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1_6.바람직한 내세관은 어떤 것일까요?

Buddhastudy 2016. 1. 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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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은 사후세계에 대한 여러 얘기들을 나오게 한 거 아닌가. 또 그런 얘기들이 옳고 그르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가능성을 열어둠으로 해서, 보통 사람들은 삶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거 아닌가? 또 살아있는 사람들도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으니까, 없어졌다면 얼마나 허전하겠어요. 그죠? 그러니까 저기 계신다고 할 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 계신다고 할 때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할 거 아니겠어요.

 

결국은 그런 면에서 그 사후세계 얘기는 그것이 실제냐, 아니냐로 접근하기 보다는 그것이 갖는 보통 사람에게 유익 하냐 안 하냐,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살펴보는 게 좋지 않으냐. 그렇게 본다면 저는 유익한 면이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고요, 또 돌아가신 분이든 살아남은 사람이든. 그런데 그것이 마치 사실 이냥 지나치게 강조될 때,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천국 가는 티켓을 판다든지, 49재 비용이 너무 지나치게 많이 든다든지, 부작용이 생기는 거 아닌가.

 

또 아무것도 없다고 또 너무 단정적으로 얘기하므로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좀 허전함을 가져오는 거 아닌가. 그런데서 일류가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죽음이라고 하는 생의 마지막 상황에 이르러서 일어나는 두려움을 극복을 하기 위해서 그나마 내놓은 좋은 하나의 길을 저는 세상 사람들이 그냥 유익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수행차원에서 굳이 얘기한다면, 그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체가 없어져버리면, 죽음을 자연스러운 그냥 하나의 현상, 존재의 그냥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사후 세계가 있든지 없든지, 좋은데 가든지 나쁜데 가든지, 이런 거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까요?

 

두려움이 사라져버리면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은 꿈과 같은 거거든요. 꿈속에서 살 때는 좋은 꿈과 나쁜 꿈이 있지만, 꿈을 깨버리면 그것이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 꿈이네.” 이런 것처럼, 우리가 삶의 본질을 꿰뚫어 봐버리면, 그런 문제들은 그냥 허공에 구름처럼 그냥 흩어져버리는 거 아닐까. 굳지 본질적으로 얘기한다면 그런 문제다. 그럴 때 우리가 생사를 뛰어넘었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건 죽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생과 사라는 것이 하나의 인식상의 문제기 때문에 인식상의 오류에서 벗어나버리면, 그냥 낙엽이 떨어지고 잎이 피듯이 그냥 우리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봄에 피는 새잎도 예쁘지만, 여름에 무성한 잎도 예쁘고, 가을에 물든 단풍도 예쁘고, 떨어지는 낙엽도 예쁘지 않느냐. 이것은 삶의 그냥 한 현상이다.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하나의 법칙 아니겠느냐. 그런 쪽에서 조금 더 받아들여지면, 저희들이 이런 사후 세계에 대한 논쟁에서 어떤 두려움에서 좀 자유스럽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