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서광스님_치유하는불교읽기

서광스님_ 치유하는 불교읽기// 제1회 치유하는 불교읽기란

Buddhastudy 2013. 4. 14. 18:21
출처: 불교TV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번 주부터 앞으로 12주 동안에 치유하는 불교읽기. 이 교재로 여러분과 만나게 될 서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제가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치유하는 불교읽기가 뭔가? 거기에 대한 개념부터 설명 드리고. 여러분 지금 강의 계획서 다 받으셨죠? . 강의 계획서 한번 보세요. 이 시간 첫 시간이니까 여러분이 12주 동안에 어떻게 부처님 법을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되는가? 이거에 대해서 오리엔테이션시간으로 하겠습니다. 책을 지금 보니까 다 안 가지셨는데. 책을 오늘 이 수업 들어 보시고 ~ 이 책을 읽고 싶다.” 하면 가져가셔서 읽어보셔도 좋고, 그 외 이 시간에는 제가 매주 프린터를 한 장씩 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수업 중에 하는 기본적인 내용들은 이 프린트를 보시면 되겠어요.

 

그럼 자~ 어떻게 이 수업을 12동안 진행될 건지 강의 계획서 한번 봐주시겠어요? 제목은 치유하는 불교읽기. 강사는 서광스님. 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놨는데 혹시 여러분 이 시간 동안에 공부하다가 의문점이 있거나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요(seogwang1@hanmail.net) 메일 주소로 질문이나 또 여러분 소감이나 피드백 같은 거를 저한테 해주셔도 되겠습니다. 시간은 다 아시고요. 그럼 이 수업의 목표에 대해서 말씀 드리죠. 목표가 보시다시피 불교의 기본 도리를 통해서. 세 가지 입니다. 부처님 법을 통해서 이 책은 사실은 치유하는 불교읽기인데 불교심리학 인문이라고 개론서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럼 불교심리학이란 뭐냐? 부처님 법을 대할 때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는데요.

 

첫 번째 한번 보시면 [1_긍정적인 개인적 성장과 이해를 제공한다.] 옆에 영어로 해놨죠? inner mind 내면의 마음을 살핀다. 그러니까 쉬운 말로 하면은 내가 누군지. 내 자신에 대한 이해를 첫 번째 목적으로 한다. [2_가족 직장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 증진 및 소통을 촉진한다.] 옆에 interrelationship 라고 해 놨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상호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내가 누군지 나에 대해서 좀 더 부처님 법을 통해서 내가 누군지에 대한 이해를 하시는 거구요. 그러니까 나가 누군지를 이해하고 부처님 법을 통해서 그럼 내가 누군지 이해했으면 그 내가 내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나 아니면 직장 동료라든지 부모나 어쨌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나의 이웃들과 또 친척들과 가족들과 내 사랑하는 사람과 또 미워하는 사람이든지 누구든지요. 나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하고 관계에 대한 이해입니다. 소통이에요.

 

그 관계에 대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내가 관계를 어떻게 관계를 소통하고 증진시킬 수 있는가? 그런 거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3_자연, 환경과의 연기적 관계를 이해한다.] 영어로는 고기다가 eco/super-relationship 습니다. 그러니까 또 부처님 법을 통해서 내가 나의 이웃이나 내 가족이나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자연, 우주, 모든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 무생물. 사실 우리가 살면서 나의 어떤 행복이라든지 나의 성장이나 내 삶의 영향을 미치는 게 나 자신만은 아니죠? 내 주변에 있는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 직장동료들 상사. 모두가 굉장히 나의 하루하루의 기분과 내 존재감에 굉장히 절대적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그 관계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또 그뿐만 아니라 그냥 생물 무생물 할 거 없이 우리의 환경 조건, 예를 들어서 자연환경이 너무 소음이 심하든지.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자연 속에 들어갔을 때 고요함이라든지 공기가 맑다든지 환경이 조금 깨끗하다든지 뭔가 좋으면 그러면 우리 안에서 훨씬 긍정적이고 선한 그런 마음이 발생하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 자연과 사회와 우주와 이런 환경과 또 관계하는데 우리가 그런 관계를 또 증진시키고 또 이해하고 소통시킬 수 있나? 세 가지입니다. ~ 첫 번째 뭐라고요? 부처님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 가르침을 통해서 첫째는 나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명료하게 하고 조금 더 분명하게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두 번째 또 그러면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내 부모 자식 가족 친구 환경 그런 동료들 그런 나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하고 관계를 또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를 성장시키고 더 나은 관계로 사람으로 살 수 있나? 소위 말하는 요즘에 그 웰빙이라는 거 있죠. 그걸 더 좋게 할 수 있겠나? 이런 거.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또 그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요즘 아주 생태환경문제 심각하잖아요. 환경오염이라든지 이런 거. 그런데 또 그런 자연이나 우리 주변의 환경하고는 어떤 관련을 지어가고 부처님 법을 통해서 우리가 더 바람직하고 더 좋은 사회 국가 이런 또 글로벌 소사이티나 사회나 이런 관계를 좋게 할 수 있겠나? 요기에 대한 이해라는 겁니다.

