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94회] 지적장애아이의 꿈을 키워 주고 싶어요

Buddhastudy 2016. 6. 23. 05:59



 

우리가 학교 다닐 때요, 50년 전에는 누가 미술을 하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음악을 하고 싶다. 중학교 다닐 때 우린 딴따라라고 불렀는데 고적대 있잖아. 그죠? 그런데 가서 음악 좋아하고 이러면 부모들이 놔둡니까? 쓸데없는 짓 한다고 공부하라고 그래요? 공부하라고 그래요. 만화 그린다, 체육 한다, 그 다음에 그림 그린다, 음악 한다. 이러면 못하게 해요. 돈 안 된다고. 다 법대 가라. 공대 가라. 이렇게 한단 말이오. 그래서 다 자기 꿈을 접고 생활 때문에 갔어요.

 

그러니까 밥을 먹고 살기 힘들 시대에는 꿈은 꿈같은 소리에요. 아시겠어요? 꿈이 어쩌고 그러면, “야 임마. 꿈같은 소리 그만해라. 꿈 깨라.”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래서 무슨 생존을 위해서 모든 걸 선택을 해요. 그런데 우리 한국사회가 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회에요. 그러면 자식세대인, 먹고 살 수 있는 세대에서는 꼭 돈만이 행복이 아니다. 먹고만 살 수 있다면 그림 그리고 싶으면 뭐해라?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림 그리고 살아라. 음악하고 싶으면 음악하고 살아라. 네가 원하는 데로 하고 살아라. 꿈을 가지고 살아라.”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런데 아이들을 이렇게 조사를 하면, “저는 꿈이요, 음악이에요. 뭐에요.” 요런 애가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조사하면 몇 명쯤 나올까? 탁 자기 분명하게 나 이거 하고 싶다.” 이런 애가. 몇 명 나올 거 같아요? 열 명에 한명 정도 나와요. 그러면 열 명에 한명은 소수라서 그게 무시되었는데, 그 소수를 위해서 네 꿈을 키워라. 네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봐라.” 이렇게 얘기한 게, 그래서 그 악조건 속에서 꿈을 향해서 달린 사람의 성공신화가 나오게 된 거요. 그러니까 전부 바뀌어가지고 어릴 때부터 애들에게 꿈을 심어줘서 꿈을 가지고 살도록 해라.”

 

이렇게 지금 교육이 너무 되어서, 요즘 청소년하고 대학생들의 최대의 고민이 뭐냐? 스님한테 질문하는 게 제 꿈이 뭔지 모르겠어요. 제 꿈을 어떻게 찾아야 되요? 제가 진짜 뭐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제 거꾸로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뭐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큰 최대의 고민거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그러죠.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 아무거나 해도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꼭 무슨 과를 가야 된다. 이런 게 없는 학생은 좋아요. 아무 과나 가면 되고. 내가 뭐 해야 될지 좋은지 모르겠다하면 아무거나 하면 되요. 아시겠어요?

 

그러면 내가 , 그럼 중 돼라.” 내가 이러죠. 그러면 그건 싫어요.” 그래. “네 아무거나 할 수 있다며?” “아니 그건 빼고요.” “그러면 신부되라.” “그것도 빼고요.” “그러면 너 파출부해라.” “그것도 빼고요.” 이렇게 자꾸자꾸 빼다보면 어때요? 대충 범위가 되겠죠. 그래서 내가 그런 거 너무 따지지 마라. 그거 다 선배, 선생이 만든 거다. 꿈이니 뭐니 이런 것도 다 진짜 헛된 얘기다.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아무거나 해라. 있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없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하다가보면 이것도 해보고, 이것도 별로인데, 이것도 해보고 이것도 별로인데, 한 다섯 개쯤 해보면 그래, 이건 좀 할만하다.” 서너 번 다니다보면 너댓번 다니다 보면 생겨요? 안 생겨요? 생겨요.

