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3. 불법에는 차별이 없다

Buddhastudy 2018. 3. 29. 21:21


안녕하세요. 오늘은 재가 불자 가운데에서 아주 위대하신 분에 대한 얘기를 좀 해드릴까 합니다. 출가한 스님들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들로 누구를 듭니까? 10대 제자를 들죠. 사리푸트라, 목갈리나, 마하가섭, 아니롯다. 이렇게 우리가 십대 제자를 들먹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 재가신자로서 위대한 사람은 누가 있었을까?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없었을까? 아닙니다. 왜 잘 모를까? 그것은 경전 기록을 누가 했습니까? 스님들이 기록을 했죠. 그러니까 자기들 얘기만 많이 적어서 그럴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기록을 했지만, 다 재가신자의 많은 수행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어요.

 

사부대중이라고 말하면 뭡니까?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로 남성중심사회, 그리고 스님 중심적으로 기록을 하다보니까 주로 부처님과의 대화가 누구 얘기로 나옵니까? 비구들 중심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 경전을 자세히 보면 남자 출가한 사람들 비구들만 깨달은 게 아니고, 여자가 출가해서 스님이 된 비구니들도 깨달아서 아라한의 경지에 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세속에 몸을 두고 있으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해서 이 성인의 지위에 이른 사람도 많다. 재가신자 하면 주로 남자 재가신자들만 얘기되지 않습니까. 그죠? 기원정사를 지은 수닷타장자라든지, 또는 의사 지바카라든지, 빈비사라왕이라든지, 프라시나짓왕이라든지, 이런 사람들 주로 얘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자재가신자로서 이런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사람, 부처님의 십대제자에 버금갈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 베사카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부처님을 위해서 절을 지었습니다. 중림정사는 빈비사라왕이 지었다고 그랬죠. 기원정사는 수닷타장자가 지었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경전 읽으면 녹자모 강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녹자모 강당을 누가 지었느냐. 베사카부인이 지은 절이오. 부처님이 이 절에서 하안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베사카부인은 친정은 마하가다국이에요. 왕사성 근방이다. 이 말이에요. 그 할아버지가 다섯 손가락, 그 나라에서 5등 안에 들어가는 그런 큰 부자였습니다.

 

그럼 부잣집에 손녀로 태어났으니까 얼마나 사랑을 받았겠어요. 그런데 이미 부처님께서는 이곳 왕사성에서 교화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 베사카부인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이미 마음의 문이 열렸어요. 그래서 아주 독실한 불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6살 때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시집 간 게 어디냐? 사위성에 있는 부호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그러니까 당시에 제일 큰 도시가 왕사성이고, 두 번째 큰 도시가 사위성이에요. 두 나라는 대국으로서 늘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시집을 갈 때 이 집안이 워낙 부자니까 많은 패물과 재물도 보냈지마는, 8명의 현인, 8명의 조언자, 아주 현명한 사람들로 시중을 따라 보내서, 이 부인이 혹시 해를 입거나 잘못될까 해서 보살피도록 이 할아버지가 현인을 딸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집을 와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아버지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마침 대문간에 스님이 탁발을 하러 왔어요. 스님이 탁발을 하러 오니까 시아버지가 음식을 먹고 있다고 보고는 고래를 싹 돌려 저쪽으로 가버리는 거요.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된다? 스님 오면 줘야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못본척 하고 고개를 돌리고 저쪽으로 가버리는 거요.

 

그래서 이 모습을 본 베사카부인이 스님에게 가서 사과를 했어요. “스님,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식은 밥을 먹고 계셨기 때문에 스님께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보면 당시에 아마, 스님께 따뜻한 음식을 주는 그런 문화인가 봐요. 방콕 같은 데 보면 밥을 하면 제일 위의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아 놓습니다. 스님 오면 드리려고. 우리 어른 오면 드리려고 하듯이.

 

스님이 문 앞을 지나가면 드리거든요. 먹다가 남은 찌꺼기를 주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자기 딴에는 변명을 한 거죠. 그러니까 이 보시를 안 한 게 아니고 걸식을 외면한 게 아니라, 식은 밥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스님께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과를 하고 보냈어요.