 

그러면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라고 한 것이 우리가 기존으로 생각으로 inner mind 내면의 마음이라 했는데요. 내면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그 내면의 나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관계, 소통, 또 자연, 환경, 우주. 이것에 대한 전체적인 연기적 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합적으로 할 때에 가장 치우치지 아니하고 조화롭고 균형 있는 그런 이 삶이 강하다. 밑에 한번 보세요. 불교공부라는 게 뭔가? 영어로 해 놨어요.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아주 쉬운 영어에요. 요즘 영어책에 서구에서도 불교, 명상 바람이 부는 건 알고 계시죠? 이 말은 영어권에서도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도겐 선사가 뭐라고 했냐 하면요 To study Buddhism.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is to study the self. 자기를 공부하는 거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게 뭐냐? 그거는 자기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다. 두 번째 그러면 To study the self. 자기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는 뭐냐? is to forget the self. 자기를 잊는 거다. 세 번째 그럼 자기를 잊는 거는 뭐냐? To forget the self is to become intimate with all things. intimate는 친숙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자아를 잊는다는 말은 곧 뭐에요? 모든 것, intimate with all things 일체와 친해지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기본적으로 우리가 까닥 잘못하면은 불교공부는 뭐에요?

 

나를 공부하고 나에 대한 이해를 잘하는 거다. 충분치가 않다. ? 라고 하는 것이 그냥 나 혼자 살아요? 아니죠? 절대적으로 우린 내 주변과 가까운 사람들과 영향을 받고 그들의 기분과 그들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들과 내가 어떤 관계를 하느냐에 따라서 내 존재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프라이즈를 느끼기도 하고 살맛이 나다가도 살맛이 그냥 다 떨어지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하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관계 속에서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비추어 봐야 되지 않냐? 이 세 가지가 아주 핵심을 얘기해 놨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자기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고, 자기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자기를 잊는 거다. 자기를 잊는 게 뭘까요?

 

? . 자기에 대해서 잊는다는 거는 뭐겠어요? 자만심을 갖지 아는 거에요. 에고를 버리는 거에요. 자아의식. 나나나나. 나 중심적인 그런 태도를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 뭐에요? 무아를 얘기하고 있죠. 그리고 또 무아가 진정한 무아가 될 때 뭐에요? 되면 될수록 어떻게 되겠어요? 내 주변과 온 우주와 하나가 되고 함께 가 되는 거죠. 그렇겠죠? . 그러면 이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 공부의 과정이 어떻게 돼야 되느냐? 이 수업과정에서 앞으로 12주 동안에 한번 보세요. [개인 내적인 마음작용에 대한 자각과 성찰]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수업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부처님 법이 뭔가?

 

부처님 법 자체를 외우고 공부해서 뭣에 쓰겠어요? 그죠? 궁극적인 목적이 뭡니까? 부처님 법 자체를 우리가 외우고 공부하고 많이 배워서 뭐하겠냐고요? 문제는 부처님 법은 하나의 수단이에요. 그 법을 통해서 나에 대해서 나라고 하는 이 존재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사실은 뭐죠? 나하고도 친해져야 되는 거지. 우리 생각에는 나는 뭐 잘할 거 같지만 사실 자기하고 먼저 화해가 안 되면 안 돼요. 나 자신과 우린 알고 보면 굉장히 안 친해요. 굉장히 내가 싫어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원치 않는 내 모습이 너무 싫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계속 우리는 뭐에요? 피한다고요. 또 억압하고, 원치 않는 곳에. 그런데 이 수업을 통해서 내가 원치 않는 내 모습이 뭔지. 또 나에 대해서 내가 그 동안 내가 돌보지 않는 나.

 

그걸 전문용어로 융 같은 사람은 그림자라고 그럽니다. 그림자. 쉐도우. 그림자. 그림자 뭐에요? 나의 일부 내가 원치 않는 내 모습은 내가 원치 않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아도 그림자는 어떻죠? 내가 있는 한은 항상 따라다닌다 이거요.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빛을 보면 사라지죠? 그러니까 내가 인식하고 내가 알아줄 때에 그림자는 없어지는 거지. 빛이 비추어주지 않는 한은 그거는 뭐에요? 평생 따라다닌다. 계속 힘들다. 도망가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나를 그냥 바라보자.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내 내면에 대해서 자각하고 성찰하는 것이 돼야 되겠다. 그 다음 [개인 외적인 인간관계 역동에 대한 자각과 성찰] 불교공부를 자꾸 했는데 인간관계는 여전히 똑같다. 별로 성장하거나 변하는 게 없다. 그럼 뭐에요? 불교 공부 잘못한 거죠.

