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Buddhastudy 2018. 6. 7. 19:00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윤동주 시인이 남긴 '나무'라는 작품의 전문입니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지요.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흔들리기 마련인데 나무가 춤을 춰야 바람이 분다니

그가 이 짧은 넉 줄의 시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20살 청년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의 위선

내성적이고, 수줍었던 그는 자신의 사촌이자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한 송몽규를 질투하고 동경했다고 전해집니다.

 

시인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부끄러움의 정서 역시 담대하지 못했던 죄책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기고백이었지요.

고뇌하던 청년은 결국 조선어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투옥됐고, 그 차가운 감옥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청량한 바람을 일으키는 나무이길 소망했으나 너무나 빨리 스러져버린 비극적인 청년의 이야기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 또한 제각각 한 그루씩의 나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무가 되고 흩어진 나무와 나무가 함께해야 가능한 바람 부는 초록의 풍경.

숲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바로 나.

, 우리라는 사실

 

오늘로부터 꼭 일주일 뒤인 613.

선거는 다가오지만 또한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늘 쏟아지는 상호 비방의 말들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행사까지

흥겨운 유세차량의 소리와 나부끼는 현수막은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는 듯 멀어져 보였습니다.

 

그러나 숲을 기억하고 나무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몰렸던 관심과 어떻게든 꼼꼼히 점검하려 애쓰는 유권자들.

더위를 식혀줄 바람을 기대한다면 내가 먼저 그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나무가 된 사람들은 20살의 그 시인처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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