서

고통을 자초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한테는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네 번째 마지막

이 지혜의 키워드로 무상이라고 했을 때

이 무상의 네 번째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특징은 상황의 대칭성입니다.

 

아주 유명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반드시 있다

그러니까 만약에 우리가 잘 정돈된 거리, 잘 꾸며진 카페를 좋아하지만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앞마당의 질서는 뒷마당의 무질서와 정확히 대칭하고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된다라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우리는 왕이 되려는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항상 대가가 있는 일인데

우리는 뭡니까?

대가 없이 그것만 원하잖아요.

 

그래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는데

저것을 밀어내고 이것만 취하겠다라고 하는 데서

될 리가 없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또 이 무상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번뇌가 된다, 집착이 번뇌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상황은 변한다.

주체도 변한다.

인식은 편견을 갖고 있다.

상황은 대칭적이다.

 

이 네 가지가 무상하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고

무상을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가 나쁜 상황을 만나건 좋은 상황을 만나건

상황, 주체, 인식의 주관성, 그다음에 상황의 대칭성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평탄화 작업을 심리적으로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리를 하자면

내가 갖고 있는 내 몸

내 생각, 그다음에 내 느낌, 내 의지, 내 기억

이런 것들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어 온 것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조건화된 것이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겠죠.

 

나와 너가 다른 것은

다르게 조건화되고, 다르게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다른 거다.

원래 다른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마음공부할 때 우리는 명상을 합니다.

명상이 뭔가요?

좌선, 앉아서 눈 감고 허리 펴고 앉아서 있거나

일상생활을 하거나

명상은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명상은 딴 게 아니고

이 몸과 마음, 이 몸과 정신 활동이 모두가

무상한 것이며

고유한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변화 가운데 있고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붙잡아 댈 만한 것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면

또는 적용해서 구현하면은

그것이 명상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은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이고

무조건 내 몸에 붙여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 나의 몸과 마음

즉 내 삶, 내 생명은

어떻게 보면은 무상한 것이다.

그다음에 무아다.

이렇게 이론이 이해가 됐다 칩시다.

그러면 실전에 써먹어야 될 거 아닙니까?

 

써먹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뛰어들어도 좋고

또 하나는 관망을,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선택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죠.

 

이런 것이죠.

이게 내가 지금 연극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을 깨우친 거예요.

그러면은 내 배역을 열심히 할 수도 있고

그냥 설렁설렁할 수도 있고

다 좋은 겁니다.

 

다만 내가 진짜로 그 배역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받은 배역이다, 이것은 연극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눈을 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기왕이면 맡은 배역이 뭐든지 간에 열심히 해서

뛰어난 배우가 되는 것

세속적으로도 성공이고

또 개인적으로도

이왕 사는 거 열심히 제대로 사는 것이 어떤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거고

그 이해의 키워드는

무상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무상은

상황, 주체 인식, 그리고 대칭성

이 네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