 

불교공부를 한 이유는 공부 자체를 불교공부를 무슨 모시고 살 거에요? 자꾸 쌓아가지고 외워서 뭐에 쓰겠냐? 그래서 부처님 법은 많이 알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 시간에 ~ 저거 이해 못하겠다.” 미련 없이 그냥 흘러 보내시면 되겠다. 어차피 이 시간 4050분 동안에 기억해봤자 한두 개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몽땅 기억하려 하시거나 몽땅 알려고 하실 필요 없이 그냥 내가 편안하게 듣는데 와 닿지 않는다. 내 몸에서 뭔가 몸으로 반응이 안 된다. 미련 없이 버리세요. 별로 괜찮습니다. “아이 뭐 스님 설명 잘 못하는 갚다.” 해도 괜찮고 그거는 판단이 들어가니까 안 돼요. 그냥 판단하지 마시고 그냥 고요히 그냥 상관 안 하시면 되겠습니다. 불안하거나 걱정하실 필요도 없고, 애써 알려고 하시지도 말고, 그냥 아~ 내 몸이 반응하면 그러면 그대로 느끼시면 되겠어요.

 

~ 그 다음 [자연과 환경과의 생태적 관계에 대한 자각과 이해촉진] 한다. . 그렇습니다. 뭔가 우리가 조금 더 연기적 부처님의 깨달음이 뭐에요? 연기 아니겠어요? 연기법. 그럼 그 연기라고 하는 것은 나 혼자 연기냐? 내면만의 관계냐? 관계속의 관계고 자연은 제외 되냐?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모든 것 주변들이 다 포함이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 천수경 아시죠? 천수경 보면 맨 처음 뭐합니까? 정구업진언 하시잖아요. 그럼 뭐에요? 그럼 꼭 입만 정화시키는 게 아니죠? 사실은 신구의 삼업을 정화시키는 작업인데 천수경 할 땐 내가 입으로 부처님 법을 염불하니까 구업을 정화시키는 거고. 그렇지만 내가 뜻으로 하는데 뜻도 정화를 해야 되는 거고 생각을.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하고 몸도 단정하게 하시고. 기본이죠.

 

두 번째 뭐가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그게 뭐겠어?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그러니까 뭐죠? 나를 먼저 정화시킨 다음에 참회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 다음에 뭐겠어요? 나를 비우고 나를 정화시키고 참회한다는 그 사실, 나를 비운다는 게 나나나나나. 나 중심적인 생각, 그런 것의 판단을 내려놓는 거구요. 두 번째는 뭐죠? 그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오방 하면 내외 하면 어때요? 몽땅 다 포함됩니다. 오방내외에 있는 신들을 제신진언했어요. 뭘요? 안위. 편안하게 위로 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문제일 때는 내가 나를 참회하면서 정화시키고, 내 주변에 대해서 내 반성하니까 너도 반성해라.’ 이게 아니라. 주변을 위해서 뭐에요? 위로하고 편안하게 찬탄하고 공경하는 거죠. 뭐처럼? 신처럼.

 

알고 보면 우리 자신도 다 잠재적인 신이죠? 뭐 귀신이라 해도 나쁘지도 않고 잠재적으로 우리가 때가 되면 뭐에요? 다 이 몸을 떠나면 신 아니에요? . 그래서 그 신이 어떤 신이 될 건가는 온전히 뭐죠?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성숙시키고 어떤 내 정신적 수준을 갖느냐에 따라서 훌륭한 신이 될 수도 있고 잡신이 될 수도 있고 떠도는 영가가 될 수도 있고. 그건 온전히 내가 하기에 달렸다. ~ 그래서 이렇게 함으로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자기치유와 관계치유, 회복을 증진시킴으로써 전체적 인간으로 성장하고 붓다의 깨달음과 웰빙을 촉진한다.] 이 수업에서 그런 식으로 해 갈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수업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되느냐? 교재입니다. 교재는 제가 이걸 소개를 해드렸는데 뭐에요? 거기 보시면 주교재는 물음표로 돼 있죠? 주교재는 뭘까요? 자기. 여러분 수승하십니다. 정말요. . 주교재는 뭐에요? 나에요. . 내 마음을 놔야지 내 마음은 엉뚱한데 놔두고 자꾸 개관적으로 불교교리가 뭔가? 뭐 끊임없이 공부해서 뭐 어쩌라고? 그렇게만 한다면 내가 공부했다는 생각만 계속 강화되니까 어때요? 증상만만 점점 강해지죠. 커지죠. 그러니까 반드시 부처님 공부를 할 때는 온전하게 내 마음, 내 자신을 몸과 마음을 여기에 두고 비추어 봐야 된다. 그래서 부교재는 치유하는 불교읽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교재는 말씀 드렸듯이 여러분께서 저 뒤에 갖다 놓은 거를 개인적으로 구입을 하셔도 좋고 또 매 이 시간에 한 페이지씩 드리니까 굳이 집에 가서 따로 읽어보실 거 아니면 그냥 맨몸으로 온전히 주교재가 항상 있으니까 그죠? 여러분 몸과 마음을 가지고 오시면 되겠습니다. 몸은 왔는데 마음은 딴 데 두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요? 정신이 아닌 분이 앉아계시니까 영가가 앉아계시는 격이 되요. 그렇지 않겠어요? . 그러니까 몸이 왔을 때는 마음도 이 시간 이 자리에 함께 계셔라. 그럼 부교재도 됐고. 그 밑에 제가 서산대사께서 쓰신 선가귀감의 몇 구절을 여러분한테 소개하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실까요? ~ 시작?