 

나는 진짜 스님, 이건 내 백 개의 직업 중에 꽁지 들어갈 일이오. 종교인이 된다. 이런 건 난 상상도 안 해본 거요. 그런데 억지로 되었다. 이 말이오. 억지로 되어서 한 사오십년 하니까, 지금 사십 몇 년 하니까, 지금도 할 만하잖아. 그냥 하잖아 이렇게. 큰 무리 없이 하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다. 20년 가까이를 하다가도 관둘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시겠어요? 그런데 이제는 너무 도가 넘어버려서 그런지, “잘했다.” 이런단 말이오. 그런 것처럼 어떤 일도 하다가보면 거기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재미가 붙고 그래.

 

처음부터 , 요거다.” 이거는 열 명 중에 한명, 백 명 중에 한명 밖에 없고, 또 그렇게 재미나는 거는 술 먹고 마약하고 이런 거나 처음부터 재미있지, 어린애들도 피아노가 처음부터 재미있는 애가 별로 없죠? 안 다니려고 그러다 치다보면 재미가 있고, 자전거도 타다보면 재미가 있고, 운전도 하다보면 재미가 있고, 익숙해야 재미라는 게 생긴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뭘 심는다고 자꾸 그렇게 억지로 부리지 마라. 그냥 자기 좋아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하고, 특별히 좋아하는 거 없으면 개가 뭐,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어서 살고, 고양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어서 살아요? 그냥 사는 거요. 살면 그냥 산다.

 

다만 이 아이가 팔이 하나 없으면 없는데 맞추어서 살도록 격려해주고, 다리가 없으면 없는데 맞추어서, 눈이 안 보이면 없는데 맞추어서. 눈 하나 없는 애를 눈 고친다. 그러면 아이가 눈 안 보이는데 대해서 열등의식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고치는 건 좋은데 부모욕심으로 무리하면 그게 결국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열등의식을 심기 때문에 스님은 그거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너는 너대로 너는 너대로, 행복을 느끼면 좋고, 꿈이 있으면 도와주고, 왜 꿈이 있어야 됩니까? 나는 그거 잘 모르겠어.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잖아. 그건 예를 들어서 기독교 국가에 무슬림 아이가 들어가면 종교 때문에 안받아주고, 남자 중심사회에서 옛날에 서당에 여자 받아줬어요? 안 받아줬어요? 안 받아주고. 그 다음에 이 무슬림 학교에 내가 기독교 다니겠다면 받아줘요? 안 받아줘요? 신앙 안 버리면 안 받아주고. 나이지리아에 여학생을 납치해서 강제로 무슬림에 세워놓고 이런 것도 있잖아. 프랑스에는 지금 무슬림들, 히잡 쓰는 거 학교에서 못쓰게 하고 이러지 않습니까? 쓰려면 학교 나오지 마라 이러잖아. 그러니까 이거는 잘못된 거지만, 우리 사회가 한꺼번에 극복이 안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옛날에 과거 시험 여자만 무조건 안 되잖아. 공주라도 안 돼. 그거를 우리가 수백 년 걸려서 극복해 왔고, 외형상 장애, 다리가 없다. 눈이 안 보인다. 이거는 지금 극복이 어느 정도 되었잖아. 그러나 정신지체부자유아, 이런 거는 아직 눈에 안보이잖아. 이건 아직 사회가 그 편견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고아를 옛날엔 버렸다가 보호했다가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각 가정에 입양해서 정상적으로 살 잖아요. 그래서 지금 지체부자유아도 옛날에는 버렸다가 그 다음에 보호했다가 요즘은 지체부자유아도 아직 증세가 심하지 않으면 요번에 포스코 청암상 받은 독일에서 온 신부님은 그걸 다섯 명씩 이렇게 모아서 아파트 구해서 책임자 한 사람 하고 같이 정상, 주민들 속에 살도록 하는 이게 하나의 흐름이에요.