 

그런데 이 말을 시아버지가 듣고는 화를 굉장히 많이 낸 거요. 며느리가 아버지를 모독했다. 이거야. 나는 그때 황금그릇에다가 위에 쌀을 넣어서 죽을 쑨,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며늘아기가 시아버지보고 우리 아버지는 지금 식은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느냐. 이거야.

 

그래서 당장 집으로 가거라. 이렇게 친정으로 가라고 쫓아버리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러니까 이 베사카부인이 들으니까 억울하잖아. 그죠. 그렇다고 옛날에는 억울하다고 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가서 대들고 항의를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위기에 처했단 말이오. 쫓겨나게 됐으니까.

 

그래서 그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따라온 8명의 현인에게 이 사정을 얘기했어요. 제가 잘못한 것입니까. 그러니까 8명의 현인이 잘못한 게 아니다. 이거야. 그래서 베사카부인이 힘을 얻어서 시아버지에게 찾아간 거요. 그래서 이 8명의 현인이 있는 자리에서 아버님께서 저를 집으로 가라고 쫓아내는데 왜 그렇습니까?” 하니까 이제 얘기하는 거요.

 

나는 황금바루에, 이 유미죽을 받아먹고 있었는데, 네가 어떻게 감히 우리 아버지를 식은 밥을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를 모독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쫓아내는 얘기를 하는 거요. 그러자 베사카부인이 그냥 그렇게 말한 게 아니고 그때의 정황위에서 그 스님이 걸식을 하러 왔는데, 아버지께서 그것을 외면하고 가시니까, 저는 그 스님에게 저의 아버님이 보시를 거절한 게 아니고,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스님께 보시를 할 수 없었습니다. 라고 아버님을 위해서 변명을 했다.”는 거요.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만약에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저는 아버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아버님의 그런 명령은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니까 그 8명의 현인이 듣고 있다가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판정을 한 거요.

 

그러니까 시아버지도 생각해 보니까 그냥 쫓아냈다가는 말썽이 될 것 같은 거요. 사돈 지간에. 상대도 엄청난, 자기보다 더 엄청난 부호니까. 그때 며느리가 아버지가 이 기회를 잡아서 얘기 한 거요. 이 아버지는 니간타라는 육사외도, 분이 있습니다. 나영외도라는 것은 옷을 다 벗고 다니는 수행자 있지 않습니까. 니간타의 제자에요. 니간타 신자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거요. 요즘말로 하면. 스님이 탁발하러 왔는데, 며느리는 불자인데, 시아버지는 기독교인이니까 이런 문제가 벌어진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며느리가 스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어도 이 시아버지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얘기 했어요. “저는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고, 스님들은 다 청정히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만약에 이런 공양을 못하게 하신다면 합당한 이유가 없이, 그냥 종교가 다르다. 이런 이유로 거절을 하신다면 저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니 아무리 며느리지만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겠어요. 시아버지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며늘아기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허락을 하게 된 거요.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죠.

 

이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꾼 거죠. 오히려 쫓겨날 위기에서 도리어 공양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거요. 이렇게 해서 부처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청하게 된 거요. 음식을 만들어 놓고. 그래서 아버님께 가서 얘기 했어요. “아버님도 공양을 올리는데 참여하십시오.” 그러니까 나는 니간타 제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

 

아버지도 그 자리에 참가하고 싶은 데도 옆에 니간타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이집에 아예 상주하는 사람이 있었나봐. 그 사람이 절대 거기 참가하면 안 된다고 말렸는가 봐요. 그래서 공양을 끝난 뒤에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게 됐는데, 또 가서 아버님 법회에 참여하셔서 법문을 들으십시오.”