 

[경전을 읽되 자기 마음속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읽었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 그러니까 우리가 팔만대장경 부처님 공부를 몽땅 한다 해도 내 마음을 비추어보지 못한다면, 내 마음은 두고 팔만대장경만 자꾸 연구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랬어요. 제 말씀이 아니고 서산대사 아시죠? 너무나 너무나 훌륭하신 우리 역사의 큰 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 밑에 보세요. 또 읽어보세요.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무명만을 도와 줄 뿐이다.] 그렇죠. 자기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으면 뭐에요? 자꾸 어때요? 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우리 수행의 공부의 목적이 뭐죠? .

 

깨닫는데 뭘 깨달아야 되요? 나하고 네가 둘이 아닌 이치를 깨달아야 되는데, 마음을 모르고 자꾸 하면 내가 이만큼 한다. 내가 이만큼 공부했다. 내가 뭐도 공부하고 뭐도 공부하고, 점점 나나나나 하니까 점점점점 갈수록 번뇌만 커지고 상만 높아지니 갈수록 더 어리석어 지죠. 그래서 즉 자기마음을 반드시 이 시간에 가지고 오셔서 함께 비추어 봐야 된다. 세 번째 보세요. [이치는 단박에 깨칠 수 있다 하더라도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다.] . 우리는 지금 중요한 게 뭐라고요? 부처님 말씀을 듣는 순간에 뭔가 나를 울리는, 뭔가 내 마음과 내 몸을 터치하는 뭔가 그 반응일 일어나면 충분하다. 그 다음 그냥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시면 되겠어요.

 

~ 이치는 단박에 깨칠 수 있다. 중요한 말이에요. 사실은. 우리가 경전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이런 저런 교리공부를 하면 아이고 내가 십바리밀, 너무 쉽고 잘 알고. 삼법인도 잘 알고, 육바라밀 알고, 여러 가지 연기도 알고 뭐도 알고. 그죠? 그런데 이치는 뭐에요? 단박에 깨쳐요. 우리가 아는 거 같다. 그러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셔지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안다고 해도 내 몸이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몸은 뭐에요. 실질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아니 여러분 지금 앉아계신 데 갑자기 아이고, 나는 내 안방에 가고 싶다.”가보셔요. 자기 안방에 가보세요. 가서 보면 여러분 침대보입니까? 보이죠? 가셨어요. 마음은 이미. 생각은 갔다 이 말이야. 몸이 갔어요? 몸은 못 가요. ?

 

몸은 이제 일어나가지고 가서 버스를 타든지 택시를 타든지 차를 타시고 가야 되요. 몸하고 마음하고는 명백하게 뭐죠? 이 작용하고 기능하는 것이 같지가 않습니다. 동시적이지가 않아요. 그래서 생각으로는 뭐에요? 얼마든지 한 찰나에 지구를 몇 바퀴 돌 수도 있고, 저 달나라도 갈수가 있고, 얼마든지 생각으로는 별 짓을 다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라고 하는 존재가 뭐 생각만 갖고 됩니까? 이 몸도 엄연히 살아있는 이 순간 동안에 내가 관리하고, 내가 보듬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되는데 이 몸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몸까지 온전하게 다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이 말은 곧 뭐에요? 실천을 해야 된다. 이 말이죠.

