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믿음

Buddhastudy 2018. 4. 30. 20:43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종교를 가지는 게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격을 타고 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는 제 성격 너무 원망스러운데요.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다 조금씩 다르잖아. 감성이 조금 강한 사람이 있고, 이성적인 게 강한 사람이 있고,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해 놓은 사람도 있고, 그런데 사람이 다 똑같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정신작용 아니오,

 

정신작용은 크게

이성적인 작용이 있고

감성적인 작용이 있는데

 

이성적인 작용이라는 게

심리적으로 말하면 주로 의식이라고 그러고,

 

감성적인 작용, 또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주로 무의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인 것은 내가 결심도 하고, 각오도 하고, 노력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감성적인 것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자동화되요, 자동화.

 

어떤 얘기를 탁 들으면 화를 내야지, 안내야지, 이런 게 아니라 화가 그냥 콱 나고, 짜증이 팍 나고, 이런 거지, 그걸 내가 조절하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마치 육체에 내가 손을 들고 내리는 것은 내가 의지대로 하지만, 심장이 뛰고 이런 걸 내가 의지적으로 , 그만 뛰어, 천천히 뛰어.” 이렇게 안 되는 거 하고 똑같다.

 

그러기 때문에 이 무의식은 내분비 기관, 그러니까 자율신경에 굉장히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까 내가 위보고, “너 소화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이렇게 아무리 해도 말을 안 듣지만, 기분이 팍 나빠진 다는 것은 무의식에서 반응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내분비 기관, 위가 안 움직인다든지, 소화가 안 된다든지, 이런 일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무의식의 세계,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을 좀 편안하게 가지면 내분비 기관들이 굉장히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건강도 좋아지고 이런 거거든요.

 

아무리 머리로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해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행복해 지는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

머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오.

 

불교교리, 기독교교리, 철학을 아무리 공부하고 해도

그것은 지식의 작용, 생각이기 때문에

그건 행복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우리가 괴롭다든지, 행복하다든지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고,

마음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까르마의 영향을 받는 거요.

 

그 다음에 우리가 여기서 이래야지, 저래야지한다든지, 많은 것을 안다든지, 원리를 안다든지 하는 건 다 의식작용에 속하는 거요.

 

믿음이라는 것도

마음의 작용이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어떤 얘기 들으면 솔깃해서 탁 믿어지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이런 사람은 기도를 하든지, 점을 치든지, 뭘 하든지 굿을 하든지,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서, 무의식에서 탁 받아들이니까 병이 낫든지, 이렇게 효과가 있고,

 

그게 잘 안 되는, 이성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은 그런 거 해봐야 효과가 없어. 기도도 해도 효과도 없고. 기도하면서 이런 다고 되나?” 이 생각이 자꾸 드는 거요. 굿을 하면서도 저런다고 되나? 저게 뭐고?”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거든요.

 

믿음이 갖는 장점은

바로 마음에 평화를 가져오고,

믿으면 바로 행동에 옮겨지거든요.

 

그런데 머리로 하는 것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런 반면에,

행동으로 잘 안 옮겨져요.

그래서 아는 거 하고 행동하고 일치 안하는 것도 이런 작용 이에요.

 

그러니까 믿음을 중요시 하는 종교가 갖는 건 뭐냐하면 이성적으로 보면 굉장히 어리석은 거요. 얼토당토 않는 것도 믿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부작용, 맹신의 위험이 있는 거요. 이것이 갖는 부작용은. 개인에게는 좋지만 사회적으로는 부작용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이비 종교 믿음 때문에 사회적인 물의도 많이 일으키고 그러잖아요.

 

대신에 철학이라든지 이런 이성적인 작용은 합리적이고 모든 건 다 맞는데, 이게 자기가 행복해지기가 잘 안 해요. 마음에 영향을 잘 안 주기 때문에.

 

그래서 수행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성적인 작용인 지혜가

마음에까지 영향을 주는 거요.

 

그러니까 의식의 세계가

무의식에 영향을 주는 거요.

 

이게 우리는 각오 결심을 하는데,

각오 결심은 영향을 주는 게 아니고,

감정을 억누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죠.

그리고 터져버리고.

