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두카는
수레바퀴의 중심축이 정확하게 맞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삐걱거릴 것이고 애로사항이 커진다.
이 두카가 의미확장된 것이 괴로움이다.
우리의 생각, 기대, 예측 등이
현실과 만나는 진실의 순간에 격게 되는 격차감이
고통이라고 말한다.
심리적 지적 오류에 속한다고 하겠다.
욕망과 그 좌절로 인한 고통은 둘을 떼어 놓을 수 없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이
차가운 진실이자 자비로운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
괴로움이라고 하는 의미의 [두카]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죠.
괴로우니까 도대체 이 마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고 싶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는데
물론 생노병사가 다 모두 괴로움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괴로움은 좀 심리적인 괴로움이죠.
그래서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이야기하는
불교적 가르침을 이야기할 때
두카, 산스크리트어 두카를 빼고 논할 수는 없습니다.
두카라고 하는 원어를 찾아보면
그 수레바퀴가 있잖아요.
수레바퀴 정중앙이 딱 드러맞지 않아서
중심축에서부터 각각의 바퀴살까지의 거리가 다 다르면
이게 삐뚤삐뚤해지면
바퀴가 돌아갈 때 삐끄덕거리거나 깨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애로사항이 꽃이 피겠죠.
이게 드러맞지 않는다, 정확하지 않다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것과 저것이 정확하게 드러맞지 않는다라고 하는 의미가
두카라는 어원이 되겠습니다.
이게 의미가 확장되면
당연히 정신적인 심리적인 의미로 확장이 되고
그 두카가 그러니까 결국은
격차, 드러맞지 않은 것
즉 내 생각 내 마음과 같지 않은 것의 격차가 주는 고통을
우리는 두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인사이트를 생각해 보면
‘틀렸구나, 다르구나’라고 하는 걸 인정해버리면
또 어쩌면 상당 부분의 괴로움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종의 오류나 착각은
대부분 예상이나 기대,
그다음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바램 같은 게 있을 수 있고
또 무엇보다도 잘못 아는 거죠.
팩트가 아닌 것을 팩트라고
또는 업데이트를 안 해서
옛날에는 사실이었지만 이미 달라진 것들
주로 이런 것들 오류죠. 오류.
지적인 오류와 심리적인 기대
이 두 가지가 진실의 순간을 만나서 격차를 확인하게 되면
사람은 그때 괴로운 거죠.
그래서 ‘기대와는 다르네’, 또는 ‘내 마음 같지 않네’ ‘생각한 거 하고 다르네’
이런 얘기를 하는 거고
그 얘기는 벌써 상당한 실패와 그에 따른 고통이 생겨났다
이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심리적인 괴로움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두 가지
잘못된 뭐랄까 생각, 마음을 이야기하죠.
그것이 하나가 [무상]이고 또 하나가 [무아]죠.
즉 무상한데 무상하지 않다
또는 무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마음
그다음에 실제로 따지고 보면은
고정되어 있는 나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없는데
그거를 상처받지 않으려고
또는 우월하려고 애지중지 노심초사하는 그 모습
이 2개가 사람들에게 지적인 오류와
심리적인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두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런 마음에 하나의 닻을 내려버리면
이 프레임이, 하나의 이 세상을 해석하고 결정하는 이 프레임이
최선이 아니지만 고정돼 버리는 것이죠.
고착되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그걸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고요.
또 아까 자아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열등감과 우울감 사이에서 노심초사하지만
이것도 역시 한 번 ‘내가 중요해’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거를 방어하기 위해서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써야 되는, 에너지 먹는 하마가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는 게 사실 쉽지가 않은데
이런 심리적인 고통까지 더해서 더더욱 어렵죠.
더군다나 현대는 이게 스트레스의 본질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두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오류나 착각
즉 깊지 않은 생각인데
이 틀린 생각이
자기가 어떤 경우에는 ‘내 생각이 틀렸구나’라고 알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알아도
내 마음이 그런 식으로 흐르는 것을 제어하기는 어렵죠.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그 관성이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힘이 부족한 것은 실전,
현실에서 현실에 부딪혔을 때 무상하다는 것, 무아라는 것,
그다음에 고집하면 집착하면 고통스러워진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겪어 나가면서
우리가 힘이 생겨야 무상이나 무아라고 하는 것들이 실감이 되고
그런 것들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게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은 불교적 가르침은
무상과 무아, 고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연기법에서 나온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연기법]이 뭐냐 하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우주는 대칭적이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열등감은 우월감을 가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이런 것이죠.
그러니까 욕망의 좌절이 분노가 되고, 슬픔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만약에 분노나 슬픔을 가지지 않고 싶으면
욕망을 가지지 마라
이렇게 되는 것이죠.
범부라고 하는,
욕망의 덩어리인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이 볼 때는
그건 굉장히 허무한 개그 같은 거죠.
‘아니 내가 욕망을
상처와 고통 없이 이루고 싶은 그것이 나의 마음이지
야, 그럼 상처가 없으면 욕망도 없어져라
이러면 그게 뭐가 말이냐?’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불교는 어떻게 보면 약간 불편하고
어떻게 보면 약간 차가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너의 욕망이 있으면 너의 좌절과 슬픔이 반드시 있다
버리려면, 이 좌절과 슬픔, 고통을 버리려면
욕망도 버려야 된다.
혹은 이 두 가지가 항상 대칭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도록 하라’
이런 것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좀 차가운 진실인가?
아니면 자비로운 지혜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시간에 따라서 좀 달라질 수 있는데요.
오늘 두카 얘기는
그러니까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을 우리는 고통으로 보낼 거냐?
아니면 둘 다
욕망과 고통 둘 다를 보내주고 자유로운 삶을 살 거냐?
이런 이야기하고도 연결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불교적 가르침의 시작이고 끝
두카
오늘은 두카에 대해서 여러분과 얘기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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