 

실천을 통해서 그렇게 습으로 닦아서 체득을 몸으로 뭐에요? 체득. 득을 얻지 못하면 사실은 뭐 그래도 소용이 없는 거 보다 낫죠. 생각이라도 아니까. 그렇지마는 그거 가지고는 내 자체가 정말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행복해지고 또 관계를 **안 된다. 이 말이죠. 정말 내가 생각으로 공부를 했으면, 아니 뭐 관계 속에서 두 번 화낼 거 한번 화내고 그죠? 뭔가 뭐 좀 두 번 웃을 거 세 번 웃고. 뭔가 좀 더 이해하고 뭐 그래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실질적으로 내 몸도 함께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굉장히 한꺼번에 가지 않으니까 이 시간 동안에는 매주 여러분이 실습을 하셔야 되요. ~ 한 공부를 한 개 할 때마다 오늘 미리 실습할 숙제를 먼저 그리겠습니다. 시간이 혹시 제가 잊어버릴지 모르니까. 숙제가 뭐냐 하면 자~

 

부처님 공부를 한다는 것은 세 가지에서 비추어 봐야 된다. 한 개는 뭐라고요? 나 내면을 비추어 보고. 하나는 뭐죠? 관계에서 어떤가? 관계를 비추어 보라. 그리고 뭐에요? 관계면 내 가족, 내 좋아하는 사람. 요것만은 관계가 아니죠? 전체적으로 뭐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 내 사회, 환경, 내 이웃. 전부의 관계에서는 나는 어떻게 하는가를 비추어보시라는 거에요. 그래서 내 내면을 보는 거는 내 inner mind. 나하고 뭔가 내가 조화로운 인간. 신구의 삼업있죠. 신구의 삼업을 닦는다 그러죠? 그런데 선 심리나 선 심리 상담치유에서는 병이 뭐냐 때 신구의 삼업의 삼업이 불일치한 게 병이에요. 분열증이에요.

 

몸 따로 뭐에요? 말 따로 마음 따로 하나니까 분열증이 되는 거에요. 분열증이 딴 게 아니고. 그러니까 내가 굉장히 번뇌 망상에 시달리게 되는 거에요. 제가 가끔 특강할 때 엄마들이 저한테 질문해요. “아이고 우리 애가 제 말을 통 듣지를 않는다. 말발이 안 선다.” “어떻게 말하는데요?” 그럼 뭐에요. 엄마도 딴 일하고 애도 딴 일하면서 말을 하니 듣겠어요? 말을 할 때 뭐죠? 제가 어떻게 지도했냐? 애한테 말을 할 때는 먼저 잠깐 멈춰라. 이거에요. 우리 오늘 시작하기도 전에도 어떻게 하셨어요? 잠깐 입정에 드셨죠? 그럴 때 몸으로 그냥 습관적으로는 가만히 앉아서 멈추는 거에요? 아니에요. 속으로 온전하게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하는 걸 그 순간에 놓는 거죠.

 

그렇듯이 엄마도 멈추어야 되요. 그리고 정말 멈추고 내가 생각과 내 몸과 몸 멈췄으니까 몸이 됐어요. 그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말하고 내 몸하고 일치해야 되고. 내 마음과도 내가 정말 그리 생각하는가? 한 번 더 자기 물어봐야지 가슴에게. 물어보고 해야지 안 그러면 습관적으로 하면 뭐가 되죠? 잔소리. “아이고 또 잔소리야.” 이렇게 밖에 더 되겠어요? 그냥 막 흘려듣죠. 애도. ~ 멈추고 내가 그 생각을 해보고 그런 다음에 뭐에요? 아이를 아무개야 부르고. 뭐죠? 아이는 눈을 맞춰야지. 눈을 맞추면서 애가 내 얘기를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그러면서 얘기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시켰더니 전자동으로 뭐에요? 곧바로 예스가 되요. ? 이미 내 안에서 뭐에요? 내 몸과 내 말과 내 뜻이 일치했는데. 내 몸과 말과 뜻이 일치하면 어떻겠어요? 거기에서 굉장한 신비력이 나오는 거에요. 굉장히 깊은 수행을 하고, 뭐 도를 닦아야만 힘이 카리스마, 우리 요즘 말하는 카리스마 있죠? 그걸 뭐라고 그래요? 요즘 말로 포스가 나오는 게 아니고. 그렇게 일치하면 저절로 거기에서 굉장히 합당한 힘이 나온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되는 거지. 그렇게 해야 된다. ~ 부처님 법을 상기하실 때마다 생각하실 때 마다 내 마음을 비추어 보고, 또 그 마음 내면만 뿐만 아니라 관계에서 어떻게 하는가? 비추어 보고. 그것이 전체 관계. 그 세 가지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법을 가지고 생각해보셔라.

 

그러니까 뭐에요? 제대로 실습을 할라 그러면 사실 그렇게 많은 교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죠? 우리가 마음여행을 하는데 정신적인 수행을 하는데요. 저는 가끔 그 부처님 말씀을 여행을 할 때 지도에 비유합니다. 내가 만약에 우리 여기 서울인데 서울서 대전 가려면 뭐에요? 서울서 대전 가는 지도만 들여다보면 되지. 내가 언제 갈지도 모르는 유럽 언제 갈지 모르니까 유럽 지도까지 미리 펼쳐놓고 다 공부하고 세계 지도 공부하고 그럴 필요 뭐 있어요? 그죠? 내가 지금 외롭다. 그럼 뭐에요? 외로움에 대해서 부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나?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가?