 

그러니까 버렸다가, 차별해서 버렸다가, 아니다. 보호하다가, 이제는 그것도 정상이다. 이렇게 나아가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과정에 우리 사회가 한꺼번에 갈 수가 없고, 지금 이게 확대되어서 가는데 미국이나 유럽은 지금 말한 대로 그런 거는 개인 부담이 아니고 전부 딱, 검사해보고 과잉행동 이런 거 나오면 정부가 다 책임을, 치료비 낼 뿐만 아니라, 부모가 그 자식을 돌보면, 부모한테 뭐가 나옵니까? 돌보는 비용이 다 나옵니다. 일당이 다 계산되어 나온다. 이 말이오. 그럴 정도로 보장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이거는 우리 사회, 그래서 우리가 복지 사회로 지금 가자는 거 아니오. 그런데 복지 사회로 가자는데 지금 다 정상인을 중심으로 해서 복지도 지금 논의가 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투표권이 다수를 해야 된단 말이오. 노인복지라든지, 청년 등록금 반값이라든지, 이런 게 우선적으로 가잖아. 그러면 장애라는 건 우리 사람들한테 소수요? 다수요? 소수요. 소수니까 표결이 적으니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이게 더디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이게 한발 한발 가고 있는 과정이니까 첫째는 뭐한다? 이러한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 꾸준히 뭘 해야 된다? 제기해야 되잖아.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더디게 온 게 뭐요? 성적취향이 다른 사람, 다시 말하면 동성애나 양성애나 이런 거는 완전히 무슨 종교적으로 사탄처럼 취급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것도 숨어 살다가, 그 다음에 드러냈다가,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은 뭐다? 정상적인 부부로 인정해라. 입양까지 해라. 이래서 지금 미국에서는 다 입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잖아. 지난번에 오바마가 소치올림픽에 러시아에 안간 건 뭐요? 그거 핑계대고 안 갔잖아. 러시아에서 성 평등, 성 취향, 차별금지법 그거 안 만든다고, 인권침해라 그래서.

 

이렇게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는데, 이거는 우리가 꾸준히 노력해서 개선해야 될 일이지, 한꺼번에 될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상담하시는 분은 이거 그냥 부형들이 좀 애들을 위해서 싸워줘야 된다. 이렇게 그분은 그분대로 말씀하신 거고, 제가 질문자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이런 아이를 둔 부모도 행복해야 됩니까? 안 행복해야 됩니까? 행복해야 돼. 그러면 지금 세상이 이걸 안 해준다고 한탄하면 자기 불행해. 화가 나.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조금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제도도 바뀌어야 되지만, 성숙해야 되는 거는 이런 아이들이 만약에 내 아이로 안 태어나고, 나하고 인연이 안 되고, 다른 집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제대로 보살핌을 못 받았겠느냐? 그러니 기독교신자라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 이 말이오.

 

이런 인연을 저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이 아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고, 또 우리 부모는 부모가 아니에요. 공부 잘하고 인물 잘생기고 똑똑하고, 이러면 뭐다? “아이고하면서 자식 사랑하는데, 이거는 이웃집애도 좋아해요. 이런 아이가 있으면. 그런데 공부도 못하고 장애가 있고, 이러면 다 싫어해. 그러나 누구는 좋아해야 된다? 부모가 좋아할 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수녀님이나 이런 분들은 제자식도 버리고, 제 가족도 버렸는데, 그런 사람 모아서 결혼도 안하는 분들이 의무도 없는데, 그것도 한명도 아니고 여러 명 모아서 아무런 대가없이 평생 돌보는 사람이 있잖아.

 

그런데 그분 괴롭다. 수녀님들 괴로워서 못살겠다. 이런 사람 없잖아. ? 이것을 신앙에, 사랑의 실천이라고 보고, 내가 이 아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 때 내가 바로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조건 없이 나를 구원한다. 여기서 내가 이 사랑하고 칭찬을 받는 이거는 작은 칭찬이고, 저 천국에 가서 하나님한테 받는 상은 큰 상이다. 이런 게 불교적으로 말하면 무주상 보시와 똑같은, 무수상 보시는 한량이 없다 이러잖아요. 그와 같은 거요. 그러니까 이거를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거를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불교로 말하면 보살심으로 보살피고.