 

그런데 수행이라는 것은

밝은 의식을 무의식의 세계로 내려가서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게 수행이라는 거요.

이게 부처님이 특히 이걸 연구해서 발견하신 거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자기 특성에 맞게 살아야 돼.

안 믿어지는 걸 자꾸 믿어서 해결하려고 하거나,

그걸 부러워한다 해서 자기가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아까 옆에 있는 학생이 생각이 많은 것처럼, 사유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행복은 행복하고 싶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행복하고 싶은 것은 사고사유의 작용이고,

행복해지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은 것은 의식의 작용이고,

행복해지는 것은 무의식의 작용이라는 거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야지.’ 하는 것은 의식의 작용이고

피곤해서 일어나기 싫은 것은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에

그게 영향을 안 주는 거요.

 

그러니까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갈 수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되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특성에 맞게 행복해지고 싶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무엇이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가를

오히려 살피는 게 좋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느냐

나의 조건이냐?

 

살펴보면 자기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사물을 부정적으로 본다.

, 이 부정적으로 보는 게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고 있구나.

그러면 자기가 연습을 자꾸 해야 돼.

 

사물을 자꾸 긍정적으로 보는 연습을 해야 되는 거요.

행복해야지, 하고 결심하는 게 아니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연습을 자꾸 하는 거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감았다가 못 뜨면 어때요? 죽잖아. 그죠?

아침에 눈 뜨자마자 , 살았다.” 이게 긍정적 사고요.

살았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오. 기적이에요.

살았다.”

 

어제 라스베가스에서도 안 죽고 살았으면 기적 아닙니까? 살았다. 매일매일 기적이 일어나거든요. 그리고 그래도 내가 아프리카 사는 거 보다 미국 사는 게 낫잖아. 혼자 사는 거 보다는 결혼해서 사는 게 낫다.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자꾸 하면서

그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떠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마음이 저절로.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감사한 거요.

 

그러니까 스님이 오시는 것을 여러분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잖아. “아이고, 이 먼데까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누가 좋을까? 법륜스님이 좋을까? 자기가 좋을까? 자기가 좋은 거요. 그래서 자꾸 감사하는 마음을 자꾸 내어야 되는데,

 

질문자는 세상에 대해서 감사할 줄을 좀, 감사하는 마음이 적은 거요. 그래서 이것은 철학을 공부하고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항상 뭐든지 사람들에게나 어떤 일에든지 감사하는 마음을 자꾸 내어야 되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미국에 살면서 땡큐 많이 하는데 왜 그럴까?

 

우리는 뭘 해줄까?” 할 때 싫으면 아니야, 싫어요.” 여기까지만 하잖아. 그죠? 미국은 뭐라고 그런다? “노 땡큐이게 굉장히 좋은 말이오. 거절하면서도 그렇게 제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하지 않겠다.” 이 얘기 아니오. “주시겠다니까 감사하지만, 저는 안 받겠다.” 감사 하다는 게 항상 노 땡큐가 붙어있어야 돼. 노우, 할 때 노우만 하면 안 되고 노 땡큐를 해야 되는 거요.

 

그렇게 자꾸 연습을 하면, 개선이 될 수가 있다. 뭘 믿으려고, 안 믿어지는 것을 왜 믿으려고 그래? 그것을 억지로. 믿어지지도 않아요.

 

여러분들 믿어야지,” 이 말은 믿어진다는 거요? 안 믿어진다는 거요? 그래. 믿어야지. 이것은 안 믿어진다는 거요. 그런데 진실을 발견하면 어때요? 아까처럼 쥐약 들었다하면 저절로 먹고 싶은 생각이 끊어지는 것처럼,

 

이성적으로 내가 확인을 해버리면

믿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확인할 수 있죠. 자기가 만약에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뭐든지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고 100일을 한번 해본다. 하면 좋아지는 걸 자기가 딱 느낄 수가 있는 거요.

 

(합리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가 괴리가 있었을 거 같은데

그런 부분을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괴리가 있었을 거 같다가 아니라 괴리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하죠. 괴리가 일어나는 게.

 

그러니까 우리가 중요한 것은

항상 현실을 인정하는 거요.