 

내가 지금 질투가 나서 죽겠다. 그러면 질투하는 마음에 대해서 부처님은 뭐라고 가르치셨나? 그것만 보면 되지 내 지금 질투다. 질투하는 것뿐이데. 온갖 심리상태를 다 연구해서 뭣에 쓰게요? 그죠? 그러니까 요게 당장 필요한 요런 부분을 실제 관계에서 이것저것 많이 공부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한 개를 배웠어도 그 한 개가 내 내면을 비추고 관계에서 어떻게 작용을 하고 전체 우리 사회나 전체적인 흐름에서 어떻게 이 유기적이고 연기적으로 관계하는가? 이런 걸 보시면 되겠다. 세 가지입니다.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말씀 드려요. 부처님 법을 그런 방식으로 공부를 하시면 좋겠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숙제를 할 때에 굉장히 그 효과적인 마음가짐과 비효과적인 마음가짐이 있어요. 제가 너무 빠릅니까? 괜찮죠. . 뭐냐 하니까 첫째 판단하지 마라. 뭔가 들여다보다 보면 자꾸 판단해져요. ‘내가 이렇게 저렇고’ ‘아이고 그럼 그렇지.’ . ‘내가 또 이러네. 저러네.’ 판단하지 마시라. 이겁니다. 그냥 이렇게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냥 그렇구나.’ 이렇게 ~ 내가 지금 흥분이 되는구나.’ ‘내가 즐겁구나.’ 아님 내가 좀 슬프구나.’ 이렇게만 하셔야지. 판단을 한다는 건 거기에 곧장 반응을 한다는 얘기거든. 평가를 하지 마시고 그냥 그렇게 보고만 계셔라. 잘 보고 계시고. 그 다음에 하다 보면 자꾸자꾸 거기에 휘말리게 되요.

 

그래서 이럴 때에 인욕을 배우셔야 되요. 자꾸 내가 판단하고 나에 대해서 그렇게 ~ 내가 그렇구나.” 이렇게 놀래거나 반응하지 않도록 하려 면은 인욕을 배워야 되는데 참는 걸 배워야 되는데 그냥 못 참습니다. 우리는. 그러니까 염불을 하시든가, 경을 독송하시든가, 자꾸 내가 휘말리는 내 마음에 휘말리는 그런 유혹이 들면은 절을 하시든가, 뭐 진언을 하시든가, 여러 가지 그 동안 여러분이 아시는 방식으로 그런 마음을 이렇게 조금 내려놔야 되고. 또 뭐냐 하니까 항상 부처님 법을 배울 때는 어떤 자세로 ~ 내가 아는데. 이미 들었는데.” 아니에요. 늘 초심으로 하셔야 됩니다. 이미 안다는 생각을 지우셔야 돼. 늘 부처님 법을 대할 때는 늘 처음 듣는 것처럼. 왜요?

 

초심이 뭐에요? 초발심시변정각이라 그랬죠? 늘 초심을 유지해야 되요. 우리가 어때요? 초심하고 내가 이미 안다는 생각이 들어가면 온전한 경험이 안 됩니다. 여러분 뭐 이 가운데서 가끔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 요리사가 있다고 해봐요. 제가 그런 경험이 있어요. 그 공양에 식당에 갔는데 그분은 즐기지를 못해요. 보는 순간 이거 뭔 재료를 들어갔고 뭔 재료를 썼으면 더 좋을 텐데. 이러느라고 그 자체로 온전히 체험이 안 되는 거에요. 그게 뭐죠? 내가 이미 경험한 이전의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지금 거를 재단하고 판단하는 거에요. 그러면 거기에서는 경험은 없습니다. 뭐만 작동하겠어요? , , , . . 금물이에요.

 

늘 뭐죠? 처음경험. 여러분과 함께 아이유 맨날 그렇죠. . 내 부인 맨날 그 얼굴, 그 얼굴.” 내 남편 그 얼굴, 내 자식 그 얼굴.” 아니에요. 사실은 날마다 참 새로운 모습이에요. 그럼 무상의 이치를 모르는 거지. 사실은 늘 처음 본 것처럼 새롭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미 굉장히 안다고 생각을 해요. 내 마음대로 평가하고 내 마음대로 이해하는 거죠. 그러니까 뭐에요? 지루하고 재미없고 심하면 그렇게 되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관계가 10년 사니까 저 사람 훤히 잘 알겠어요? 아니죠. 그러다가 나중에 너무너무 통탄을 하죠. 그러고는 또 상대를 비난하게 되잖아요. 날 배신했다는 둥. 뭐 내가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둥. 그게 아니고.