 

이때는 이 사람도 법회에 참가하고 싶은 거요. 그런데 역시 니간타의 제자가 옆에 있어서 못 가게 말려서 결국은 참가를 못하고 법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대신에 체면이 있으니까 참가는 안하지만, 병풍 뒤에 몰래 숨어서 법문을 들었어. 그 법문을 듣고 결국은 마음의 문이 열려서 결국은 부처님께 귀의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 시아버지는 며늘아기를 보고 이는 나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며느리가 이 불자로서 보살행을 하니까, 내 어머니 같은 분이다. 내 며느리가 아니고 내 아내도 아니고 내 어머니 같은 분이다. 이 말은 당시에 아내라든지 며느리는 여자잖아. 그죠. 차별의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내 어머니 같은 분이라는 것은 같은 여자지만 어머니는 차별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 말 이해하시겠어요? ‘이는 내 어머니 같은 분이다.’ 그게 바로 녹자모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내 어머니 같으신 분이다. 이렇게 해서 며느리를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했다는 것은 며느리를 하대하지 않고 아주 존중했다. 이런 뜻이에요.

 

이렇게 해서 이 베사카부인은 시부모를 교화한 거요. 이렇게 된 이후에 베사카부인은 많은 불교역사 속에서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얘기가 기원정사에 가서 법회를 듣고, 깜박 잊어버리고 아주 값나가는 비싼 외투, 코트라고 할 수 있겠죠. 아버지가 시집올 때 사준, 보내준, 그 온갖 보석이 박힌 그 비싼 코트를 놓고 깜박 그냥 돌아온 거요.

 

즉 벗어서 하인에게 가지고 있으라고 했는데 하인이 잊어버리고 돌아온 거요. 그래서 집에서 안 가져온 줄 알고 하인에게 시켜서 찾아오라고 그랬어. 이렇게 말했어. “가서 그 코트가 잘 보관되어 있거들랑, 아마 틀림없이 아난존자가 잘 보관해 놓을 거니까, 보관해 있거들랑 숫제 보시를 하고 오너라.” 그런데 가니까 역시 코트를 아난존자가 잘 보관을 해 두고 있었던 거요.

 

그래서 주인의 뜻을 전했더니 아난존자가 받지를 않았어. 보시라고 다 받는 거 아니에요. 저 같으면 다다익선이라고 이것저것 주는 대로 다 받지마는 부처님은 절대 그렇지 않으셨어요. 당시에는. 보시를 할 때 왜 하는지, 무엇을 할 건지, 이것을 다 들어보시고 수행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받으시지마는 그 외에는 절대 안 받으셨어요.

 

이 값비싼 코트는 필요가 없죠. 나 같았으면 받아서 팔아서 어디 절 짓는데 보태 쓰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을 텐데. 내가 언제 로스앤젤레스에 갔는데, 깨달음장을 진행했는데, 그 깨달음장에 참여한 한 보살님이 너무너무 기뻤어. 그래서 자신은 남편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그 여자들은 그렇다며요?

 

결혼기념식 때 반지를 받든지, 목걸이를 받든지, 이렇게 받는데,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비싼 선물을 남편한테 받았나봐요. 그걸 받으면서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이런 위안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깨닫고 보니까, 이런 게 그걸 증명하는데, 보석이 필요가 없어. 그래서 남편이 자신에게 선물한 것은 너무너무 고맙지마는 그러나 이 깨닫고 봤더니 이런 것이 필요 없다 해서 그 깨달음에 너무 기뻐서, 자기가 현금이 보시를 하려는데 지금 현금은 없고, 그래서 그것을 저한테 보시를 한 적이 있었어요.

 

몇 천만 원짜리를. 그럼 사실은 재가 거절을 해야 되잖아. 부처님 가르침대로 하면. 그죠? 사양을 했어. 나도. 사양을 하면서 손을 설 내밀었는지는 모르지마는. 사양을 했는데, 이걸 팔아서 스님이 하시고자 하는데 쓰라는 거요. 그래서 받아왔는데, 내가 그것을 어디 가서 팔겠어요. 받아온 게 문제죠. 그래서 나중에는 도로 또 돌려드렸어요.