 

북한이 핵을 안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이지가 않는 거요. 핵을 가진 게 현실이고, 그럼 이 현실을 인정하고 그럼 여기서 무슨 위험이 있느냐를 봐야 되는 거요. “너는 무조건 핵 안 가져야 된다.”는 것은 내 요구인데,

그러면 죽어도 가지겠다.” 그러면 이것은 갈등밖에 없잖아요.

왜 중국은 핵 가지고 있는데도 괜찮고, 왜 인도는 핵 가졌는데 괜찮냐? 이렇게 살펴봐야 되는 거요.

 

첫째는 핵을 가진 게 문제고, 두 번째는 못 갖게 하겠다고 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 이 둘이 전쟁이 일어난다 하면 피해가 예상되니까, 제일 좋은 것은 북한이 안 가지면 제일 좋지만, 그것을 우리가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으면,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찾아야 된단 말이오.

 

그건 뭐냐? 핵 확산방지다. 좋다. 그럼 더 이상 생산하지 마라. 가지고 있는 것은 당분간 가지고 있더라도 더 이상 생산하지 마라. 이렇게 요구 조건을 하나 낮추면 타결의 길이 있다는 거요.

 

그런데 이쪽은 최선만을 추구하는 거요. 그럼 북한도 어떠냐? 자기는 핵도 가지고 경제도 가지고, 이게 북한이 원하는 최선이란 말이오. 그러면 미국은 핵을 없애버리는 게 제일 좋지만, 핵의 위험을 방지하는, 있다하더라도 위험을 방지한다면 이게 확산방지에요. 투명한 관리란 말이오.

 

그럼 북한은 핵을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경제도 가지고. 두 개는 다 안 된단 말이오. 왜냐하면 경제를 개발하려면 외부 지원이 있어야 되니까. 그러니까 핵을 중지시키는 대신에 경제발전을 얻을 수가 있다. 제재를 푸는 방식을 얻을 수 있다. 이게 타협이라고 하는 거거든요. 인생은 다 그런 거요.

 

우리는 최선을 추구하다가

항상 최악을 맞는 게 인생이죠.

이게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선택해야 되고,

현실에서는 차선이 없으면 뭐도 선택해야 된다?

차악도 선택해야 되는 거요.

 

그건 손해지마는

덜 손해나는 길을 선택해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익밖에 모르거든요. 인생은 손해도 나는 거요. 그럴 때는 덜 손해나는 것을 선택을 해줘야 된다. 이것을 주식시장에서는 손절매라고 그러죠. 손해 받고 팔줄 알아야 되요. 덜 손해 받고 팔 줄 알아야 주식을 할 수가 있다.

 

그런 것이 우리 인생살이니까, 당연히 괴리가 있죠. 괴리가 있는 게 현실이오. 사람이 둘이, 부부가 만나면 갈등이 있는 게 현실이오. 없어야 된다고 하니까 갈등이 있는 걸 못 참는데, 갈등이 있는 게 당연하고 너무나 당연한 거요.

 

그럼 이 갈등을 어떻게 줄일 거냐. 없앨 수는 없어요. 어떻게 줄일 거냐. 사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은 좀 줄여야 될 거 아니야. ? 갈등이 격화되면 혼자 사는 거 보다 못해진다는 거요.

 

그럼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해서 살았는데, 갈등이 격화되면 혼자 사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혼자 살면 또 문제가 해결 되냐? 안 돼요. 또 사람을 찾아 또 만나게 되고, 또 안 되니까 또 헤어지고. 이게 방황이란 말이오.

 

그러면 만나서 사는 게 낫겠다.’ 하면 갈등을 없애야 된다.’ 보다는 살만한 혼자 사는 거보다는 그래도 나은 수준으로 갈등을 떨어뜨려야 되는 거요. 그러면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떠냐? 혼자 사는 게 다 100%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갈등을 하는 거 보다는 낫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요. 그러면 혼자도 살만하고, 이런 원리를 알면 같이도 살만하다. 이제 이거거든요.

 

자기가 이걸 완전히 해결하고 이런 건 없어요.

늘 세상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거요.

안 되는 가운데에서 어느 정도 되는 쪽을 우리가 찾아가는 거거든요.

 

행복해야 된다.