 

우리는 계속적으로 내 방식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생각한 거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누구를 대하든지 간에 처음에 보는 것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으로. 처음 보면 호기심 있고 관심 있고 조심스럽고 정성이 있잖아요. 뭔가 해서. 그런 마음으로 늘 해야 늘 새롭고. 사실은 새로운 존재들입니다. 내부터 시작을 해서 여러분 어제 같고 10년 전 같고 똑같은 사람이에요. 나는 변했는데 저 사람이 왜 나를 몰라주지? 그래서 소통이 안 되는 거에요. 사실은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가장 큰 목적이 뭐죠? 소통이에요. 오해하고 단계단계 벽을 쌓지 않는 겁니다. 벽이 있다면 그 벽을 허무르는 거에요. 더 많이 이해하는 거죠. 그게 목적인데 소통을 방해는 거. 그건 뭘 치유하는 거냐? 이거에요.

 

~ 이 시간에 소통을 방해하는 걸 치유하는 겁니다. 기 여러분 주별계획에는 안 나왔는데요. 오늘은 치유라는 게 뭔가? 치유하는 불교라는 게 뭔가? 치유하는 불교읽기가 뭔가? 요 책 제목에 대한 것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치유하는 불교읽기라는 건요. 불교가 삼법인이 뭐다? 삼독이 뭐다? 탐진치. 그럼 나는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한다니까요. 그렇게 오해할 수가 있어요. ‘그게 무엇이다.’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요. 영어로 What이 아니라 How. 어떻게. 어떻게 공부해야 되느냐 이거요. 그게 중요한 거에요.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서는 어떻게 공부하냐? 어떻게 가 중요하고 어떻게 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그럼 무엇을 치유하느냐?

 

[1_소통을 장애 하는 생각, 느낌, 감정, 기억, 행동 등을 치유한다.] 내가 내 주변과 또 내 자신과 내 이웃과 좀 더 뭐에요? 좀 더 친숙하고 관계를 더 공감하고 또 존중하고 이런 좋은 관계를 하는데 쉬운 말로 사랑이라고 해두죠. 사랑이 조금 불편하신 분은 자비. 연민. 그죠? 그렇게 내 이웃을 그렇게 대하는데 친절하게 대하는데 장애를 일으키는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기억이나 뭐 그런 행동을 치유한다. 여러분 누구를 생각해도 저 인간 뭐 잘하다가도 갑자기 뭐요? 저 인간이 옛날에 나한테 어떻게 대했는데.”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 갑자기 감정이 확~ 일어나죠. 그런 기억을 치유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뭐죠? 내가 뭔가 긍정적이고 선한 생각이나 선한 심리상태를 일으키는데 장애가 되는 거. 소통이 안 되면 그게 막히면 병 아니겠어요? 뚫리면 순환이 되면 우리 몸도 그러하듯이 마음도 똑같습니다. 먹어서 소화가 안 되면 어때요? 위장장애가 일어나죠? 설사가 난다든지, 체한다든지. 그죠? 들어서 봐서 경험했는데 뭐에요? 그게 내가 소화가 안 돼. 내 많이 듣고 많이 보고 일상으로 맨날 하잖아요. 관계 속에서. 그런데 그게 소화가 안 돼. 걸렸어. 내 마음에. 다 뭐로 가겠어요? 심리적인 불편, 상태, 불안, 스트레스. 그죠? 그래서 거기에서 미움, . 분노. 섭섭함. 아니면 또 과하게 사랑, 끌림. 별 감정이 다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소통시키고 잘 치유하는가? 이거에요. 그 다음에 [2_교리와 실천수행의 이원성을 치유한다.] 뭐냐 하니까요. 우리는 불교공부를 하면 부처님 공부는 어때요? 이론이 먼저 형성이 되어놓고 그 다음에 그걸 가지고 이렇게 실천하는 거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니죠? 어떻게 했어요? 부처님께서 먼저 계속 몸으로 생활 삶 속에서 깨달으셔서 그 다음에 그걸 뭐죠? 후대의 사람들에게 또 당신이 전달하기 위해서 가르쳐주기 위해서 하나의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뭐죠? 하나의 잘 정리해서 법으로 교리로 형성한 거에요. 그러니까 이론이 먼저가 아니고 실천이 먼저였다. 이거죠. 체험이 먼저였다. 이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부처님 법을 들으면 어떻게 돼야 되요? 그걸 하나의 교리로 내 관념으로 외우거나 기억하는 게 아니고 그걸 듣는 순간에는 내 안에서 뭐가 일어나야 되죠? 내 감정이 바뀌어야 되고, 생각이 바뀌어야 되고, 내 기억이 바뀌어야 되요. 내 태도가 바뀌어야 된다는 거에요. 변해야 된다는 얘기죠. . 그래서 이런 이원성을 치유하는 게 이 공부 따로 뭐에요? 내 감정, 내 생각 따로 하는 걸 치유한다. 조화롭게 만든다. 그 다음 세 번째입니다. [3_신구의 삼업의 부조화] 내가 순간순간 뭐에요? 분열이 일어나고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이유가 내 몸 따로 그러니까 행동 따로죠. 또 말 따로 생각 따로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내가 ~ 너무 어지럽다. 정신이 없다. 복잡하다. 도대체 마음이 뭔가 인간이 뭔가 세상이 뭔가하면서 뭔가 편치 않는 부정적인 것이 일어날 땐 어떻게 하시라고요? 가만히 앉아서 내 몸과 말과 생각을 이렇게 조화롭게 일체 시키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 뭐냐니까. [4_머리와 가슴의 부조화에요.] 머리하고 가슴이 영 따로 놀 때. 그럴 때는 뭘 따라요? 가슴을. 우리 이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서는 가슴이 중심입니다. 영 머리로 자꾸자꾸 돌거든 손을 가슴에 이렇게 얹어요. 얹으면서 가슴하고 내 심장하고 대화를 하시면 되겠어요. 그러면 다시 뭔가 돌아옵니다. 우리가 굉장히 어렵다고 힘들 때 뭐라고 그래요?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런 말 하죠. 대게 이렇게 많은 스승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치유하는 불교 읽기도 마찬가지에요.