 

왜냐하면 그분이 그것을 살 때는 예를 들면 수천만 원이 들었는데 그것을 팔려니까 그것의 1/3도 안 되는 돈이잖아. 그죠. 그래서 나중에 돌려드렸는데. 이것은 내가 한마디로 말하면 우유부단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아직도 좀 마음에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것이 아주 깨끗하게 그 자리에서 거절이 되어야 되는데, 12번 거절하고 3번 권하니까 슬그머니 가져온단 말이오. 이런데서 부처님은 그것이 딱 거절이 된 거요. 부처님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래서 돌려보내졌어요. 그러니까 이 부인이 그렇다면 이 코트를 팔아서 내가 팔아서 보시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시장에 내놨는데 너무너무 비싼 코트니까 그것을 살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래서 이 부인에 세 번째 어떻게 했냐? 자기가 그 코트를 샀어. 자기가. 999만 냥을 주고 샀다고 그래. 이렇게 자기가 그 코트를 사서 그 돈으로 절을 지었다. 그게 뭐다? 녹자모 강당이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곳에 머물도록 하고, 또 법을 배워 기뻐하고, 그래서 이 부인이 이렇게 다 한 뒤에 노래를 부르고 다녔데요. 너무너무 기뻐서.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저 부인이 약간 정신이 이상자인가?” 이렇게 말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 여인은 과거 생에도 그랬고, 이 생에도 그랬고, 그 여인은 보시도 아주 기꺼이 했고, 그것뿐만 아니라 법을 듣고 이해하는 것도 아주 깊어서 그는 비록 재가의 몸으로 되어있고, 여인의 몸으로 되어있지만, 모든 집착과 번뇌를 여읜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부르는 노래는 나는 이제 할 일을 다 했다. 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말이 모든 번뇌가 끝났다. 이런 얘기요. 마음속에 뭔가 해야 할 일, 욕구, 욕망이 더 이상 사라져버렸다. 이게 할 일을 다 했다. 이런 뜻이오.

 

이 부인은, 기원정사를 지은 수닷타 장자와 사위성에서 쌍벽을 이루는 분인데, 부처님이 곤궁에 처했을 때, 여러 번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법에 귀의하니까, 이런 이교도들이 부처님을 많이 모함했거든요.

 

어떤 여자를 시켜서 뱃속에다 박을 넣어 내가 부처님 아이를 가졌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서 장난을 치다가 끈이 떨어져서 박이 떨어지고 망신을 산적도 있고, 또 어떤 여인을 죽여서 땅에 묻어 놓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랬다. 이렇게 해서 그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수닷타 장자와 베사카 여인이 아주 지혜롭게 해서 범인을 잡아내고,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명성이 더 높도록 이렇게 하셨어요. 이런데 이 베사카부인의 아주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 속에서 비록 당시 사회에 여성이 굉장히 차별을 받고 있는 그런 조건에서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아버지를 교화해 내고, 오히려 이렇게 여인의 몸으로 큰 정사를 짓고, 그리고 출가하지 않는 몸으로 남편을 두고 자식을 둔 그런 몸으로도 수행정진을 해서 모든 번뇌가 다한 경지에 이르러서 부처님으로부터 특별한 칭찬을 받은, 이런 예도 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스님만 성불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또 스님들만 수행하고 우리는 그저 후원만 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모든 불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해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자신이 처한 조건과 현실에 따라서

출가해서 전적으로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있고,

또 재가에 있으면서 생활을 영위하면서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재가에 있으면서 그 길을 가는 길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기 때문에 더 부지런히 정진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서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스스로 자꾸 차별을 만든다. 계율을 지킨다면 똑같이 계율을 지켜야지. 마음 씀씀이도 똑같이 해야 될 거 아니오. 스님들은 이렇게 계율을 지켜야 되고, 우리는 안 지켜야 된다면, 그 말은 스님들은 계율을 지켜서 청정해 질 수 있지만 우리는 청정해 질 수가 없다는 얘기 아니오.

 

그러니까 이렇게 차별을 두지 말고, 스님들을 특별하다고도 생각하지 마라. 대신 비난도 하지 마라. 특별하다고 생각하니까 여러분들은 자꾸 비난하게 됩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비난할 일도 없어진다. 이 말이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런 입장에서 똑같이 법에 귀의해서 수행 정진하는 이런 삶을 우리가 살아간다면, 오늘날 스님들과 재가신자들은 어떤 갈등구조에 있는 게 아니고,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협력하는 이런 관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