그게 위험한 생각이오.

 

왜 괴롭냐? 이렇게 물어야 되는 거요. 괴롭다하면 왜 괴롭냐? 왜 괴롭냐?

내가 미국 사람하고 워싱턴 아메리칸 대학에서 하는데, 자기가 지금 괴롭다는 거요.

왜 괴롭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왜 스트레스를 받냐? 일이 너무 많다는 거요.

 

일이 많은데 왜 괴로워요? 일이 많으면 괴롭다. 이거 스트레스 받는다하고 일치하거든요. 일 많은 거하고 스트레스 받는다는 거하고 왜 일치합니까?

그러니까 여러가지가 일이라는 거요. 여러 가지 일하는 거하고 스트레스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렇게 자꾸자꾸 추구해서 들어가야 되는 거요.

 

그런데 여러분들 행복해야 된다는 것은

늘 기분이 좋고 이런 걸 생각하는 거요.

그런 인생은 없어. 그건 마약할 때만 있는 거요.

 

열반이라는 용어가

기쁘다이렇게 정의가 안 되어 있고

괴로움이 없는이렇게 정의 되어 있는 거요.

괴로움이 소멸된이렇게 정의 된 거란 말이오.

 

우리가 예를 들어서 내가 아이 데리고 남편하고 친정엄마하고 이렇게 4명이 한 방에 앉아서 대화를 할 때, 애가 뭐라고 뭐라고 하면 뭐라고 해요?

얘야, 아니야. 아니야.” 엄마 역할 하죠.

남편이 뭐라고 그러면 무슨 역할 합니까? 아내 역할을 하죠.

엄마가 물으면 무슨 역할 합니까? 딸 역할 하는데

이게 헷갈립니까? 헷갈리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

 

역할을 하나만 해야지 동시에 3개를 어떻게 해?” 아니에요. 하나도 헷갈리지가 않아. 3가지한다고 안 헷갈리는데 10가지한다고 왜 헷갈리겠어. 여러분이 질문을 하는데, 한 사람은 정치 물었다가, 한 사람은 가족 관계 물었다가, 한 사람은 환경관계 물었다면 내가 헷갈릴 일이 뭐가 있어.

 

거울에 천 가지 물건이 와도

그냥 비치고 사라지는 거지,

그게 헷갈릴 일이 뭐가 있느냐 이 거야.

집착하기 때문에 헷갈리는 거요.

 

그러니까 일이 많은 거하고

일이 다양한 거 하고 아무 관계없어.

 

제가 한 사람하고 2시간 얘기하나, 10사람하고 2시간 얘기하나 나한테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요? “왜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묻나? 힘들어 죽겠는데. 한명만 묻든지.” 1명만 물으면, 1명만 계속 물으면 지루하다고 난리오. 그러니까 1명이 계속 하나, 10사람이 10가지를 하나, 어차피 2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 아니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일을 처음 하라고 그러면

몰라서 힘든다고 그러고,

하던 일 하라고 그러면

재미없어 못한다고 그러고,

 

하던 일은 익숙해서 쉽고,

새로운 일은 새로우니까 재미있잖아요.

 

그런 관점을 가지시고

인생에 임해야 된다.

그러니까 그게 긍정적이라는 거요. 으흠.

 

물이 있으면 먹을 수 있어 좋고,

없으면 떠먹으러 가면 되는 거지,

 

있으면 떠먹으려 했는데 누가 여기 물을 채워놓았나이러고,

비어있으면 왜 물도 안 채워놨나이러고

이러면 인생이 끝이 없는 거요.

 

봄이면 봄이 좋고, 가을이면 가을이 좋고, 겨울이면 겨울이 좋고 이렇게 봐야 된다. 그것을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실지로 여러분, 좋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 여름이 와야 수영도 할 수 있지. 실제로 겨울은 좋은 거잖아요. 겨울이 와야 스키도 타지. 봄은 좋은 거잖아요. 꽃도 피고, 가을은 좋은 거잖아요. 단풍도 있고,

 

억지로 안 좋은 것을

좋다고 하라는 거 아니오.

실제로 좋은 거요.

 

좋은 것을

좋은 줄 알자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합리적인 사고를 갖는다고

불행해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