 

그러나 내가 해보니까 나는 하지만, 이 세상에 한 아이가 장애일 때 그 가정이 불행해지잖아. 힘들어서. 그러니 이거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공동으로 이 책임을 지자. 공동으로 책임지자는 게 이 치료나 보살핌이 국가적으로 해결하자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 거는 우리 세금내서 하는 거니까, 그런 마음으로 하나는 보살피는 거고. 그런데 그거를 자식으로서 집착해서 물의해서 하면 안 돼. 수녀님들은 이쪽에서 보살피는 게 나은 이유가 어디 있냐? 그들은 물의해서 고치려고 안하고, 이 있는 상태로 보살피고 사랑하는데, 부모는 이걸 자꾸 자기 욕심대로 물의해서 고치려고하기 때문에 부모는 부모대로 힘들고, 아이들은 애들대로 열등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서 첫째는 행복으로 받아들여라.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두 번째는 내 아이는 내가 책임지지만, 다른 사람까지 생각해서 이걸 뭐한다? 제도적으로 보살핌이 되도록 사회에 법적인 제도를 만드는 일에 좀 충실하게 해라. 그런데 그게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요번에 안한다고 악을 악을 쓰고 그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노인에 대한 연금, 사대종양에 대한 뭐, 공약 많이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러면 해놓고 안 지킨다고 악을 악을 쓰는데, 나는 그것도 맞는데, 우선 공약을 했다는 거는 국민의식이 그만큼 올라왔다는 거 아니오. 그 얘기 안하면 표를 못 얻을 정도로 올라왔다.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올라온 거요. 억지로. 억지로라도. 그 억지로라도 올라오면 바뀌는 거요.

 

그러면 공약을 해놓고 못 지키면 부담이 되나? 안 되나? 되지. 그러면 다음 선거 때 이게 논쟁거리가 될 거 아니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세 번 네 번 어길 수는 없을 거 아니오. 그죠? 한번은 어길 수 있지만, 그러면 다음에는 지켜질 확률이 높고, 또 못 지킨다고 욕해놓으면 야당이 집권하면 지킬 확률이 높을까? 안 높을까? 높아요. 왜 그럴까? 자기가 약속해놓으면 안 지킬 수 있는데, 남발했다고 욕을 엄청나게 해 놨기 때문에, 다음에 가면 지킬 확률이 높으니까, 우리가 정부에 얘기할 때도 이거 해주세요.” 하는 거보다 너 왜 한다 해놓고 안 하노?” 이게 우리가 압박하기가 쉽잖아.

 

그러니까 이거는 사회가 한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약속을 지켜라하는 압력은 계속해야 되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나 요거는 안한다고 막 화를 내고 때려 부수고 이러면 안 되고, 이게 지금 한발 한발 나아가는 거다. 이거 하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합의를 얻어야 되고, 이렇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러니까 자기가 행복해야지 애가 다 보장이 되면 행복하다면 자긴 내일 교통사고 나고 죽어버리면 자기 인생이 뭐요? 그러니까 이 아이를 돌보는 이게 그냥 행복해야 돼. 제가 여러분하고 이렇게 상담하는 게 내 인생의 행복이지, 이거 다 내 얘기 듣고 고쳐지는 게 행복이 아니에요. 고칠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그래도 이렇게 대화하고 나면 가서 기도 하든 안하든, 고치든 안 고치든 요만큼이라도 나아질까? 안 나아질까? 여기 듣는 사람도 문 열고 나가면 아무 소용없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자꾸 듣다가 보면 쬐금 나아져요? 안 나아져요? 나아져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진짜 무모한 짓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라도 할 수 없지 않느냐? 이거 말거 내가 뭐 할 거요? 가만히 있다 보면 좋아지느냐? 그거는 아니잖아. 이렇게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한 힘이,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모여서 제도도 바뀌고 사람 심성도 바뀌고, 이렇게 바뀌어 나가는 거요.

 

이번에 세월호 사건 보면서 우리가 좀 반성을 해야 되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런 물량주의, 성장주의, 이런 것이 얼마나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느냐. 그런 면에서 이제 우리가 사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야 될 때가 왔다. 질적으로 변화시켜야 될 때가 왔다. 이런 거에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