 

~ 그렇게 해서 또 한 가지는 뭐냐 하면은 마지막입니다. [5_hear & now] 지금 여기입니다. 그러니까 내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함께 있어야 된다. . hear & now. 그러니까 몸이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있어요. 그럼 뭐라고요? 영가다. 딴 게 영가가 아니고. 몸만 있으니까 정신이 나갔잖아요. 정신이 나간 게 제정신이 나간 거에요. 우리가 보통 큰 스님들 말씀하실 때 마음이 원숭이처럼 여기에 이 경계다 저 경계로 팔딱팔딱 뛰어 다닌다 그러죠? 어디는 안 왔어요? 내 몸으로 안온 거에요. 그러니까 마음이 뭐에요? 몸과 함께하지를 못하고 지 멋대로 돌아다녀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어떻게 운명적으로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는 몸도 가지고 있고 마음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몸은 어때요? 항상 시공간에 지배를 받습니다.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아요. 내가 아무리 마음은 뭐에요? 내 마음대로 지금 여기 앉으셔가지고 여러 엄한 사람 다 생각하고, 과거 1020년 생각하고, 미래를 뭐 10년 뒤나 나중에 내생을 생각을 해도 가능한데. 마음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뭐에요? 몸을 떠나서 너무 오래 있으면 정신이 확 나간 거에요. 그래서 항상 뭐죠? 내가 공부를 할 때는 늘 내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함께 있도록. 그래서 우리는 사실은 아~ 이 명상 공부를 할 때 어떻게 해요? 호흡에 집중한다든지 아니면 내 어느 몸에 감각에 집중한다. 이렇게 하면서 맨 처음에 불교 수행할 때 사념처 수행하잖아요. 그죠?

 

身受心法신수심법.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이나, 또 몸을 떠나지 않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기억을 생각. 내 몸 떠나가지고 기억이 어디 있으며 그죠? 생각이 어디 있고 감정이 어디 있냐고요? 다 뭐죠? 몸이 반응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이 치유하는 불교읽기는 요런 관계 속에서 그러니까 몸이 따로 마음 따로 노는 걸 치유해서 몸과 마음이 언제나 조화롭게 움직이게 한다. 제가 여기서 저기 걸어가는데 여러분이 마음이 저 앞에 가면 어때요? 몸은 여기 있는데 그러면 몸이 막 따라가느라고 몸이 뒤뚱거리고 정신이 없잖아요.

 

또 몸은 저렇게 가고 있는데 마음이 그저 느긋해서 몸이 이렇게. 왜 그래요? 몸과 마음이 일치를 안 하고 마음이 뒤로 빠져서 그래요. 제일 대표적인 게 여러분 스키 타시는 모르지만 대게는 뭐에요? 마음이 먼저 가는데. 스키를 타 보시면은 아니에요. 몸이 먼저 갑니다. 그럼 마음이 몸 따라 가는 게 막 후달리는 거야. 왜냐하면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파르게 내려가거든요. 그럼 마음이 되게 무서운 거에요. 그죠? 마음이 무서우니까 어떻게 되요? 넘어지는 거죠. 몸하고 똑같이 같이 가면 어때요? 굉장히 균형이 잡히는 거지. 스키든지 스케이트든지. 뭐든 지요.

 

그래서 원래 수행을 잘하시게 되면 몸과 마음이 함께 조화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우리가 봤을 때는 운동신경도 뛰어나지고 굉장히 잘되는 거죠. . 오늘은 요기까지 하겠습니다. 여러분 숙제 다음 주에 잘하시고 또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